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Crimson 공연기 2015

안녕하세요. 2014년 8기로 재결성된 킹 크림슨, 그분들의 2015년 투어를 3번 관람한 H. L. 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한국분들이 많이 보실 투어는 2015년 12월에 예정된 (가까운) 일본 투어일듯 한데요, 저는 어쩌다 좀더 일찍 9월 프랑스 파리 공연을 관람하게 되어.. 아마도 팬분들 일본 공연전 예습 겸 프리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면서 글을 씁니다.

참고로 글 초반에 약간의 개인적인 얘기가 있는 점, 그리고 그룹과 멤버에 대한 상세설명이 초반부에 있는 점은 감안하시고, 그룹에 대해 이미 잘 아신다면 0~2번 생략하시고 3번부터 읽어주시면 됩니다.


1 프롤로그[ | ]

저는 킹 크림슨의 엄청난 팬입니다. 제 입으로 '엄청난 팬'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킹크림슨 빠입니다;; 어느 정도냐면요..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자 평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음악입니다. 제가 여자와 영화도 좋아하는데요, 한번 심각하게 여자랑 영화랑 음악중에 "다 없이 살고 딱 하나만 내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면 무엇일지" 고민해본적 있었는데, 결론이 음악으로 나왔었습니다. 여자 대신 음악을 선택한다.. 뭐 사람에 따라 다르시겠으나, 저로서는 제가 고르고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 그렇게 사랑하는 음악 중에서도 프로그레시브 락을 가장 좋아합니다. 중 3때 빠져서 20년 넘게 가장 좋아하는 장르였습니다.
  • 그 중에서도 킹 크림슨을 '단연코 가장' 좋아합니다. 오로지 한가지 아쉬운 것이 그분들이 나이가 많이 드셨다는 것.. 그리고 제가 좀더 일찍 태어나서 그분들의 젊었을 때 공연을 즐기지 못한 것일 정도.


나름 다이하드 팬이다보니, 이번 킹 크림슨 2014년 8기 재결성이 너무나 반가웠구요. 다만 재결성 했을때만 해도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했습니다.. 나이들이 워낙 많으시니까요. 근데 2014년 미국 투어를 마치시더니, 2015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투어와, 캐나다 투어를 발표하시는 겁니다..

저같은 경우 프랑스에 살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서 프랑스로 공연보러 오는것 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왕팬을 자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할아버님들 한달이라도 나이 덜 잡수셨을 때 공연 보러가자'고 생각하고 2015년 3월달에 프랑스 투어일정 발표나자마자 예매한 케이스입니다. 일본 투어의 경우 원래 계획에 없다가 한 2015년 6월 정도에 추가된 투어거든요.. 만약 일본 공연이 첨부터 계획에 잡혀 있었다면 차라리 기다렸다가 일본을 갔을 겁니다.. 왜냐하면 일본 가면 간김에 음반 사오기가 좋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예매할때는 일본이 없었고, 영국 티켓은 다 매진이길래 물불 가리지 않고 프랑스 티켓을 3일 다 산 겁니다.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프랑스까지 가는 비행기표값, 그리고 호텔비, 그리고 공연 티켓값 등.. 들인 돈이 많으면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돈 들인 것을 합리화하고자 더욱 공연에 굳이 의미를 더 부여하고 더 오바해서 감동하는 등.. 그런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아예 명확히 '저 멀리서 여행해서 굳이 보고 왔다'는 점을 독자분들께 알리고자 합니다. 다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나름대로 이러한 '투자 대비 효과' 따위의 시각을 배제하고, 순전히 공연 자체로만 보고 감상을 쓰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로, 한단계 정도 제 감흥을 까고 보실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실지는 온전히 독자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ㅎ


2 그룹 소개[ | ]

제가 킹 크림슨에 빠져든 시점은, 그전에 약 20년간 저의 Favorite Band였던 핑크 플로이드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사명감있고 진지하게 음 세계를 탐구한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부터입니다. 이는 킹 크림슨이라는 밴드의 Mission Statement와도 같이 고고한 위치를 지키고 있는 다음 문구로부터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킹 크림슨이 왜 음악을 하는지, 어떠한 음악을 어떠한 태도로 추구하는지가 기술된 명문입니다.

"The fundamental aim of King Crimson is to organise anarchy, to utilise the latent power of chaos and to allow the varying influences to interact and find their own equilibrium. The music, therefore, naturally evolves rather than develops along predetermined lines. The widely differing repertoire has a common theme in that it represents the changing moods of the same five people".

번역을 하자면

"킹 크림슨의 중추적 사명은 무정부상태를 조직화하고 무질서 속에 잠재된 힘을 이끌어내어 그 변화무쌍한 영향력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그들만의 균형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고로 킹 크림슨의 음악은 미리 정해진 노선에 따라 발전한다기보다 그 내재적인 힘으로 스스로 진보한다. 우리의 레파토리는 다양하게 변모하지만, 밴드 구성원 각각의 다양한 감정을 대표하여 표현한다는, 단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다."

저는 로버트 프립이 킹크림슨 결성 시점에서 발언한 이 문장에 아주 뻑가버렸습니다. 이렇게 강한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지하게 음악에 임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강력한 목표의식이 킹 크림슨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음 세계를 탐구하고 한차원 높은 연주와 고양된 메시지를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깨달았을 때 저는 핑크 플로이드를 거의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리더인 로버트 프립부터 이런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룹의 미션에 공감하고 실행할 실력이 되는 인원들만 멤버로 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독자가 킹크림슨의 멤버 계보를 거룩하게 주워섬기는 저같은 사람들만 계시는 건 아니므로.. 간략히 그룹에 소개해 보겠습니다.

킹 크림슨은 68년 결성되어 69년 데뷔앨범을 낸, 올해 2015년 부로 47년 역사를 기록하는 상당한 노장그룹입니다. 로버트 프립이라는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가 그 중심에 있으면서 해체와 재결성, 멤버 해산과 모집을 반복하면서 2015년 오늘날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킹 크림슨 데뷔앨범을 처음 들은 것이 1994년이고, 그들을 제대로 모시게 된 것은 2014년부터입니다. 좋아하게 되는데 무슨 20년씩이나 걸렸느냐. 멤버들이 하도 많이 바뀌고, 앨범도 미친듯이 많은 데다가, 각각의 앨범이 다 컨셉이나 음악 스탈이 제각각이어서 선뜻 손대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번 빠져드니 그저 왔따지만요.. 전 옛날엔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음악감상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제 취미는 킹 크림슨입니다' 대답하려고 합니다..

