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Am/TA

   

1 # Trans Am <T.A.>[ | ]

모방의 전략과 시대착오적 뉴웨이브 앨범을 듣는 즐거움

록 음악은 저항 불가능한 거대한 선언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오늘도 생겨나고 없어지는 많은 록 밴드들이 도전하는 성역이 바로 록 그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과장은 아니며, 우리 시대에도 레드 제플린의 시대와 같은 대형 밴드의 출현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은밀한 욕구가 있다. 뭐, 그것은 모두의 바램은 아닐터, 노래방에 들러 추억 속에서 그들을 노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사실 포스트-록이라는 것은 사이먼 레이놀즈가 그 단어를 만들어내고 의미 부여하기 시작한 이래, 2000년대에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질 록의 미래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사실 이제는 그것도 한때의 프로그레시브 밴드의 야심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성급한 포기로도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가끔 그 쪽 범주의 밴드들의 진정성이 사실은 완전한 농담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의심해보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트랜스 암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제목은 <T.A.> 이 단어의 뜻은 ‘세금 징수원’이기도 하고, ‘조교’이기도 하다. 그냥 속편하게 ‘Trans Am’의 약자인 걸로 생각하자. 미국횡단을 뜻하고, 지금은 상표로 널리 알려졌고, 자동차 매니아들을 열광시키는 이름이며, 이제 우리가 그들의 지금까지의 음악적 시도와 새로운 결과물을 놓고 함께 속시원하게 이야기해볼 대상이기도 하다. 트랜스 암의 음악적 야심, 혹은 그들의 음모는 레드 제플린의 시대와 뉴 오더의 시대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 트랙 안에서. 혹은 크래프트베르크를 포리너와 짬뽕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날의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고 싶어했다. 록이 대명제가 되어 불타는 관중의 열기를 소진시키는 그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대형 밴드들의 음악적 절정을, 그리고 그 절정을 즐기는 록 팬들의 카타르시스를. 그리고 동시에 뉴웨이브가 불러일으켰던 플로어의 낭만과 발에 불붙는 땀냄새, 거기에 크라우트 록이 만들어냈던 디지틀 음의 전형성들을 부가하고, 이제는 복고풍의 미래주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들의 앨범들은 대체적으로 위의 경향들이 하나씩 강조되어 있었고, 지난 앨범 <Red Line>의 경우는 위의 모든 경향에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시절에 대한 그리움까지 덧붙여졌다. <Red Line>은 평론가들로부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극찬을 받았다. 트랜스 암은 그 특징적인 유머 기질로 한껏 괴팍하게 과거를 상기시켰지만, 그 어디에선가 스며나오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대에 대한 가슴 아픈 짝사랑이 지난 날에 이미 전성기를 거쳐 이제는 값싼 리바이벌이 아니고서야 다시 듣기 힘든 과거의 음악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 평론가들의 젊은 시절을 다시한번 상기시켰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T.A.>는 본격적으로 뉴웨이브를 복사하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 암의 시도들은 저렴하게 그 음악적 야심들을 복사해낸 것들이었고, <T.A.>에서도 그러한 전략은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평론가들이 다들 ‘이건 아닌데’하면서 호들갑이다. <Red Line>을 최고로 쳤던 그들이 <T.A.>는 ‘짜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번 앨범에서 트랜스 암의 모델로 삼은 뉴웨이브에 대한 나쁜 추억 때문일 수도 있다. <Future World>에서 카시오 신디로 값싸게 크라우트 록과 근미래 영화 사운드트랙을 흉내내었던 것이나, 에서 대형구장(아레나) 락의 시대를 다시한번 노래한 것이나, <Surrender to the Night>에서 캔과 같은 밴드를 상기시켰던 것이나, 아무리 그 모든 경향을 통합했다고 해도 같은 맥락의 <Red Line>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던 그들이 이제는 트램스 암의 전략에 싫증이 난 것은 아닐까. 사실 <T.A.>는 트랜스 암의 음악적 스타일이 확연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들은 첫 트랙부터 신나게 뉴웨이브를 모방하고 있는데, 거의 듣는 사람에게 시대착오적 느낌을 줄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로 그 뉴웨이브가 아니다. 뉴 오더도 아니고, 카자구구나 톰슨 트윈스도 아니고, 뭔가 미진한 정체불명의 모방물이다. 그것이 문제다. 트랜스 암의 모방 솜씨가 빛을 잃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들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도 신물이 날 정도이다. 요즘 모두들 복고 경향이네, 회고주의네, 시대를 뛰어넘는 절충이네 하는 음악들을 양산하고 있지 않은가. 트랜스 암은 한때 정말 저렴한 가격의 싱글 도너츠판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댄스 음악에 대한 암묵적인 경시로 인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뉴웨이브의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도 뉴웨이브의 형태를 이루었던 음악적 양상들이나 그 시대의 맥락은 알지만, 진짜 뉴웨이브를 나타내는 코드들을 모방하기에는 너무나 포스트록 시대의 요구에 얽매어있거나, 너무 익스페리멘틀하다. 하지만, 그런 요구와 익스페리멘틀리즘이 없으면 또 트랜스 암의 존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것은 정말 트랜스 암에게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트랜스 암이 무엇보다 초기에 호평받았던 것은 이제는 묻혀지거나, 그 의미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은 음악들을 재정의하고, 다시한번 그 음악들의 미덕과 환희의 순간을 기억해보게 하는 데 있었다. 그들이 크라우트 록이나 뉴웨이브나 한물 간 것으로 여겨지는 메틀 음악에 대해 애정을 표명한 것은 음악 팬으로서의 온고지신의 예처럼 보였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권태’이라고 했다. 그렇다, 권태, 지루함.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추동력으로서 권태를 이야기한 것이지, 그들의 음악이 권태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에 하이파이 음향기기와는 친숙하지 않지만, 거의 장난감처럼 자유자재의 아이디어로 신디사이저를 사용해왔던 트랜스 암에게 <T.A.>는 그래도 디지틀 퍼커션을 시도해보는 장이 되기도 했고, 80년대 변종 뉴웨이브들의 감상적인 보컬 트랙을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하였고, 흥겨운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 시절의 유로 팝을 기기묘묘하게 만들어내기도 했다. “Different Kind Of Love”는 사실 거의 뉴웨이브의 감상성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낸 트랙이다. 보코더 보컬의 “Party Station”은 또 어떠한가? 친구들과 80년대를 기억하는 댄스 파티를 열고, 이 음악을 틀어보아라. 아무도 이 음악이 80년대의 스타일과 다르다고 항의하거나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Afternight”은 트랜스 암이 포스트 록의 경향을 모방하고 있는 트랙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C Sick”은 아메리칸 록의 전형성을 모방하고 있는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트랜스 암 고유의 음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모방의 전략을 배제하면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가? 정말 모방의 전략이 트랜스 암의 실체의 전부란 말인가?

