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Beck/총평

Jeff Beck - Truth                            05/09 22:55   101 line

소개드릴 앨범은 Jeff Beck 의 Truth 입니다.

1966년 야드버즈를 탈퇴한 제프 벡은 1967년 후반에 당시 블루스음악에
심취해 있었던 로드 스튜어트, 그리고 롤링 스톤즈, 애니멀스,
리틀 리챠드등의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드러머 Micky Waller, 그리고
Ron Wood 와 함께 제프 벡그룹을 만듭니다.
Truth 는 이들의 데뷔 앨범으로서 평론가들로부터 록 뮤직사에 위대한
금자탑을 이루었다는 극찬을 받고있는 작품입니다.
이 앨범에는 후에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의 멤버가 되는 Nicky
Hopkins 가 세션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그는 얼마후 제프 벡그룹의 정식
멤버로서 활동을 하게되며 앨범 Beck - ola 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수록곡과 멤버는 다음과 같습니다.

Side 1
Shapes of Things
Let Me Love You
Morning Dew
You Shook Me
Ol' Man River

Side 2
Greensleeves
Beck's Bolero
Blues De Luxe
I ain't Superstitious

Jeff Beck - 기타
Rod Stewert - 보컬
Ron Wood - 베이스
Micky Waller - 드럼
게스트
J.P.Jones - 하몬드 올갠
Nicky Hopkins - 피아노

<Shapes of Things>
폴 사무엘 스미스가 작곡한 야드버즈의 대표곡을 리메이크했습니다.
매우 깊이 있고 폭이 넓어진 차원으로 끌어올려 야드버즈의 오리지널을
거뜬히 능가시키고 있습니다.

<Let Me Love You>
전 멤버가 이루어 내고 있는 묵직함과 강열함은 당시 태동 단계였던
헤비 사운드의 시금석이 될만한 모범적인 곡이라고 말씀드릴수 있겠
습니다.

<Morning Dew>
첫 부분과 중간, 그리고 끝 부분에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듯한
백 파이프 소리가 첨가되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 이 곡은 론 우드의
베이스가 특히 빛이 나며 믹키 월러의 탬버린 연주도 들을만 합니다.

<You Shook Me>
Willie Dixon 의 고전을 재해석한 곡으로서 로드의 격정적인  보컬이
빛을 발합니다. 건반의 귀재였던 닉키 홉킨스의 곡 전체를 누비는
탁월한 피아노 연주도 일품이며 휘드 백을 이용한 제프 벡의 엔딩부분
처리장면도 산뜻합니다. 얼마후 이 곡은 레드 제플린도 그들의 데뷰앨범
에 수록함으로서 록의 고전으로도 뚜렷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Ol' Man River>
비교적 서정적인 면에 치중을 둔 곡으로서 로드의 목소리에 의해
흐르는 인상적인 멜로디라인을 적극적으로 받쳐주고 있는 론 우드의
중후한 베이스, 그리고 J.P.Jones 의 올갠이 돋보입니다.

<Greensleeves>
영화 `푸른 옷소매' 의 주제가로도 사용되었던 영국의 트래디셔널
음악으로서 프로듀서를 맡았던 Mickie Most 의 애잔한 어쿠스틱기타
연주가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잠시 기분을 전환할수 있는 연주곡
입니다.

<Beck's Bolero>
지미 페이지가 작곡해 선사한 우정어린 곡으로서 보컬이 빠진 헤비한
인스트루멘탈 넘버입니다.

<Blues De Luxe>
수록곡중 유일하게 공연실황에서 발췌한 곡으로서 본인의 느낌으로는
이 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통 블루스리듬인
셔플에 실린 중후한 느낌의 슬로우 곡으로서 로드가 작곡했습니다.
혼신을 기울여 토해 내는 로드의 의미심장한 보컬과 이에 한치의
오차없이 완벽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제프 벡의 기타, 그리고
니키 홉킨스의 강약이 적절히 조절된 유려한 피아노 건반터치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블루스 록의 진수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본 앨범의 압권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I ain't Superstitious>
<You Shook Me> 와 함께 윌리 딕슨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곡으로서
제프 벡의 기타터치에서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모습을 엿볼수 있읍
니다.

