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와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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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글래스는 스티브 라이히, 라 몬테 영, 테리 라일리 등과 함께 1960년 이후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가브리엘 포레의 제자였던 나디아 불랑제로부터 배웠고, 라비 샹카의 음악을 채보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양식을 발견했다. 그는 인도와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이 명명한 ‘순환 리듬’과 ‘추가적 프로세스’의 작곡방법을 도입하여 ‘반복의 환영’을 만들어냈고, 그러한 환영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차이와 변별의 요소를 도입했다.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그는 거부하지만, 무한히 반복되는 루프 안의 진화되는 리듬의 패턴을 의미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최근 그의 음악은 보다 명상적이고 19세기의 신낭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여 반복의 환영과 거리를 두고 있으나, 여전히 그의 음악은 쉽게 인지가능한 고유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

필립 글래스는 그의 인물 오페라 삼부작인 ‘음악을 사랑한 수학자’ 아인슈타인에 관한 <해변의 아인슈타인>, 간디에 관한 오페라로 산스크리트어로 ‘바가바드 기타’를 노래한 , 고대 이집트 파라오 아크나텐이 단일신 아톤을 통해 신권정치 체제를 부수고자 한 실패한 시도를 그려낸 등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린다 론스탄트, 수잔느 베가 등의 대중음악계의 인물과 함께 작업한 앨범 『Songs From Liquid Days』와 84년 올림픽 주제가 등으로 대중적인 지지도를 넓혔다. 필립 글래스는 신디사이저를 일찍이 수용하였고,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루프와 드론의 요소들은 오브나 오비탈 등에 의해 직접적으로 인용되었다. 또한 그는 에이펙스 트윈과도 함께 앨범을 발매했다. 최근 그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의 사운드트랙과 피터 위어의 영화 <트루먼 쇼> 사운드트랙(골드 글로브에서 음악상을 탔다)으로 가장 친숙한 현대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최근 피터 그리너웨이의 <욕조의 남자>, 아톰 에고이안의 , 쉬린 네샷의 등의 단편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여기서는 필립 글래스의 방대한 디스코그라피 중에서 대표적인 사운드트랙들과 영화와 관련된 그의 프로젝트 몇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필립 글래스는 데이빗 헨리 황, 카프카, 에드가 앨런 포, 도리스 레싱 등의 작품을 자신의 음악작품의 원전으로 삼았는데, 각별히 그가 영화와 관련하여 새롭게 접근한 인물은 에드워드 메이브릿지와 장 꼭토이다. 그리고 그는 영상과 자신의 음악을 결합시키는 ‘음악-극(theater-music)’ 형태를 통해 이러한 영향들과 영감의 근원들을 무대에 올렸다. 그의 1982년 음악극 의 2막은 에드워드 메이브릿지를 유명하게 만든 인물과 동물들의 스톱 액션 사진들의 슬라이드 쇼를 포함한 멀티 미디어 극이며, 1막은 메이브릿지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하여 받게 된 재판과정을 무대에 재현하였다. 에드워드 메이브릿지는 조아프락시스코프를 통해 하나의 움직임을 여러 단계로 분해하여, 움직임의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영사할 수 있게 하였던 ‘연속사진’의 발명가이자, 오늘의 영화를 위한 실제적인 토대를 마련한 영화사적 인물이다. 메이브릿지가 움직임을 여러개의 단면으로 분해시킨 사진들이 영사되기 이전에 선사하는 차이와 반복의 환영은 당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의 경향과 가장 잘 어울렸다. 에서 필립 글래스는 자신의 음악적 시도가 메이브릿지의 연속사진들에서 이미지화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더불어 최근 만들어진 미셀 곤드리의 뮤직 비디오 「Star Guitar」(케미컬 브러더스)는 필립 글래스 음악이 선사하는 반복의 환영을 가장 잘 표현한 영상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필립 글래스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라고 말하는 이는 장 꼭토이다. 영화감독이자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소설가이자 화가인 장 꼭토는 <시인의 피>, , <오르페의 유언>의 오르페 3부작을 비롯, <미녀와 야수> 등의 영화를 만든 시네아스트이기도 하다. 필립 글래스는 장 꼭토에 대해 ‘그는 항상 예술과 불멸, 창조적 과정의 문제를 제기했고, 그의 , <미녀와 야수>, <시인의 피>는 예술가의 삶에 대한 대단히 성찰적이고 미묘하게 자기반성적인 측면을 드러낸 작품이다’라고 말했으며, <미녀와 야수>는 동화에 기반한 작품이면서 가장 알레고리로 넘쳐나며, 예술 창작의 과정의 본질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장 꼭토에 대한 애정으로 필립 글래스는 각기 다른 형식을 취하는 장 꼭토 3부작을 기획하였다. 필립 글래스의 첫번째 장 꼭토 프로젝트는 의 시나리오를 원전으로 하여 음악극 형식으로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두번째는 장 꼭토의 1946년 영화 <미녀와 야수>의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만든 것이다. 필립 글래스는 이 영화를 영사하면서 원래의 사운드트랙 대신에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여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 상영을 재현시킨 것과 같은 음악극을 만들어내었다. 미녀 역을 맡은 메조 소프라노 재니스 펠티와 야수 역을 맡은 바리톤 그레고리 펀하겐을 비롯하여 필립 글래스 앙상블 등의 연주인들은 관객을 향해서가 아니라, 영사막을 보면서 노래하고 연주했다. 필립 글래스는 이러한 음악과 영화의 새로운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야수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야수의 노래는 울려 퍼지는 장면에서 영화와 음악이 함께 조응한다. 이런 장면을 통해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음악극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조르주 오릭의 원래 사운드트랙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지만, 나의 사운드트랙은 결코 최종의, 완전히 동기화된 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번째는 장 피에르 멜빌이 영화화하기도 한 장 꼭토가 1929년에 쓴 사이코 드라마 『무서운 아이들』을 수잔 마샬 무용단과 함께 댄스 오페라로 변형시킨 것이다. 한명의 가수와 세명의 배우가 동시에 하나의 캐릭터(폴과 리즈와 같은 주요 등장인물)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장 꼭토가 만들어낸 폐쇄된 세계에서 뻗어나가는 이미저리에 다가갔다.