하여간 뭐 예를 들어 정규앨범이 5개쯤 깔끔하게 딱 떨어지면서 1집에서 5집까지 음악성은 점점 발전하고, 중간중간 라이브앨범 2개쯤 나온 후, 깨끗하게 해체한다면 아주 팬으로서 주워섬기기 쉽겠지요.. 근데 킹크림슨처럼 이때 이 음악이 좋아서, 이 때 이 멤버가 좋아서 빨다가도 어느날 휙 하고 멤버가 바뀌고 어느날 휙 하고 해체선언했다가 10년 후에 다시 재결성하고.. 그러면서 쌓인 음반이 수십장씩 넘어가면 차암~ 주워섬기기 빡셉니다 ㅎ

킹 크림슨의 정규 앨범 수는 총 13개이며, 그 외 Earthbound, USA, Great Deceiver, Cirkus, VROOOM VROOOM, EleKtrik 등 실황앨범들이 있고, 40주년 기념 리마스터 재발매반, 오피셜 부트렉들, 그리고 수십장의 씨디와 DVD가 난립하는 매니아 전용 박스셋 4종 (1종이 추가로 2015년 10월 출시 예정) 등이 있습니다. 이들을 아마 모두 포함하면 씨디로 따질때 200장은 될 것이며, 출신 멤버들의 솔로나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다 합하면 족히 300장은 될 것입니다.. 이쯤되면 킹 크림슨을 빠는 것은 그 자체로 취미가 될 만 합니다 ㅎ

이들은 뼈를 깎고 스스로를 부수는, 잦은 해체와 재결성을 통해 그때마다 새로운 음악을 나투는 것으로 유명하며, 난해하고 진보적인 프로그레시브락 가운데서도 가장 진지하고 엄격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킹 크림슨을 검색하면 초반에 등장하는 인용구가 하나 있는데 "당신이 킹 크림슨에 대해 들은 모든 것은 사실이다. 여긴 완전히 무시무시한 곳 (Absolutely terrifying place) 이다." 입니다. 그룹에 가장 오래 재직했던 드러머인 빌 브루포드가 한 말입니다 ㅎ 그만큼 그룹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그를 실현키 위한 규율이 얼마나 엄격한지 짐작 가능합니다.. 결벽증적 완벽 추구, 그를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론인 스스로에 대한 해체와 재탄생의 반복, 그 과감성, 결단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창조성과 실험성, 그리고 그를 통해 실현한 음악 자체의 완성도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유수의 매체들로부터 프로그레시브락 밴드 순위를 정할 때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밴드가 바로 이 킹 크림슨입니다.

3 멤버 소개[ | ]

그룹의 멤버를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역시 초보자를 위한 코너이면서도, 킹 크림슨의 웬만한 팬들도 기수로 따져서 무려 8기째를 맞이한, 게다가 무려 7명이나 되는 멤버들의 프로필을 모두 주워섬기시기는 힘드실 테니 그분들도 배려한 겁니다...

  • 로버트 프립
1946년생. 만 69세, 한국나이 칠순 바라보십니다. 킹 크림슨의 리더이자 마스터마인드, 디렉터입니다.
포지션은 기타를 맡고 있으며, 과거엔 프리퍼트로닉스라는 본인 이름을 딴 전자악기도 다뤘습니다.
  • 재코 잭식
1958년생으로 아직 57세밖에 안된 새파란 청년(!) 입니다.
멀쩡한 'Michael Lee Curran' 이란 본명으로 태어난 영국사람인데, 'Jakko Jakszyk'이라는 뭐라 읽어야될지 모르겠는 골때리는 예명을 쓰고 있습니다.. '야코 약식'이라고도 읽지만, 그냥 영어식으로 '재코 잭식'으로 쓰겠습니다.
이름은 골때려도 작사, 작곡, 프로듀싱, 기타 포함 다양한 악기연주 등 다재다능한 인물.
  • 토니 레빈
1946년생으로, 만 69세, 한국나이 칠순을 앞둔, 로버트 프립과 더불어 가장 고참입니다.
수퍼밴드 경험으로서는 단연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라 할만 하며, 백보컬까지 준수하게 해내는, 밴드로서는 정말로 유용한(!) 멤버입니다. 베이스 본업에서의 뛰어난 실력은 물론, 보컬이나 블로깅, 사진촬영 등 함께 겸비한 다재다능함 덕분에 35년 가까이 킹 크림슨의 멤버로 남아줄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명밴드의 세션을 도맡아 했으며, 특히 개인적으로 Liquid Tension Experiment로서의 활동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Liquid Tension Experiment는 Dream Theater의 멤버들 위주로 구성된 고난이도 연주집단 프로젝트 밴드였는데요, 이 활동 할때가 15년 전이니까 당시에도 이미 나이가 54세 였다는 점입니다.. 54세에 새로운 밴드 가입해서 '안녕하세요 토니입니다 잘부탁드려요' 해가면서 인사하고 친해지고.. 54세면 한국 대기업 같으면 상무나 전무, 부사장인데.. 바로 그러한 지칠줄 모르는 활동력이 존경할만한 분입니다.
  • 멜 콜린스
1947년생으로 68세이니 로버트 프립이나 토니 레빈보다 한 살 어립니다. 근데 공연장에서 서있는 거 보면 가장 기력이 쇠해 보입니다..
지금은 기력이 쇠했어도 과거 쟁쟁한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서 옛날부터 활약한 브라스(Brass. 금관악기 총칭) 연주가로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인 카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멤버였습니다.
  • 팻 매스텔로토
1955년생으로 올해 환갑입니다. 만 60세.
킹 크림슨의 역사상 가장 오래 드러머를 담당한 빌 브루포드란 사람이 있는데요, 90년대 들어와 킹 크림슨이 빌 브루포드에서 만족치 않고 처음으로 더블 드럼을 시도할 때, 그 어마어마한 빌 브루포드와 함께 더블 드럼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 팻 매스텔로토입니다. 이름이 무려 로또(lotto)로 끝납니다;;
이후, 2014년 8기 출범하면서 트리플 드럼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세 명의 드러머 가운데 가장 고참입니다.
  • 빌 리플린
1960년생으로 만 55세.
백발에, 각진 뿔테안경에, 슬림수트를 입는, 가장 스타일이 멋진 멤버입니다. 그러한 만큼 가운데 앞자리를 떡버티고 차지합니다.
가장 근엄한 표정으로, 한치의 빈틈없이 연주하지만, 사실은 인더스트리얼 등 가장 쎈 음악을 했던 분입니다. 마음속에 하드코어한 본성을 감추고 있는 인물
  • 개빈 해리슨
1963년생으로 만 52세이며, 킹 크림슨 8기중 가장 젊습니다. 그에 더해, 가장 동안입니다. 한 30대 후반으로밖에 안보입니다.
프로그레시브락의 계보를 이어가는 몇 안되는 90년대 그룹인 포큐파인 트리 출신. 말 다했죠. 특히 공연에서도 세 드러머 중 유일하게 강력한 드럼 솔로를 펼칩니다.