전반적으로 제프 벡과 로드 스튜어트의 뛰어남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You Shook Me> 와 <Blues De Luxe> 에서의 닉키 홉킨스의
탁월한 피아노 연주는 이 앨범의 가치를 더욱 빛내주고 있습니다.
본 앨범은 68년 8월에 발표되었으며 이후 제프 벡은 또하나의 걸작앨범
Beck - ola 를 발표한 후 교통사고로 이해 18개월동안의 공백기에 접어
들게 됩니다. 이와 함께 로드 스튜어트와 론 우드는 그룹 Faces 에
닉키 홉킨스는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에 참가하여 활동을 하며  그들의
뛰어난 역량을 끊임없이 발휘하게 됩니다.

                          - 고정필자가 올렸습니다 -

JEFF BECK 이야기 (1)                 10/28 12:26   100 line

#  기타 영웅 이라 일컬어지는 Jeff Beck
#  그만큼 독특한 기타리스트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  가장 재즈적인 록 기타리스트라고나 할까...
#  어쨌든 이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임에는 틀림없죠..
#  그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 1 장  그룹 시대

           - Jimmy Page의 추천으로 Yardbirds에 가입

 Jeff Beck은 44년 6월 24일, 잉글랜드 서레이 지방에서 출생했다. 그

는 기타를 자기 혼자 독학했는데 그것도 자신이 직접 집에서 만든  수

공기타로 배웠다고 한다. 그가 본떠 만든 기타 모델은 휀더  스트래토

캐스터 (Fender Stratocaster)로 비록 neck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고

플랫의 위치도 정확하지 않은 엉성한 기타였지만 초보자인 그가  익히

기에는 별 불편이 없는 기타였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

지만 그는 기타 연주를 순전히 레코드로 듣고 익혔다.

 그가 즐겨 듣던 연주자들은  미국인  록  연주자중  Eddie  Cochran,

Buddy Holly 등이었다. 그밖에도 또 그는 일찍부터 동양 음악에  매력

을 느꼈는데 왜냐하면 동양음악의 음부(音符)는 서양음악의  표준음계

로서는 짚어낼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음악에 심취한 그는 윔블던에 있는 예술학교에 입학했고, 18세  되는

해에는 그의 첫 그룹이라고 할 Tridents를 조직해 활동했다. 이  그룹

은 64년경 당시 영국 블루스 연주인들의 집합지였던 Eel  Pie  Island

그리고 London의 100 Club 등에 출연했다.

 그가 Yardbirds라는 당대에 명성을 떨치던 그룹에 가입하게 된  것은

Eric Clapton의 후임으로 Yardbirds에  가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Jimmy Page가 그 요청을 거절하고 그대신 Jeff Beck을 추천했기  때문

이었다. 당시 Jimmy Page는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그룹활동을  감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Beck이 Yardbirds에 가입한 65년 당시 Yardbirds의  구성원은  Keith

Relf(보컬), Chris Dreja(기타), Jim  McCarty(드럼),  Paul  Samwell

Smith(베이스)였고 이들은 이미 Eric Clapton과 함께 명곡 'For  Your

Love' 등을 내놓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Clapton의  탈퇴  이유는

Yardbirds가 차츰 상업성이 짙은 밴드가 되어가는 데에 실망을 했을뿐

아니라 John Mayall 의 Bluesbreakers 그룹에서 가입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Jeff Beck이 Yardbirds에 몸담았던 1년반여의 기간은 Yardbirds에 있

어서 가장 인기곡이 완성하게 쏟아져 나왔던 시기였다. 이 당시  나온

인기곡들중 대표적인 것들은 'Heart Full of  Soul',  'Evil  Hearted

You', 'Still I'm Sad', 'Shapes of Things', 'Over Under,  Sideways

Down' 등을 들 수 있다.

 Jeff Beck은 선임자인 Eric Clapton과는 다른  유형의  기타리스트였

다. Clapton이 정통파였다면 Beck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기발한 연주

를 벌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기타리스트였다. 또  그의  사운드에는

여러 가지 사운드에서 영향 받은 바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굳

이 구분하자면 Johnny Burnette Trio의 Paul Burlison,  그리고  Gene

Vicent의 그룹 Blue Cap Cliff Gallup 등에서 볼 수 있는  컨트리풍의

Rockabilly, 그리고 T-Bone Walker의 짙은 블루스 감각을 이어받은 사

운드라고 할 수 있었다.