무르나우의 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의 <마지막 웃음>의 촬영감독이었던 칼 프로인트가 촬영하였으며, 헝가리 출신의 이민자 벨라 루고시가 주연을 맡은 토드 브라우닝의 1931년 작품 는 1999년 유니버설사에 의해 복원판으로 재개봉되었다. 최초의 토키 호러 영화인 는 무르나우와 해머 스튜디오를 연결하며, 이후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들의 양식적인 전범이 된 작품이다. 유니버설사는 복원판을 위한 새로운 사운드트랙 작업을 필립 글래스에게 맡겼다. 원래 에는 바그너를 비롯하여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음악 등이 사용되었는데, 필립 글래스는 이런 음악들이 감독의 의도나 영화의 맥락과 무관하게 아무렇게나 선곡된 것으로 보았고, 복원되는 이 고전영화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더욱 견고하게 할 음악작업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크로노스 쿼텟에 의해 연주되는 필립 글래스 버전의 는 토드 브라우닝 버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판임에 틀림없는데, 숙명적인 이끌림으로 반미치광이가 되어가는 랜필드를 위해 만들어진 곡 등에서 필립 글래스는 음산함이 아닌 처연함으로 대응한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필립 글래스 음악과 다른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으로 고딕의 세계를 표현해낸 이 작품은 토드 브라우닝 팬들은 물론이고 필립 글래스 팬들에게도 논쟁을 안겨다준 작품이 되었으면서 동시에 필립 글래스의 사운드트랙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작품 역시 <미녀와 야수>처럼 크로노스 쿼텟이 영사되는 화면을 바라보며 라이브로 연주하였고, 모두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발매된 음반에는 의 26개로 나뉘어진 영화의 씬이 각 트랙의 제목으로 붙여져 있다. 크로노스 쿼텟은 필립 글래스의 1985년의 사운드 트랙 (미시마 유키오의 일생에 대한 영화로 폴 슈레이더가 감독한 작품)에도 참가했다. 사운드트랙 역시 필립 글래스의 사운드트랙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필립 글래스의 사운드트랙 작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갓프리 레지오의 문명 비판 다큐멘터리 ‘삶(quatsi)’ 3부작(, , )이다. 1982년에 완성된 <코야니스쾃시(‘분열된 삶’이라는 뜻의 호피 인디언 말)>는 도시 생활과 테크놀로지를 환경에 대립시킨 묵시록적인 영화이고, 1987년에 완성된 <포와쾃시(‘주술사의 삶’)>은 제3세계의 문화와 전통을 다룬 작품이며 2002년에 완성된 <나콰이쾃시(‘문명화된 폭력의 삶’)>는 5천년의 인간사를 자연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인 테크놀로지로 전환되는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모두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맡았으며, 내러티브가 없이 비주얼로만 의미를 전달하며 관객들의 자발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이 영화들은 모두 콘서트-시네마라고 불린다. 필립 글래스는 최근에도 필립 글래스 앙상블, 크로노스 쿼텟 등과 함께 영화와 음악이 함께 만나는 콘서트를 계속 하고 있다.

