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yer

1 # 슬레이어를 들어라![편집]

'88만원 세대'를 비롯하여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이슈이니 세대 얘기를 하자면 나는 메탈 세대 막차라고 할 수 있다. 아이언 메이든이 80년에, 슬레이어와 메탈리카가 83년에, 헬로윈과 메가데스가 나란히 85년에 활동을 시작했지만 메탈이 제대로 한국에 상륙한 것은 88-90년 사이가 아닌가 싶다. 메탈리카는 86년작 Master of Puppets로 빌보드 앨범차트 20위권에 들어갔는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89년에는 이미 메탈리카의 4집까지의 모든 앨범을 LP로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91년작인 블랙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이슈가 되어 돈많은 집 아들은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CD로 입수하여 애들에게 떠주고 다녔다. 내가 살던 동네가 서울의 오지중 오지인 상계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강남에 살던 부르주아지들(ex SonDon)은 훨씬 일찍부터 메탈을 접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압구정 상아레코드는 그 당시 나름 성지였고, 나도 종종 내려와서 성지순례를 하고 갔다. 물론 근처에 있던 신나라레코드도 함께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슬레이어를 처음 접한 것은 메탈을 한참 듣던 92년경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미 그들의 3집 Reign in Blood는 업계 클래식이었고 5집인 Seasons in the Abyss는 한 곡만 짤린 채 성음에서 라이센스로 발매가 되어있었다. 그 와중에 그들의 메탈 블레이드 레이블 시절 1, 2집이 지구레코드를 통해 염가에 풀려서 헝그리 학생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당시 지구레코드는 참으로 민족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5대 음반 메이저의 가격 담합에 굴하지 않고 그들의 6-70% 정도의 가격을 고집하면서 내가 사지 않으면 누가 사리 싶은 푸어 메탈들을 꾸준히 발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음반들은 꽤나 괜찮았다. 지금도 회현동에 가면 그때 나왔던 크림슨 글로리나 킹 다이아몬드 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분명 만오천원은 넘었을 Reign in Blood CD를 사지는 못했고 친구가 테이프로 녹음해주었던 것을 열심히 들었다. 이미 여기서 슬레이어의 미덕을 하나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74분짜리 크롬 테이프 하나면 양면에 앨범을 한번씩 녹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앨범은 러닝 타임이 29분 3초로 30분을 넘지 않았다. A면을 듣고 테이프를 돌려야 하는 수고를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Reign in Blood 앨범 특유의 속도감 때문인데 그 덕에 Seasons in the Abyss(43분)는 지금 들어보면 충분히 빠르고 헤비한 앨범인데도 당시에 배신감이 느껴질만큼 느려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이게 사람이 연주하는거냐'라는 거였다. 나중에야 트윈 리드기타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적어도 그 괴수같은 투베이스 드럼의 질주는 데이브 롬바르도라는 한 인간이 연주하는 것이었고, 그 속도로 베이스 연주를 하면서 노래까지 함께 했던 탐 아라야 역시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음악이 무슨 차력술도 아니고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생각할 필요는 하나도 없는 것이지만, 당시에 메탈을 듣는 애들에게는 그게 그렇지 않았다. 누구 기타가 더 빠르네, 누가 더 잘치네 이런걸로 밤낮 싸웠다. 서로 자기가 지지하는 밴드들이 있었고 특히 메가데스의 팬들은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데이브 머스테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메탈리카를 까곤 했다. 여튼 메탈계의 파가니니라고 할 수 있는 슬레이어의 연주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왔다.

이후 한장 한장 사모으기 시작하여 지금 나에게는 슬레이어 음반이 18장 정도 있다. 지금 우리집에 있는 뮤지션 중에서 킹 크림즌처럼 부틀랙이 계속 나왔거나 마일즈 데이비스처럼 앨범 숫자가 살인적으로 많은 뮤지션을 빼고 단연 톱이다. 사실 한장 들으나 열장 들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똑같이 들릴 슬레이어를 왜 18장이나 가지고 있느냐, 바보냐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나도 나름 그렇다고 생각한다. 5집 이후 데이브 롬바르도가 탈퇴했을 때 새로 가입한 폴 보스타프가 결고 나쁜 드러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사고싶지 않았다. 롬바르도 흉아가 없는 슬레이어에 과연 존재 의의가 있나 싶었다. 그런데 꾸준히 90년대에도 앨범을 내놓다보니 나도 오며가며 듣게 되었는데, 이 인간들은 정말 한결같이 똑같은 사운드를 내고있는 것이었다. 아따 징허다 생각하며 나는 열심히 포스트 펑크나 다른 블루스 락을 듣고다녔다.