4 무대 배치[ | ]

2015년 투어에서 킹 크림슨의 무대는 앞과 뒤, 총 2열로 나뉘어집니다. 뒷열에는 4명, 앞열에는 3명입니다.

먼저 뒷열. 관객이 바라볼 때 맨왼쪽에 색소폰, 플룻 등 금관악기 주자인 멜 콜린스가 서고, 다음이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 그 다음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재코 잭식, 끝으로 맨 오른쪽에 리더이자 기타를 맡고 있는 로버트 프립이 섭니다. 아니, 앉습니다. 로버트 프립은 항상 의자에 걸터앉아 이렇다할 몸의 움직임 없이 조용히 연주하는데, 이렇게 앉아서 공연하는 것은 그의 작은 키를 티내기 싫어서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다음은 앞열. 앞열은 죄다 드러머들입니다. 일반적인 밴드들이 앞에서 프론트맨이 마이크를 들고 나대는 모습을 볼 때, 드럼 셋트가, 그것도 세 셋트나 무대 맨 앞에 놓여있는 킹 크림슨의 배치는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이내 익숙해지면 그 박력과 위용에 압도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타악기란 가장 오랫동안 인류의 가슴을 울려온 원초적인 음색과 박력을 가진 악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군무, 즉 여러 개체의 통일된 움직임에 흥분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고로 세명의 드러머가 이루는 조화는 시각적으로는 난타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면서, 음악적으로는 마치 오버더빙된듯한 강력한 비트에 청중들은 이내 압도 됩니다..

앞줄 좌측은 드러머들 가운데 최고참인 팻 매스텔로토가 Larks' tongues in Aspic I에 주로 쓰이는 특이한 퍼커션들을 주렁주렁 달고 포진하고 있고, 가운데는 가장 멋진 스타일링을 자랑하는 빌 리플린을 앞세웁니다. 빌 리플린을 가운데에 내세운 또다른 이유는 빌이 드럼 뿐만 아니라 멜로트론 등 다양한 악기를 다뤄야 하기에 공간을 준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Dedicated Mellotron Player는 없지만, 멜로트론 MR이 아니라 분명히 실제 연주하거든?'하면서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도 보여집니다. 끝으로 오른쪽에는 드럼 솔로 등을 맡는 개빈 해리슨이 배치됩니다.

예전에 아트락 코리아 네이버 밴드에서 어떤 분이 '킹 크림슨이 재결성되어 공연을 한다면, 그리고 레퍼토리 가운데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같은게 있다면, 과연 멜로트론을 연주 할까? 한다면 누가 할까?' 라는 의문을 품으신 적이 있었는데, 공연을 보고 그 답을 얻었습니다. 예, 멜로트론 연주하며, 빌 리플린이 연주합니다.

빌 리플린이 아주 재주꾼인게, 멜로트론 연주는 물론, 각 파트 볼륨조절 및 신디사이저 드럼, 보컬에 특수효과 매기기 등 전반적 테크니컬한 장비조작을 다 담당합니다. 스타일 가장 멋지며, 새하얀 백발에 뿔테안경을 쓰고 잘 웃지도 않아 카리스마 개작살납니다. 그러면서 그 옆 팻 매스텔로토나 개빈 해리슨은 땀흘리며 드럼치는데 이 아자씨는 땀조차 안나는데다가 심지어 앵콜하러 나와서는 슬림수트 재킷 단추 풀지도 않고 세곡 연주를 끝내더군요.. 거기다가, 말씀드렸듯이 과거 하드코어/인더스트리얼 밴드에 몸담았던 광기가 언젠가 표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추후 큰 스타성이 엿보이는 멤버입니다. 한국같아서는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는 나이인 55세 고참형님께 추후 스타성을 거론하는 것이 쫌 웃기긴 하지만요 ㅎ

통상 다른 밴드같으면 프론트맨이었을 보컬리스트, 재코 잭식은 앞줄도 아닌 뒷줄 살짝 오른쪽에 서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합니다. 얼굴에 깊은 법랑과 볼 위의 주름도 가장 깊고, 머리 숱도 별로 없어서 가장 늙어보입니다.. 본인도 그 점을 아는지 머리를 옅은 파란색으로 염색을 했습니다만 젊어보이는 데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줌마 파마 머리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제가 공연을 3일 연속 하는 것을 관람했지만, 첫날은 조심스럽게 목을 쓰고, 둘째날은 목을 거의 안쓰고 아낀 후, 셋째날 그나마 좀 마음껏 쓰는 방식으로 목 관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컬을 꽤 힘들께 짜내는 모습이나, 그래도 삑사리 없고 플랫 적게 나는 편이며, 특히 그렉 레이크를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나 2~4기 보컬인 보즈 버렐, 고든 하스켈, 그리고 약간 힘겹게 존 웨튼까지는 은근히 어울리게 커버합니다. 다만 그래도 보컬이면 간판인데, 그 숱없는 뽀글 머리를 하고 얼굴에 주름살 가득 생기며 목을 쥐어짜는 모습이.. 안그래도 노땅 이미지의 그룹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버트 프립 옹은 재밌었던 게, 처음에 무대에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을 때, 두손을 눈썹 위에 대고 조명을 가린 후 관객석을 꼼꼼히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둘러봅니다 ㅎ 활짝 웃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지해 보입니다. 밝은 조명 아래 서서, 어둠속에 앉아 갈채를 보내는 관객들을 향해, '나 당신들을 보고 있다, 당신들 면면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샅샅이 확인하고 싶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듯이, 그렇게요.

그리고는 재킷을 벗어 옆에 세워져 있는 옷걸이에 걸고, 기타 어깨끈을 둘러맨 후, 다리를 다소곳이 모은 다음, 공연 끝날때까지 꼼짝도 안하고 그 자세로 연주합니다. 특히 기타연주가 없는 파트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왼손은 넥에, 오른손은 피크를 든채 다음 기타 파트까지 기다리는 모습은 진지함과 장인정신 그 자체였습니다.

팻이 각종 잡다한 퍼커션을 행위예술하듯 두드리고, 토니 레빈은 노란색 Three of a Perfect Pair 앨범재킷이 그려진 일렉트릭 베이스, 그리고 일렉트릭 콘트라베이스 및 스틱맨을 차례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쉬운 것은 토니 레빈의 Sleepless를 듣지 못했다는 거네요. Korn 이상 가는 타격감과 Crafty한 핑거링을 자랑하는 Sleepless의 그 베이스 리프를 한번 봐야 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듯 토니 레빈은 사진을 찍습니다. 공연 전 도시를 투어할때라든가, 백스테이지에서의 모습 등을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Road diary도 씁니다. 토니 레빈의 사진찍기 취미는 킹 크림슨의 공연시 사진통제 정책까지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공연을 봤던 9월만 해도 사진 관련 정책은 명확했습니다. '공연 시작되면 끝날때까지 찍지 마라'.