 Yardbirds로서는 Clapton과 상업성을 두고 논란을  벌인뒤라  그들의

음악 노선을 크게 반대하지 않고 인기곡마저 여러곡 내준 Jeff Beck이

이상적인 기타리스트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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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d...   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2)                 10/31 22:57   152 line

           - Yardbirds 탈퇴, Jeff Beck Group 결성

 65년 11월에 발표된 Yardbirds의 앨범 'Having A Rave Up'은  Beck의

솔로 연주가 압권을 이루는 걸작 앨범이었다.

 66년 7월에는 'Over Under, Sideway Down'이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에

서 Beck은 Feedback 주법의 결정판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주법이  뛰

어나게 발휘된 곡은 'Lost Woman' 이었다.

 67년 초, Yardbirds는 인기의 절정을 누렸고 이에 힘입어 이들의  대

표곡집 'Yardbird's Greatest Hit'도 발매되었다.

 하지만 Keith Relf가 방항적인 기질을 발휘하는 바람에  Yardbirds는

당시 골머리를 앓았다. 덕분에 Beck은 키스 랠프가 공연을 펑크 낼 때

면 Paul Samwell Smith와 함께 리드 보컬을 맡아야 하기도 했다.

 결국 Smith는 Relf의 소행에 분격한 나머지 그룹을 탈퇴했고  후임으

로는 Jimmy Page가 가입했다. 처음에 Page는 베이스 기타를 맡아 연주

했으나 Chris Dreja가 베이스를 익혀 어느정도  연주를  해주자  Jeff

Beck과 함께 2인조 리드 기타 연주를 하게 되었다. 당시 Beck은  건강

상의 문제로 다소 침체되기도 했으나 건강이 회복됨에 따라  팝계에서

는 유례없을 만큼 뛰어난 2인조 리드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Page의 말을 들어보면 Beck은 섬세하고 까다로운 성

격의 인물이나 한번 연주에 몰두하면 대단한 열정을 기울이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Yardbirds는 차츰 기울어져 가는 밴드였다. 새로운 프로

듀서 Mickie Most를 기용해 내놓은 앨범 'Little  Games'도  창의력의

고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 덕분에 결국 Beck은  Yardbirds를

탈퇴하고 그의 탈퇴후 Yardbirds는 'Kieth Relf & the Yardbirds'라고

비꼬는 사람들의 비난속에 해산의 길로 치닫다가 결국 68년 Luton  기

술대학 공연을 끝으로 해산하고 말았다.

  Beck이  Yardbirds를  떠난  것은  66년  11월의  일이었다.   그가

Yardbirds 시절에 남긴 업적중에는 feedback 주법을 실험했다는 것 그

리고 또 그밖에 여러가지 전자 효과음을 사운드에 도입하려 했다는 점

을 들 수 있겠다.

 Yardbirds를 떠난 후 Beck은 67년 중반까지 솔로로 세션 활동을 하며

지냈다. 또 이당시 그는 'Hi Ho Silver Lining' 같은 팝 취향  싱글을

내놓아 약간의 인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68년 3월에 와서 Beck은 자신의 그룹 Jeff Beck Group 을  결성했다.

창단원은 Rod Stewart (보컬), Mick Weller (드럼), Ron  Wood  (베이

스, 하모니카) 등이었다.

 당시 Rod  Stewart는  기타리스트  Peter  Green,  드럼  주자  Mick

Fleetwood, 베이스 주자 한명과 함께 Shotgun Express 라는 그룹을 조

직해 활동하다가 해산한 뒤였다. Express의 해산후  Peter  Green  과

Mick Fleetwood 는 그룹 Fleetwood Mac을 결성하게 된다.

 이 Jeff Beck Group에 모인 구성원들은 모두 블루스에  깊은  애정을

가진 인물들이어서 그룹 결성후 이들의 사운드 노선도 자연히  블루스

색채가 짙은 사운드로 갈수 밖에 없었다.

 사실 Beck은 Yardbirds 탈퇴후 세션활동을 하는 기간에도 한때  기타

기피증세가 있을 만큼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당시 난 기타에 손도 댈 수 없었어요. 기타 연주를  다시  하려니까

내겐 이제 가망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하지만 Jimmy Page와 함께

세션을 하다보니 다시 기타에 대한 의욕이  생겼고  그  덕분에  Jeff

Beck Group 을 결성하게 된거죠." Beck의 회상이다.