그런데 메탈리카는 Load / Reload를 내놓으면서 돈을 벌었지만, 더이상 햇필드의 어으~ 하는 보컬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솔직히 더이상 메탈리카는 메탈밴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메가데스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4집 이후의 황금 라인업이 깨진 이후의 메가데스는 나같은 올드팬에게는 거의 막장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의 메가데스 사운드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더이상 손이 가지 않는다. 반면에 슬레이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달리고 있다. 변함없는 슬레이어가 언제부턴가 다시 좋아져서 데이브 롬바르도가 없는 90년대 앨범들도 슬금슬금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폴 보스타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다시 데이브 롬바르도가 돌아와서 새 앨범 Christ Illusion을 내놓았다. 이렇게 황금 라인업을 다시 갖춘 슬레이어는 전성기 못지않은 사운드를 뿜어대며 투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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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어 사운드의 미덕이라고 하면 뭐랄까 삶의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논리가 있다. 지금 들어도 슬레이어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사운드의 한 극한을 보여준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당대의 고삐리들은 메탈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메탈이 당시 청춘들의 피를 끓게 달구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메탈이라는 음악은 내 친구넘의 표현대로 소림사 수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음악이다. 예를들어 메탈리카 최고의 히트곡인 Enter Sandman이나 이젠 클리쉐중의 클리쉐라고 할 수 있는 딥 퍼플의 Smoke in the Water는 고등학교마다 있는 메탈 밴드의 꼬마들이 가장 처음 따라해보는 연주들이다. 하지만 메탈리카의 빳데리나 슬레이어의 Angel of Death는 초짜들이 결코 따라할 수가 없다. 진짜 고등학교 때부터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10년은 박터지게 해야 제대로 연주할 수가 있을 것이다. 메탈리카와 슬레이어 등도 1, 2집에서는 결코 그런 사운드를 내지 못했다. 다른 장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메탈은 특히 장인의 경지에 오르기 어려운 음악이고 따라서 실력 차이도 금방 드러나곤 했다. 프로 메탈 밴드들 중에서도 연주력의 차이가 꽤 쉽게 노출되는 장르이다. 게다가 스래쉬 메탈의 경우는 장대한 구성을 갖춘 경우들이 있었다. 연주력 뿐 아니라 작곡력과 전체 앨범을 구성하는 완성도까지 갖추었다.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나 메가데스의 Rust in Peace 등을 들어보면 이것이 컨셉트 앨범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프로그레시브 락이나 다른 장르의 컨셉트 앨범들은 발밑으로 볼만큼 대단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여튼 요지는 슬레이어를 듣다보면 저렇게 처절하게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좀 방만하게 살고 있구나하는 반성이 드는 것이다. 그럼 왜 하필 슬레이어냐, 피똥싸면서 연주하는 다른 메탈밴드도 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일단 말했듯 메탈은 약간 차력 삘이 나는 음악인데, 그중에서도 사실 슬레이어는 발군이다. 데이브 롬바르도의 질주 위에 두 트윈기타 제프 한네만과 케리 킹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긁어대는 날카로운 기타 폭주를 듣다보면 뭐랄까 서커스나 귀로 비행기 끌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슬레이어가 단순히 속도만 빠른 밴드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후대의 수많은 메탈 밴드들이 슬레이어를 진정한 형님으로 모실리가 없다. 슬레이어는 그 속도 안에서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속도에 의한 쾌감과 이런 수준 높은 완성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밴드는 내가 아는 한 슬레이어가 정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듣다보면, 아 형님들 너무 열심히 하시네 하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그들에게 감화되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어떻게보면 좀 오바인데, 슬레이어는 분명 나에게 그런 기분을 심어주었다. 가끔 아침에 슬레이어의 앨범을 듣다가 출근하면, 에너지가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기분이 진짜 들지 않는다면 내가 두시간 정도를 들여가며 이렇게 길게 잡설을 쓸리가 없지 않은가. 혹시 당신이 슬레이어를 들어보지 않았다면 아래의 순서대로 3장 정도를 추천하고 싶다. -- 거북이 2007-11-18 1:45 pm

  1. Reign in Blood
  2. Hell Awaits
  3. Decade of Aggression(live, 2CD)
  4. Christ Illusion
  5. South of Heaven

2 # 음악을 들어야 할 때 : 슬레이어에 대한 단상[편집]

  • 제 목:음악을 들어야 할 때 관련자료:없음 [ 1837 ]
  • 보낸이:정철 (zepelin ) 1998-04-17 00:25 조회:68

음악은 무엇을 듣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듣느냐도 무척 중요하다.