근데 토니 레빈이, 곡과 곡 사이에 쉴때, 관객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 모양입니다. 고민 끝에 로버트 프립이 내린 결정은 '연주중 사진촬영 금지. 단, 곡과 곡 사이에 쉴 때, 킹크림슨 멤버도 사진 찍을 수 있으며, 관객도 사진 촬영 허용'으로 10월인가 바뀐 것입니다. 꼬장꼬장한 프립 옹도 나이가 드니 조금 플렉서블해진 건가요..

멤버들 건강상태는 멜 콜린스 빼고는 다들 정정해 보입니다. 멜 콜린스는 솔직히 걱정될 정도로 건강이 안좋아 보입니다.. 일단 서있는 자세만 봐도 약간 힘없이 짝다리를 짚은 모습이 영락없는 노인의 자세거든요.. 땀도 연신 훔치고, 솔직히 공연에서 유일하게 MR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색소폰/클라리넷 부분입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랄까. 이해는 갑니다.. 프립 옹과 함께 가장 고참인데, 악기는 가장 힘이 많이 드는 관악기이니까요.. 하여간 건강상 문제가 가장 먼저 발생할 것 같은 분이 바로 이분입니다. 이분 더 노쇠하기 전에 빨리 공연 보세요 ㅎ

빌 브루포드가 '무시무시한 곳'으로 표현한 그룹인만큼, 위계질서는 매우 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빌과 개빈, 드러머 둘이 가장 막내로 따까리 다 할듯 하네요 ㅎ

위계질서를 엿볼 수 있는 예를 들어보면, 로버트 프립이 재킷을 아예 벗고 옷걸이 걸어놓고 시작하는 반면 다른 멤버들은 재킷을 입고 공연을 시작합니다. 개빈만 재킷없는 셔츠 차림이네요. 그러나 공연이 이어지면 결국에 멜 콜린스도, 토니 레빈도, 팻 매스텔로토도 재킷을 벗는데, 재밌는 것은 재킷을 걸어놓는 옷걸이는 오로지 로버트 프립 옆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ㅋㅋㅋ 리더에 대해서만 확실한 차별적 위계가 서있는 것을 엿볼 수 있죠.

가운데 빌 리플린은 재킷도 벗지 않고 땀한방울 안흘리면서 쉽게 연주하는.. 정말 신비스러운 이미지에 백발까지 겹쳐 '도인' 내지는 '산신령' 느낌입니다. 정말 카리스마 넘치고, 프론트맨 할만 합니다.

개빈 해리슨은 맨 마지막에 강렬한 드럼 솔로를 담당하는 만큼 혼자 유일하게 처음부터 재킷을 입지않고 나와서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두들겨 댑니다. 아마도 강력한 로버트 프립의 지시를 받은 듯 합니다. '오바하지 말라'고. 교육 잘 받고 군기 바짝 든 엘리트들의 이미지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5 공연장 분위기 및 공연 본편 리뷰[ | ]

파리는 예술의 도시죠. 예술의 도시 안에서도 공연이 열렸던 롤렁삐아 (L'Olympia)는 꽤 중심가에 위치한 유서깊은 공연장입니다. 킹 크림슨도 과거 70년대 공연을 했던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40년만에 컴백하여 공연한 느낌은 참 어떨지 궁금합니다..

공연장이 뭔가 독채 건물로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8차선 대로를 따라 죽 늘어선 전형적인 도시 건물들 중간에 띡 위치하고 있어, 이게 공연장 맞아? 가봤자 얼마나 넓겠어 싶었지만 막상 들어가면 꽤 큰 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대략 1500~20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공연장으로 보였습니다.

스탠딩은 없었고, 무대 바로 앞 공간도 모두 고정의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좌 우측에 발코니 공간, 앞쪽에도 메자닌 층 및 발코니로 되어 있는, 오페라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는 2014~15년 킹 크림슨 투어에서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공연장 형태이며, 이는 2014년 라이브 실황인 Live at the Orpheum의 속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Orpheum이라는 역시 미국 LA의 유서깊은 공연장도 이러한 배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킹 크림슨, 좀더 정확히는 로버트 프립이 그들의 음악을, 이번 재결성의 취지를, 그리고 이번 투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나타내는 선택입니다. 그는 이미 킹 크림슨의 음악을 대중음악이나 락음악의 레벨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음악이 진보적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다는 표현으론 부족합니다. 그 자신이 진지하게 음세계를 탐구하면서 진보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임을 안다기보다 진보를 행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는 진지합니다. 최소한 저항을 기치로 내세워 기타-베이스-드럼을 연주하되 인기가 많으면 어쩌지 고민하고, 인기가 없으면 먹고살 걱정을 하는 여느 락 밴드와는 전혀 다릅니다. 어디까지 내 작곡이, 내 연주가 갈 수 있나, 어느 정도의 변박이,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이, 어떤 유니즌 플레이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인류가 시도해 보지 않은 예술의 변경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스탠딩석을 가진 일반 락 공연장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진지한 시도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귀로 즐기면서, 그가 탐구한 예술의 프론티어를 탐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가 최근 십수년간 해온 작업중 중추적인 부분이 과거 음원 발굴이라는 점에서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음악적 시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시도를 기록하고 자산화하고 싶어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먼훗날, 그의 음악이 작금의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클래식 거장의 음악처럼 고전으로 추대되고 숭배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락공연장이 아닌, 오페라나 클래시컬을 연주할 듯한 장소를 선택하는 것일 것입니다..

3일간의 공연 동안 랜덤한 사람들이 랜덤하게 모였겠지만, 의외로 각 날짜별로 관객의 성향이 명확한 특성을 띠고 갈렸습니다.

  • 일요일이었던 첫째날은, 가장 골수팬들이 감상하러 온 분위기. 분위기 가장 좋았고, 킹 크림슨은 무려 19곡을 연주했습니다.
  • 월요일 둘째날은 약간 어중이 떠중이 분위기였습니다. 환호성도 가장 적었고요. 아니나 다를까, 이 날 가장 적은 17곡을 연주합니다 ㅋㅋ
  • 화요일 셋째날은 골수팬이라기 보다는 좀더 술냄새 나고 신규 팬들 분위기. 환호성은 가장 쎘습니다. 다만 체력안배인지 18곡만 했습니다.

이제 드디어, 본편 공연과 연주에 대한 리뷰에 들어갑니다..


