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mf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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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데뷔하여 가히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할만한 젬피라(1976년생)는 우파(Ufa) 출신이자 타타르(tartar)계이다. 우파는 D.D.T.의 리더 유리 셰브추끄의 고향이기도 한 곳으로 우랄 산맥 밑에 위치한 곳이다. 이른바 ‘변방 소도시 출신의 얼터너 걸(alterna girl)'인 셈이다. 그녀는 단지 ‘대중적 인기’의 차원을 넘어 ‘세대의 목소리 어쩌구’하는 매스 미디어의 호들갑에 딱 어울리는 행동으로 매스 미디어의 초점이 되어 있다.

한 외지의 표현에 의하면 젬피라는 “엘비스 프레슬리, 섹스 피스톨스, 커트니 러브가 하나로 뭉쳐진”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선정적 타이틀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녀의 음악과 행동은 ‘성적 도발’이라는 기호 아래 모아진다. 요즘은 한국의 스포츠신문이나 연예정보지 못지 않게 선정적이 된 러시아의 연예잡지에서 한때 ‘트랜스젠더’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중성적인 이미지의 그녀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무대에 오르고, 공공연히 담배를 피우고, 앨범에 사진을 한 장도 싣지 않는 등 러시아 대중음악계의 관습을 허물어대는 일련의 파격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블라지미르 나보꼬프(Vladimir Nabokov: 1899-1977)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힌 사실도 그녀의 신비적 이미지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젬피라의 목소리는 ‘인터내셔널 팝/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드럽게 속삭일 때는 수잔 베가(Suzanne Vega)를, 열창할 때는 (포티스헤드의) 베쓰 기븐스(Beth Gibbons)를, 거칠게 토해낼 때는 아니 디 프랑코(Ani DiFranco)를 각각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를 든 영미의 록 우먼들보다 더 다채로운 창법을 소화해낼 줄 알고, 그녀의 프레이징은 억세고 투박하게 들리기 쉬운 러시아어를 마치 프랑스어처럼 우아하게 둔갑시켜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성적 모호성을 표현한 난해하고 복잡한 시어들로 만들어진 가사를 만들어낸다. 레즈비언이라는 혐의는 지금까지도 계속 따라다니고 있으며, 특히 AIDS라는 뜻의 “Spid”의 곡에 나오는 “나는 우리가 곧 죽어버릴 것이라는 걸 알아, 랄랄라”라는 가사는 사회적 논란을 촉발시켰다. “드레스를 입은 커트 코베인(Kurt Cobain in a Dress)”라는 러시아 언론의 호칭은 그녀가 어떤 아이콘이 되어있는지를 함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출처 www.weiv.co.kr

2 # Zemfira[ | ]

 \\ Zemfira
Zemfira/Real Records, 1999

앨범 커버는 전체적으로 보면 연분홍색이고, Zemfira라는 말의 러시아어 문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연분홍색은 꽃이고 그래서 무슨 벽지 같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음악산업의 경향이 러시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면 매우 이례적이다. 뮤지션의 이미지는 커버 뿐만 아니라 부클릿 등 음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음반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면 더욱 이상하다. 얼굴이 못 생겼기 때문에? 최근 등장하는 러시아의 젊은 여가수들처럼 꽃 같은 미모를 자랑하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카리스마와 중성적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는 의도적으로 보인다.

이는 이 음반이 '인디펜던트'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가수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는 러시아 프로듀서의 입김을 배제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1999년을 '젬피라의 해'로 만든 작품이 되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젬피라를 발굴한 인물은 '1997년의 발견'인 무미 뜨랄(Mumiy Troll)의 리더 일리야 라구쩬꼬(Ilya Lagutenko)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음반은 팝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충분한 자율성을 지니고 제작되었다.

첫 트랙 "Pochemu(왜)"의 가사는 남자와 헤어진 여자의 애증 섞인 미련을 담고 있다. 키보드라고 부르기에는 촌스러운 오르간 소리는 러시아 대중음악의 전통(이른바 '에스뜨라다(estrada)')을 떠오르게 한다. 집시 음악에서 원용한 단조(주로 A minor)의 코드 진행, 신서사이저 음향에 기초한 편곡, 고독한 사랑타령을 담은 가사로 요약되는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뜻이다(알라 뿌가쵸바의 "백만송이 장미"를 연상하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 곡은 젬피라 최초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렇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느낌은 묘하게 변한다. "Pochemu('빠체무'라고 발음한다)"라고 외치는 코러스가 시작되면서 짧게 끊어치는 기타, "빠라빠빠"라면서 무의미한 의미의 보컬 애드립 부분에 이르면 '무언가 다르다'는 인상이 확연해진다.

비음이 섞였으면서도 날카롭고 수다스러운 목소리의 매력은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 위에서 부르는 두 번째 곡 "Sneg(눈)"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특히 마지막에서 "Sneg...('스녝'으로 발음한다)"이라고 외치는 부분은 얼음공주(ice princess) 같은 서늘함으로 다가온다. 이 곡만 해도 '무언가 열정을 숨기고 있다'고 느꼈다면, "Sinoptik(기상예보관)"을 거쳐 "Skandal(스캔들)"이나 "Rakety(불꽃놀이)"에 이르면 거친 톤의 기타와 더불어 터지는 그녀의 격정적 보컬을 들을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몇 개의 조용하고 차분한 곡들도 있다. "Prapevochka(대중가요)"는 비극적 바르드(bard)인 양까 지야길레바(Yanka Dyagileva)가 천국에서 춤을 배우고 돌아와서 부르는 노래 같고, 마지막에 있는 "Zemfira"는 '트립합의 국제적 영향'을 확인하라는 듯 음울한 일렉트로닉 음향 위에서 상처받은 여인의 토치 싱잉(torch song)이 흘러나온다.

방금 언급한 "Zemfira"와 "Ne Poshloe(속물적이지 않아)"의 무드와 코드 진행이 무언가 재지(jazz)하다고 느꼈다면, "Rumba"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남미의 정열이 녹아 있고, "-140"같은 곡은 본격적으로 보싸 노바라고 해도 좋을 코드 진행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추운 지방에 살면서 웬 룸바와 보싸 노바?'라는 의문이 든다면 젬피라가 16살 때부터 지방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재즈 보컬과 모타운 소울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 세계는 지리적으로 오지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문화적으로는 '글로벌라이즈'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왠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지는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22살의 나이로는 앨범의 제작 전체를 통제하기는 무리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이 정도만으로도 파격적이라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그래 맞다. "애니는 요구했다. 티셔츠를 벗으라고"("Maechki(티셔츠)")라든가 "우리는 이제 곧 모두 죽을 거야 랄랄라"("Spid(에이즈)")라는 가사만으로도 충분히 쇼킹하니까.

출처 www.wei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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