 Stewart는 Jeff Beck Group에 가입하기 전부터 이미 Beck의 기타  연

주에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이는 Beck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Stewart

의 블루스 색채 짙은 창법에 대해 썩  호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Stewart가 Jeff Beck Group에 가입한 것은 Beck에 대한  존경심보다도

동정때문이라고 해야 더 가까웠다.

 "나는 우리 모두 Beck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타리

스트가 'Hi Ho Silver Lining' 같은 곡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죄악

이라고 보았거든요."

 Jeff Beck이 이러한 Stewart의 생각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Rod Stewart의 보컬에서 상업적인 히트의 가능성을

본 프로듀서 Mickie Most는 이들 Jeff Beck 그룹에게 Graham Gouldman

의 'Tallyman'을 취입시켰다. (Gouldman은 후에 10 cc 를 결성한 인물

이며 Yardbirds의 'For Your Love'를 쓴 작곡가이기도 하다.)

 Stewart는 이 곡에 불만이었지만 리더인 Beck이 아무말 안하는  바람

에 그냥 녹음에 응했다.

 "Jeff는 그냥 Mickie Most의 판단에 맡겨 버릴 뿐이었죠. 이 곡은 정

말이지 Beck같은 기타리스트가 녹음할 곡이 아니었어요."

 또 이들이 녹음한 곡으로 'Love Is Blue', 'Rock My Plimsoul'  등이

있는데 Stewart등 다른 구성원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

고 Jeff Beck은 이 곡을 모아 'Truth' 라는 이름의  앨범으로  발매했

다. (68년 8월)

 이 앨범중 'Rock My -'는 이들 Jeff Beck Group 구성원들이 그룹으로

서 호흡을 가장 잘 맞춘 곡이어서 Stewart도 이 곡만은 마음에 들어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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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큇

JEFF BECK 이야기 (3)                 11/04 01:27   152 line

         - 인간관계에 골치 앓았던 Jeff Beck Group

 'Truth' 발매후 결국 Jeff Beck도 이 앨범이 신통치 않은 앨범이었음

을 인정했다. '앨범 여백을 채우려고 적당히 곡을 쑤셔 넣은  앨범'이

라는 것이 그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앨범에 대한 차트 반응

은 그다지 나쁘지 않아 15위를 기록했다. 이 Jeff Beck Group에  대해

서 미국 팬들은 영국의 새로운 수퍼밴드라고 반가워했고 열광적인  반

응을 보냈다. 덕분에 Jeff Beck Group은 순조롭게 첫 미국 공연에  착

수할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한 록계의 기대를 입증하는 것중 하나는 키

보드주자인 Nicky Hopkins  라는  연주자가  보수를  더  준다는  Led

Zeppelin의 요청을 뿌리치고 이들 Jeff Beck Group의 미국 순회공연에

참가한 사실을 들 수 있다. (Beck은 항상 Led Zeppelin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Led Zeppelin 1집에 수록된 'You Shook Me'를 Beck도 리바이

벌 수록해 묘한 라이벌 관계임을  입증했다.  관심있는  분은  Beck과

Page의 연주솜씨를 비교해 보시라...)

 하지만 이러한 순조로운 출발에도 불구하고 Jeff Beck Group은  내분

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Beck의 그 유명한 까다로운 성미가 이 새

그룹에서도 역시 잠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내분을 안고 있었지만 68년 5월에 개시된 이들의 첫 미국  순회

공연은 Rod Stewart라는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미국에 소개한 점에서도

성과가 있었고 좋은 반응을 얻은 공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순회

공연이 막바지에 이른 69년 2월에 Beck은 베이시스트 Ron Wood와 드러

머 Mick Waller를 해고하고 말았다. (미국 공연시 Stewart는 지금과는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서 뒤돌아서거나 앰프나 스피커뒤에 숨어서  노

래를 했다고 한다. 요즘은 관객들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만...)

 당시 Beck은 록계의 매스컴에 대고 이들 Wood와 Waller의 해고  이유

에 대해 '그들의 연주 솜씨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록 비평가는 'Yardbirds의 'Shape Of Things'에서  보인

Beck의 솔로 연주와 앨범 'Truth'의 졸작 연주에서 벌어진 격차는  어

떡할 것인가?' 하고 비꼬기도 했다.

  당시  이들  Wood와  Waller는  Jeff  Beck  Group의  두번째  앨범

'Beck-Ola'의 제작을 앞두고 있었다. Stewart는 이 일로 해서 크게 놀

랐다. Stewart가  본  바로는  Beck이  Ron  Wood를  내보내고  Nicky

Hopkins를 Waller 대신 연주를 시키려는 목적이었던  듯싶다고  한다.

