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as Priest

1 # 데뷔 이전[ | ]

JUDAS PRIEST 이야기 (1) 10/05 13:15 180 line

  1. Heavy Metal 의 제왕 Judas Priest 에 대해 그들의 인터뷰와
  2. 앨범을 중심으로 결성초기부터 최근의 동향까지 올립니다.
  3. Judas 의 팬들 여러분 많이 읽어 주시기를...

제 1 장 공장지대 출신의 다섯 청년들..

- 영국 중부지방에서 결성

Rob Halford는 Judas Priest의 음악이 "치료제로서의 Heavy Metal의 역할을 충실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의 긴장 그리고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데서 오는 생활인들의 갖가지 욕구불만 등을 귀가 멀듯한 사운드에 정열적인 무대모습 을 통해 완전히 방출시키는 것이죠."
사실 Judas Priest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비난과 호평이 엇갈린 다. 비난을 퍼붓는 측은 이들의 음악에 대해 "록의 모습이 되어 서는 안될 그 모든 것" 또는 "듣는 사람에게 수동적인 태도와 감 각마비를 부추키는 퇴보적인 오락 형태" 등으로 꼬집고 있다.
이에 대해 보컬리스트 핼포드는 강력하게 반대의 주장을 편다.
"이런 음악은 직접 마음에 느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평할 수가 없다. Heavy Metal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인가를 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속으로 이해한 다는 행위는 필요하지 않다."
Judas Priest의 출신지는 영국 중부 지방 즉 Midlands 이다. 이 곳은 공장들만 빼곡히 들어찬 다소 황량한 지역인데 의외로 영국 의 대표적인 록 연주인들을 다수 배출해내 이름이 높다. 이 지역 출신 연주인들로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들은 Moody Blues, Black Sabbath, Steve Winwood, Spencer Davis, ELO, Led Zeppelin 의 Robert Plant 와 John Bonham 등 쟁쟁하다. 왜 유독 이곳에서 많 은 록 그룹들이 배출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해 핼포드의 해석이 명쾌하다. "아마 노동자들이 사는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마찬가지 일 거예요. 그런 환경속에서는 탈출하고 싶은 욕망, 상황을 초월 하고 싶은 욕망이 대단히 크게 마련이죠."

1970년 9월 18일, K.K. Downing은 지미 헨드릭스가 런던의 아 파트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다우닝은 자신의 방 벽에 온통 지미 헨드릭스의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로 헨드릭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난 그만한 인물이 앞으로 또 나올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아 요."
영국 중부의 매우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다우닝은 험 난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15살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음악 에서 도피처를 찾았고 그후로 쭉 록에 전력을 기울이는 생활을 해왔다.
Cream, Jimmy Hendrix 등의 레코드를 열심히 들었던 그는 처음 에는 사촌형제와 함께 재즈취향의 그룹을 결성했다. 그러다가 만 난 것이 학교 동창인 Ian Hill 이었다. Ian Hill은 쥬다스 프리 스트의 창단원이기는 하지만 사실 드럼 주자 Dave Holland 와 함 께 현재 그룹에서 가장 주목을 못받는 존재이다. 텁텁한 아저씨 같은 평범한 인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Rob Halford 와 두 기타리 스트의 개성이 너무 강한 탓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베 이스 리듬만은 든든하고 믿을만 하다.
"이름이 난다거나 하는 일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요. 무대에 올라서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은 없 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스포트 라이트를 독차지 한다 해도 내겐 상관없어요."
그가 10대 시절 처음 심취했던 것은 John Mayall, Cream 등이며 그는 Jack Bruce 를 자신에게 처음으로 진지한 영향을 미친 인물 로 꼽고 있다. 더블 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음악의 전반 적인 기초를 닦을수 있었던 그는 학교에서 그룹을 결성해 파티장 등에서 연주를 해주고 다니다가 70년 말경 다우닝과 만나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고 71년엔 그룹을 결성했다. 그들이 처음 결성한 그룹은 프로그레시브한 블루스를 연주하는 3인조 그룹이었다.
그러던중 이 그룹에 Alan Atkins 라느 보컬리스트가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가 예전에 있던 그룹 이름이 바로 Judas Priest 였 다. Atkins 는 다우닝의 그룹에 합류한 후 자신의 예전 그룹명인 Judas Priest 를 적극 추천했고 이에 다우닝 측도 별로 반대하지 않아 이들은 Judas Priest 로 새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들이 처음 공연을 가진 것은 71년 3월인데 관객은 6,70명 밖 에 안됐지만 첫 공연치고는 반응이 좋았었다. 이들은 활동초부터 자신들의 연주곡은 자작하는 것으로 방침을 굳혔다.
"우리는 꽤 야심만만해서 기본적인 12소절 곡은 탈피하려고 했 죠. 프로그레시브 록에 열중해 있었으니까요. 어쩌다 12소절 형 식에 가까운 곡을 만들 경우에는 특이한 변화를 주어서 극적인 곡으로 꾸며보려고 했죠." 다우닝의 말이다.
그후 이들은 리버풀, 맨체스터, 런던 등지로 진출했으나 돈은 한푼도 못벌었고 이로 인해 Alna Atkins 와 새로 들어왔던 드러 머가 그룹을 탈퇴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이들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기 시작했 다. Rob Halford 가 가입한 것이다. 그는 다우닝이 사귀던 걸 프 렌드의 친구인 Sue Halford 의 오빠로 Sue 의 소개로 Judas Priest 에 가입하게 되었다. (Sue 는 나중에 Ian Hill 과 결혼했 다.) 그를 보컬리스트로 가입시키자는 데에는 Priest 의 다른 구성원 들간에 곧 의견이 일치했다. 후에 다우닝이 밝힌바에 따르면 Halford 는 자신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 러나오던 Doris Day 의 곡을 처음 듣고 곧 거기에 하머니를 맟추 어 노래했는데 자신은 그것을 보고 그를 가입시키기로 마음 먹었 다고ㅓ 한다. 또 Halford 는 Mouth 올갠을 연주할줄 알았는데 이 것은 당시 록 그룹간에 유행하던 악기였다.