처음부터 록 음악에 대한 애정과 권태의 심정 모두로 모방을 화두로 삼았던 트랜스 암의 <T.A.>는 평론가들에게 플라톤식의 모방으로 예술을 정의하는 셈이 되어, 모방으로 존재하는 것은 진정한 이데아로 인정받지 못하는 저급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같다. 그러나 결코 <T.A.>는 실패작이 아니다. 단지 트랜스 암의 전략이 투명하게 공개되어버려서, 트랜스 암에게 처음부터 가벼운 농담과 같은 음악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할 따름이다. 트랜스 암의 드러머로서 복고적 회고주의의 드럼 솔로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세바스티안 톰슨과 기타와 베이스를 번갈아 연주하는 필립 맨리, 네이썬 민스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라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밴드를 결성했고, 후에 시카고에 본산을 둔 쓰릴 자키로부터 발탁되어 거기서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다. 이들의 포스트 록 씬 뮤지션들과의 공고한 결탁은 이들을 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포스트 록 밴드로 자리잡게 하였다. 사실 모방도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고, 넘쳐나는 실험정신이 없으면 오늘에도 의미를 갖는 지난 날의 장르를 복원하는 일을 하기 힘들었기에, 트랜스 암의 음악은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마치 레드 제플린과 뉴 오더, 크래프트베르크와는 전혀 다른 시기의 인디 팝에서 그런 음악들이 직조되어 나왔던 것에 대한 탄성과 같은 것이 트랜스 암을 오늘의 위치로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미국 시장에서의 대우는 포스트 록 씬이 커지면서 함께 좋아졌다고 볼 수 있고, 유럽 시장에서는 독일의 밀 플래토 레이블의 질 들뢰즈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레코드에 참석함으로써 함께 좋아졌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들뢰즈의 음악은 분명한 것이어서, 본질이 아니라 사건이 중요하다는 그의 사상이 보다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Molecules”와 같은 제목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Red Line>이 분명 그 해의 음반이었던 것은 트랜스 암이 모방의 전략보다는 패스티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마치 바로크 시대의 조형물의 어설픈 복제본이 키취의 이름으로 이야기되거나, 우리나라 전국의 모든 예식장에 유럽의 18세기 스타일의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진 것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는 우리에게 트랜스 암은 가장 유효적절한 방식으로 침투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추천을 원한다면 <Red Line>이나 <Future World>를 이야기하겠지만, <T.A.>가 결코 트랜스 암이 한발 물러선 의미의 앨범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까발리면서까지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포스트 록 씬의 실험주의의 극단을 관망하는 청자들에게 추천가능한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뉴웨이브의 팬들에게 더 효과적인 추천 앨범일 수도 있다. -- Sonimage 2004-5-8 12:52 am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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