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CollinsBio

1 # 필 콜린즈에 대한 짧은 단상[ | ]

한 아티스트의 초상 --허경, 2000, 뮤지컬 박스 2호

아마도 본 파트인 1980-2000년의 시기를 통해 가장 두드러졌던 제너시스의 멤버를 한 사람 꼽으라면 우리는 이견의 여지없이 필 콜린즈를 꼽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제 필 콜린즈는 1970년 가입에서 1996년 탈퇴에 이르는 그의 26년 동안의 '제너시스 시대'를 정리했지만, 그는 실로 1975년 게이브리얼의 탈퇴 이후 - 본의든 아니든 - 그룹의 새로운 '리더'로서, 모든 면에서 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던 '핵심적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로 인하여 제너시스는 붕괴의 위기에서 다시금 살아났으며, 이후 그것을 넘어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또 다른 의미의 '슈퍼 그룹'이 될 수 있었고, 그가 탈퇴한 이후 제너시스는 음악성은 물론 상업적 성공의 측면에서도 다시금 하나의 '평범한 영국 그룹'으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보인다. 실로 이 뛰어난 아티스트 혹은 비즈니스 맨 단 한 사람의 덕분으로 제너시스는 살아날 수 있었고, 또 그가 떠난 지금 이제는 다시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제너시스 역대 전 멤버를 통해 순전히 음악적 연주 기량만으로 평가해 볼 때 동시대의 거장 반열에 오를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파트 또한 - 게이브리얼의 보컬을 제외한다면 - 콜린즈의 드럼 정도밖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우리는 '게이브리얼이 없는 제너시스'란 최소한 음악적으로 무의미하며, 실로 제너시스가 만들어낸 모든 가치 있는 음악들은 '오직 게이브리얼 재적 시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시기 제너시스의 '리더' 콜린즈가 뛰어난 드러머인 동시에 훌륭한 싱어·송 라이터라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나는 이 연대기를 쓰기 위해 콜린즈 및 제너시스 전반에 관련된 엄청난 양의 자료들을 읽었는데, 어느 날 콜린즈의 전기 에 실린 그의 옛 친구 마틴 루이스(Martin Lewis)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읽으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콜린즈는 정말 좋은 사람이예요. 근데 그 친구한테는 뭔가가 빠져 있어요. 사실 콜린즈가 아주 그렇게 지적인 건 아니예요. 물론 똑똑해요. 근데 똑똑하긴 하지만 또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아요. 사실 그 친구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랄까 그런 거에서 좀 떨어지는게 사실이겠지요. 그래서 아마 똑똑하게 되려고 엄청 노력하는 건 사실일 거예요. 사실 콜린즈가 세계관이란 걸 가졌다고는 생각 안 해요. 아마 인생에 대한 나름의 의견은 가지고 있겠죠. 콜린즈는 모험심이랄까 호기심이랄까 뭐 그런데 좀 결여돼 있거든요."(219-220쪽) 우린 이 얘길 어떻게 들어야 할까? 어린 시절 친구에 대한 옛 친구의 악의에 찬 무책임한 망발이라고 새겨들어야 할까? 아니면 이것은 너무도 무서운 적나라한 진실일까? 이 글이 실린 전기는 (공식 전기는 아니지만) 콜린즈가 이미 출판 전에 읽고 그 출판을 동의한 책이다 - 나는 콜린즈의 솔직한 인간적인 결점 또한 무척 많이 다루어진 이 책의 출판에 콜린즈 스스로 동의한 것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약간의 존경심마저 느꼈다. 나 자신은 아마도 콜린즈 스스로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단순한 '팝·록 아티스트'에서 진정한 '작가'로 넘어가기 위해 한 번은 꼭 넘어야 할 바로 그 지점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세계관'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다. 그에게는 바로 그것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것을 가질 수도 있었을 두 번의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한 번은 제너시스와 함께 한 이른바 78년 <...And Then There Were Three...>에서의 '타락'이며, 또 한 번은 82년의 솔로 2집 에서의 '타락'이다 - 이는 물론 '인격적'이 아닌 '음악적·예술적' 타락이다. 그는 모험, 예술적 이노베이션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의 만회를 위해 93년 솔로 5집 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근원으로 되돌아가려는 눈물겨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음악적으로 한번 '타락한' 아티스트가 이전보다 음악적으로 나은 앨범을 발표하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그것을 해냈다. 이는 정말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또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모험심'이다. 그에게는 그것이 없다. 아마 그에게는 그것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대신 선택한 것은 그 한도 내에서의 '진지함'이다. 그의 음악은 89년 <...But Seriously> 이후 계속 '진지하고 또 심각해져'(serious) 갔지만, 96년의 이후 결국 그는 그것을 포기했다. '음악'은 물론 예술이며, '음악가'는 예술가이다. 그러나 동시에 앨범을 발매하는 '레코딩 아티스트'는 레코드 회사 및 대중과의 줄다리기를 포함한 거대한 '음악 산업'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한편 또한 예술은 '주어진 사회의 예술관, 보다 넓게는 인간관·예술관을 뛰어넘는 창조적 행위'이다. 바로 여기에 필요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지적 모험심'이 그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아마도 한 아티스트가 이 모든 것들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획득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이후 콜린즈가 우리에게 들려준 음악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한 인간임에 틀림없는 콜린즈가 자신의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비교적 잘 극복해 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팝 음악치고는 나름의 상당한 음악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 어떤 비평가 뭐라 하든, 또 어떤 팬이 뭐라 하든 - 그는 그 자신이 이른바 '피터 게이브리얼 같은' 아티스트·작가가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우처럼, 그는 게이브리얼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대중적 성공과 부를 얻었지만, 단 하나 그가 갖고 싶어했던 게이브리얼의 그 '유모러스한 지적 호기심'만은 결국 얻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천부적 타고난 바가 있을 것이다. 이후의 콜린즈는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바랐지만, 그가 그것을 진실로 얻고자 했을 때는, 이미 불행히도 그가 '그것을 획득할 수도 있었을' 두 번의 천금같은 기회를 '대중적 인기'라는 제단 앞에 남김없이 바쳐 버린 후였던 것이다.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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