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gol

『HoPE (Progressive Rock)-호프 음악이야기 (go SGGHOPE)』 371번 제 목:[아트록잡지] 1호 슈퍼아티스트 "MOGOL"
올린이:boryking(정용상 ) 97/02/28 12:34 읽음:115 관련자료 없음


또 아트록 매거진을 배낍니다. 편지 주신분께 감사 드리며 부탁하신 1호에 있는 슈퍼아티스트 특집 MOGOL입니다...

Super Artist "MOGOL"

풍차속의 모골

Italian Rock이 태동하려고 꿈틀거리던 무렵부터 Italian Rock이 빛을 잃어갈 무렵인 17년전의 오늘까지, 쓰러져 가는 Brianza의 낡은 풍차속에 차려 놓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Mogol이라는 필명을 지닌 Giulio Rapetti는 Battisti의 모든 가사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복잡한 사회와 혼란의 도시들을 떠나 그의 정신적 혼돈과 갈등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리고 열광적인 리듬이 넘치는 도시를 떠나, 그와 함께 창작활동을 발휘하기를 원하는 젊은 뮤지션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그의 가사를 받을 자격이 부여되어 졌다. 모든 것이 창작되기에는 불합리한, 대도시속에서 거주하고 있는 시인들, 음악가들, 예술가들은 어떤 자극이나 영감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Mogol은 Italian Rock이 부여한 현실에 대한 참여와 실험에 대한 매우 유용한 재료들을 창작하기 위하여 그의 모든 정열을 소비해 버린다.
Mogol이라는 필명과 더불어 Battisti의 모든 초중반기 가사들과 함께 Formula 3의 데뷰작에서 마지막 앨범까지, 그리고 Il Volo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많은 가사들을 썼다.
Giulio Rapetti....., Mogol로 알려진 그는 시적인 가사들과 함께 Numero Uno 레코드사에 소속된 모든 뮤지션들을 회교도적으로 바꾸어버린 작사가이다. 그는 Battisti외에도 Bruno Lauzi, P.F.M., Acqua Fragile, Adriano Pappalardo, Tony Renis, Data, Il Volo 등의 가사를 담당해 주었고 그 이전에도 이태리 그룹들을 위해 수많은 가사를 남긴 인물이다. 영국 Virgin 레코드사의 Manor 스튜디오처럼 Lagos 의 아프리카 정글 바로 심장부에 위치한 Brianza의 낡은 풍차안에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앨범의 완벽한 제작에 필요한 많은 시간들을 그룹들과 아티스트들과 함께 보냈다. 그후, 그의 녹음 스튜디오는 뮤지션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무관심속에서 마치 개인의 한 공간으로 변모해 버렸다. Rapetti는 Battisti와의 냉전 후 몇 년동안 거의 외부인들의 출입을 기피해 왔고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후 그는 오랜기간동안 동안의 은둔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전문 음악잡지의 두 기자들을 그의 풍차에 초대한다. 다음의 인터뷰 기사는 1974년 5월에 이루어졌다.

Q : Lucio Battisti가 이곳을 떠난 이유는?
Mogol : 그는 다른 일에 관련되었다. 당신들이 추측하고 있듯이 내가 그와 함께 또다시 음악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Q : 앨범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당신의 독자적인 방식과 작사가로서의 당신에 대해 말해달라. 당신 자신을 가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작사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가?
Mogol : 나는 가수라 할 수 있다. 항상 가사를 써왔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일들과 나의 순수한 감정들을 표현하려 한다. 내게 접촉되어지는 것들과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에 의해 나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전문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직업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다. 결코 생산품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기계와 같은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나의 가사들의 성공은 바로 독창적이고 진지한 사실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평상적으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처럼 좋은 음악적 소재는 없다. 운율의 인식과 경험, 감각의 섬세함 이것이 바로 나의 작사기법이다. 이러한 요소는 가장 최근의 제작물에서 다시 드러난다.
나의 최근 제작품들은 가사로서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배경 음향과의 일치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곡에 대한 가사를 쓰는 것이 운문을 짓는 것보다 조금은 더 복잡하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와 Lucio가 함께 했었던 공동작업의 첫단계는 작사와 작곡의 일치감을 주는 것이었다. 악보의 각 귀절에서 음악적이기도 하고 문학적이기도 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융화시키는데 우리들은 손발이 잘 맞았다. 당시, 음악과 모든 언어의 음향 (공명)의 관계는 오로지 수많은 연구와 경험 덕분에 잘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Q : 당신은 영국 뮤지션들의 많은 가사들을 살펴 보았는가?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대중음악이라는 것과 당신의 가사에 담겨져 있는 감정과 감수성이 명백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사들이 다른 이태리 작사가들의 가사보다 더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또한, 당신의 가사들이 대다수의 이태리 서정시인들의 작시처럼 많은 분위기에서 음울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Mogol : 여러분들의 질문속에 암시되어 있는 곡 "Emozione"에 대해 나는 나의 소정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확신한다. 은근히 나를 유혹하면서 내가 반드시 부정의 답변을 늘어 놓아야만 하는 질문을 이끌어내는 그러한 접근 방법을 시도했었던 것은 여러분들이 처음이 아니다.
나의 가사들과 영국인들의 가사들 사이에는 뚜렷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나의 가사들은 우리 이태리 남부의 열기, 감동, 감수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국 작가들의 가사들은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상황주의적인..., 아주 풍요로운 묘사에만 치우쳐 있는 듯하다. 영국과 우리들의 가사 양쪽의 가사들은 단지 미학적으로만 유사할 뿐이다.
나는 Island 레코드사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도우면서 어떤 확신을 갖게 되었다. Island 레코드사와의 관계는 내가 가사들을 썼던 Il Volo의 앨범을 영국에 보급하는 비지니스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이태리어 가사들을 영어로 바꾸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움이 따르는지 여러분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한차례의 작업을 끝냈지만 지중해에서 일어나는 우리들의 많은 일들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과연 영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역부족이다.

