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Crimson20010615

King Crimson in 12th and Porter *** 6.15, 6. 16. 2001

신인철, Fish, mailto:incheol.shin@vanderbilt.edu

1 # 첫째날[ | ]

지난 주말 목금토일... 4일에 걸쳐서 제가 있는 도시 N시의 오래된 라이브 카페인 12th and Porter라는 곳에서 King Crimson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몇달전 이 사실을 알고는 꽤나 흥분해서 미리 금요일 티켓을 두장 사놓았었죠.

두달동안 기다리면서 크림슨과 관련된 추억을 중딩시절부터 하나하나 짚어가보았습니다. ^^

처음 들은 크림슨의 곡은 역시 Epitaph였습니다. 80년, 중학교 2학년때 전교에서 한가락하는 껄렁껄렁한 친구가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먼저 말을걸어왔습니다.

"야.. 너 음악 좋아한다며.."
"응... (쭈삣.. 이녀석이 왜 나한테 말걸지..)"
"뭐 좋아하냐 ?"
"응 뭐 레드제플린이랑 딥 퍼플.."
"음 너 킹크림슨은 안좋아해 ?"
"아직 못들어봤어.. 잡지에서 많이 얘기들어 듣고싶긴한데"
"에피탑이라는 곡 몰라 ? 벗 아이 퓌어 투모로우..아일비 크라잉~~"

녀석은 어울리지 않게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잘난척 했습니다.

"응 제목은 월간팝송에서 많이 봤는데 아직 못들어봤어."
"알았어 가봐"

중학교 이학년짜리 주제에 방과후 청소할때도 청소도 안하고 남 청소하는거 물끄러미 보면서 담배만 피우던 녀석이 갑자기 킹크림슨 얘기를 꺼내니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후 몇개월 후. 황인용씨가 진행하던 TBC (!) AM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에서 저는 최초로 King Crimson의 Epitaph을 듣고 완전히 맛이 갔습니다. 녹음해서 .. 듣고 또 듣고.. 당시에는 멜로트론의 홍수..^^ 그런게 들리기보다는 아름답고 처절한 멜로디와 Greg Lake의 보컬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것 같습니다. 뭐 Progressive rock이라기보다는 당시 많이 유행하던 Jose Feliciano나 Melanie의 슬픈 노래들과 비슷한 맥락의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몇개월 후 용돈을 꼬부쳐서 벼르고 별러서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발매된 변형자켓 (!) -겉모습은 Lizard, 속은 짬뽕 - 라이센스 엘피를 사서.. 듣고 또 듣고 ..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두번째로 발매된 킹크림슨의 한국 앨범은 무엇이었을까요 ? Island도 아닌, Red도 아닌 바로 빨간색이 너무나 멋졌던 Discipline이었습니다. 성음레코드에서 Matte Kudasai 일본어 제목의 한곡이 짤린 꺼벙한 모습으로 - 하지만 음질은 꽤나 괜찮게 - 발매가 되었었죠. 하지만 당시 마악 프로그레시브락의 팬이 되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짜리에게 Discipline 앨범은 그가 믿던 프로그레시브의 전형과 조금은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거 뭐 이래.. 뉴웨이브 같기도 하고.."

덕분에 Discipline앨범은 한쪽 구석에 쳐박혀져서 몇년 후 Three of a Perfect Pair를 구입해서 다시 세장의 앨범을 다시 들어볼때까지는 그다지 햇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방송사가 통폐합되고.. 5공의 시퍼런 서슬이 목을 죄어오던 80년. 철모르는 중딩은 빽판을 사모으면서 크림슨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조각 성운과 뒷자켓 멤버사진을 절묘하게 합체시킨 변형자켓의 Island 빽판. 너무도 탐나는 오렌지색의 모노톤으로 발매된 In the wake of Poseidon빽판. 원판부터 무척 상태가 안좋았던 모양으로 세장인가 네장을 사보았지만 전부 음질이 너무 안좋았던.. 하지만 음악은 너무나 좋았던 초록색 모노톤으로 발매된 Lark's tongues in Aspic 빽판. 어디선가 누가 보았다는 말만 듣고 찾아보았지만 세운상가를 헤매고 또 헤매도 찾을 수 없었던 Earthbound빽판.. 나중에 원판을 구했을때보다 더욱더 감격스럽게 들었던 빽판에 울고 빽판에 웃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월간팝송에서 몇몇 선각자들이 입에 침을 바르면서 칭찬하던 Red 앨범은 빽판으로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Starless가 듣고싶은데.. Red가 듣고싶은데. 하지만.. T.T 그후로 정확하게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내가 Starless를 처음 들은것이 어디서였는지 성시완씨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였는지 83년인가 82년인가 라이센스로 발매된 King Crimson의 두장짜리 베스트 앨범인 Young Person's guide to King Crimson을 사서였는지...

암튼 그때 어이없게 성음레코드에서 발매된 크림슨의 두장짜리 베스트 앨범은 I talk to the wind의 얼터네이트 버젼이 아니더라도.. Red와 Starless 두곡만으로 (아마 사이드 3에 담겨있었나 그랬던것 같아요.) 고삐리 프로그헤드를 완전히 보내버리기에 충분한 충격이었습니다. 아뭏든 그 후로.. 당시로서는 꽤나 획기적인 (??) 크림슨의 팬으로 자부하면서 80년대 앨범들도 다시 들어보고 새삼스럽게 다시 좋아하기 시작하고 뭐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후로 이십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공연 당일이 되면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듭니다.

"정말 내가 오늘 크림슨을 볼 수 있을까..."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공연이 취소된건 아닐까.."
"20년전은 아니더라도.. 10년전때만 볼 수 있었어도 얼마나 지금보다 더 뿅가했을까.."

그래도 지금에서 또 십년 이십년 세월이 흘러 내나이 환갑을 바라보고 로버트 프립의 나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연을 보는것 보다는 낫다며 조금씩 위안을 해보았습니다. ^^


금요일 저녁 공연.