<-- 계속 됩니다. --> - K/E/E/L -

JUDAS PRIEST 이야기 (2) 10/07 10:55 130 line

- 극장 조명계 출신의 Rob Halford

Rob Halford 는 중부지방의 Sutton Coldfield 라는 곳에서 태어 났다. 철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의 말대로 매우 전 형적인 노동자 계층을 배경으로 태어난 셈이다. 그가 노래에 재 능이 있다는 사실은 여덟살때 그가 다니던 지방학교의 합창단에 서 노래하면서 드러났다. 하지만 그가 음악에 대해 좀더 적극적 인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10 대 시절 부터이다.
"내가 처음 가입한 밴드는 열다섯살때 학교에서 결성한 Thark 라는 그룹이었어요. 당시 우리가 주로 따라불렀던 곡들은 Yardbirds, Free, Jimi Hendrix, Rolling Stones 등이었죠. 하지 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진짜로 음악에 진지하게 열을 내게 된것은 10대 후반에 와서예요. 덕분에 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앞 으로 무엇을 할까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죠. 내가 록을 직업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가 처음 직업을 얻은 것은 Grand 극장이었는데 여기서 조명 디자이너의 견습원으로 일하면서 무대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 생 겼지요. 하지만 연극계에서 빛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 었고 좀더 빠르게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찾다보니 록그룹에 가입하는 길밖에 없더군요."
그후 Hiroshima 등의 그룹을 거쳐 프리스트에 가입한 그는 프리 스트에 비어있던 드럼 주자 자리에 그룹 히로시마에서 같이 활동 했던 John Hinch 를 권해 가입시켰다. Rob 의 가입후 프리스트는 영국 이곳 저곳에서 순회공연을 벌이는 한편 작곡도 부지런히 해 댔다. 앨범 계약의 가능성에 대비해서였다.
"우리는 모두 일렉트릭 블루스를 음악배경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죠. 다우닝은 여전히 지미 헨드릭스에 심취해 있으면서도 한편으 로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지요. 나도 좀더 프로의 수준에서 음악에 몰두하게 되었고요. 우리는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가능한한 많은 자작곡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 죠." 핼포드의 말이다.
74년초 프리스트는 독일과 홀랜드 등으로 첫 외국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었다. 트럭 꽁무니에서 자면서 다니고 또 눈을 녹여 이 빨을 닦는 등 숱한 고생을 했지만 절약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 다. 그 보람으로 이들은 영국의 한 작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당시는 레코드 계약이 어려웠어요. 레코드사들이 신진 헤비록 팀들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죠. 몇년전에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블랙 새버스 등이 계약을 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지 요. 레코드사 측에서는 한 회사에 하드록 팀은 두 세개 정도 있 으면 된다고 여겼으니까요. 우리를 입적시킨 그 레코드사도 우리 음악이 썩 마음에 들어서 그런것은 아니고 우리가 마르키 클럽에 서 연주했을 때 청중들에게서 열렬한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흥 미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들이 첫 앨범을 녹음하러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레 코드사 측에서 기타리스트 한명을 추가할 것을 주장, Glenn Tipton 이 가입하게 되었다. 레코드사 측에서 이렇게 주장한 것 은 이들이 4인조라는 진부한 록 밴드 형태에서 탈피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팁튼은 당시 Flying Hat Band 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룹의 전망이 시원찮았던 참에 프리스트로 옮기게 된 셈이었다.
팁튼과 다우닝의 2인조 기타연주는 현재 프리스트의 사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팁튼의 말에 의하면 자신들이 아마도 두명의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최초의 헤비메틀 그룹에 속 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처음에 다우닝은 또 한명의 구성원을 추가 시킨다는 생각 에 착찹했었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돈벌이가 안되고 있는데 먹는 입 하나를 더 불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스트에 가 입한 후 팁튼은 연주면에서 다우닝과 더할 나위 없는 짝이 되었 고 또 이 그룹의 작곡 능력이 보충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1. 드디어 첫 앨범 녹음에 들어가게 된 프리스트..
  2. 그들앞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3. 다음회를 기대해 주세요...

- K/E/E/L -

2 # Rocka Rolla[ | ]

JUDAS PRIEST 이야기 (3) 10/11 12:03 108 line

- 녹음기법 때문에 실패한 데뷔 앨범

첫 앨범 'Rocka Rolla'는 3주만에 녹음되었다. 핼포드의 말에 따르면 요즘같이 연주인들이 스튜디오의 녹음기법에 대해 잘아는 상황이면 훨씬 더 잘 만들었을 앨범이라고 한다. 게다가 당시 이 앨범의 프로듀서 Roger Bain은 '헤비메틀 프로듀서' 라고 일컬어 질 만큼 주장이 센 인물이었기 때문에 프리스트같은 신출나기들 로서는 사운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감히 의견을 내세우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프리스트는 74년 9월에 발매된 앨범 'Rocka Rolla' 에 아주 실망하고 말았다.
"사운드가 그야말로 형편없었어요." 이언 힐의 말이다.
"우리가 쓴 곡들은 정말 괜찮았어요. 문제는 녹음기법 때문이었 죠. 우리가 연주할 때는 분명히 크고 하드하게 했는데 실상 녹음 된 사운드는 볼륨이 무척 낮았거든요."
"그래도 프리스트의 충실한 팬들이라면 'Never Satisfied', 'The Cheater' 같은 곡은 마음에 들거예요." 하고 말하는 핼포드 지만 그 역시 이 앨범이 진정한 프리스트의 작품은 아니라고 말 한다.
"우리는 그래야 상업성이 있다고 하던 사람들에게 설득당한 셈 이죠. 그들의 말은 이런 앨범이라야 데뷔 즉시 헤비메틀 그룹으 로 낙인 찍히지 않을 거라는 거였죠. 하지만 결국 이 앨범은 우 리에게 해를 더 끼쳤어요."
또 프리스트는 이 앨범의 표지 (코카콜라 병 모습) 도 못마땅했 다. 다우닝의 말에 의하면 '우리 사운드와 전혀 연관이 없는 표 지' 라고까지 한다. (하지만 우스꽝 스럽게도 이 앨범 표지를 디 자인한 사람은 이것으로 디자인 상을 몇개 받았다.) (후에 프리 스트는 앨범의 표지를 바꾸어 재 발매했다.) 그룹 멤버 자신들의 반응이 이랬던 만큼 비평가들의 반응도 혹 평이나 다름없었다. 비평가들은 이 앨범에서 특히 Black Sabbath 적인 체취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는데 이는 Roger Bain 이 Black Sabbath 의 프로듀서였던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이 첫 앨범은 프리스트가 자신들의 사운드에 독특함만을 애써 찾은 나머지 안정된 맛이 없다. 감각과 의욕만은 사줄 수 있으되 신인다운 무경험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었다.
하지만 첫 앨범에 대한 혹평과 저조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프리 스트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순회공연을 밀고 나갔다. 사실 그동 안 순회공연으로 닦아놓은 기반은 어느정도 튼튼했기 때문에 앨 범 한장의 실패로 크게 의욕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앨범을 내니까 전혀 이익이 없지도 않더군요. 사람들이 우리를 좀 더 진지하게 대해주고 또 공연때 연주가 예전보다 쉽게 진행 되더란 거죠."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1 집 ROCKA ROLLA

Side A 1 One For Road 2 Rocka Rolla 3 Winter 4 Deep Freeze 5 Winter Retreat 6 The Cheater Side B 1 Never Satisfied 2 Run Of The Mill 3 Dying To Meet You 4 Caviar And Meths

  1. 데뷔 앨범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2. 그들에게 영광의 그날이 올것인지..
  3. 다음회를 기대해 주세요..

