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hasoittaj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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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HASIUTTAJAT - Hattukauppiaan Aamu Pihasoittajat(피하소이타야)라는 밴드의 역사는 포크 음악이 붐을 이루던 시기인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Pihasoittajat는 1969년에 Kim Kuusi, Harry Lindahl, Petri Hohenthal과 Hannu Karlsson등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처음에 핀란드-아일랜드-미국등지의 포크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실제로 클럽에서 연주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1970년에 Hohenthal이 다른 그룹 Cumulus에 가입하면서 그룹을 떠나자 Pihasoittajat는 일시적으로 붕괴되었고 얼마동안 남은 멤버들은 흩어져 지냈다. 그후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던 Lindahl이 돌아온후 멤버들은 의기 투합하여 새로운 Pihasoittajat를 결성하는데 멤버로는 Kuusi, Lindahl, Karlsson, Henrik Bergendahl와 Kyosti Parssinen등이 참가하였다. 그룹은 그동안 그들에게 전통 켈트 음악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자극제로 작용했던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다시 도입하였다. 본격적으로 Pihasoittajat는 1970년대 초반 더 많은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아일랜드의 음악을 구사하기 위해 아일랜드 역사와 현대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노래들을 알리는데있어 그들의 저항의 노래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문 극단 회사인 Ryhmateatteri와 함께 그들은 문학작품과 노래들을 통해 아일랜드 역사를 다루는 “Vanha iloinen Irllanti(Merry Old Ireland)” 이라는 프로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텔레비젼으로 방영되었고 Mans Groundstroem이 음반의 제작을 맡아주었고 1971년 봄 레코드가 발매되었다. 이 음악은 아일랜드의 고유한 특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안된 보컬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아일랜드 포크 노래들로 구성된 컴파일레이션 음반이었다. 그러한 특성으로 Pihasoittajat는 Greg Coogan의 충고를 받아들여 특히 연주곡에 있어서는 진정한 아일랜드만의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밴드의 멤버들은 기타, 벤죠, 만돌린, Bbodhran, Recorder, Tin Whistle, 아코디온등의 많은 악기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때까지 연주하였다. 이리하여 아일랜드 포크 음악에 대한 그룹의 소박한 태도와 역사에 대한 명확한 비젼은 그들의 영원한 슬로건으로 간주되어질만큼 탁월한 것이었다. 레코드의 판매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Pihasoittajat는 학생 단체가 주최한 파티에서 혹은 컨서트 무대에서, PR집회 장소에서 연주 공연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Pihasoittajat가 결코 아일랜드 음악만을 연주했던 것은 아니었다. 밴드의 주요 리더인 Kim Kuusi는 작곡 능력을 발휘하여 연극의 배경음악 뿐만아니라 그룹의 대부분의 곡들을 직접 만들었다.
1973년에 Arja Karlsson(보컬)이 밴드에 가입하여 Pihasoittajat는 더 많은 자신들의 음악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1973년 3월에 발표된 「Hattukauppiaan aamu」 (The hatmaker's morning)는 멤버 자신들이 직접 만든 북구 유럽의 서정성을 담은 포크록 넘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 앨범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로는 Pentti Mutikainen와 Wigwam의 Pekka Pohjola가 맡아주고 있고 프로듀서로는 Tasavallan Presidentti의 앨범을 담당한 바 있는 Mans Groundstroem가 맡았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Pihasoittajat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본작 「Hattukauppiaan aamu」(The hatmaker’s morning)에서 그룹은 민속악기를 전면에 사용하고 있어 남미의 Quilapayun, Inti-Illimanti, Illapu 등의 음악과 유사한 부분도 들리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통 포크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1974년 5월 라이브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Lindahl, Karlsson, Parssinen등은 활발한 작곡 작업으로부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975년에 Kuusi는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 출전을 위한 핀란드 예선 대회에 참가하여 Hannu Karlsson가 작사한 (Viulu-ukko), (Old man fiddle) 곡으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본 핀란드 예선에서의 성공으로 밴드는 이전보다 더욱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Viulu-ukko)에서 그들의 기술적인 연주는 비공식 멤버였던 Seppo Sillanpaa의 바이올린에 의해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또한 이곡은 스톡홀름에서 다른 곡들보다 커다란 호응을 받았고 그곳에서의 좋은 반응으로 순위차트 7위까지 올랐다. 그 곡의 영어가사는 그룹 Harvest Home의 Arthur Spencer에 의해 번안된 바 있다.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후 밴드는 세 번째 앨범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앨범이 1975년에 공개되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컨테스트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Kuusi가 작곡과 편곡을 담당하고 전통 핀란드 시를 기초로 하여 만든 노래들로 이루어진 훌륭한 앨범 (Kontaten kotia) (Coming home on all fours)이후로 그룹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록곡중(Kansansatu),(Folktale)는 시인 P.Mustapaa의 시를 화려한 작곡으로 돋보이게 만든 곡이었다. 음악적으로 Pihasoittajat는 재즈와 록에 근접해갔으며 Mans Groundstroem과 Otto Donner이 제작에 참여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다음과 같은 뮤지션들 Pekka Pohjola (베이스 연주), Esko Rosnell(드럼), Juhani Aaltonen(색소폰), Esa Kotilainen과 Olli Ahvenlahti(키보드)과 함께 활동하면 서 얻게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앨범을 완성하면서 그룹의 형태는 Kuusi, Bergendahl, Arja Karlsson과 Sillanpaa등의 4인조로 축소되어 활동을 계속 하였지만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과거 대중적인 가능성과 함께 그들의 성공은 유로비젼 송 컨테스트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룹은 해산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Kim Kuusi는 그 이후 프로듀서 뿐만 아니라 작곡자로서 그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 나간다.

글/ 시완레코드 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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