어제 목요일 공연에 이어 두번째 공연입니다. 크림슨은 작년에도 이곳 N시의 중심가 브로드웨이와 12번가가 교차하는 어정쩡한 시내 뒷골목에 위치한 12th and Porter에서 꽤나 많은 공연을 가졌습니다. 혹자는 일종의 'Warming up gig'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이번 공연도 얼마후에 열리게될 조지아, 플로리다등의 몇도시를 돌게되는 중간급 규모 공연의 전초전 형식으로 작은 venue에서 '몸풀기' 내지는 '관객하고 좁은곳에서 호흡하면서 긴장풀기' 등의 공연으로 이해하면 될것 같습니다.

공연시작은 아홉십니다만.. 예전같으면 다섯시부터 가서 기달렸겠지만 이제는 제법 공연문화에 길들여져서 일찌감치 퇴근을해서 집에서 밥을 해먹고 어울리지않게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뚫고 삼십분쯤 전에 12th and Porter에 당도했습니다. 12th and Porter는 겉보기에는 70년대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이나 연포해수욕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철거직전의 건물에 싸이키를 달아놓고 여름한때만 영업하는 간이 디스코 클럽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정말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 ^^ 안쪽의 분위기도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만 홀과 분리되어있는 라이브 전용 별관 (?)이 따로 있더군요. 예바동 감상회가 자주열렸었던 홍대앞의 Freebird 정도의 크기라고나 할까.. 그리고 한껸에는 이층 관객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글쎄 조금 지저분하고 불안해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좁고 (?) 부담없는 곳에서 가깝게 그들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습니다.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이층 테라스 한쪽 구석에 찡겨서 기다리고 있다보니 관객들의 괴성과 함께 무대에 불이 켜졌습니다.

"끼야아아아아~~악 !!!"

Adrian Belew가 이제는 완전히 자리잡은 대머리를 자랑스럽게 번쩍거리면서 제일먼저 무대위로 등장했습니다. 검은색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키가 181 센치에 몸무게가 75킬로정도 되는 비교적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80년대의 반대머리 (?)와 삐쩍 마른 모습에 비해 훨씬 인상이 좋아진 모습입니다. 역시 젊은 대머리들은 발모제다 이식수술이다 고민하지 말고 시간이 가서 늙기를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것 같습니다. ^^ 뒤를 이어 무대위로는 Trey Gunn이 왼쪽에 자리잡고 Pat Mastelotto가 드럼키트 뒤에 앉았습니다. Trey Gunn은 183 센치에 72 킬로그램정도 되어보였고 Pat Mastelotto는 175 센치에 87 킬로그램정도 되어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Fripp이 등장했습니다. 168센치정도의 자그마한 키에 반백의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예의 트레이드마크격인 안경을쓰고 곱상한 (?) 표정을 지으며 무대 오른쪽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Rock그룹의 기타리스트중 이렇게 무대에 앉아서 연주하는 사람은 아마 Robert Fripp과 Genesis시절의 Steve Hackett정도가 아닐까요 ? 눈을 씻고 다시한번 보았습니다만 역시 Fripp이 맞았습니다. T.T 흐 Fripp을 바로 몇미터 앞에서 보다니요.. T.T 예전에는 앉아서 연주하는게 뭔가 있어보이려고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바로 무대앞에서 보니.. 뭐 Fripp의 조용한 성격과도 부합되고.. 또 작은 키를 감출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Fripp의 기타와 Trey의 10현 베이스 (터치베이스)는 각각 기타신세사이저와 베이스(?)신세사이저에 연결되어있었습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있어보이는.. 마치 80년대 마악 등장해서 유행하던 오디오의 3단, 4단 컴퍼넌트 시스템을 연상시키는 중후한 모습으로 많은 LED 불을 번쩍거리면서 연주자 뒤에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악"

Fripp을 본 여러 앞줄에 서있던 다이하드 팬들이 자지러지기 시작하면서 첫곡이 연주되었습니다. Double Duo 형태로 처음 발매된 작년 앨범 The ConstruKtion of Light의 수록곡 Lark's tongues in Aspic Part IV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Fripp의 기타 플레이를 표현할때 '현학적인 횡설수설' '정신질환적인.. 어쩌구' '신경질적인 피킹..어쩌구; 등의 상투어구를 주로 써왔는데 .. 직접 눈앞에서 보고 듣는 Fripp의 플레이는 그동안의 어떤 표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스럽고 얌전한 자세.. 하지만 무척이나 헤비한 연주.. 도저히 그 복덕방 할아버지같은 표정에서는 나올수 없을듯한 난해한 피킹..' 뭐 Fripp의 외모와 표정과 분위기와 그의 연주와 그의 손놀림과 또 그의 뒷편에 탑처럼 쌓인 기타 신세사이저의 황홀찬란한 불빛의 조화는 그 자체만으로 20년동안 기다린 팬을 기절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아..."
"왜그래 ?"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겨지지를 않아.."

Adrian과 Fripp은 번갈아가면서 Fripp은 얌전하게 Adrian은 프론트맨 답게 방방뜨면서 기타를 연주했고 Trey는 10현 터치베이스를 마치 맹인 안마사가 마사지를 하듯이.. 양손으로 주물러대었고 Pat 은 육중한 덩치답게 무척이나 파워풀하게 때로는 어쿠스틱 드럼을 때로는 일렉트릭 드럼을 쳐주었습니다.

잠시 1층에서 발악하는 팬들의 모습을 스캔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니 대부분 대머리였습니다. 연주하는 Adrian도 대머리.. 팬들도 대머리.. 평균연령이 45세정도 될것 같더군요.

30대의 친구들, 20대의 애들도 간혹 보였습니다만 역시 머저리티는 중년성 비만에 남성형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40대 중반의 백인 아저씨들이었습니다.

Adrian의 보컬이 인상적인 두번째곡 Into the Frying Pan 이 끝나고 Adrian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안녕 "
"우와아아아아 "
"끼약 !!!!!"

나도 질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 어제보다 많이 온것 같은데.. 내일도 모레도 또 올거지 ?"
"우와아아아아 "
"이번곡은 요즘 작업하는 새 곡이야. Heavy ConstruKction이라구."