- KEEL -


Judas Priest이야기.....1 02/17 15:59 38 line

Judas Priest는 아시다시피 Heavy Metal(이하 HM)의 태동기서 부터 HM을 견지해 왔던 HM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에는 다양한 쟝르를 수용하는 듯한 복합적인 사운드를 구사했 으나 80년대들어 정통 HM으로 선회했죠.최근에 발표한 'Pain killer' 를 들어보면 초기의 색채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으며 중무장된 강력한 HM사운드를 즐길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수 메틀팬들에겐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만 그들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다양한 사운드를 좋아하는 저에겐 다소 아쉬움을 주더군요.특히 초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비장감이 서려있던 Rob Halford의 목소리가 완전히 쇳소리로 변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안타깝게 생각되는군요. 그런 뜻에서 그들의 초기 앨범 몇장에 대한 감상을 중심으로 다소 소외 되어 있던 그들의 초기음악을 여러분들께 소개드릴까 합니다. 오늘 소개드릴 앨범은 그들의 1집인 'Rocka Rolla'입니다. 74년에 발표되었던 본작은 하드록적인 사운드에 약간의 실험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던 수작이었습니다. 물론 1집이라 허술한 점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 더욱 인간미가 느껴지며 애착이 가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수록곡중 'Rocka Rolla','Never satisfied','Caviar and meths'에서 보여준 Tipton과 Downing의 트윈 기타앙상블은 꽤 박진감있고 조화있는 것이었습 니다. 이런 점은 이후 Judas Priest의 사운드의 윤택함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Judas Priest라는 그룹을 잊지못할 대 그룹으로 인식하게된 가장 큰 이유는 Rob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에 있다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초고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비장감과 비애감이 서린 그의 목소리 는 HM을 통틀어도 그밖에는 없는 듯 합니다. 본작에서도 백미로 손꼽히는 'Run of the mill' 에서 그러한 그의 보컬 솜씨

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멋진 곡인 4부작 'Winter-Deep freeze-Winter retreat-Cheater' 에서는 특이하게도 Rob의 하모니카솜씨를 들을 수가 있었죠.그리고 군데군데

새로운 시도가 엿보였던 뛰어난 구성을 지닌 곡이라 생각되는군요.

본작은 여러 면에서 가치있고 꽤 괞찮은 앨범이라 생각됩니다.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 보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갑니다.. Humanoid...........

3 # SAD WINGS OF DESTINY[ | ]

JUDAS PRIEST 이야기 (4) 10/11 19:12 147 line

제 2 장 펑크 록에 밀리던 70년대 중반 - 사운드 향상된 두번째 앨범 얼마후 프리스트는 Reading 페스티벌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들 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었다. 핼포드의 말대로 이 Reading 페스티벌에 출연만 하면 일본이나 미국등 여러나라로 얼 굴과 이름이 팔리는 것은 떼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Reading 페스티벌 출연후 드럼주자 힌치가 빠지는 바람 에 프리스트는 예전의 드럼 주자 Alan Moore 를 다시 불러들였 다. 또 얼마 안있어 두번째 앨범을 녹음해야 했는데 이들은 그야 말로 빵 살돈도 없는 알거지 신세였다. 덕분에 스튜디오에서 녹 음을 할 때도 하루에 한끼를 때우기가 일수였다.
이렇게 굶으면서 내놓은 앨범이지만 'Sad Wings Of Destiny' 는 전작인 'Rocka Rolla'에 비해 훨씬 향상된 면모를 보였다. 전작 의 실패가 전적으로 녹음기법에 있었기 때문에 이 앨범은 이러한 실패요인을 보완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이 앨범도 전체가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어서 까다로운 영 국의 록 비평가들 중에서는 거의 첫 앨범이나 마찬가지의 평가밖 에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국내의 본격 메틀팬들에게는 'Victim Of Changes' 라는 곡만으로도 기억될만한 작품이다. 첫번째 리드 기 타는 다우닝이 그리고 두번째 리드 기타는 팁튼이 각각 맡은 가 운데 꽤 화려한 연주가 펼쳐지는 이곡은 Queen 의 초기 사운드와 흡사할 만큼 장식적인 색채가 짙다.
그밖에도 이 앨범에는 'Tyrant', 'Genocide', 'Ripper' 등 프리 스트 초기의 곡들로서는 다소 고풍스러운 가사에다가 지금보다 음이 화려한 듯한 맛이 있다.
그 덕분인지 팁튼은 이 앨범을 프리스트의 실질적인 첫 앨범이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스튜디오의 제반작업에 대해 터득하게 된 덕분이 었죠. 따라서 우리가 원하던 대로 사운드가 나오게 된 셈이죠."
'Sad Wings-' 에 대한 대체적인 비평은 '좋았다.'고 할 수 있었 다. 팬들 사이에서도 호평이었다. 하지만 돈벌이는 여전히 안되 었다. 아무리 평이 좋다고는 해도 차트에 등장하지 않고서는 어 쩔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작곡이나 연주 연습을 계속할 작정이면 사회보상 금을 타든지 아니면 별도의 돈벌이를 구하든지 해야 먹고 살 지 경이었어요." 팁튼의 말이었다.
그 말대로 그는 당시 정원사 일자리를 구했고 이런 힐은 트럭을 운전했으며 다우닝은 어느 회사의 창고 경비를 맡았다. 다우닝의 말에 의하면 당시 자신들은 성공의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때는 76년 후반, 영국에서 뉴웨이브/펑크 록이라 는 이름의 반항적인 음악의 물결이 휩쓸던 시기였다. 사실 이 새 로운 일파들은 음악 산업계로서는 달갑지 않은 영향을 크게 끼쳤 다.
메스컴은 Sex Pistols, Clash, Damned 등의 그룹들에 관심을 총 집중시키고 있었다. 또 약간의 재능만으로도 쉽게 펑크 록커가 되어버린 이들은 노래보다는 충격적인 가치관이나 차림새 등으로 사람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렸다. 이런 상황이니 프리스트같은 하드록을 하고 있는 그룹들은 조소거리가 되거나 심지어는 무시 당할수 밖에 없었다. 펑크 록을 들고 나온 새파란 젊은이들은 이 들 하드록 그룹들에 대해 '따분한 구식 양반들' 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긴 머리에다 또 헤비메틀 같은 것을 연주하기라도 하면 그 누 구라도 매스컴과는 인연없는 사람이 되던 시절이었죠." 팁튼의 말이다.
"그야말로 헤비메틀은 펑크 록 덕분에 쇠망치를 얻어맞은 셈이 었어요. 그후로 나는 매스컴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죠. 그 래서 메스컴이 접근하는 것도 반갑지 않았고 음악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을 읽어볼 흥미가 안나요."
하지만 이렇게 참고 견딘 것이 결실을 본덕에 프리스트는 대회 사인 CBS 와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핼포드는 '신이 내린 축복' 이라고 감격해 했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2 집 SAD WINGS OF DESTINY