Q : 그러나 문제는 음악적인 언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쓴 가사들을 아무도 영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Mogol :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든지 아니면 그렇지 못하던지 간에 여러가지 다른 문화의 단면을 시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 이태리에서의 문제점은 쉬운 돈벌이에 유혹된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자질보다는 물욕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만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시 그들중 대다수가 좋은 의지와 최소한의 성실함과 더불어 많은 문화의 연구를 바탕으로 가사들을 잘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Q : Sanremo의 작사자들..., 오래된 작사가들에 대해 당신은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기로는 몇년 전에 당신 역시 Sanremo가요제에 참가하지 않았던가?
Mogol : 그렇다! 그러나 자격을 박탈시키는 오늘날의 Sanremo와는 다르다. 5년전만 해도 Sanremo는 유능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깨끗한 상업적인 경쟁 역시 장려되도록 장소를 제공했었다. 상업적 경쟁의 이러한 형태에서 나 역시 항상 품위있는 제작물을 소개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더이상 Sanremo에는 결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사 자체가 더럽혀졌고 나는 현재의 깨끗하지 못한 경쟁 그 체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TV에서조차 이 행사를 정치적인 이유 혹은 다른 이유로서 이용하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심각한 우리들의 음악들에 대해서는 상업성의 결여라는 이유로 방송이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뜻을 모아 어떤 음악적 계획에 착수했고 여러분들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Tutti Insieme"라고 불리워졌던 우리들의 계획을 방송에 요청했고 프로그램을 얻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행사를 상업적으로나 경쟁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행사가 적절하게 매체들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Q : 작사가로서가 아니라 레코드회사를 이끌고 있는 제작자로서의 당신의 임무는?
Mogol : 그동안 200매의 판매고가 상한선이었던 Italian Rock LP의 판매량을 더욱 높히는데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레코드사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능한 아티스트들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고 격려하고 앨범을 발표하는데 최상의 조건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아티스트들이 실력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항상 제작물들을 제작할 기회를 갖는다. 우리에게 알맞은 사람들과 함께 음반을 제작하려 한다. 최소한의 필수 불가결한 격려와 함께 우리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그 임무는 충분히 완수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소속되어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의미한다.

Q : 최근에 작은 음악시장을 갖고 있는 외국 레코드사와의 거래에 대한 경험은?
Mogol :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는 경험하고자 한다. 우리들은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도 남부 아메리카와 브라질의 음악 시장에 접근했었다. 다른 이들과의 모든 경험과 접촉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빈번한 접촉 덕분에 내가 갖고 있었던 이기주의에 대항할 수 있었고 "우리"의 중요성 즉,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Q : 그러나 Mogol, 당신은 혼자서 모든 가사들을 만들지 않는가?
Mogol : 그렇지 않다. 뮤지션들을 위해서 무지션들과 함께 가사를 만든다. 가사를 쓸 때는 나 혼자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항상 그들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Il Volo를 위해 나는 가사를 썼다. 내가 써내려 갔었던 가사들은 그들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내 가사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원했기에 우리들은 쉽게 융화되었다.
우리들의 레코드회사인 Numero Uno에서 지금까지 해왔었던 작업은 항상 같았다.

Giulio Rapetti. Mogol은 그가 함께 하고 있는 그룹들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연주하고 그의 작사들을 읊는 것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 한다. 그역시 우리들 음악 잡지의 기자들처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매우 만족해 했다. 우리들 역시 그와 대화하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의 마지막 대화에 Mogol은 이런 말을 첨가했다.
"현재 우리의 음악 작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Lucio Battisti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 역시 이러한 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즐 거 운 시 간 이 되 세 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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