여전히 종횡무진하는 Fripp의 아르페지오와 사운드스케입을 배경으로 Adrian Belew의 블루스 기타가 무척이나 odd한 조화를 이루는 곡이었습니다. 블루스 스케일로 초킹과 와우와우.. 끈적끈적한 기타연주를 계속 보여주던 Adrian은 마치 Jimi Hendrix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 (아마도 내가 ^^) 소리질렀습니다.

"Hendrix !!"

그러자 그는 기타를 얼굴로 가져오더니 이빨로 연주하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으아아아악 !!!!"

지난번 앨범 타이틀도 The construKction of light .그리고 신곡 타이틀도 Heavy ConstruKction.. 최근에 와서 컨스트럭션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들답게.. 무척이나 구조적으로 안정된 21세기의 크림슨 클래식이 될수 있을듯한 곡이었습니다.

이어서 앨범에서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디스토션을 건 에이드리언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지난번 앨범의 첫 트랙 Prozakc Blues가 연주되고 그 뒤를 이어 역시 같은 앨범의 수록곡인 FraKctured가 연달아 플레이되었습니다.

확실히 크림슨의 곡은 right mood, right volume, right condition에서 들어야 한다는것을 느꼈습니다. 일하다가 짬짬히 헤드폰 꼽고 듣는 Prozakc Blues나 차안에서 마누라 눈치보면서 듣는 FraKctured와는 그 느낌의 차원이 다르게 감동이 좁은 베뉴를 공명시키면서 다가왔습니다. FraKctured의 그 황홀한 스케일은 엄청난 볼륨과 함께 올개스믹 익스플로젼과 같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으으으...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신기하게도 크림슨은 이번 공연시에 컨서트홀내 금연을 부탁했고.. 미리미리 온라인 티켓 발매 사이트의 안내말씀이나 공연전 로디 아저씨의 부탁말씀 등등에 힘입어 정말 눈씻고 찾아보아도 담배 피우는 아저씨아줌마를 한명도 볼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런 침침한 마약굴같은 바에서 하는 공연에 금연이라는건 정말 어울리지 않았지만 크림슨의 부탁을 잊지않고 지키는 팬들이 기특했습니다. Ozric Tentacles의 공연때처럼 한손에는 담배 한손에는 맥주를 들고 양발로는 춤을 춰가면서 공연을 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맥주만으로 참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팬들이 슬슬 흥분하는것을 눈치챘는지 밴드는 히트곡 (??)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년전... 크림슨의 정말 반가왔던 컴백앨범 Thrak의 히트싱글 ^^; Dinosaur였습니다. 오랜만의 dancable한 튠이 나오니 앞자리의 노인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씨구 절씨구..."

환갑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이 에이드리언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룡이야 ~~ 근데 언놈이 내 뼈를 파내고 있네 ~~"

언뜻 들으면 조금 바보같은 가사지만 나름대로 신나는 댄스타임이었습니다. 코러스 부분의 하이노트 역시 부담없이 처리해내는 에이드리언의 보컬은 그가 역시 별로 늙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는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프립도 그의 목소리가 잘 올라가는것이 기특했는지 흐뭇하게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의 공연에서야.. 프립이 웃는일은 거의 드물다는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언 에이드리언과도 이십년지기가 되었죠 ? 그 누구보다도 오랜세월동안 프립곁을 지켜온 에이드리언입니다.

이어서 역시 Thrak앨범의 슬로우템포의 곡인 One Time이 연주되었습니다. 장내가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였습니다. 넥의 두께가 20cm는 될듯한 10현 터치 베이스를 주무르는 Trey에게 잠시 조명이 집중되었습니다. 맥주를 한병 더 사러가려다가 Trey의 너무나 평범한 외모 (대학가에 흔해빠진 공대 대학원생같은 분위기)와 그것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왼손과 오른손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프렛 위에서의 움직임을 보느라 잠시 숨을 죽였습니다.

역시 Thrak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Vrooom and Coda가 연주되었습니다. 이번 리허설 공연의 주된 repertoire들은 주로 95년 컴백앨범 Thrak과 작년 최신앨범 ConstruKction of Light 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Pink Floyd 시절의 repertoire에 아직도 많이 의존하고 있는 Roger Waters나 아직도 앵콜곡은 All good people아니면 Roundabout인 Yes에 비하면 Crimson은 과거회상적 밴드라기보다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밴드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글쎄요 ? 에이드리언이 Frame by Frame을 부르다가 다음곡으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그리고 그 다음곡으로 Ladies of the Road Trey Gunn과의 듀엣 보컬로 Starless를 앵콜송으로 부르는 공연은 또 어떨까요 ?? ^^-

"에헴.. 고마와 땡큐..."
"우와아아아 ~~!!!!"
"정말 땡큐.. 역시 어제도 왔었던 친구들이 앞에 다 모여있구나.."
"우와아아아  !!!"

도대체 왜 목요일 공연은 안왔을까 후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곡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새노래야. 제목은 Response to Stimuli"

'자극에의 반응' 이라는 무척이나 타이트한 신곡을 선보이고 밴드는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
"어떻게 벌써 들어가지 ? 아직 채 한시간 십분밖에 안됐는데 ??"
"으흠.. 아함..."

계속 발뒷꿈치를 들고 서있느라고 피곤했었나봅니다. 잠시 흥분이 약간 가라앉고 평상시의 정신상태로 돌아올까 말까 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만.. 역시 이 짜고치는 고스톱. ^^ 앵콜 무대를 불러내기 위한 관중들의 환호가 계속되었습니다.

"쿵 쿵 쿵 쿵 쿵 쿵 ...."

허름하게 지어진.. 30년은 되었을듯한 나무로 만들어진 2층 객석을 육중한.. 150 킬로그램은 될듯한 아저씨들이 발로 마구 굴러대자 그 효과는 엄청나게 다가왔습니다.

채 5분도 안되어서 에이드리언부터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무대위로 올라왔습니다.

"헤헤헷.. 쌩큐,, 쌩큐..'
"원 투.. 쓰리... 풔.."