먼저 아무리 노땅 할배들이라 하더라도 공연하는 나라의 국가 한소절 정도는 연주하는 쎈스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 관악기를 잡은 멜 콜린스 옹이 3일 공연 모두에서 프랑스 애국가 한 소절을 꼭 넣어서 관객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 3일간 공연의 레파토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의 공연이 모두 레퍼토리가 4개 이상씩은 다릅니다. 이쯤 되면, 하루만 공연을 봐서는 모자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로선 3일 다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골수팬 되기 돈 많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6 Sep 20 (일요일) 2015[ | ]

  1. Larks' Tongues in Aspic, Part One ("La Marseillaise" snippet) 정말 순수한 음악적 희열이랄까요.. 물론 이 노래를 알고 익숙한 팬들 입장에서겠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듣던 초기에 '좀 과도하게 과격하다'는 생각을 한동안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내 그 변화무쌍한 전개와 에너지의 진가를 느끼고 빠져들게 되었지만요. 하여간 이 곡 초반 특유의 각종 퍼커션들을 팻 매스텔로토가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현악기 MR을 배경으로 로버트 프립의 리프가 흐르고, 그러다 드럼 트레몰로가 멈추는 순간! 3명의 드러머가 똑같은 동작으로 예의 강력한 그 메인 리프의 비트를 때려댔고, 모두가 반가움과 황홀경에 빠져 버렸습니다. 3드럼의 강력함, 3드럼의 차이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넘버인만큼, 공연 맨 첫곡으로 배치하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2. Red 첫곡의 잔향이 가시기도 전에 그 유명한 레드의 메인리프가 울려퍼지는데, 관객들은 거의 원투펀치 연타를 맞은 분위기입니다. 사실 레드 앨범이 발표될 때 킹 크림슨의 멤버는 드럼, 베이스, 기타 3명이었습니다만, 레드 라는 타이틀 넘버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세명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메인 기타와 리듬 기타가 모두 나와야 제대로 연주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40주년 기념 에디션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트리오 버전'이 있는데 소리가 정말 많이 비고, 원곡의 맛이 반도 나지 않습니다. 반면 지금의 진용은 어떻습니까? 로버트 프립이 정정하게 피킹을 하고 있는 옆에 재코 잭식이 리듬 기타를 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벽히 원곡 재현이 가능하죠. 단, 거기에 드럼 비트를 3배로 강화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원곡의 감동 재현을 넘어 능가합니다.
  3. Suitable Grounds for the Blues
  4. Radical Action (To Unseat the Hold of Monkey Mind) 두곡 모두 짧은 연주곡/소품 격입니다. 주로 3명의 드러머들이 돌아가면서 연주하는 방식으로 한숨을 돌리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세션이었습니다.
  5. Meltdown 드디어 우리 재코 잭식의 보컬이 등장합니다. 이 곡은 이번 투어에서 공개되는 신곡 두세곡 가운데 하나인데요, 솔직히 좀 실망입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락 발라드같은 느낌이었으며, 전혀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없었습니다. 다만 킹 크림슨이라는 거장의 그림자만 거두고 듣는다면 충분히 훌륭한 곡입니다.
  6. Pictures of a City ㅍㅎㅎ 이 곡이 나올줄은.. 약간의 의외적인 느낌과 한편으로는 반가운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너무 오래된 노래잖아요. '아니, 하고 많은 노래들 중에 이거라니'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후기로 가면서 음악 풍이 많이 바뀌어서 이 노래를 잘 연주 안해서 그렇지, 이 노래는 라이브에서 곧잘 연주되던 곡이라는 걸 떠올리자 반가운 생각이 든거죠. 그리고 제가 잠시 까먹고 있던 게, 이 노래가 21st Century Schizoid Man에 버금가는 빠르고 변화무쌍한 간주를 지닌, 긴 대곡 구성이라는 점이죠. 중간 간주에 마치 21st Century Schizoid Man처럼 유니즌 스타카토가 있는데 정말 거의 비슷한 느낌을 줄 정도로 다이내믹한 공연이었습니다.
  7. The ConstruKction of Light
  8. Level Five 이 두 곡이 모두 연주곡인데다가, 후기 더블 트리오 시절 거의 아방가르드 메탈 지향의 난이도를 구사하던 때의 곡들로 분위기까지 비슷한 2곡이 이어지다 보니 여기서 좀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들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좋아하는 곡이라 눈을 반짝반짝하고 들었지요.
  9. Banshee Legs Bell Hassle 분위기를 전환하는 3드럼 위주의 연주곡 소품입니다.
  10. Epitaph 멜로트론이 드디어 울려 퍼집니다.. 그것도 에피태프의 멜로트론이요. 앨범 버젼보다 훨씬 생생한 로버트 프립의 기타가 감동적이었으며, 재코 잭식의 보컬은 데뷔앨범부터 레드까지 손쉽게 커버하고, 또 잘 어울린다는 세간의 평을 다시한번 실감했습니다. 다만 80년대 3부작부터 이어지는 에이드리안 블루의 보컬과는 음색이 너무나 달라서 그런지, 아예 80년대 이후 곡들 중 보컬 있는 건 아예 시도도 안합니다. 예.. 여러분, 이번 투어에서 80년대 3부작 이후 곡들중 보컬 있는 곡은 아예 못듣는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으실 겁니다. 에피태프 같은 명곡을 생생하게, 원곡보다 더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으니까요.
  11. Hell Hounds of Krim 다음 곡이 무엇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짧은 연주곡.
  12. Easy Money 그 곡은 바로 이지 머니였습니다.. 킹 크림슨 라이브 음원 가운데 저의 개인적인 페이버릿이자, 일부 인터넷상 팬 포럼에서는 '어떤 공연의 Easy Money가 가장 좋냐'는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하는, 한 곡 치고는 너무나 큰 영향력을 갖는 바로 그 곡입니다. 게다가 이 곡은 2014년부터 재결성 투어가 시작되었는데, 최근에서야 공연 셋리스트로 추가된 따끈따끈한 곡입니다. 다시 말해, 재결성 초기인 2014년에는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9월 파리 공연을 앞둔 몇달 전 이 노래를 새롭게 연습하여 레퍼토리로 추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공연에서 제 함성이 가장 컸던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이지 머니 이 노래는 팝 성향이 물씬한 대중적 멜로디로 2분 30여초를 가다가, 약 2분에 걸친 잔잔한 즉흥연주가 펼쳐지고, 그 즉흥연주가 점차 고조되면서 강렬한 마무리를 하는 드라마틱한 곡입니다. 멜로디가 좋으면서도 아트락/프로그레시브락 다운 전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곡이 아닌가 합니다. 그 잔잔한 즉흥연주에서 크레센도로 점차 강렬해지면서 메인 리프로 연결되던 그 연주를, 저는 직접 목도했습니다.