어제던가 그제던가 분석화학 시험을 보았다.

젠장 이게 분석화학인지 자연과학 개론인지 하여간 교수가 이상한것만 가르치는데...뭐 그러려니 하면서 재밋게 들었다.

그러더니 역시 시험문제를 이상하게 내는것이 아닌가.

들을때야 좋았지만 셤공부를 할 수 없게끔 가르쳤으니 개판친건 뻔하고..

대충 쓰고 나오면서 귀에 꼽았을때 들어있던 시디는 Slayer의 Decade of Agression Live Disc 1 이었다.

그래 나도 젊었을때는 이런걸 들으며 광분했었지...하는 생각이 아련히 샘솟고 *져버린 시험 때문에 이미 몸은 공연장이었다.

캐리 킹과 제프 한네만이 긁어대는 트윈기타 속에 들려오는 탐 아라야의 목소리.

'Hell Awaits~!'

가끔 스래쉬나 데스를 들어보는것도 정신건강에 좋다.

슬레이어가 나온김에 한마디.

우리집에 삼십분이 채 못되는 앨범(물론 EP가 아닌 LP)이 세장 있다.

하나는 Ramons의 데뷔앨범.

이건 음악이 전혀 구분이 안되므로 이노의 앰비언트 앨범듣는것과 비슷하여 그다지 짧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섹스 피스톨즈도 얘네들에 비하면 드림씨어터고 클래쉬는 얘네들에 비하면 핑크 플로이드 쯤 되리라.

정말 단순하다.

그런데 의외로 들을만 하단말이다.

두번째는 Perry & Kingsley의 The in Sound from Way out!.

요게 아주 웃기는 음반인데 66년에 뱅가드에서 발매된 것으로 매우 원초적인 테크노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부제로 Electronic Pop Music of the Future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려 있는데 완전히 신세사이저 뿅뿅거리는 초 단순 사운드를 전개한다.

이걸 왜 샀는고 하면 비스티 보이즈의 The in Sound from Way out!이라는 연주음반이 있는데 그거랑 재킷도 똑같고 제목도 똑같은걸 우연히 용산 아가랜드에서 보았다.

비스티의 팬이기에 미친척하고 사봤는데 왠걸 아주 의외의 소득이었다.

마지막은 Slayer의 Reign in Blood.

고딩때 데스와 스래쉬 수입시디를, 만오천원을 육박하는 그 시디들을 상아레코드에서 대책없이 사 듣는 친구놈이 하나 있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나는 당시 라이센스 LP로 나오던 메틀리카나 헬로윈을 듣는걸루 만족했는데 그놈을 알고나서 데스, 스래쉬 계열을 녹음해서 듣게 되었다.

어느날 그놈에게 60분짜리 테이프를 주었다.

죽이는 앨범 하나 녹음해오라고.

그놈은 테이프를 주며 말했다. 감을 필요 없어 좋겠다.

앞뒷면에 두번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면을 지우지 않았다.

내 영혼을 끌어당기는 음악이 공간을 더 차지하고 있다는 건 나쁜일이 아니었다.

Angel of Death는 아마 메틀 키드들에게 Starless 이상의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속주와 넘치는 마기魔氣는 정말 멋진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느낌을 받는다.

며칠 뒤면 메틀리카 공연장에 가서 그때의 느낌을 받겠지.

화창한 봄날-우리학교의 봄은 정말 멋쥐다-귀에 슬레이어를 꽂고 주위에 널려있는 바퀴벌레들을 씁쓸히 보면서 시험 떡친 분노를 씹는것은 무척이나 슬픈 광경이라 하겠다.

네번째 보내는 쓸쓸한 봄이여....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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