어쨌든 Stewart는 Beck의 이 처사에 대해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에

소감을 밝혔다.

 69년 3월 Beck과 Stewart와 Hopkins는 영국으로 돌아와 드럼  주자로

Tony Newman, 베이스 주자에 Doug Blake라는 인물들은 각각  가입시켰

다. 하지만 Blake는 불과 단한번의 공연을 치룬 뒤 해고 당했고  그의

후임으로는 Ron Wood가 다시 들어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Wood는 6

년뒤 Rolling Stones에서 탈퇴, Faces에 들어갔다가 다시 Stones로 가

재가입하는 일에 있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Wood는 Jeff  Beck

Group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고 가입한 것이 아니라 Stewart의 말에 의

하면 다른 밴드를 찾을 동안 임시방편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런 형편이니 그룹 구성원들이 그룹에 만족하고 있었다고는 전혀 보

기 어려웠다. 물론 각 구성원들의 연주도 좋았고 음악도 향상  일로에

있었지만 그룹 구성원들 간에는 악감정과 적대감만 있었던 것이  당시

Jeff Beck Group의 형편이었다.

 "당시 우리는 서로가 피하려고만 했으니까요. 덕분에 어떤  때는  한

사람은 이쪽 호텔에, 한 사람은 저쪽 호텔에 각각 묵고 있는 거북스러

운 입장이었죠."

 이런 상황속에서 69년 6월에는 앨범 'Beck-Ola'가 발매되었다.  하지

만 너무나 우연하게도 이 'Beck-Ola'가 발매된 날은 이들 그룹이 해산

된 일자와 거의 같은 날이었다.

 앨범 'Beck-Ola'는 사운드가 일정한 취향으로 된 앨범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운드가 겹쳐진 앨범이었다. 또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보면  이

앨범이 미국의 록팬들은 겨냥하고 만든 앨범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미

국은 50년대의 록큰롤이 리바이벌되던 시기였는데 이  'Beck-Ola'에는

그러한 사조에 맞추려는 듯이  Elvis  Presley의  'Jailhouse  Rock',

'All Shook Up'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Mick Waller 대신  Tony  Newman이  드럼을  맡았으며

Mickie Most가 역시 프로듀스를 맡았다.

 이 앨범에서 Beck은 앞서의 앨범 'Truth'보다 한층 진일보한 기타 연

주를 들려주었는데 'Plynth'나 'Rice Pudding' 등의 곡에서  그의연주

는 번뜩이는 섬광같다. 이 앨범 역시 차트 15위를 차지했다.

 이 제 1기 Jeff Beck Group은 Jeff Beck의 비중이 너무 과다해서  실

패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러한  Beck의  비중에  눌려  Rod

Stewart는 아직 완전히 자신의 창법을 개발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

다. 사실 Rod Stewart는 Jeff Beck을 연주인으로서는 존경했지만 그룹

재적시 우애를 주고 받지는 못했던 듯싶다.

 "난 Jeff Beck Group에 2년 반을 있었지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적은 한번도 없었죠. 그와 얘기할 때면 언제나 그의 셔츠나 다른 것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했으니까요."

 또 Stewart는 Jeff Beck Group 해산후 Jeff Beck이 그에 대해 비판적

인 언사를 많이 한 것에 비해 Beck에 대한 비난은 거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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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 be continued ... 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4)                 11/07 16:39   63 line

          - 제 1 기 Jeff Beck Group  해산후 침체

 Jeff Beck Group 해산 후 Ron Wood와 Rod Stewart는 함께 손잡고  새

로운 그룹 Faces 결성계획에 몰두했다.

 한편 Beck 역시 수퍼 그룹 결성이라는 거창한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

했다. 그가 함께 그룹을 결성하려 마음먹은  인물들은  당시  Vanilla

Fudge 에 있던 뛰어난 연주자들  Tim  Bogert,  Carmine  Appice였다.

Vanilla Fudge의 핵심 인물 2명을 빼온다는 것은 Vanilla Fudge  그룹

을 깨뜨려 버리려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 Beck은 이러한 계획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으나  만일

'그러한 그룹이 실현된다면' 하는 기대에 벅차 흥분을 누를  수  없었

다. 게다가 Bogert, Appice 양인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그는 기뻐

서 어쩔줄을 몰랐다.