  • 내 주변에는 참 필립 글래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나라고 너무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의 계보에 장 꼭토도 있고, 데이빗 보위도 있고, 피터 그리너웨이도 있고. 그런데 고려바위에도 그 리뷰가 올라왔던 작년의 필립 글래스 공연은 그에 대한 호의를 적의, 혹은 악의로 뒤바꿀만 했다. 내가 본 '콘서트-시네마'는 포와쾃시였는데(맞나?) 그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찍을 수 없는 사악한 영상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필립 글래스의 그 무성의한 공연은 별도로 치고라도, 그 따위 영상들에 음악을 만들어 붙이다니 기절할 지경이었다. 도무지 철학도, 인문학적 소양도, 하다못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 존엄성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화면에 함께 박자 맞춰 놀다니! 제3세계(제길, 왜 3세계라고 불려야하는 거냐!)에 대한 적나라한 보이여리즘이 이 땅에서 버젓이 문화상품으로 상영된다는 것 자체도 미칠 노릇이다. 오늘 텔레비전 봤는데,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만행이 나왔다. 우리의 노근리나 매향리는 또 어떻고!

노근리 사건이 터졌을때 친구따라 노근리 간 적이 있는데, 설치미술가인 내 친구는 거기에 몰래 '미국방성' 마크 붙여놓고 사진 찍고 그랬다.(어디 무슨 젊은 작가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굴 안에 무수한 총자국들이 며칠 전까지 버젓이 있었는데, 에이피 기자가 노근리 사건 터트리자, 동네 공무원 아저씨들이 와서 재빨리 회칠을 해놓은 상태였다. 미국에게 폐가 될까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재빨리 은폐하고자 한 그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말 우리의 근현대사의 허와 실이 우리의 정신상태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이거 미친거 아닌가 싶었다. 미친 거다. 진짜, 이건. 필립 글래스 포와쾃시 공연도 미친 짓이다. 그러나 서구 예술작품의 그 근본적인 우위는 대체, 중화사상에서 절대적 친미로 넘어가는 우리의 역사를 넘어서도, 헤겔에게서도 마찬가지고, 도대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고. 김상환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공부하시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와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근간의, 서양철학을 공부하시면서, 도대체 이 놈의 철학에서는 대체 '우리'는 어디에 있는거냐, '나'는 어디에 있는 거냐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 Sonimage 2004-5-2 2:07 am

2 # 촌평[ | ]

미시마는 무성영화가 아니지만 사진이 올라갔습니다. -- Sonimage 2004-5-2 2:12 am

3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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