Side A 1 Prelude 2 Tyrant 3 Genocide 4 Epitaph 5 Island Of Domination Side B 1 Victim Of Changes 2 Ripper 3 Dreamer Deceiver 4 Deceiver

- KEEL -

4 # Sin After Sin & Stained Class[ | ]

JUDAS PRIEST 이야기 (5) 10/13 02:42 147 line

- Roger Glover 와 제작한 세번째 앨범 76년 말 이들은 새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수도원을 빌렸다. 팁 튼의 말에 의하면 "아마 수녀들은 우리 그룹 이름 (유다의 사제) 을 듣고 종교음악 그룹쯤으로 생각한 듯 싶다."고 한다.
새 앨범의 프로듀서는 Deep Purple 출신의 재주꾼 Roger Glover 였다. 그러나 드럼 주자는 공석이어서 세션맨을 썼는데 정교한 드러밍으로 그 유명한 Simon Phillips 가 맡았다.
77년 초에 발매된 'Sin After Sin' 은 초기 프리스트를 대변해 주는 앨범이라고 할만하다. 핼포드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넘치 는 힘과 확신감 있는 연주를 뿜어내는 것은 프리스트가 당연히 이를 만한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Sin -' 은 대단한 활력이 넘치는 앨범이다. 주제 도 무겁고 앨범 표지부터가 컨셉트 앨범에 가까운 체취를 풍긴 다. 첫 앨범 같은 가벼운 듯한 느낌도 없고 두번째 앨범에서 보 는 불안정하고 실험적인 느낌도 없이 확고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팁튼의 리드 기타로 시작해 중간에는 다우닝, 그리고 끝에 가서는 팁튼의 리드 기타로 장식되는 대곡 'Sinner' 이외에 도 이 앨범에서는 Joan Baez 의 포크곡인 'Diamonds And Rust', 메틀 팬에게 '역시 프리스트다' 라고 할만한 'Starbreaker' 등이 흥미있다.
앨범 'Sin After Sin' 덕분에 프리스트는 처음으로 영국 차트에 등장, 23위에 랭크되는 좋은 기록을 남겼다.
77년 4월에 프리스트는 영국 순회공연중 드러머 Les Binks (전 Animals 의 일원이었던 Eric Burdon과 함께 활동) 를 가입시켰 다. 순회공연은 앨범의 인기 덕분에 성황이었고 런던 뉴 빅토리 아 극장에서는 매진 사태도 벌어졌다. 그리고 이 영국 순회공연 이 끝나고 프리스트는 처음으로 바다 건너 미국에 가게 되었다.
이들이 미국 공연을 가진 것은 77년 6월 이었는데 이 순회공연 에는 R.E.O Speedwagon 과 함께 텍사스 및 남부지역을 도는 일정 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에서는 많아야 2,3천명을 상대하던 프 리스트로서는 7,8천명씩 모이는 대규모 홀에서의 연주가 무척 득 의만만한 것이었다. 한가지, 음식에서만은 다소 불편한 점이 있 어 다우닝은 살이 쭈욱 빠지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핼포드는 마이크대를 이리저리 던지는 등 요란한 무 대를 보여주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그곳 사람들이 진짜 헤비메 틀을 본 건 그게 처은일 것이라고 한다. 또 이 순회공연에서 프 리스트는 Led Zeppelin 의 오클랜드 야외공연에서 오프닝 연주를 해주어 멋진 추억도 남겼다. 게다가 이들 두 밴드는 모두 영국의 미들랜드 출신이어서 의의가 더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프리스트는 Dennis Mackey를 프로듀서로 하여 78년 2월에 앨범 'Stained Class' 를 발표했다. 평자들간에 이들 의 초기 작품중 가장 높게 평가되고 있는 이 앨범에는 시종일관 격렬한 'Exiter' 를 비롯 예전 'Victim Of Changes' 와 더불어 대표곡으로 꼽히는 'Beyond The Realms Of Death', 핼포드의 보 컬이 돗보이는 'Better By You, Better Than Me'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 생각엔 이 앨범은 당시까지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던 사운드 를 찾아준듯 해요." 핼포드의 말이다.
"당시 우리는 70년대 초 이후 자주 등장하던 9분짜리 길고 서사 시적인 곡들에서 탈피하려고 하던 중이었죠. 돌아보면 그때 우리 는 우리만의 독특한 개성을 아직도 찾고 있었던 거죠."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동화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Exciter' 나 'Beyond -' 같은 곡들과는 달리 동명 타이틀 곡 'Stained Class' 에서는 사회적인 의식도 가사에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곡에서는 다소 구체적인 표현을 할 법도 한데 설득 력보다는 강한 인상 위주의 가사를 통해 쓰는 헤비메틀 그룹답게 이들도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가는 가사를 많이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3 집 Sin After Sin

Side A Side B 1 Sinner 1 Let Us Prey 2 Diamonds And Rust 2 Call For The Priest 3 Starbreaker 3 Raw Deal 4 Last Rose Of Summer 4 Hear Come The Tears 5 Dissident Aggressor

  • 4 집 Stained Class

Side A Side B 1 Exciter 1 Saints In Hell 2 White Heat, Red Hot 2 Savage 3 Better By You, 3 Beyond The Realms Better Than Me Of Death 4 Stained Class 4 Heroes End

  1. 거친 록신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프리스트..
  2. 그들에게도 성공의 여신이 손짓하는데...
  3. 계속 연재 됩니다.

