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hroom

# Early One Morning[ | ]

[이응민, mailto:hayden@hitel.net, 94.11]

MUSHROOM Early One Morning

부슬부슬한 냉기가 세상을 은밀하게 뒤덮고 가끔씩 찔끔 찔끔 비를 토해내는 새까만 안개빛의 하늘, 우중충하고 볼 품없는 몰골을 드러내놓고 있는 거대도시의 빌딩 숲, 그 잿 빛 숲 속을 누비고 다니는 잔뜩 지푸린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환락의 불빛을 쫓아가는 불나방처럼 어지럽게 늘어 서있는 문명의 이기들, 시원하게 비라도 퍼부어준다면 더 러움으로 가득찬 이 가슴을 깨끗하게 씻어라도 주련만, 거 지에게 적선하듯 가끔씩 내리다 마는 부슬비가 더욱 짜증 나게 하는 하루였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보이는 휘황찬란한 도시의 네온사인들 과 휴일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움직임도 내겐 활기차거나 화려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천박한 자본주 의가 잉태한 대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그냥 묻어두기 엔 너무도 역겹기만 하다. 이 복잡함, 어수선함, 축축함, 현란함으로만 가득찬 빈껍데기 세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Little Wing of Refugees'. 나에게 피난처로 안내할 '작 은날개'가 바로 여기 있다. Mushroom의 Early one morning.
'Seventies Rock Label'이라는 자랑찬 슬로건을 걸고 우리 곁으로 다가온 독일의 소규모 레이블 'Little Wing of Refugees'. 이 레이블을 통해 최근 재발매된 하드 사이키델 릭록 그룹 Rufus Zuphall의 앨범도 돋보이지만 뭐니뭐니해 도 아일랜드의 Progressive Folk Rock Group 'MUSHROOM'의 초희귀앨범을 재발매한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고 있다.

72년 결성된 5인조 그룹 Mushroom은 73년 1월 싱글 King of Ireland's daughter를 발표하면서 아일랜드 록 차트에서 2위까지 오르면서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다. 같은 해 그들 의 첫번째 앨범이자 유일한 작품인 <Early one morning>를 남기게 된다. 이들의 앨범은 브리티쉬 포크록의 걸작이라는 작품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아니 더욱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이뤄냈다. 아일랜드의 트레디셔널 포크와 사이키데 렉을 융합한 멋진 연주와 노래를 담고 이들의 작품은 턴테 이블에 올려놓은 순간부터 필자를 사로잡았다. 여러 포크 작품들을 들을 때 느끼는 포근하고 정겹긴 하지만 쉽게 다 가오지 않는 평범함이나 거의 비슷비슷한 곡들의 나열이 가 져오는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수록곡 모두가 독특 한 개성과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어 듣는 이의 어깨 를 들썩이게도 만들고, 슬픔에 잠기게도 하며, 차분한 명상 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의 작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악기는 단연 '바 이올린'이다. Pat Collins의 바이올린 연주는 새의 깃털처 럼 가볍고 화창하게 개인 아침의 태양처럼 눈부시고 현란하 다. 또한 Michael Power의 오르간, 하프시코드, 무그연주는 Pat의 바이올린에 크고 힘센 날개를 달아주어 더욱 화려하 고 흥겹고 현란하게 만들어준다. 잘드러나진 않지만 차분하 고 아름답게, 때론 묵직하고 강렬한 기타연주를 들려주는 Anghus McAnally, 바이올린의 날카롭고 빠른 금속성의 음을 부드럽게 중화시켜주고 바이올린과 오르간에게 주연자리를 뺐기고도 전혀 투덜거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맡은 소리를 충실하게 표현해주는 Alan Brown의 베이스와 12현 기타, 그 리고 Colm Lynch의 타악기와 관악기, 이들 모두가 완벽한 음악의 향연을 펼쳐준다. 다섯명의 '버섯돌이'들의 보컬하 모니와 함께...

< SIDE A >

1. Early one morning / The Liathdan / Crying

오리지날 자켓은 이쁘고 앙증맞고 날씬한 버섯의 자태를 담고 있지만 'Little wing'의 재발매 앨범은 구닥다리 유모 차(혹은 그네)에서 너무나 귀여운 곱슬머리 여자아이가 분 홍빛 볼을 드러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역시 분홍빛 볼을 가진 남자아이 인형과 조그만 장난감 나 팔을 두고서 말이다. 이 귀여운 아기의 잠자는 모습을 시기 하듯 째깍째깍 소리를 키워가던 시계가 드디어 악(?)을 쓰 면서 곡은 시작된다.
시계소리는 계속 울려퍼지고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시계소리를 천천히 삼키면서 어쿠스틱 기타가 잔잔하게 흘 러나온다. 잠에 덜 깬듯 밤을 지샌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속 삭인다. "Early one, Early one morning...." 휘파람 소리 도 해변에서 맞는 아침의 차분한 정경을 묘사해주고 있다.
이어 묵직하고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모닥불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같이 흥겹기만한 오르간이 바이올린의 화려한 날개짓을 더욱 가볍게 뒷받침해주는 'The Liathdan'이 흐르 고, 육중한 베이스와 드럼연주가 오르간을 타고 등장하면 서 바이올린은 그 날개짓을 잠시 접었다가 다시 원기를 회 복하고 더욱 여린 몸짓으로 다시 하늘을 날면서 'Crying' 은 시작된다.
"I'm crying now, I'm crying now. No one will forget." 아주 기쁘게 울고 있는 보컬과 바이올린과 일렉트릭 기타의 화음은 너무나 흥겨워서 전혀 슬프거나 애처롭지 않다.

