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sis

1 # Oasis Biography[ | ]

  • 장르: 모던락, 브릿팝
  • 결성: 1993년 영국 맨체스터
  • 활동시기: 1990년대~
  • 주요멤버: Noel Gallagher(g.,v.), Liam Gallagher(v.), Alan White(dr.), Paul McGuigan (b.), Paul 갃onehead" Arthurs(g.)

한 때 이슈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영국의 언론은 블러 Blur와 오아시스 구도로 영국 음악씬을 양분하기도 했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모던 음악은 모두 쓰레기다 Modern Music is Rubbish" 라는 냉소적 태도로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며 미국 인디 음악에, 그리고 지금은 월드 뮤직에 심취한 듯 보이는 블러와 오아시스의 길은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영국 모던락 밴드들의 복고 열풍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를 창조적으로 참고하다 못해 서로가 서로를 복제하는 현상을 낳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오아시스처럼 간결하고 집약적으로 락큰롤 정신을 구현한 이들은 없었고, 미국을 정복했던 비틀즈의 영광을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이들도 없었다.

영국의 'Q'지에는 '왜 밴드들은 해체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가 실렸었는데, 그 첫 번째 케이스로 등장한 오아시스의 사진 밑에는 '절대 네 형제에게 같이 밴드를 하자고 권하지 말라'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킹크스 The Kinks의 데이비스 형제, 지저스 앤 메리체인 The Jesus and Mary Chain의 레이드 형제에 이어 락 역사상 가장 사이가 나쁠 갤러거 형제는 영국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아버지에게 전자기타를 선물 받은 노엘은 13세 때 가게를 털다가 들켜 6개월의 보호 관찰을 받고 난 후 스미스 The Smiths의 자니 마 Johnny Marr를 목표 삼아 본격적으로 기타에 재미를 붙인다. 형에게 영향을 받아 음악을 좋아하게 된 리암은 1991년 오아시스의 전신 격인 레인 Rain이란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자작곡도 없이 다른 밴드의 카피를 주로 하던 이들은 마침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기타 테크니션으로 일하다 고향에 돌아온 노엘에게 밴드의 멤버가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밴드내의 전권을 위임해다오.' 라는 노엘의 건방진 요구조건도 기꺼이 수렴되었다.

오아시스로 새롭게 이름을 바꾼 이들은 1993년 글래스고의 와와 Wah Wah 클럽에서 연주하던 중 그곳에 와 있던 크리에이션 Creation 레코드 사장 앨런 맥기 Alan McGee에게 픽업되는 행운을 얻는다. 1994년 발표된 데뷔앨범 [Definitely Maybe]는 몇 달 후 일래스티카 Elastica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앨범의 기록을 세웠다. 영국 언론이 부추긴 블러 vs. 오아시스 구도가 절정에 달한 1995년 8월에는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블러의 싱글 'Country House'와 오아시스의 'Roll With It'이 경합을 벌여 1차전은 일단 블러의 승리로 끝나지만, 이후 블러는 미국 진출에 실패하면서 오아시스에 밀리게 된다. 언론들의 싸움 붙이기에 말려 들어간 노엘은 '데이먼 알반과 알렉스 제임스 따위는 에이즈나 걸려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1995년 비틀즈의 옥상 공연을 연상케 하는 공연 후 나온 이들의 [Morning Glory]앨범은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Champagne Supernova' 같은 브릿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로 영국 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1997년 발매되어 'Stand By Me'같은 곡들이 싱글 커트된 [Be Here Now]는 더도 덜도 말고 여전히 오아시스 같은 사운드의 연장이었고 음악과 애티튜드 양쪽에서 이들은 자존심 높은 영국 음악의 적자 노릇을 계속 했다. 그 동안에도 노엘과 리암의 싸움은 밴드를 몇 번이고 해체하고도 남을 만큼 계속되었고,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결국은 이들 형제의 등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남기며 본헤드와 폴 맥귀건은 1999년 오아시스를 탈퇴한다. 새로운 멤버로 오아시스 못지 않은 지명도를 가진 라이드 Ride의 앤디 벨 Andy Bell과 헤비 스테레오 Heavy Stereo 출신의 젬 Gem Archer이 영입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이들이 앞으로 오아시스에서 단순한 세션맨의 역할에서 벗어나 밴드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2000년 약간은 달라진 사운드의 네 번째 앨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가 발매되었다. --vanylla, 2000

Discography

1994  Definitely Maybe
1995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1997  Be Here Now
2000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1998  The Masterplan (B-side)
2000  Familiar to millions (live)

2 #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 ]

  ★★★☆

오아시스는 사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음악적 유산 없이는 탄생하지 못했을 밴드다. 그들의 음악이 비틀즈 the Beatles나 롤링스톤즈 the Rolling Stones, 섹스 피스톨즈 the Sex Pistols같은 위대한 거인(giant)들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부인하지 않으며 심지어 오아시스 본인들조차 '각 세대마다 이전의 세대에서 음악적 재료를 빌려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위대한 체계를 세운 철학자들의 어깨 위에 올라가 세상을 좀 더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뉴튼의 말에서 따온 앨범 제목에서는 미리 선수쳐서 뺨을 때리는 오아시스다운 대담함이 돋보인다. 눈썹형제들의 등쌀에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가 팀을 탈퇴하고 헤비 스테레오 Heavy Stereo 출신의 젬 Gem Archer 과 라이드 Ride의 앤디 벨 Andy Bell을 새로운 멤버로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름대로 한 가닥 하던 이 친구들이 과연 이 별난 형제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백스테이지에서 기분 좋게 맥주병을 빨고 있는 외지 사진을 보니 아직까지는 별 문제 없는 듯 하다.

[Be Here Now]이후로 노엘 Noel은 마크 스텐트 Mark "Spike" Stent (마돈나, 매시브 어택, 뷰욕 등을 프로듀스 했다) 라는 새로운 프로듀서를 기용해 기존의 락큰롤 사운드에서 좀 더 싸이키델릭하고 성숙한 변화를 꾀했다. 마치 케미컬 브라더스처럼 들리는 첫 곡 'Fuckin' in the Bushes' (제목 좋고) 는 넘실거리는 드럼 루프와 기타 리프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1970년 와이트 섬 페스티발의 기록 필름에서 따온 샘플링이 반복된다. 'Go Let It Out' 은 첫 번째 싱글 커트 곡으로 색다른 양념 속에서도 기존의 익숙한 오아시스 사운드를 알아볼 수 있고, 'Little James' 는 양아들에게 바치는 리엄 Liam의 역사적인 송라이팅 데뷔작이다. 평소 작사/작곡을 전담하는 오아시스의 브레인 노엘에게 지지 않으려고 "오아시스는 나의 목소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주장했던 리엄은 한참 작곡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Where Did It All Go Wrong' 과 'Sunday Morning Call' 에서는 다른 앨범에서처럼 노엘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데, 혹자는 야비하다고 평하는 리엄의 특색있는 보컬과 달리 노엘은 평범하지만 감동적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Don't Look Back in Anger'를 떠올리게 하는 'Sunday Morning Call'의 정서는 분명 노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리라. 다른 모든 오아시스 앨범들에서처럼 'Roll It Over' 가 클래시컬한 감동으로 앨범을 마감한다. --vanyll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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