- KEEL -

5 # Killing Machine[ | ]

JUDAS PRIEST 이야기 (6) 10/13 10:19 140 line

- 뜻밖의 열기 보여준 일본 공연 78년 3월, 프리스트는 다시 미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핼포드는 당시까지는 무대의상을 여러모로 연구하고 입어보기도 했는데 이 미국 순회공연을 할 즈음에는 자신의 상징으로 가죽옷은 어떨까 하고 궁리해보고 있었다. (이 당시 그의 머리형은 지금같은 맨머 리는 아니었다.) 이번 순회공연은 Foghat와 공동으로 벌인 공연이었는데 프리스 트는 주연급인 훠가트에게 미움을 사 여러가지 손해를 보았다.
훠가트는 이들 프리스트의 오프닝 연주시간도 짜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조명장치도 못쓰게 했다.
"이일을 교훈삼아 그 후 우리는 오프닝 그룹들을 최대한 도와주 려고 애써왔지요." 팁튼의 말이다.
78년 8월에는 처음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벌였는데 뜻밖에도 일 본 소녀팬들의 열광이 대단하여 프리스트는 일본에서나마 큰 스 타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일본 공연후 런던에 온 이들은 새 앨범 제작에 착수했다. 이번 프로듀서는 지난번 'Stained Class' 에서 몇곡을 프로듀스해준 James Guthrie였다.
78년 10월에 앨범 'Killing Machine' 을 발표하고 연말에 가진 영국 순회공연에서 핼포드는 처음으로 가죽옷에 쇠사슬 등을 입 고 무대에 등장했다.
"Rob 은 그 후부터 나온 메틀밴드들에게는 의상 모델이 된 셈이 었죠. 그때까지는 스판덱스나 공단 바지, 아니면 청바지나 티셔 츠가 고작이었으니까요." 다른 구성원들의 말이다.
앨범 'Killing Machine' 에서는 'Take On The World'가 싱글로 처음 영국 차트에 등장, 14위를 기록했다. 이 싱글의 인기 덕분 에 프리스트는 영국의 TV 주간 쇼 'Top Of The Pops'에 출연했 다. 그런데 말썽이 생겼다. 함께 출연하기로 되어있던 Donnie & Marie 가 프리스트 그룹이 그 가죽 채찍을 들고나오면 자신들은 쇼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가죽 채찍 을 들지 않고 출연했는데 다우닝의 말에 의하면 "당시는 그 남매 의 인기가 우리보다 월등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한편 앨범 'Killing Machine'은 미국측 레코드사의 주장에 의해 제목이 'Hell Bent For Leather'로 바뀌어 미국에서 발매되었다.
또 상업성 있는 곡도 한두곡 있어야 한다는 레코드사의 요구로 프리스트는 Fleetwood Mac 의 곡 'The Green Manalishi'를 추가 수록했다. 메틀팬에게 인기있는 이 곡에 대해 당초에 그들은 못 마땅해 했으나 팬들이 워낙 좋아하는 바람에 그후 공연때면 언제 나 빠지지 않는 곡으로 사용했다.
'Hell -' 앨범에서는 핼포드의 폐부를 찌를것 같은 목소리와 팁 튼의 바늘같은 프레이즈가 돋보이는 'Delivering The Goods', 메 틀 사운드의 클래식인 'Hell -', 팁튼과 다우닝의 주고받는 기타 애드립이 일품인 'Green Manalishi' (스테레오 사운드가 잘 분리 되는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어보길 권한다. 팁튼의 하드하고 직선 적인 기타와 다우닝의 트레몰로가 깊게 걸린 기타연주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나오는걸 눈감고 듣다보면 프리스트 사운드의 환 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매쉬 히트한 'Take On The World', 그리고 앨범 발매후 10여년만에 국 내에서 히트해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한, 처절한 핼포드의 목소 리가 가슴을 휘저어 놓는 메틀 밸러드 'Before The Dawn' 등이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프리스트의 전 앨범을 보아도 밸러드는 눈씻고 찾아보기 힘든데 이례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 'Befor -'. 역시 메틀은 진한 감동을 주는 음악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 다. 이곡으로 비로소 국내에서는 프리스트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 에게 알려졌다. 미국적인 사운드 분위기도 적잖이 가미되어 이들 에게 미국시장을 열어준 앨범으로 그들로서는 첫 골드 앨범이 되 었다. 이 앨범은 프리스트가 초기에 보였던 다소 현란한 색채 대 신에 직선적인 메틀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5 집 Killing Machine

Side A Side B 1 Delivering The Goods 1 Burning Up 2 Rock Forever 2 Killing Machine 3 Evening Star 3 Running Wild 4 Hell Bent For Leather 4 Before The Dawn 5 Take On The World 5 Evil Fantasies (미국앨범에서는 B면에 Green Manalishi 추가)

  1. 드디어 성공다운 성공을 한 프리스트..
  2. 이후 10연속 골드(플래티넘 포함)의 영예를 안게 됩니다.
  3.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틀밴드인 프리스트..
  4. 계속되는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 KEEL -

6 # Unleashed In The East + British Steel[ | ]