  13. The Letters '이지 머니'라는 절규로 강렬하게 끝나는 이전 곡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릅니다. 레퍼토리의 배치도 참 멋지죠. 아 이 노래 정말 반가웠습니다. 멜 콜린스가 다소 힘겨운 모습으로 메인 색소폰 리프를 연주하다가, 이내 색소폰 솔로를 연주합니다. 그렇죠. 이 노래는 중간에 색소폰 솔로가 있고, 끝부분에서 "Impaled on nails of ice"를 절규하는 바로 그 노래입니다. 재코 잭식의 보컬이 너무나 애잔하고 잘 어울렸습니다.
  14. Sailor's Tale 앗 이럴수가.. 드럼 스틱이 힘차게 심벌즈를 두드릴때 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전 곡 The Letters와 같은 앨범에 있던 Sailor's Tale 아닌가? 근데 순서를 반대로 연주하고 있네!!! 그렇습니다. 원 앨범인 Islands에서 2번째곡이 바로 이 Sailor's Tale이고, 3번째 곡이 The Letters인 것입니다. 허를 찔린 느낌이었습니다. 기백번은 들었을 Islands 앨범, 그래서 그 곡 배치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 곡 배치 외에 이론의 여지를 두어본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순서가 뒤바뀐 이 두 곡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고, 또 그렇게 어울릴 것을 파악하고 순서를 바꾸어 배치한 킹 크림슨에 다시한번 숙연해질 뿐이었습니다. 정말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선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연주가 지나가고..
  15. One More Red Nightmare 드디어 제가 라이브로 가장 듣고싶어 하던 곡이 나왔습니다. One More Red Nightmare. 제가 두번째로 환호했던 노래입니다. 사실 킹 크림슨 팬들이시라면 아시겠지만, 74년에 레드 앨범을 내고 해체한 후 일제히 공연을 멈추었습니다. 다시 말해, 레드 앨범의 수록곡들중 그 전 앨범에 실으려다가 못실은 Starless나, 앨범출시 전 투어의 라이브 즉흥연주를 담은 Providence 외에는 출시 당시 라이브로 연주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나마 그 중에 유명한 두곡, 즉 Red와 Starless 두 곡이 후기 라이브에서도 곧잘 연주되었긴 합니다만, 애꿎은 다른 곡들, Fallen Angel이라든지, One more red nightmare 같은 명곡들이 연주될 기회를 잃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 중 이 노래 One more red nightmare는 멜로디가 가장 모던한 데다가 공격적인 에너지를 갖추고 있으면서 프로그레시브락다운 대곡지향과 조바뀜, 변박자 등이 모두 어우러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페이버릿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유튜브를 이잡듯 뒤져봐도 이 노래 라이브 음원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앨범 출시도 전에 해체해버려 공연을 가질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이번 투어가 이 곡의 첫 실황녹음이 되는 것입니다.
  16. Starless 그리고 많은 분들의 최고 명곡, 스타리스가 나옵니다. 저는 이미 이전 공연 후기들을 읽어서 이 노래 나올때 공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명이 바뀐다 (참 인색하기도 하여라 공연 내내 딱 한번 조명 작동한다니 ㅎ)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정육점 빨간등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로버트 프립 옹의 읊조리는 듯한 기타리프가 멍멍하게 울립니다. 그리고 재코 잭식의 너무나 잘 어울리는 보컬이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쫌 놀랐던 거는, 저는 앨범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 이 노래의 솔로의 존재감이나 길이, 난이도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너무 평이한 곡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들었었습니다. 근데 라이브를 들어보니 솔로 길이가 장난이 아닌데다가 변박자는 너무나 때려맞추기 힘들고, 그 에너지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니 너무나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1. Encore:
  17. Devil Dogs Of Tessellation Row 드디어 앵콜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들어와서 인사한 후, 3명의 드러머끼리 호흡을 맞춰가며 관객과 멤버들 사이의 간극을 짧은 연주곡으로 조율합니다.
  18.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멜로트론을 공연장에서 직접 들으니 이게 왜 '건반악기가 아닌지' 느끼겠더군요. 연주자가 건반은 두드리는데, 그 음색은 전혀 뭔가를 두드려서 나는 소리가 아닙니다.. 뭐 테이프를 재생하는 거라던데, 하여간 그런 차이까지 경험하면서 명곡을 탐험했지요.
  19. 21st Century Schizoid Man 그리고 마지막곡은 바로 스키초이드입니다. 처음엔 전 솔직히 실망했었습니다. 이 노래를 최후의 한 곡으로 할 것까지야.. 이 노래가 싫다기 보다, 더 좋은 노래가 얼마든지 많은데 하는 생각이 공연 말미에 더 강하게 들었던 것일 겝니다. 다만 이 생각은, 이성적인 추론이나 판단을 해보기도 전에 곧장 사그러들었습니다. 정말 이 노래에는 특별한게 있거든요. 너무나 강렬한, 사그러들지 않는 에너지와, 69년 비틀즈의 나긋나긋한 Here Comes the Sun이 흘러나올 무렵 이 노래를 들고 나왔을때의 충격, 그리고 우리 아트락/프로그레시브락을 듣는 모든 청중들이 안다는 그 반가움.. 정말 관객석 반응도 너무 좋았고, 그 반응은 그대로 텔레파시로 전달되어 크림슨 횽들의 연주에도 더욱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정말로 신이 났고, Inspiration이 둥둥 떠다녔으며, 3드럼으로 듣는 강력한 비트의 향연에, 빼놓을 수 없는 유일한 드럼 솔로도 바로 이 노래에서 나옵니다. 결론적으로 공연에서 가장 강추하고, 놓쳐서는 안될 넘버는 바로 이 스키초이드입니다. 정말 공연 직접 보시면 흠뻑 빠져드실 겁니다.