박자를 맞추면서 앵콜무대의 첫곡을 연주하려 했으나 아직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는 Pat과의 싱크로나이제이션에 실패해서 잠시 웃음이 무대위를 교차했습니다. Fripp은 웃지 않는듯 했습니다만 0.1초동안 웃었습니다. ^^

"띠리리링..."

에이드리언이 한껸에 펼쳐놓은 건반 신세사이저와 마치 턴테이블처럼 생긴 전자 퍼커션을 가지고 짤막한 인트로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무대 왼쪽에 자리잡은 Trey가 양손해머링 (?)이 아닌 양손 터칭으로 묵직하게 아르페지오를 시작했습니다. Pat이 땀을 닦던 손으로 한손에는 총채 ? 걸레 같은것을 들고 한손에는 드럼스틱을 들고 같이 합주를 시작했습니다. Fripp도 현란한 피킹으로 아르페지오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에서 트레이가 중간 톤으로 훑어내는 터치베이스의 아르페지오와 오른쪽에서 프립이 덤던한 표정으로 앉아서 구사하는 마치 피아노의 하논 연습곡같은 무한 스케일의 플레이는 오묘한 리조넌스를 이루어 약도없이 청자를 트립을 보냈습니다.

"Pay day sky beauty die black joy"
"Love empty day life die pain passion"
"Joy black day hate beauty die life"
"Joy ache empty day pain die love"
"passion joy black light"

Rhyme이 맞는듯 안맞는듯한 횡설수설로 시작해서 종내에는 꽤나 임프레시브한 철학적 의미의 가사로 21세기적 Peter Sinfield의 작품처럼 생각되던 최신 앨범의 타이틀곡 The ConstruKction of Light가 연주되고 있습니다.

"아 도저히 못참겠다.."
"왜 ?"
"밑으로 내려갈래.."

비록 밴드와 십미터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였으나 온몸을 싸고도는 전율과 흥분과 그 뭐시기는 도저히 한치라도 밴드에 가깝게 가지 않을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럴수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80년대는 큰키에 속했던. 고등학교때도 반에서 1-2등은 아니었지만 3,4 등은 하였던 내 키가 완전히 아저씨들의 장신에 묻혀버려 무대앞에서는 에이드리언의 머리와 팻이 들어올린 팔에 쥐어있는 드럼스틱 왼쪽 멀리 트레이의 상반신.. 정도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들.. 무대앞에서 세시간전부터 죽치고 있었던 40대의 팬아저씨들은 그동안 오랜 공연 죽돌이 생활과 무대앞의 포지션 확보에 있어서는 샤킬오닐과 무텀보만큼 숙련된 플레이어였다는것을요.

일단 6피트 (184 cm ??) 정도의 키가 넘지 않는 아저씨들은 30년동안의 경험에 의해 이러한 스탠딩 컨서트에서는 앞줄 세번째 줄..- 그러니까 보컬리스트의 침이 닫는 거리 - 까지는 진출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는듯 했구요. 그 외의 아저씨들은 오랜 무대위 경쟁에서 살아남은.. 마치 고전 다위니즘의 적자생존-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듯- 처럼 키 큰 아저씨들만 살아남은듯 했습니다. 하지만 기를 쓰고 점프를 해대며 .. 무대뽀 정신으로 아저씨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중간부위까지 잠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럴수가.. 프립의 깁슨기타.. 그위를 돌고있는 그의 손가락의 굳은살까지 보이는 거리입니다. 공연의 감동은 무대와의 거리와의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라는 법칙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P = k*B/(d)^3

(P = Pyonggam index k = overall atmosphere coefficient B = Band impact factor d = distance from stage to seat)

신곡 Level5가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귀로 음악을 듣는게 아니고 몸으로 듣고 눈으로 느끼는 수준이 되어 감동은 고막과 망막을 타고 온몸의 뼈와 살을 울리면서 전신을 통과해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감동의 통로'로 몸이 형질전환되어가고 있었습니다. Level 5는 정말 끝내주는 곡이었습니다. 다음 앨범을 꼭 사야할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곡인 '세계는 내 굴 수프 부엌바닥왁스 박물관'으로 넘어갔습니다. 프립의 강력한 피킹과 또 그것과는 따로 노는듯한 에이드리언의 횡설수설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황홀한 트립을 자아내었습니다.

"겟 � !! 겟 � !! 겟 팻 !! 겟 핏 !! 겟 라이프 !!"

의 코러스 부분에서는 앞자리 모든 아저씨들이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몸으로 슬램댄스를 구사했습니다. 킹 크림슨의 본질은 역시 락큰롤 밴드였습니다.

정말 장엄(?)하면서 동시에 우스우면서 동시에 뿅가면서 동시에 엽기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무대에는 웬 피아노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만 프립의 기타 신세사이저 소리였습니다. 크림슨의 2집앨범 ..Poseidon의 수록곡 Cat Food에서 들을수있었던 중간에 삽입된 엄청 깨는 (?) 피아노 솔로.. 이 곡에서도 프립의 기타신세사이저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습니다. 빤히 기타를 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있는데 너무나 청명한 피아노소리가 울려퍼지자 이게 과잉뿅감으로 인한 환각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험험.. 땡큐.."
"우와아아악 !!!!"
"이번에는 블루스 넘버를 한곡 할께.

크림슨의 블루스야.." 지난번 앨범에도 제목만 블루스였지만 프로작 블루스를 선보였었고.. 이번 공연의 전반부에서 연주된 'Heavy ConstruKction'에서도 잠시 보여주었었던 블루스 스케일 연주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크림슨의 새로운 화두는 블루지한 연주와 디시플린 사운드스케입의 새로운 만남인듯 싶었습니다.

Crimson Blues.. 이곡을 들을수 있었다는것은 정말 이날의 예기치 못했던 수확중의 하나..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숑가는 것이었습니다.

팻의 착착 감기는 퍼커션 비트위로 트레이가 애무하듯이 펼치는 베이스로 무대위를 깔아놓으면.. 오른쪽 한켠에서 프립이 크림소닉 리듬기타로 무대위를 압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 21세기 크림슨의 거듭난 프론트맨 Adrian Belew는 완전히 B.B. King으로 다시태어났습니다.

