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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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2 # 거북이의 요약[ | ]

선조-정조대까지를 당쟁으로 정리한 이 책을 읽고 다시 직접 연표를 만들어보면서 정리한 조선 중후기의 시대는 솔직히말해 망국의 시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사가 조금만 급했으면 벌써 망한 다음 새로운 시대가 열릴 뻔 했지만 망할만 하면 조금 괜찮은 왕이 나타나서 수습 좀 하고 해서 용케 버텨나갔다고밖에 말하기 힘들다. 적절한 타이밍은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 사이가 아닐까나.

하지만 이 상황에서 살아남아 왕조를 이백년이나 이어나갔고 영정조 시대를 맞이한 것 또한 조선이다. 이백년이면 중국에서는 왕조 하나 넘어졌다가 다시 생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그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싶다. 아마도 그것은 성리학의 힘일거 같은데 지금은 뭔지 잘 모르겠다. 왕중에서는 선조와 숙종이 특히 짜증난다. <mysign(거북이,2004-4-19 3:25 am)>

ISBN:897139319X

  1. 1568 선조 즉위, 조광조 영의정 추증
    1. 1574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으로 동서분당
    2. 이조전랑직은 탄핵이 가능한 삼사의 관원을 추천할 수 있는 직책이며 청요직
    3. 김효원의 동인쪽은 젊은이들의 명분중시 강경파 소장파적인 성격이 있었음
    4. 그렇다고 심의겸이나 정철이 속한 서인쪽이 더 부도덕했다고 보긴 어렵고, 단지 정치경력이 많은 인물들이었던 것 뿐임
    5. 1584 동서대립을 중재하던 이이 사망
    6. 이이는 김효원과 심의겸을 모두 외직으로 보내거나 양시론을 내놓으며 동서화합을 꾀했지만 오히려 강경한 동인에 의해 공격받음, 동인이 이황쪽의 학설을 지지했고 이이와 이황의 학설이 달랐던 것도 한가지 이유
    7. 선조, 이이사후 동인들 점차 등용
    8. 1589 동인 영수 정여립 반란사건 발생, 동인 대거 실각
    9. 1590 동인 김성일, 일본 침입 없을거라 보고
    10. 1591 정철, 광해군 세자 책봉 문제로 파직후 위리안치
    11. 동인, 정철 치죄문제로 남인(온건파)과 북인(강경파)으로 분열
    12. 1592 임진왜란
    13. 백성들이 몽진중인 선조를 막고 정철 석방을 읍소
    14. 의병장을 많이 배출한 북인 집권
    15. 광해군은 전란중 세자로 책봉되고 분조를 맡아 훌륭하게 조정을 이끎
    16. 선조, 여전히 광해군을 폐하고 적자이지만 어린 영창대군에게 후사를 물리려고 시도
  2. 1608 광해군 즉위
    1. 대북의 도움으로 즉위. 소북 유영경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다 대북 정인홍이 발각.
    2. 광해군, 경기도에 대동법 실시, 청과 명 사이에서 균형적 외교감각 구사
  3. 1624 인조 즉위
    1. 영창대군 교살과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발한 남인과 서인의 연립 쿠데타, 인조반정으로 즉위
    2. 명분이 미약한 반정이었으며 이후 서인은 점차 수구세력으로 변질
    3. 1624 이괄의 난
    4. 일등공신에 해당하는 이괄이 논공행상에서 밀린 것에 불만을 품고 반란, 이에 서인들은 정치범들을 모두 주살하고 도주
    5. 1627 정묘호란
    6. 대북정권의 균형적 외교에 반대했던 친명사대정책의 결과로 발생, 이괄의 잔당이 후금에 넘어가서 고변한 것이 직접적 원인
    7. 1636 병자호란
    8. 정묘호란에서 형제국을 맻고 간신히 전란을 피했지만, 명과의 일전을 위해 형제국을 군신국으로 바꾸자고 한 청의 요구를 거부하여 발생, 조선에는 명장 임경업이 있었으나 효과적인 대응 실패
    9. 1637 삼전도의 치욕, 소현세자 인질로 심양에 잡혀감
    10. 소현세자는 오삼계가 청에 항복하여 이자성을 토벌하러 가는 것을 보고 대세는 청이라는 확신을 가짐
    11. 소현세자, 예수회 신부 아담 샬을 만남
    12. 1645 소현세자, 인조와 친명 사대주의자들에게 독살