 "나와 Tim이 Vanilla Fudge 를 떠났을 때  우리는  Jeff  Beck,  Rod

Stewart 와 함께 그룹을 결성하자고 하였었죠. 하지만 그들의  매니저

들은 허락하질 않았어요." 당시 상황에 대한 Appice 의 설명이다.

 "Jeff 는 당시 Led Zeppelin과 경쟁할 만한 그룹을 원했어요. 왜냐하

면 그는 자기가 연주할 것을 Led Zeppelin이 먼저 내놓아 인기와 명성

을 얻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에게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는 진짜 그룹을 원했던 것이지만 그의 매니저 측에선 그런 모험을  원

치 않았던 거죠. 그러던 중 Jeff 는 자동차 사고를 당했죠."

 교통사고를 당하기 얼마전 Beck은 Motown에서 Stevie Wonder, Marvin

Gaye, Temptation 등을 위한 세션 연주도 해주었는데  모타운의  세션

연주인들은 Beck같이 개성 강한 기타 영웅은 그다지 반기지 않았기 때

문에 이 당시의 세션중에서는 그다지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69년 12월에 자동차 충돌 사고로 부상을 입은 Beck은 그 덕분에 거의

2년간을 활동 정지 상태로 보냈다. 그 동안 Mickie Most는 Beck의  공

백을 메꾸기 위해 Beck의 대표곡집 'Best Of Jeff  Beck',  Stewart와

연주한 곡들을 담은 'Jeff Beck With Rod Stewart'  등을  발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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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 be continued ...  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5)                 11/23 12:45   113 line

# 안녕하셔요...
# 그동안 개인사정(졸업시험, 마지막 레포트, 취직시험 등등)으로
# 연재 하던걸 계속 미루어 왔는데요...
#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많이 올리겠습니다.
# 그리고 제가 연재한 Judas Priest 이야기는 예전 월간 팝송 85년
# 10월호에서 옮겼구요..지금의 Jeff Beck 이야기는 월간 팝송 86년
# 8월호에서 옮김을 밝히는 바입니다. 저의 생각과 느낌을 미진하다고
# 생각되는 부분에 약간의 첨삭을 가했습니다.
# 계속 성원해 주세요...감사합니다..

                    제 2 장   솔로시대

              - Led Zeppelin과 경쟁할 목표 세워

 71년 10월, Beck은 거의 2년만에 재기앨범 'Rough & Ready'를 내놓았

다. Jeff Beck Group의 구성원은 지난번 제 1기 그룹의 구성원들은 하

나도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전혀 새로운 인물들로 대치되었다. 보컬에

는 Bob Tench, 키보드에  Max  Middleton,  드럼에  그  유명한  Cozy

Powell 등 실력있는 연주자들로 구성된 이들 제 2기 Jeff Beck  Group

과 함께 Beck은 자신이 직접 프로듀스를 맡아 앨범을 완성시켰다.

 하지만 앨범 'Rough-  '는  제  1기  Jeff  Beck  Group이  내놓았던

'Truth', 'Beck-Ola' 보다 팬들의 관심을 덜  끌었던  앨범이다.  Bob

Tench의 거의 광적인 보컬, 그리고 Jeff Beck의 약간은  진부한  작곡

내용은 확실히  앞서의  앨범보다  흥미가  뒤떨어진다.  하지만  Led

Zeppelin의 경쟁 상대가 되려는 Jeff Beck의 야심답게 군데 군데 결이

좋은 사운드와 우수한 연주 기법을 엿볼 수 있다.

 키보드 주자 Max Middleton은 재즈 취향의 연주자여서 이 앨범에서도

그러한 그의 재즈 취향을 적잖이 엿볼 수 있다. 또 Santana  그룹에서

보이는 래틴 음악적인 요소도 가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비평가들의 평은 그다지  좋은것은

아니어서 꽤 호평을 준 측도 있었지만 대체로 중간  정도의  평점밖에

얻지 못했다.(차트 49위)

 72년 5월에 발표된 앨범 'Jeff Beck Group' 역시 'Rough- '에 참가한

구성원들이 그대로 만든 앨범이다.