Discipline meets B.B. King !!1

그렇게밖에 표현할수 없을듯요. 예의 블루스기타리스트들이 그렇듯이 표정으로 손짓으로 온갖 오버를 해대면서 끈적 끈적한 기타연주를 해주는 에이드리언이었고. 또 그런 에이드리언이었지만.. 여전히 그 곡은 크림슨의 곡이었습니다.

went nuts.. 완전히 다들 망가지는 분위기었습니다. 옆에 서있는 키 2미터에 몸무게 이백킬로그램의 뚱보아저씨도 뿅가서 쓰러질듯 보였고 앞에서 연신 어린 여자친구와 키스를 하면서 (대마초를 못피우는 대신 공연 감동을 높이기위한 한 방편인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별로 따라하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입으로는 키스 몸으로는 댄스를 보여주던 커플도 완전히 맛이 간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불난집에 부채질 하듯.. 정면충돌한 자동차에 휘발유 붓듯.. 오바이트하고온 친구에게 폭탄주 먹이듯.. 핵폭탄처럼 다가온 다음곡이 있었습니다. 그자리에 있는 누구던. 그곡을 아는듯 했습니다. 바로 'Red' 에이드리언과 프립의 기타가 웬지 낯익은 프레이즈를 튕겨댈때 온몸의 세포가 이완되면서 닭살이 부루룩 돋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소에 닭살이 잘 돋지 않는 부위인 손바닥과 발바닥, 등짝. 사타구니까지 닭살이 돋는듯 했습니다.

Red가 연주되던 향후 십분여는 도저히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 Red.. 이곡을 몇년만에 듣는건지요. 그것도 가물가물하고 .. 예전에 좋아하던 곡을 잊혀질만할때 다시 들을때의 그 감동이란건 노스탤지어와 그외 온갖 이런저런 요소들이 짬뽕되어 부풀려지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공연장에서라면요.. ^^ Black out, White out.. 그들의 금요일 공연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제 쇼핑시간입니다. ^^ 예전엔 살까 말까 망설이던.. 아니 거의 안사는쪽으로 기울었던 지난번 ConstruKction 투어의 세장짜리 라이브앨범인 Heavy ConstruKction을 어쩔수없이 집어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면 이십이불정도 하지만 여기선 이십오불.. 하지만 우표값..가게에서 사면 택스.. 그런 등등을 생각하니 괜찮은 딜인것 같아서 샀습니다. 팻의 솔로앨범 트레이 건의 프로젝트. 에이드리언의 솔로앨범 Project X의 앨범.. 등등이 보였습니다. (프로젝트 엑스도 정말 사고싶은데.. 나중에 통신판매라도 사야겠어요.. 갖고계신분들 잠깐 짧은평좀 부탁해도 될까요 ? 또 다른 프로젝트 시리즈들도.. 또 지금 11집까지 발매된 크림슨 컬렉터 시리즈 들도요..)

티셔츠도 사고싶어서 망설였지만 동행의 강력한 태클이 들어왔습니다. T.T 25불짜리 크림슨 투어 티셔츠는 노란색과 꺼먼색에 조금 촌스런 큰 폰트로 글씨가 쓰여있어 별로 안땡겼지만 20불짜리 .. 프립의 얼굴이 그려져있는 Fripp Unplugged 라는 티셔츠는 사고싶었습니다. 그 티셔츠를 들고 망설이자 조그마한 아주머니가 어디서 슬그머니 나타났습니다.

"이 테이프도 사세요"
"뭔데요 좋아요 ?"

마치 영어회화 테입같이 생긴 카세트테입이 네개 ? 여섯개 정도 들었을 납작한 박스를 그녀는 내게 드밀었습니다.

"프립과의 인터뷰를 녹음한건데요 정말 좋아요."

Disciplineglobalmusic 레이블의 끝도없는 라이브앨범 발굴. 엄청나게 쏟아지는 프로젝트 시리즈.. 게다가 이제는 프립의 인터뷰 영어회화테입 (?) 까지..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 (?)이 21세기의 크림슨이 생각해낸 생존방식...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정도 Stadium rock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Yes나 Sell out guaranteed인 Floyd와 같이 좀 어울리지는 않지만 초기 프록 팬들에게 같은 영국출신의 공룡 프록 아티스트로 뭉뚱그려지고있는 크림슨은 확실히 그들과는 다른 지지계층을 가지고있는 밴드였습니다. 스펙트럼은 좁지만 좀더 하드코어한 팬들에게 지지받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

크림슨에게는 이제 작년에 Yes나 Roger Waters가 했듯이 야외의 공연에서 만명이 넘는 팬들을 불러내기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쉽지 않는듯 싶습니다. 이제는 Pink Floyd보다는 Ozric Tentacles의 niche에 가까운 밴드가 된것이죠. 글쎄요.. 그 다음날 공연에서 에이드리언의 자랑스럽게 (??) 얘기했듯이 그들은 이번 여름에 Tool과 함께 미국 웨스트 코스트에서 공연을 갖습니다. 바동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그리고 주봉균님이 말씀하셨듯이 Tool의 공연에서의 오프닝밴드로서의 크림슨.. 은 정말 속상하고 섭섭합니다.

하지만 크림슨.. 그것도 80년대 디시플린 크림슨의 인플루언스를 언제나 얘기했던 Tool의 공연이기에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아직도 몇년만의 신보를 빌보드 앨범차트 Top 5에 올려놓는 Tool과의 웨스트코스트 공연이라면 적어도 몇만명 가까이 들어차는 스태디엄급은 아니더라도 실내 하키장이나 농구장정도의 규모의 베뉴에서 공연을 할듯 합니다.

글쎄요. 크림슨의 매니지먼트가 Tool의 오프닝밴드로서의 크림슨을 생각한것은 돈때문일까요 ? 아니면 Tool의 힘을 빌어 많은 관객앞에서 크림슨의 새로운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시도해보기 위한것일까요 ? 아니면 Tool의 러브콜에 심심풀이로 응한것일까요 ? 하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조금은 섭섭합니다.