7 Sep 21 (월요일) 2015[ | ]

둘째날 공연부터는 새롭게 연주하는 곡들만 후기를 넣어보겠습니다.

  1. Larks' Tongues in Aspic, Part One ("La Marseillaise" snippet)
  2. Pictures of a City
  3. Meltdown
  4. A Scarcity of Miracles (Jakszyk, Fripp and Collins cover) 둘째날에는 좀 신선한 곡이 나왔습니다. 꽤 최근 곡인 Scarcity of Miracles 입니다.
  5. Hell Hounds of Krim
  6. Level Five
  7. The ConstruKction of Light
  8. Epitaph
  9. Banshee Legs Bell Hassle
  10. Easy Money
  11. The Letters 이 노래가 나오는 순간, 어제처럼 Sailor's Tale이 역순으로 이어지겠거니 하고 기대했지만, 바로 그 곡은 생략되고 Red가 나와 버립니다. 뭐 여전히 좋습니다!!
  12. Red
  13. The Talking Drum 그러더니 다소 정적이 흐르더니... 토킹 드럼이 두둥!! 아 정말 이 노래 나올때 얼마나 반갑던지.. 일단 몇 안되는 80년대 3부작 중 한곡 아니겠어요? 게다가 어제 공연을 같이 봤던 정철 형님이, 공연 끝나고 별 생각없이 던지신 한마디가 'Talking Drum' 보고싶었는데 안했다는 말이었는데.. 그 말 듣기라도 한 양 이 노래를 연주해 버리는 겁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80년대초 당시 아방가르드, 인더스트리얼, 뉴웨이브를 넘나들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느껴집니다.
  14. Larks' Tongues in Aspic, Part Two 아니.. 토킹 드럼 만으로도 너무 감동이었는데.. 이건 도대체.. 둘째날 저를 가장 흥분시켰던 바로 그 곡입니다. Larks... Part II. 저는 킹 크림슨의 라이브 음원 중에 Great Deceiver 4CD 세트를 참 좋아하는데요, 4CD 가운데 첫 CD의 첫 곡이, Larks.. I 도 아니고, Larks.. II 입니다. 그리고 라이브 앨범인 USA 역시! 첫곡이 Larks.. II 이지요. I 만큼 충격적이고 강렬하진 않지만 오프닝에 적합할 만큼 훨씬더 경쾌합니다. 물론 이번 파리투어 첫곡은 I이었지만요. 제 개인적으로 One More Red Nightmare 다음으로 라이브로 듣고 싶었던 2순위였는데, 정말 이날 소원 풀었습니다. 하여간 이 노래는 골수팬들은 많이 가지고 계실 Larks.. 와 Starless, Road to Red 박스셋에도 다양한 버젼의 라이브 음원이 실려 있는데, 아마도 음원마다, 공연마다 다 조금씩 달라서 독특한 맛이 있는 곡은 이 노래와 Easy Money일 겁니다. 이 노래도 변주가 많아서 찾아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15. Starless
    1. Encore:
  16. Devil Dogs Of Tessellation Row
  17. 21st Century Schizoid Man

8 Sep 22 (화요일) 2015[ | ]

  1. Larks' Tongues in Aspic, Part One ("La Marseillaise" snippet by Mel Collins)
  2. VROOOM 어잌후!! 또 하나의 레어템 등장이요. 너무 반갑고 육중하고 위풍당당한 Vrooom이었습니다.
  3. Meltdown
  4. (Unknown) (Drums 3:5* 셋째날은 특이하게 Meltdown에 이어 신곡을 하나 더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쩝.. 아주 살짝 Progressive한 락 발라드 수준이었네요. 공연은 멋지지만 다음 앨범은 Dream Theater의 Falling into infinity같은 느낌이 아닐지 솔직히 좀 걱정이 됩니다.
  5. Suitable Grounds for the Blues
  6. The ConstruKction of Light, Part One
  7. Pictures of a City
  8. Epitaph
  9. Banshee Legs Bell Hassle
  10. Easy Money
  11. The Letters
  12. Sailor's Tale 다시금 The Letters + Sailor's Tale 콤보가 재현이 됩니다. 정말 귓속에 담고 갈수 있다면 하고 바랬었습니다 ㅎ
  13. Hell Hounds of Krim
  14. One More Red Nightmare
  15. Starless
    1. Encore:
  16. Devil Dogs Of Tessellation Row
  17.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8. 21st Century Schizoid Man 이상 곡별 후기를 마쳤습니다.

9 감상 총평[ | ]

3일차 공연 관람을 모두 마치고, 뿌듯하고도 속시원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왔습니다. 공연장에서는 2015 Tour Box라는 2CD 음원모음집을 팔고 있었는데요, 곡들 내용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만, 부클릿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번 재결성 킹 크림슨의 운영 및 연주 원칙입니다. 문장으로 된 풀 버젼 원칙과, 키워드 위주로 된 간단한 원칙이 있는데, 개인적 총평에 앞서 다음과 같이 먼저 그 원칙을 소개해 봅니다.


9.1 킹 크림슨 원칙[ | ]

  1. May King Crimson bring joy to us all. Including Me.
    1. 킹 크림슨이여,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길. 나를 포함해서.
    2. -> 엄격하고 진지하기만 할것 같지만 우리 로버트 프립 옹은 1원칙을 Joy, 즉 즐거움으로 삼고 있습니다.
  2. If you don't want to play a part, that's fine! / Give it to someone else - There's enough of us.
    1. 곡의 특정 부분을 연주하기 싫다고? 괜찮다! 대신 다른 멤버에게 줘라 - 멤버는 충분하니까.
    2. -> 역시 자율성을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드러머야 3명이니 서로 파트를 나눠가면서 할 수 있겠고, 기타 역시 2명이니 가능하고, 멜 콜린스의 관악기 역시 본인 연주와 MR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ㅎ 그렇다면 우리 다재다능한 재주꾼 토니 레빈 옹은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3. All the music is new, whenever it was written.
    1. 모든 음악은 신곡이다, 언제 쓰여졌던 간에.
    2. -> 바로 이 원칙이 이번 재결성 킹 크림슨을 꿰뚫고 있는 대원칙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해, 1, 2번이나, 앞으로 나올 4~7번 원칙은 모두 자신들의 연주에 주로 적용되는 내부 원칙입니다. 3번만이 어떤 정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바로 옛날 노래라 하더라도 신곡처럼 대하라는 거지요. 이는 위에서 말씀드렸던 로버트 프립이 본인의 음악과 본인의 그룹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다름 아닙니다. 그가 옛날 음원들을 발굴하고 손질하고 수록하는 이유도, 언제든 신곡처럼 빛날 거라는 영속적인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4. If you don't know your note, hit C#.
    1. 화음을 모르겠으면 C샵을 쳐라.
  5. If you don't know the time, play in 5. Or 7.
    1. 박자를 모르겠으면 5번 또는 7번에 들어가라.
  6. If you don't know what to play, get more gear.
    1. 무슨 악기가 적합할지 모르겠다면, 적합한 악기를 들여라.
  7. If you still don't know what to play, play nothing.
    1. 그럼에도 불구, 뭘 연주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연주하지 말 것.


이번에는 키워드 위주로 된 원칙을 살펴볼까요?

  1. Joy. 희열
  2. Acceptance / Generosity. 수용 / 관용
  3. Creativity. 창조성
  4. Commitment. 헌신
  5. Decision. 결단력
  6. Ingenuity. 정교함. 그리고
  7. Presence. 존재감

정말 멋집니다.. 거라지 밴드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차고에서 뚱땅뚱땅 10대들이 모여 스타가 되고싶어서 시작한 음악과는 같은 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패드의 거라지 밴드 앱에서 띵까띵까 두들겨보다가 음악을 만들어서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다가 스타가 되는 작금의 뮤지션들과는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마음가짐이자 원칙입니다.