2. Unborn child

리이드 오르간과 스틸기타가 흐르면서 시작되는 이 곡은 슬픔을 가득 안겨준다. 바이올린은 서럽게 흐느끼고 가슴에 서 솟구쳐오르는 슬픔은 정겨운 오르간의 음을 타고 희미한 그리움으로 잔잔하게 물결쳐온다.. 'Unborn child'의 슬픈 운명만큼...

3. Johnny the jumper

강렬하고 섬세한 퍼커션과 둔탁한 드럼, 하먼드 오르간의 현란함과 육중한 몸매의 베이스음, 날카로운 일렉트릭 기타 이 잘 정돈된 서랍 속처럼 차곡차곡 음의 계단을 쌓아간다.
그 찬란한 발자취를 이뤄냈던 독일의 수많은 사이키델릭 록 그룹들의 음악을 듣는 듯하다. 짧지만 긴 여운을, 현란하지 만 차분함을, 복잡하지만 정돈된 음의 배열을, 강렬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 SIDE B >

1. Potter wheel

아일랜드의 트레디셔널음악 분위기가 물씬물씬 풍겨나온 다. Anghus의 리코더와 양쪽 채널에서 분리되어 흘러나오는 오르간의 독특한 음색은 'Potter wheel'의 회전처럼 어지러 움을 안겨준다. 이 어지러운 회전 속에서 날카로운 조각도 로 아름답게 도자기의 얼굴을 그려내는 바이올린의 음색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2. Standing alone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융합에 포크라는 조미료를 가미한 곡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늘 같은 우울한 날에 이 곡을 듣 는다면 누구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Michael의 Moog 연주와 교차되며 연주되는 일렉트릭 기타와 바이올린의 처 량한 노래소리는 슬픈 가사를 담고 있는 이 곡을 더욱 애처 럽게 한다.
강가에 작은 집에 쓸쓸히 서있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사 람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 그녀의 곁을 떠나면서 결코 돌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인하고 확신하면서도 슬픔이 가슴 속에 자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남자. 그녀의 헛 된 기다림도, 그의 떠남의 망설임도 모두 슬픔으로 다가온 다.

3. Devil among the tailors

천둥소리의 효과음으로 전곡의 슬픔을 단번에 날려버리고 화려한 비행을 시작하는 바이올린. 흥겹고 경쾌한 컨트리곡 을 연상시키는 이 곡은, 하지만 느끼한 양키의 냄새가 아닌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마을의 축제를 연상시킨다. 오늘 나 는 이 곡을 스트레스 해소하는 치료약 세 곡 중 한 곡으로 선택했다. (나머지 두 곡은 Angelo Branduardi의 La Pulce d'acqua와 Harmonium의 Dixie)

4. Tenpenny piece

투명한 Michael의 하프시코드연주가 흥겨워 들썩거리던 팔과 다리를 차분하게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Anghus의 신비 로운 Recorder의 음까지 가세하면 다시 알지 못할 그리움의 세상으로 날 인도해준다. 차분한 보컬과 12현 기타가 어우 러지면 지그시 눈을 감을 수밖에...
Mushroom! 이들의 음악은 정말 마술처럼 사람의 기분을 마구마구 뒤흔들어놓는다.

5. Drowsey Maggie

잠시 동안 명상의 시간은 끝나고 이들은 다시 흥겨운 음 악잔치가 베풀어준다. 오르간과 바이올린이 경쾌하게 나의 가라앉은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들뜨게하고, 신나게 두드려 대는 드럼은 함께 춤추고 싶은 발작같은 욕구를 이끌어낸 다. 이 곡을 듣고도 장단에 맞춰 발을 구르거나 어깨를 으 쓱이거나 고개를 흔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김용석 같은 인간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혹은 조영래)

6. King of Alba

드디어 앨범의 마지막곡으로 빠른 속도감과 호쾌함을 느 끼게 해준다. 빠른 핑거링의 일렉트릭 기타, 드넓은 잔디언 덕에서 데굴데굴 굴어내려오는 듯한 드러밍, 정말 상쾌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바이올린과 오르간연주. 박진감 넘치는 연주가 혼연일체가 되어 나의 꽉막힌 가슴과 쌓여만가는 스 트레스에 찌든 마음을 깨끗히 청소해주는 것 같다.

Mushroom의 이 작품을 들으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하는 망상에 빠져든다. 정말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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