아뭏든 크림슨의 현재위치는 소수의 다이하드 팬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돈을 미리 내고 크림슨 컬렉터 클럽에 가입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순간 예의 아주머니가 다시 호객행위를 했습니다.

"정말 좋은데.. 안살래 ? 이 티셔츠는 어때 ..내가 입고있는."

그때만 해도 이 아줌마가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다음날 토요일 공연에서 이 아줌마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흐.. 정말 깼어요. ^^

2 # 둘째날[ | ]

6/16 Saturday

크림슨의 공연이 끝난 금요일 밤.... 집에 도착했지만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친구녀석한테 전화했습니다.

"내일 크림슨 공연인데 같이 안갈래 ? 입장료는 이십불야.."
"엉.. 좋지.. 심심하던 찬데.."

사실 토요일 공연은 일찍부터 온라인에서는 매진이라 그렇게 기대는 안했었지만 현장 상황을 보고나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번 다시 가보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12th and Porter에 전화를 해보니 다행히 표가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소문에 따르면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표를 200장 선주문했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바람에 표가 많이 남았다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아뭏든 다행히 손에 도장을 찍고 들어갈 수 있었구요.. 금요일 서서보는게 조금 힘들었던지라.. 오늘은 좀 일찍 출발해서 일곱시부터 앞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맥주를 마셔댔습니다.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다 어제 본 녀석들이었습니다. 전날 브로드웨이에서 나랑 하마트면 접촉사고를 낼뻔했던 긴 곱슬머리 금발녀석이 나를 보더니 싱겁게 웃더군요.

"또 왔어 ?"
"당근이쥐.."

맥주만 마시면서 그냥 기다리는게 좀 지겹다 싶을때 갑자기 웬 아줌마가 무대위로 올라왔습니다. 어제 봤던 바로 그 아줌마.. 나한테 로버트 프립 인터뷰 영어회화 테입세트를 사라고 꼬시던 그 (아줌마+할머니)/2 였습니다... !! 나만 빼고는 다들 그 아줌마를 아는듯 여기저기서 환성들을 질러댔습니다.

"끼야하하하하하 !!!"
"안녕하셔요 ? 안녕하쇼여 ?"
"끼야아아아아악 !!!"
"안녕하셔요 ? 여러분들이 심심할것 같아서 올라왔어요.."
"끼야아아아아악 !!!"

키가 155 센치미터가 갓 넘을듯한 아줌마 무대에 오르자 170은 되는듯한 당당한 언니의 표정과 몸집으로.. 그 분위기만으로 변신하였습니다.

"나는 로버트(프립)의 시스터에요 "
"오잉 ???"

나에겐 무척 놀라움이었습니다. 프립이 동생(누나?)까지 델구다니면서 밥벌이를 해야 될정도로

"여러분 기다리는동안 심심할까봐 올라왔어요...내 얘기를 좀 해드리죠.."

그녀는 한때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꽤나 유명한 프로페셔널 스피커 (대변인 ? 정도 되나요)로 활동하는 Patricia Fripp이라는 그쪽 방면에서는 명사 ?? 정도 되는 아줌마였습니다. (참조 http://www.fripp.com)

그녀는 정말 프로답게 똑똑한 발음과 정확한 액센트와 정곡을 콕콕 찌르는 제스쳐로 그녀와 프립의 어린시절.. 그리고 그녀가 헤어드레서에서 지금 프로페셔널 스피커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는 없었지만 약 십오분간에 걸쳐서 풀어내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감동잘하는 약 절반정도의 남부촌놈들과 비행기타고온 다른 미국.. 유럽 녀석들은 무척이나 감동받은 표정으로 박수를 연달아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뭐 질문하실거 없어요 ?"
"저요 ! 저여 ! 저여 !!"
"거기 노란색 킹크림슨 셔츠 입으신분 "
"아 땡큐... 프립아주머니가 최고로 좋아하는 크림슨 앨범은 뭐예여 ?"
"어.. 사실 제가 젤 좋아하든건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이었어요... 그리고 80년대 앨범인 디시플린도 좋아하고.. 하지만 섭섭하게도 요즘 로버트는 내가 좋아하는 데뷔앨범 곡은 연주하질 않네요.. 한번 꼬셔볼까요 ?"
"어 그래여.. 아하하하하.."
"다른 분 ?"
"저여 !!"
"예 거기 모자 쓰고 키 크신 분.."
"예 미스터 로버트 프립이 혹시 한번이라도 빵에 간 적이 있나요 ?"

- 썰렁 썰렁 (뭐 저런걸 다 물어보고 그래 음냐...) -

"...흠 "
"제가 알기론 아직 한번도 없어요.. 보시다시피 늘 조용해서 그렇게 말썽 피우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사실 로버트 프립은 어제 보았듯이 워낙 얌전하게 생기고 조용해서 그다지 젊었을때도 시끄러운 파티..같은것이랑은 거리가 멀었을것 같은 위인이었습니다.

얼마전에 여자를 추행해서 Yes에서 짤린 Igor나 예전 Yes의 Rick Wakeman, 아니면 ELP의 Keith Emerson 정도가 다른 락커들과 비슷하게 공연 끝나면 소란스러운 여성팬들과 썸씽을 벌이지 않았을까 정도의 가능성이 추정되는것 같구요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웬지 정력이 없어보이는 Steve Howe는 그냥 공연 끝나도 샐러드 부페에 가서 샐러드나 먹고 명상좀 하다가 일찍 호텔방으로 가서 잘 것 같구요.. Carl Palmer나 Alan White같은 드러머들은 그냥 공연 끝나도 사우나에서 땀좀 빼다가 fitness center에서 헬스나 좀 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것 같은 타입이고 Robert Fripp은 글쎄요.. 70년대 중반..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는 John Wetten이나 Boz Burrell (이 이름은 한글로 쓰기가 정말 난감하네요 ^^) 같은 프론트맨들이 좀 같이 놀자고 꼬시지 않았을까요 ?

197x 년 x 월 x 일 11시 45분 한 클럽..