JUDAS PRIEST 이야기 (7) 10/19 11:09 144 line

- 뛰어난 실황앨범 'Unleashed In The East' 얼마후에 발매된 'Unleashed - '역시 이들 프리스트의 주가를 한층 올려준 앨범으로서 메틀계에서는 몇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 황 음반이 되었다. 원래 이 앨범은 일본의 신주꾸, 나까오 등지 에서 녹음, 극동지역에서만 발매될 계획이었는데 녹음 결과가 이 외로 좋아 결국 구미 시장에서도 모두 발매하게 되었다. 이제는 성숙한 2인조로 조화를 이룬 팁튼과 다우닝의 연주가 불꽃같이 교차되는 이 앨범에 대해서는 비평가들도 꽤 호평을 보냈다.
"실황앨범이란 때를 잘 가려 내놓아야 하는데 'Unleashed -'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발매되었죠. 팬들이 바로 이러한 앨범을 기 다리고 있던 상황이니까요.' 그룹 구성원들의 말이다.
'Unleashed -' 발매후 프리스트는 드럼 주자를 Les Binks 에서 현재의 Dave Holland 로 바꾸었다. 그룹측에 의하면 Binks 는 훌 륭한 세션맨이기는 하나 폭발적인 드럼 연주를 요하는 자신들 밴 드에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79년 10월에는 당시 인기가 쇠락해가고 있던 그룹 Kiss와 미국 순회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예전의 훠가트와는 달리 키스와는 호 흡이 잘 맞는 덕분에 프리스트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무렵부터 프리스트는 오프닝 공연팀의 딱지를 떼고 주연급 공 연을 시작했다. 공연중 'Hell Bent -'가 연주될 때면 당시 이들 과 선전계약을 맺은 할리 데이비슨사의 오토바이를 타고 핼포드 가 등장했다.
이렇게 프리스트가 79년 하반에 미국과 유럽에서 바쁘게 활동하 는 사이 영국에서는 신진 헤비메틀 그룹들이 여럿 출현했다. Def Leppard, Iron Maiden 등이 '헤비메틀의 중흥' 이라는 기치를 들 고 나타나 펑크와 뉴웨이브가 꼬리를 감출무렵 새로운 화제거리 를 찾던 영국 록 매스컴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일이 이쯤되자 이들 신진그룹에 비해서 이미 기성 메틀밴드 축 에 끼게 된 프리스트로서는 발 뒤꿈치를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새 앨범을 급히 내놓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서둘러 만든 앨범 'British Steel' 은 80년 3월에 발매, 1주일만에 영국차트 3위에 올라섰다.
당시까지는 거의 생소했던 주다스 프리스트를 국내에서도 관심 갖게 해준 이 앨범에 대해 팁튼은 '내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앨 범'이라고 자화자찬이 대단하다.
'Rapid Fire', 'Grinder', 'Steeler' 같은 충실한 메틀 감각의 곡들과 더불어 'Breaking The Law', 'Living After Midnight' 등 상업성 있는 곡들도 담긴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상위 를 기록했다. 또 싱글로는 'Breaking -'과 'Living -'이 역시 좋 은 기록을 남겼다.
앨범은 비록 상업성의 기로에 서있긴 했지만 프리스트는 이 앨 범 제목에서 자신들의 애국심을 은근히 과시해 보였다.
"영국의 헤비메틀은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니만큼 앨 범 제목이 아주 잘 어울리는 셈이죠." 팁튼의 말이다.
첫곡 'Breaking -'은 국내 메틀팬에게 친숙한 곡이다. 리드 기 타 연주가 특별히 튀지않고 보컬의 화음과 규칙적인 리듬이 쉽게 들어오는 노래로 영국차트 7위까지 정복. 'Rapid -'는 리드 기타 가 번갈아 튀는 곡이다. 그러다가 서로 어울리는 부분은 상쾌감 마저 준다. 보컬과 번갈아 나오는 빠른 기타 선율이 압권.
'Metal Gods'는 낮게 깔려오는 베이스가 특징이며 'United'는 보 컬화음의 진행이 색다른 감을 주는 곡이고 팁튼의 리드 기타만 이어지는 'Living -'은 흥겨운 리듬으로 싱글 차트에도 올랐 다.(12위) 'The Rage'는 다우닝의 무게 있는 기타가 서두를 장식 하며 바이브레이션 강한 핼포드의 보컬이 쇳소리를 들려준다.
'Steeler'는 빠르게 쫒기는 듯한 리듬이 가사와 어울리며 리드 기타 연주도 보기드문 속도를 자랑한다. 볼륨을 크게 해서 들으 면 긴장감 떄문에 손에 땀이 흥건해 질 정도. 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6 집 Unleashed In The East

Side A Side B 1 Exciter 1 Diamonds And Rust 2 Running Wild 2 Victim Of Changes 3 Sinner 3 Genocide 4 Ripper 4 Tyrant 5 The Green Manalish

  • 7 집 British Steel

Side A Side B 1 Breakin The Law 1 Living After Midnight 2 Rapid Fire 2 You Don't Have To 3 Metal Gods Be Old To Be Wise 4 Grinder 3 The Rage 5 United 4 Steeler

  1. 계속 연재 됩니다..

- KEEL -

7 # Point Of Entry + Screaming For Vengeance[ | ]

JUDAS PRIEST 이야기 (8) 10/19 14:19 153 line

- 기대 뒤엎은 'Point Of Entry' 80년 가을에 프리스트는 지중해 연안에서 새 앨범 제작에 착수 했다. 영국외의 지역에서 녹음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이유는 영 국의 혹독한 세금을 피해보기 위해서였다.
81년 2월에 발표된 'Point Of Entry'는 다소간의 실험적인 시도 와 팝취향 때문에 말이 많았던 앨범이다. 프리스트 자신들은 이 앨범에 만족을 표시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반응은 다소 상반된 것이었다. 사실 많은 팬들은 이 작품이 'British Steel'의 인기 를 이을 비슷한 앨범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전작보다 공격적인 박진감이 덜하다고 해서 실망한 팬들도 꽤 있었다.
팁튼은 이 앨범에 대해 'British Steel'스타일에서 벗어나 무언 가 다른 것을 시도해 보려한 앨범이지만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말았다고 털어 놓았다.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수록 곡들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팝송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는데 'Hot Rockin, 'Don't Go', 'Heading Out To The Highway' 등이 이러한 평을 입증해 준다. 결국 이 앨범으로 프리스트는 거칠고 직선적인 메틀 사운드만이 팬들이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Point Of Entry'는 표지부터가 콘셉트 앨범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고 팝 취향의 곡들도 있고 프로그레시브한 실험적인 요소도 군 데 군데 들어 있다. 그래도 가장 프리스트다운 곡은 'Desrt Plains' 인데 그 밖의 곡들에서는 박력보다는 기교가 먼저 느껴 지는 감이 짙다. 앨범 차트도 영국에서는 14위, 미국에서는 37위 에 머무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앨범 'Point -'를 발매한 후에 가진 미국 순회공연에서 프리스 트는 예전보다 화려한 조명효과와 무대장치를 써서 앨범의 부진 을 만회했다. 이렇게 무대장치가 화려해진 이들의 공연에 대해 팬들에 따라서는 '예전에 Kiss와 공연하더니 요란한 모양만 본뜬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을 갖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프리스트는 절 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순회공연을 하게 되면 그 전에 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보여줘 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팬들은 '여전하군'하고 한마디 내뱉고는 그룹이 퇴보해 간다고 생각하죠." 다우닝의 말이다.
81년말에 영국 순회공연을 끝낸 이들은 82년 초에 새 앨범에 착 수했다. 전작이 얻은 반응을 고려한 덕분에 새 앨범은 예전의 거 친 색채가 훨씬 많이 가미되는 방향으로 녹음이 진행되었다.
6월에 발매된 앨범 'Screaming For Vengeance'는 기대대로 전작 의 부진함을 씻고 82년 메틀계에서는 단연 화제작이 되었다.
"가사도 예전보다 더 거칠어지고 사운드도 박진감이 넘치지요."
팁튼의 말이다.
'Point -'로 노선 변경을 실험했다 실패한 이들로서는 당연한 결과였고 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 작품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어 프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해 주었 다.
'Hellion'의 극적인 서두 연주를 필두로 이어지는 이 앨범에서 팬들은 예전 프리스트 사운드가 지녔던 위력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앨범 'Screaming -'의 성공은 비디오 덕도 상당히 크다.
"MTV 에서 싱글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을 방영해준 것이 앨범의 인기를 부채질 했죠. 한꺼번에 7백만에서 천 2백만 의 시청자들에게 모습을 보여준다는건 정말 근사한 일이더군요."
다우닝의 말이다. "사실 비디오가 없었다면 영국의 많은 신진 그 룹들이 미국 진출은 엄두도 못냈을 거예요."
팁튼의 바늘같은 연주가 돋보이는 'Electric Eye', 팁튼과 다우 닝이 번갈아 솔로를 넣은 'Riding On The Wind', 팁튼의 하드한 기타로 시작되는 'Bloodstine', 팝취향의 '(Take These) Chains' 와 'You've -'등등 이 앨범은 세련된 연주와 작곡 편곡 등 나무 랄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역작이라 할만하다. 앨범 제작은 Tom Allom 이, 앨범의 표지는 Doug Johnson 이 맡아 앨범을 더더욱 빛내주었다. 이 앨범의 백미는 홀랜드의 번개같은 더블 베이스 드러밍으로 시작해 팁튼과 다우닝의 절묘한 연주가 이어지는 'Riding -' 이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8 집 Point Of Entry