 이 앨범은 차트 순위도 그렇고 (15위), 음악 내용면에서도 'Rough- '

보다는 흥미를 끄는 앨범이다. 작곡중 'Raynes Park Blues'는 길고 차

분하며 사색적인 분위기를 주는 아름다운 곡인데 여기에 Beck의  끄는

듯한 기타 선율이 가미되어 있다. 이에 비해 'Situation'이라는  곡은

Beck의 격렬한 연주가 변하지 않은 솜씨 그대로 담겨있는 곡이다.  또

'Definitely Maybe'는 Beck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담긴 뛰어난 곡이

다. Duane Allman, Eric Clapton으로 이어지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Jeff Beck의 일급 장기는 아니지만 이곡에서의 그의 슬라이드  연주는

Clapton의 솜씨와 맞먹을 만하다.

 하지만 위에 든 몇몇곡을 빼고는 대체로 Jeff Beck의 무거운  연주가

진부함을 느끼게 하는 점이 면면히 보이기도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제 2기 Jeff Beck Group의 활동기간은 1년여  였는데(72년  해산)

앨범 성과는 물론 그룹내의 분위기도 제 1기 Jeff Beck Group에  비해

크게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결코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제 2기 Jeff Beck Group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

자 Beck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 구상했던,  Carmine  Appice,  Tim

Bogert와의 그룹 결성 계획을 다시 추진시키게 되었다.

 당시 Appice와 Bogert는 미국에서 Cactus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활동

하고 있었다. 이 Cactus는 강한 Boogie풍의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  그

룹이었으며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공연으로 이름을 쌓아올

리고 있었다.  이들의  앨범중  'Cactus',  'One  Way  Or  Another',

'Restrictions' 등은 하드록 팬들에게는 들어볼 만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그룹은 그룹의 중추인물들이었던 Bogert와 Appice가  Jeff

Beck과 합류하는 바람에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이렇게 몇년뒤에야 어렵게 결실을 맺은 그룹 Beck, Bogert &  Appice

였지만(BBA라 약칭) 이들 그룹의 활동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앨범

역시 한장밖에 발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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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d....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6)                 11/24 12:03   126 line


           - 수퍼 그룹 꿈깬 Beck, Bogert & Appice

 Jeff Beck은 이 그룹을 결성할 당시 Appice, Bogert와 공동의 음악적

취향 아래 각자의 빼어난 연주 솜씨로 획기적인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는 거창한 야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앨범 한장과 약  2년간의  활동을

놓고 볼 때 Beck의 이러한 기대는 조금밖에 채워지지 않은 셈이었다.

 73년 3월에 발매된 BBA의 앨범 'Beck, Bogert & Appice'는 Beck이 하

드록 사운드로 돌아간 앨범이었다. 하지만  '수퍼그룹'이라는  거창한

예우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기대 이하의 평점을  받은  작품이었다.

차트순위는 당시까지 Jeff Beck이 내놓은 앨범중 가장 높은 순위  (12

위) 였지만 음악적인 내용은 그 칭호에 밑도는 것이었다는 것이  록계

일반의 평가였다.

 이 앨범이 이렇게 기대 이하의 앨범이 된것은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구성원 서로간의 음악적인 불일치 때문이었다. 때문에 앨범을  내놓기

전이나 내놓은 후나 이들에게는 해산이 불가피하다는 느낌이 짙게  떠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앨범 'BBA'의 수록곡들은 사운드의 취향이 산만한 느낌이

다. 특기할만한 곡은 우선 Stevie Wonder의 곡을  편곡한  'Supersti-

tion'이 있는데 원곡에 훨씬 강한 보컬과 리듬을 넣어서 하드록  팬들

에게는 만족감을 줄만한 곡이다. 이와는 반대로 Curtis Mayfield의 곡

인 'I'm So Proud'에서는 은근하게 끄는 창법과 연주를 가미,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또 그런가 하면 'Why Should I Care',  'Livin' Alone'

에서는 Grand Funk Railroad를 압도할 만한 돌진적인 사운드를 들려주

고 있다. Talking Modulator를 사용한 앨범 첫곡 'Black Cat Moan' 에

서는 Beck이 직접 노래하며 특유의 카랑카랑한 기타연주를  들려주며,

그외에도 이들 3인의 연주가 극치를 이루는 밸러드 'Oh To Love You',

'Sweet Sweet Surrender'가 감동을 주고 있다.

 이상적인 밴드를 꿈꾸며 결성한 BBA가 이렇게 기대에 맞추어 주지 못

하자 Beck은 실망끝에 일본에서의 실황앨범 'BBA Live In Japan'을 내

놓고 그룹을 해산시켰다.