보즈부렐: 아이 젠장 오늘 공연 열라 힘들었어 투덜투덜 ..
프립: 뭐 그래도 잘 하시던데..
보즈부렐: 레이디스 업더 로드 불르려면 얼마나 소리질러야 하는지 알기나 해 ? 밥 ?
프립: 음 힘들면 그냥 낮게 불러....여..아니면 그노래 빼고 그냥 내가 즉흥 연주곡이나 집어넣을까 ?
보즈부렐: 아 몰라 괜찮아 신경끄고 ..그 뭐냐 그렉레이크 녀석이 부르던 퉤니퍼스트쎈츄리스퀴조이드맨.. 그거..
프립: 어..거.. 그게 뭐 어때서...여 ?
보즈부렐: 아 이제 그거 지겨워 나 안할래.. 빼줘..
프립: 그럴려.... 여  ?
보즈부렐: 응
프립: 해야 할것 같은디...여
보즈부렐: 꼭 해야혀 ?
프립: 엉 해야 할거같으... 여
보즈부렐: 그래.. 까라면 까야지..건 그렇고.. 나 요 앞에서 마악 넘어가던 아줌마들이랑 술마시러 갈려고 하는데.. 로버트 니는 안갈래 ?
프립: 아녀 나는... 그냥 호텔에서 티비나 볼려..여
보즈부렐: 아이 씽...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너없슴 잼 없자나..
프립: 아이 ....
보즈부렐 : 그러지말고.. 같이 가자 ?
프립: 그럴까 ??

글쎄요 겉으로는 얌전한척하면서 주변에 누군가 들쑤시면서 꼬시는 사람이 있으면 마지못해하는척 하면서 은근히 신나서 따라가서 노는 프립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을까도 싶네요. ^^

파트리샤 프립 아줌마는 뒤이어 티셔츠 선전.. 온갖 씨디 선전 .. 그리고 프립과의 컨버세이션을 담은 영어회화 테입 (어제는 네대여섯개 테입이 들어가는건줄 알았더니 무려 아홉장짜리더군요.. ^^;) 을 다시한번 선전하더니 무대를 내려가서 자신의 지정석 (무대 맨 뒷자리 씨디 파는 부스)로 자리잡았습니다. 아마도 본론은 티셔츠랑 씨디 선전인것 같더군요. ^^;

잠시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열화와 같은 함성과 더불어 밴드가 다시 무대위에 섰습니다. 어제보고 또봐도 참 반가왔습니다. ^^;

"우와아아아아아 !!!!!!!!"

어제는 나오자마자 에이드리언이 온갖 교태를 부리며 기타연주를 시작하며 강력한 곡인 Lark's tongue's in Aspic Part IV로 시작했지만 오늘은 무척 조용했습니다.

"왜 가만히 앉아만 있지 ?"
"조용해봐 연주 시작했잖아.."

프립과 팻은 각각 신세사이저 스위치들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쭈구리고 앉아 이상한 소리들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슝슝슝슝슝슝슝슝슝슝슝슝"

이 씻어내리는듯한 신세사이저 사운드는 점점 페이드인 되면서 장내를 온통 휘감았습니다.

"쑹쑹쑹쑹쑹쑹쑹쑹쑹쑹쑹쑹 "
"으아아아... 뼝뼝뼝뼝뼝 간다 !!!!"

어제의 오프닝이 락밴드로서의 크림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오늘의 오프닝은 앰비언트 사운드스케입 크리에이터로서의 Dr. Fripp et al.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오프닝이었습니다.

글쎄요 이 크레센도로 시작한 첫곡은 어떻게 이런 어찌보면 단순한 전자음향이 청자를 흥분시킬 수 있는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로버트 프립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지루할 수 도 있는 전자음향으로 어떻게 관중을 트립보낼수 있는가를..

들릴까 말까한 작은 볼륨으로 시작해서 마치 라벨의 볼레로처럼 점점 커져서 종내는 인간 청력 한계의 데시벨까지 몰고가는 이 엄청난 파괴력은 라이브로서만 느낄 수 있는 프립퍼트로닉스의 뼝감 inducing 능력의 진수를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으아아아아아.. 이렇게 뿅갈수가...."

아마도 이 첫곡을 씨디를 통해서 디스크맨 나부랑이로 마누라 눈치보면서 듣거나 출근하면서 차 안에서 옆 차선 트럭 신경쓰면서 들으면 이런 감동의 천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는게 당연한 듯 했습니다. 역시 라이브만이 가져올 수 있는 감동이었습니다.

다음곡들은 역시 최근 앨범의 곡인 Into the flying Pan과 Heavy ConstruKction이 어제와는 또 다른 텐션으로 연주되었습니다. 전자음악으로 시작한 첫곡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락넘버를 들으니.. 또한번 아저씨들이 자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저기 벌렁벌렁 머리 벗겨진 아저씨들이 슬램댄스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쾌한 장면입니다.

어제 정규세트의 마지막곡으로 연주했던 Response to Stimuli가 시작되었습니다.

"뒤에 봐봐..."
"엉 ?"

녀석의 손끝을 따라 아랫층 스테이지를 내려다보니.. 아까 열심히 티셔츠 선전을 하던 프립의 누이 Patricia Fripp이 작은 키로 의자위에 올라가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정말 장한 남매입니다.

오십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동생은 열심히 무대에서 기타를 치고 누나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도 궁금해서 직접 물어봤어요. 동생인지 누난지..) 는 열심히 의자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장인정신이 빛나는 장한 집안의 젊은 오빠 젊은 누이였습니다.

다음 곡은 FraKctured가 연주되었습니다.

"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약 !!!"