Side A Side B 1 Heading Out To 1 Solar Angels The Highway 2 You Say Yes 2 Don't Go 3 All The Way 3 Hot Rockin' 4 Troubleshooter 4 Turning Circles 5 On The Run 5 Desrt Plains

  • 9 집 Screaming For Vengeance

Side A Side B 1 The Hellion 1 Screaming For Vengeance 2 Electric Eye 2 You've Got Another 3 Riding On The Wind Thing Comin' 4 Bloodstone 3 Fever 5 (Take These) Chains 4 Devil's Child 6 Pain And Pleasure

  1. 계속되는 성공의 행진을 하는 프리스트...
  2. 영원한 메틀의 수호자..
  3. 계속 연재 됩니다.

- KEEL -

8 # Defenders Of The Faith[ | ]

JUDAS PRIEST 이야기 (9) 10/21 18:08 187 line

- 계속되는 성공의 행진 근 10년 동안 노력해오던 미국 정복을 이제야 달성한 프리스트 는 'Screaming -'의 여세를 몰아 83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제 2 회 US Festival 에 참가했다. 이 훼스티벌에서 프리스트는 70분간의 공연을 할당받았다. ('83 US Festival 실황 Video 에는 프리스트의 곡이 두개 실려있다.) "미국에서 우리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준 공연이었 죠." 핼포드의 말이다.
83년 5월 프리스트는 그동안 자치적으로 해왔던 매니지먼트를 예전 Who 의 매니저였던 Bill Curbishley 에게 맡기고 새 앨범 제작에 착수했다. 'Screaming -'의 성공에 따른 압박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곡 선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죠." 그룹 구 성원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걸작앨범을 하나 낸 후 그뒤의 후속작을 못낸 밴드들을 많이 보아왔어요. 우리가 이 앨범에 정말 신경을 쓴 것은 그 때 문이죠." 다우닝의 말이다.
"헤비메틀은 작곡하기 어려운 음악중 하나예요. 사실 원하기만 하면 복잡한 구성의 곡이 될수도 있어요. 하지만 헤비메틀이 지 향하는 강인한 느낌을 포기하지 않으면 곡조위주의 곡을 만들기 어려운 때가 많아요." 핼포드의 말이다.
새 앨범의 제목을 'Defenders Of The Faith'로 정한 것은 우연 한 일이었다.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잘 들어맞는 제목이라고 갑자기 생각했 죠. '신념의 옹호자' 라는 제목에서 이 '신념'은 프리스트에게는 헤비메틀인 셈이지요. 즉 우리는 의상 패션이나 스타일을 배경으 로 헤비메틀을 들고나온 사람들로부터 헤비메틀을 지킨다는 의미 예요."
사실 그룹들중에는 헤비메틀 밴드라고 규정지워지는 것을 싫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다스 프리스트는 절대 그렇지 않다.
"한때는 헤비메틀이라는 용어가 지저분한 말로 쓰여진 적도 있 었죠. 하지만 우린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자랑스럽 게 우리를 헤비메틀 밴드라고 내세울 수 있어요."
앨범 'Defendres -'는 83년 11월에 발매되었다. 전작인 'Screaming -'을 답습했다는 비판을 듣긴 했지만 어쨌든 프리스 트로서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Screaming -'의 기본요소를 따서 만들었어요. 형식 도 같은 노선을 따랐고요. 하지만 상업적으로 보아 더 나은 앨범 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죠." 다우닝의 말이다.
'Defenders -'에서는 'Freewheel Burning'이 싱글차트에도 올랐 는데 화려한 사운드에 핼포드의 금속성 목소리가 빠른 곡조 덕분 에 어울리는 곡이다. 이외에도 이 앨범에는 오싹하는 느낌을 주 는 'Jawbreaker' 와 'Eat Me Alive', 리드기타가 고음으로 전개 되는 'Rock Hard Ride Free', 화려한 전주와 단조의 보컬로 세련 된 느낌을 주는 'Love Bites', 호소력 강한 헤비 밸러드 'Night Comes Down', 그리고 'Heavy Duty' 는 철갑괴물(앨범 표지에 나 오는 괴물로 이름은 Metallian 이다.)이 지나가는 소리로 시작되 어 후주로 We Are Defenders Of The Faith 라 외치며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핼포드의 목소리로 끝을 마감한다. 전작앨범보다 훨 씬 박력있고 공격적인 기타연주로 압권을 이루고 있다.
"당신이 이번해에 헤비메틀 앨범을 몇장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면 그 중 하나는 필히 이 앨범이 되어야할 것이다." 라는 어느 평자의 말을 빌어보더라도 이 앨범 사운드의 매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앨범 발매후 프리스트는 오랜만에 영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 동안 이들이 미국 시장만 염두에 둔 나머지 영국 공연을 도외시 한다고 욕해대던 영국 팬들이었지만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오프 닝은 미국 출신의 Quiet Riot 이 맡았다.
미국 순회공연은 84년 3월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점으로 시작 되었다. 앨범 'Defenders -'는 미국 차트에 등장하자마자 곧 20 위권에 들어 골드를 기록했다. 이번 미국 순회공연에서는 Van Halen, Scorpions, Ozzy Osbourne 등 강력한 경쟁자들과 겨뤄야 했다.
"주위의 밴드들을 너무 의식하는 것도 공연에 방해가 됩니다.
공연은 매번 처음이란 자세로 임해야 하며 최선의 상품을 전달해 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나가야 하죠." 철저한 프로 의식을 보이는 핼포드의 말이다.
이 공연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까 이야기한 Metallian 이란 철갑괴물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면 이 괴물의 입에서 '펑'하고 연 기가 솟아오르면서 핼포드가 등장한다.
"성공할수록 공연에 돈을 더 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헤 비메틀 공연을 보려는 팬들은 현실 생활보다 크고 요란한 것, 사 운드나 조명, 무대장치 등 무엇이든 크고 위압적인 환경을 찾게 되거든요." 핼포드의 말이다.
'Defenders -'에서는 싱글 'Freewheel -'이 비디오로 제작되었 다. "흔히 헤비메틀 그룹들은 여자를 등장시킨다든지 무슨 '초현 실적인' 장면같은 것을 연출하는 것이 상투적인 수법이예요. 하 지만 그런 것은 헤비메틀 밴드들로서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기 쉬워요. 우리는 그런 것 보다는 단순한 자세로 비디오 제작에 임 하죠." 핼포드의 말이다.
84년 가을에 'Defenders Of The Faith' 공연을 마감한 프리스트 는 앞으로도 이 추세대로 눈부신 활동을 벌일것을 다짐했다.