제가 음악을 듣기만 한다면, 누군가는 음악을 진정으로 깊이 고민하고 음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의 지적 탐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신의 고양 아니겠습니까? 제게 킹 크림슨은 그런 존재이고, 제게 킹 크림슨의 의미는 그러한 고양감입니다.

9.2 개인적인 총평[ | ]

자, 이제 제 개인적인 총평입니다. 공연 자체와 공연 외적인 것까지 모두에 대한 단상입니다.

  • 역시나 유럽 물가는 비싸더군요. 공연장에서 맥주 500 한잔에 8유로... 그래도 이때 먹는 맥주맛을 어디에 비하겠습니까 질르고 즐겼습니다.
  • 멤버들,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합니다. 복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타이까지 한 정장. 그리고 아마 로버트 프립한테 철저하게 지침을 받는지, 다들 태도가 한결같이 절제되어 있습니다. 과도하게 흥분도 안하고요. 과연 로버트 프립의 감독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 그리고 돈은 얼마나 어떻게 나눠가질까도 궁금했지요. 대략 암산도 해 보았습니다. 공연장이 대략 2천석 정도 되는 것 같던데 거의 찼거든요. 초대권 고려해서 표 대략 싸게 100불 잡으면 회당 매출 20만불. 회당 공연장 대관료 대략 3만불에, 티케팅/홍보/제반 행정비/장비운송료 및 항공료 회당 대략 6만불 때리면 회당 킹 크림슨에게 11만불 떨어질 겁니다. 그럼 프립횽이 3만불, 멜 콜린스랑 토니레빈이 2만5천불씩, 재코잭식이랑 팻이 2만불씩 하면 켁.. 빌이랑 개빈은 5천불씩인가요 ㅋㅋㅋ


  • 아쉬웠던 점 몇가지입니다.
    • 아쉽다기 보다 슬픈 것이, USA를 들어보면 '옛날에는 4명이서 똑같은 사운드를 냈는데..' 하는 생각에 안구에 습기가..
    • 신곡들은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근데 사실 이부분은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합니다. 저는 The ConstruKction of Light 부터는, 엄청난 명곡이나 혁신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비르투오소들께서, 명곡이든 아니든 간에, 새로운 음을 단 한 소절이라도 더 만들어내시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팬들도 그걸 보고 듣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옥의 티라면, MR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멜콜린스가 하는 브라스 MR은 나이가 많으니 이해해줄 수 있는데, 심지어 환호성까지 MR이 나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첫날과 셋째날이 동일한 환호성 MR 발송 실수가 있어서 재코 잭식이 부끄러운듯 웃었습니다.
    • 첫날, 팻이 끝나고 들어갈 때 드럼스틱을 던져줬는데.. 세번째날 다시 던져주면 받으려고 첫날 안 달려들었었는데 후회되네요 ㅎ 옆에 사람이 줏어간 스틱을 봤는데.. 자글자글 다 갈라져 있더군요. 파워 드러밍..
    • 이번에 싸인회 같은거 하면 싸인 받으려고 각종 씨디는 물론 제가 있는 나라 토속기념품 같은것도 잔뜩 사들고 갔었는데.. 허탕친게 아쉽습니다.
  • 좋았던 점들입니다.
    • 말씀드렸듯이 최고의 곡은 의외로 21st century 스키초이드였습니다..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락 음악이 어찌보면 기타-드럼-베이스 포메이션에서 할 수 있는 음악의 한계에 다다랐는데.. 물론 건반이나 관악기를 강조할 수는 있지만요. 드럼 3세트는 신선한 시도.. 어찌 보면 락 역사상 최초의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 킹 크림슨의 음악은 저는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두운 박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감.. 사운드 박력 정말 쩔어줬습니다. 로버트 프립은 점잖은 애티튜드와 무표정한 얼굴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노이즈를 사랑하고 과격하고 헤비한 사운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운드가 점점 강해지는 방향으로 갈리가 없죠.. 지금 그 정점에 와 있는 겁니다. 드러머 세명.. 올해 초 출시된 이번 재결성 투어의 실황인 "Live at the Orpheum"을 혹시 들으시고 빈약한 사운드에 실망하신 분들, 절대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Live at the Orpheum은 엔지니어가 맛이 간 사람인 것 같습니다. 60년대 녹음보다 더 음질이 안좋습니다. 직접 들어보시면 그 박력을 온몸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10 에필로그: 프로그레시브락/아트락의 시대는 돌아옵니다[ | ]

음악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음률들이 모이면 사람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물론 천재 초현실주의작가 살바도르 달리가 음악을 일컬어 '가장 열등한 형태의 예술'로 지칭하며 폄하한 적도 있습니다. 사실 순수하게 백지나 허공에 창조하는 회화나 조소보다는, 음악은 이미 악기들이 있고, 코드와 화음이 있으며, 악기 편성이나 곡 길이 등 어느 정도 주어진 형식들이 있다는 점에서 '창작의 난이도'는 좀 떨어질 수 있겠습니다. 다만 심미적 쾌감은 회화나 조소보다도 훨씬 크지 않을까요? 그리고 꼭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하면서 귀로 들을 수 있으니 즐기기에도 더 용이하고. 그리고 원하면 원하는만큼 길게 재생할 수 있으니 미적 쾌감의 지속성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음악이 열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음악, 장르도 다양하고 취향도 다양합니다. 그런 얘기가 있죠. '청소년기~20대때 들은 음악이 평생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된다'고요. 근데 그렇다고 다 그런것만은 아닙니다. 재즈 같은 경우는 나이 먹어서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나이먹어서 좋아지는 음악은 트로트도 빼놓을 수 없죠. 저한테도 킹 크림슨은 나이 먹어서 좋아진 케이스입니다. 이토록 음악은 언제 어떻게 어떤 취향이 빌드업 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신비합니다.

저는 프로그레시브락/아트락의 시대는 돌아온다고 확신합니다. 기본적으로 돌고 돈다는 유행의 통속성에 더하여, 그 근원적인 에너지와 예술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높이 평가받는 시대가 돌아올 것입니다. 가치있는 재화나 용역은 반드시 가격이 오르게 마련입니다. 프로그레시브락/아트락의 예술성과 실험성, 탐구정신, 지적 신세계 탐험에 대한 간접경험의 쾌감 같은 가치는 다른 어떤 장르의 음악이나 다른 어떤 종류의 예술에서도 찾기 힘든 것입니다. 따라서 그 독자적인 가치는 반드시 인정받고 재조명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 바람이 하나 있다면, 그 재조명으로 인해 새로운 아트락/프로그레시브락 뮤지션들이 지속적으로 나와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작은 바람입니다만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 음원깎는 노인 로버트 프립 옹의 만수무강을 빌수 밖에요 ㅎ


2015. 12. 10 H.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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