앞에서 문신한 등짝을 자랑하며 연거퍼 칵테일만 시켜 마시던 커다란 등치의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FraKctured가 좋아서 그랬다기 보다는 술이 취해서 그런것 같았습니다. (간혹 이런 아저씨 처럼.. 그냥 표가 있어서 .. 근처에서 공연을 하니까.. 와봤다는 둥의 시큰둥한 아저씨들이 몇몇 섞여있었습니다. 그런 아저씨들은 척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아저씨 녀석들에게는 솔직히 이 자리가 아까왔습니다. 킹크림슨 빽판에 울고웃던 내 고등학교때 친구들.. 아니면 예바동의 동료들이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구 들었습니다.. 같이 공연을 보러다니던 동창녀석들과는.. 이 공연이 끝난 후 밤새 소주 한박스쯤 비우면서 공연 얘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도 연주했던 히트싱글 '다이노사어'가 연주되었습니다. 어제처럼 댄스타임으로 자연스럽게 무대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

'다이노사어'가 끝나고 잠시 1초정도의 정적이 있었습니다. 30초는 되는듯한 긴 정적이었지만 잠시 스쳐나가는 에이드리언의 희미한 웃음에서 뭔가 친숙한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것을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쎌라 훈 진쥣 !!"

정말 오랜만에 듣는 Discipline앨범중의 또하나의 애청곡입니다.

"쎌라 훈 진쥣 쎌라 훈 진쥣 쎌라 훈 진쥣 쎌라 훈 진쥣 !!! "

사실은 Beat와 Three of a perfect pair의 Neal and Jack and Me 나 Three of.. 의 타이틀 곡처럼 신나는 (?)곡을 내심 기대하고 있던 때에.. Thela Hun Ginjeet은 아주 즐거운 쇼크였습니다.

다들 맛이가면서 망가지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이어서 어제도 연주되었던 Crimson Blues가 다시한번 에이드리언 meets BB King의 분위기를 내어주었고 The World's My Oyster Soup Kitchen Floor Wax Museum ConstruKction of Light, Larks tongues Part IV 등이 줄줄이 연주되었습니다. 무대위로는 트레이 건이 디자인 했다던가 (잊어버려서 확실하지 않네요 ^^;)하는 디지타이즈된 문양들이 특수조명으로 무척 모던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광란하는 아저씨들의 오버액션을 도왔습니다.

갑자기 불이 꺼졌습니다. 정신없이 공연에 맛이가다 보니 정규리스트가 끝났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

당연히 있을것이고 있어야만 하는 Encore의 함성이 가뜩이나 다 무너져가는듯한 가게를 다 부숴버릴듯이 울려퍼졌습니다.

에이드리언을 제외한 나머지 세명이 무대위로 올라왔습니다. 프립의 사운드스케입이 Deception of the Thrush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도저히 이날 들었던 Deception..의 감동을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씨디로 들었을때는 그렇게 인상적인 곡이 아니었지만.. 이날 연주된 이 버젼은.. 바로 Trey Gunn을 위한.. Trey에 의한.. Trey의 곡이었습니다. 프립이 주욱 백그라운드로 깔아주는 넘실거리는 사운드스케입을 배경으로 그가 정말 연주한다기보다는 주물럭 거리는... 아니 애무하는 스틱 신세사이저의 환상적인 소리는 그야말로 턱을 다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와아아아아 !!!!!"

꺼벙한게 공대 대학원생같은 외모였지만 그는 정말 쿨한 사나이였습니다.

이윽고 백스테이지에서 쉬던 에이드리언이 무대위로 올라왔습니다. 관중들의 박수는 분명 트레이를 향한 것인데 에이드리언이 마치 자기한테 치는 박수인양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

섹스슬립잇드링크드림이 연주되고 David Bowie의 원곡인.. 로버트 프립이 원곡에서 기타를 세션으로 쳐준 인연으로 요즈음 자주 앵콜곡으로 쓰이는 Heroes가 마지막 앵콜곡으로 연주되었습니다.

"We can be heroes....."

몸매만 데이빗 보위와 비슷한 에이드리언이 나름대로 괜찮은 버젼으로 불러주었습니다. 크림소닉 댄스파티를 마감하기 위한 곡으로는 적절한듯 싶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분위기도 그렇고.. 토요일이고.. 오늘은 웬지 한번정도 더 앵콜을 받아줄것 같은 기분에 다들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분명 사전 계획엔 없었었을 두번째 앵콜 연주를 하러 무대위로 밴드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Frame by Frame이 듣고 싶은데.... 거기서 바로 indiscipline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하지만 프립이 신세사이저 버튼을 만지면서 연주된곡은 Elephant Talk였습니다. 과연 예바동선정 최고의 80년대 프로그레시브 앨범이었던 Discipline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Thela Hun Ginjeet도 그랬지만 Elephant Talk의 관중 흡인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욱 !!!"

코끼리 소리가 신세사이저에서 뿜어져 나오자 여기저기 실신할듯 아저씨들이 광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톡 톡 톡 톡 엘레판 톡 !!!!"
"우와아아아아아아악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욱 !!!"

이렇게 이렇게 세째날 (제가 본거로는 두째날)의 12th and Porter에서의 크림슨 공연이 끝났습니다.

Deception of Thrush에 감명받은 친구는 Trey Gunn Band의 Joy of Molybdenum을 샀고 저는 어제 눈치보면서 못샀던 로버트 프립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꺼벙한 티셔츠를 한장 샀습니다.

할머니 .. 아니 젊은 누나 Patricia에게 물어봤습니다.

"여기 싸인좀 해줘요.."
"그러지 뭐..."

King Crimson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Patricia Fripp의 대변인 사무소 광고지에 그녀는 동생을 대신해서 커다랗게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참 궁금한게 있는데요.."
"뭔데 "
"니가 누나에요 동생이에요 ? "
"아 내가 누나.. 한살 많아 로버트보다.."

무척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하기 나름인것 같습니다. 어제는 쭈구리한 표정으로 로버트 프립 영어회화 테입 선전하는 모습만 보아서 할머니라고 생각했으나

오늘은 무대뒤에서 방방뛰면서 춤추는 모습.. 프로페셔널 Speaker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 오프닝 컨서트 (?) 모습 등등으로 그녀는 아예 30대의 젊은 누이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이틀의 공연이 끝났습니다. 다음날도 가고 싶었지만 .. 별로 안중요한듯 하면서도 중요한 약속이 있는게 무척 아쉬웠습니다. 다음번에는 사흘을 하던 나흘을 하던 매일 맨 앞에가서 공연을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능숙한 음주운전으로 집에 왔습니다.

끝.


KingCri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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