  1. Discography of JUDAS PRIEST
  • 10 집 Defenders Of The Faith

Side A Side B 1 Freewheel Burning 1 Love Bites 2 Jawbreaker 2 Eat Me Alive 3 Rock Hard Ride Free 3 Some Heads Are 4 The Sentinel Gonna Roll 4 Night Comes Down 5 Heavy Duty 6 Defenders Of The Faith

  1. 계속되는 성공의 행진..
  2. 다음회에선 Turbo, Ram It Down, Pain Killer 앨범을
  3. 간단히 둘러보고 프리스트 사운드의 특징을 알아본후
  4. 이 길었던 프리스트의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지요..

- KEEL -

9 # 'Turbo', 'Ram It Down', 'Pain Killer'[ | ]

JUDAS PRIEST 이야기 (완결) 10/22 00:36 143 line

- 앨범 'Turbo', 'Ram It Down', 'Pain Killer' 85년에는 헤비메틀 그룹들이 모여 만든 아프리카 기아 구제 모 임인 Hear'N Aid 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86년 발표한 앨범 'Turbo' 는 Tom Allom 의 프로듀스로 Nassau 의 Compass Point Studio 에서 제작되었다.
이 앨범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유는 팁튼과 다우닝이 일렉트릭 기타를 버리고 신디사이저 기타로 연 주에 임해 일렉트릭 기타의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운드가 많이 감 소했고 신디사이저의 화려함만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였다. 프리 스트로서는 전작 'Screaming -' 과 'Defenders -' 의 성공이 압 박이 되어 이번 앨범엔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해보려한 노력이었지 만 예전의 'Point -' 앨범처럼 또다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특유의 라이브 스테이지를 통해 이를 극복해 냈다. 이에 이들의 두번째 라이브 앨범인 'Priest .. Live!' 를 87 년에 내 놓아 호평을 받았다. 전작 'Turbo' 의 나약한 사운드가 이 라이 브 앨범에선 불을 뿜을 듯한 에너지로 가득차있다. 핼포드의 메 틀릭 보이스, 팁튼과 다우닝의 번뜩이는 연주, 홀랜드의 파워넘 치는 드러밍, 힐의 안정감있는 베이스 사운드..이에 열광하는 관 객들의 함성...프리스트로서는 헤비메틀사에 명반으로 기록될 라 이브 앨범을 또다시 내놓은 것이었다. 이어 87년에는 'Ram It Down'을 발표했는데 'Turbo' 앨범에서 다시 'Defenders -' 사운 드로 되돌아 갔다. 이에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가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케 한다. 앨범 전편에 흐르는 핼포드의 보이스 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듯 고음역의 멋진 소리를 들려주며 팁튼과 다우닝의 기타연주는 전편에 비해 더 복잡하고 짜임새 있 는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후 앨범 'Pain Killer' 를 발표하 고 현재까지 뒷소식이 들려오질 않아 팬들을 궁금하게 만들고 있 다.


- Judas Priest 사운드의 분석 블루스 감각을 배경으로 세련된 연주를 극적으로 연출해가는 팁 튼과 다우닝의 2인조 기타솜씨는 여타 그룹이 따라올수 없는 경 지이다. 이들은 웬만한 신진 메틀 기타리스트들에게는 대선배격 이 되었으며 자신들 역시 누구와도 닮지않은 기타 연주를 지향해 온 것을 자부하고 있다. 메틀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되려면 필히 팁튼의 연주를 배워야 한다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이다. 이 들 양 기타리스트는 핼포드와 함께 그룹의 작사 작곡에 큰 비중 을 차지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갖추어야할 필수조건은 무엇보다도 연주에 Feel 을 담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소견이다. 또 이러한 것은 연주가 복잡하거나 빠른것에 좌우된다기 보다는 Feel 을 얼마나 갖추느냐는 것에 좌우된다고 덧붙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타리스 트는 자신만의 특성을 갖는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어떤 대상의 연주를 같은 경지로 익히기 보다는 장점을 따다가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에 적용시키는 것이 훨씬 만족스럽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의 말은 Feel 보다는 테크닉에 치우치는 많은 신진 기타리스트들 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64년형 Gibson Flying 형 기타를 애용하는 다우닝은 리듬이 정 확한 부드럽고 큰 사운드가 특징이다. 팁튼은 Gibson 과 Fender Stratocaster 양쪽을 쓰는데 이들 양인의 기타 연주는 교과서적 인 헤비메틀 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독창성, 박진감, 일관된 에너지 등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비평가들 중에선 이들 의 사운드를 '미국물이 든 헤비메틀' 이라고 달가와하지 않는 축 도 여럿 되지만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만은 인정해 주고 있다.


  1. Judas Priest 이야기를 마치며...

어느날 문득 라디오에서 프리스트의 노래를 듣고 무엇인가 잊어 버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모아놓았던 프리스트의 사진이며 앨범을 주욱 늘어놓고 그들의 초창기 앨범부터 하나하 나 다시 들으며 무언가를 되찾았다는 느낌은...고등학교 시절 내 가 괴로울때 나대신 울부짖으며 나의 고통을 나누고 희망을 안겨 주었던 프리스트...
그래서 이렇게 10회에 걸쳐 언더동에 그들의 글을 올리게 되었 다. 부족하나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 친다.
P.S 앨범 'Turbo', 'Ram It Down', 'Pain Killer' 는 국내에도 발매되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리라 생각되어서 간략히 줄입 니다. Discography 도 생략합니다.

- KEEL -

10 한국공연[ | ]

11 2014 Redeemer Of Soul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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