    13. 인조, 세자일가 몰살
  4. 1649 효종 즉위
    1. 북벌준비,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 확대
    2. 김육, 평생을 대동법 확대실시에 힘씀, 대동법은 세제를 쌀로 단순화하여 조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
    3. 청나라의 러시아 정벌에 참여, 이를 기회로 군비강화
  5. 1660 현종 즉위
    1. 1660 1차 예송논쟁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2. 당시는 예학이 성리학의 주류였으며 예학 논의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
    3. 남인과 서인의 공조 완전 분열
    4. 1666 함경도에 대동법 실시
    5. 1674 2차 예송논쟁으로 남인집권 서인몰락(갑인환국)
    6. 남인, 송시열 치죄문제로 청남(강경파), 탁남으로 분열
  6. 1674 숙종 즉위
    1. 1677 경상도에 대동법 실시
    2. 1680 경신환국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3. 남인의 위세가 강하다고 판단된 숙종이 기름 천막 유용 사건을 빌미로 일으킨 환국, 보사공신 책봉
    4. 1681 이이와 성혼 문묘종사
    5. 송시열의 수구화에 등돌린 윤증과 젊은 서인들, 이후 소론으로 분열
    6. 1689 기사환국으로 남인집권 서인몰락
    7. 남인의 정치적 활용을 우려해 장희빈을 기피했던 서인에게 숙종이 일으킨 환국
    8.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호했으나 서인 송시열 반발, 송시열 사사, 이이와 성혼 문묘 폐출
    9. 1694 갑술환국으로 서인집권 남인몰락
    10. 서인들이 장희빈을 축출하고 민비를 복위시키려 한다는 핑계로 서인들을 도륙하려던 남인들의 전횡을 보고 숙종이 일으킨 환국,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
    11. 1708 황해도에 대동법 실시
  7. 1720 경종 즉위
    1. 소론의 지지로 세자 지위 유지
    2. 노론, 강제로 왕세제 책봉후 대리청정 주장
    3. 1720 신축환국으로 소론집권 노론몰락, 임인옥사
    4. 목호룡의 고변으로 노론 4대신 및 노론 전반 축출
  8. 1724 영조 즉위
    1. 1725 탕평책 천명
    2. 1727 정미환국, 소론집권 노론몰락
    3. 노론이 신축환국의 보복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계속 보복을 주장하자 소론에 정권 넘김
    4. 1728 이인좌의 난
    5. 경종 독살설을 이유로 소론 강경파 이인좌의 거병, 거병전에 탄로남
    6. 영조는 이것으로 영남권을 배제한다면 그들은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인재를 두루 쓰려 함.
    7. 1736 사도세자 책봉
    8. 1741 임인옥안 불태움
    9. 노론 완전 신원
    10. 균역법 실시
    11. 1759 영조(66) 정순왕후(15)를 계비로 들임
    12. 1762 사도세자 사사
    13. 사도세자가 경종과 소론에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영조와 노론이 죽음으로 몰아감
    14. 노론 사도세자 사사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벽파와 시파로 분열
  9. 1776 정조 즉위
    1. 규장각, 장용영 설치 후 당색에 물들지 않은 신진 문무인 양성
    2.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고 자신을 폐위시키려 했던 노론과 홍씨(외가)에 보복
    3. 홍국영을 등용하고 노론 벽파 몰아냄, 정조 암살 기도
    4. 1783 이승훈, 연경에서 세례
    5. 1791 체재공, 신해통공 실시
    6. 1792 영남만인소로 사도세자 신원과 남인의 부상
    7. 1800 공노비 해방
  10. 1800 순조 즉위
    1. 1801 신유사옥
    2. 1802 세도정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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