 앨범 'BBA Live- '는 록계에서는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여겨지는 작품

이나 일본에서만 발매되어 국내에서 손쉽게 구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

다.

 BBA의  사운드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Appice,  Bogert가  재적했던

Cactus 그룹의 사운드 즉 블루스 색채 짙은 부기  사운드를  연장시킨

듯한 느낌이 짙다.

 BBA는 'BBA'앨범 말고도 스튜디오 앨범은 한장 더 녹음했으나 이  앨

범은 발매되지 못하고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여하튼 BBA의  해산

은 록계 누구의 눈에나 당연한 것이었다.

 개성강한 드러머 Carmine Appice는 BBA를 떠난뒤 Rod Stewart Band에

가입했으나 Stewart Band가 상업성 지향으로 흐르는 데에  불만을  품

고 솔로 앨범등을 발표하며 정통 록 사운드를 추구해  왔으며  드러머

양성소를 차려 그와 같은 강렬한 드러머 배출에 힘써오다 King  Cobra

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BBA의 해산은 너무 개성강한 인물들끼리의 만남에도 그 이유가  있었

을 거라는 것이 록계의 추측이다.

 Jeff Beck Group에 이어 BBA 역시 Beck 자신의 기대치를  실현해주지

못하자 그는 심각한 딜레머에 빠졌다.   BBA의 해산후 75년 솔로 앨범

'Blow By Blow'를 내놓기 전까지 1년여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이러한 갈등을 보여준다.  이렇게 갈등으로 1년을 보낸 그가 최종적으

로 내린 단안은 솔로로 한번 나서보자는 것이었다.

 75년 3월에 발매된 그의 솔로 앨범 'Blow By Blow'는 그의 이러한 단

안 아래 George Martin (Beatles의 PD였음)의 프로듀스로 완성된 앨범

으로 Beck의 앨범중 아직까지도 최고 걸작으로 손꼽는 앨범이다.

 앨범의 우수성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록계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음악

적 방향이 재즈 취향으로 일관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곡이 모두 연주

곡이라는 점일 것이다. 사실 보컬리스트  문제는  지난번  Jeff  Beck

Group 부터 그를 괴롭혀온 문제인데 이 'Blow By Blow'에서는  과감하

게 보컬을 가미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Beck은 자신의 기타  사운

드에 어울려줄 만한 보컬리스트를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런  보컬리

스트는 없다고 단념한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Beck은 이 앨범에서  기

타리스트로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완벽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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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d....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7)                 11/26 12:35   155 line

         - 실력파 키보디스트 Jan Hammer 와의 만남

 앨범 'Blow By Blow'에는 전반적으로 재즈의 색채가 강하지만 그  아

래에는 록, Funk 등 다양한 스타일이 맥락을 이루고 있다.

 평론가에 따라서는 이 앨범에서 Beck이 들려준 재즈연주가 단순히 기

교와 기법에 충실한 재즈일뿐 재즈 본래의 감성과 메세지가 없다고 비

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앨범에서  Beck의

연주가 정교하고 감정에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Beck은 이 앨범에서 재즈-록의 Fusion을  훌륭히  성공시켰고

재즈-록 휴젼 사운드에 대한 일반 록팬들의 호응을 얻어낸 것이다. 높

은 차트순위(4위) 역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앨범중 일반 록팬들이 가장 친근하게 접근할 만한 곡은  비틀즈의

노래 'She's A Woman'을 연주곡으로 편곡한 곡이다. 이 곡에서 보이는

Jeff Beck의 주법은 Pulling Off 주법(줄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

어 음을 내는 주법)으로 이 주법에는 Jimmy Page, Richie Blackmore가

Jeff Beck과 겨룰 만한 막상막하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이 앨

범에 대해 Jimmy Page는 '팬들보다는 기타리스트 자신들이 듣고  배워

야할 앨범' 이라고 격찬하고 있다. 그밖에 'Thelonius'는 재즈계의 거

성 Thelonius Monk에게 헌납하는 곡이다. 또한 Stevie Wonder의  작품

을 멋지게 리바이벌한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84년초  자선

공연 'The Secret Policeman's Other Ball'에서 Eric Clapton과  함께

연주하여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이  앨범의  백미는

'Scatterbrain'과 'Freeway Jam'이다. Jeff Beck의 쉴새 없이 몰아 붙

이는 기타연주 전개가 듣는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한편  이  앨범중  키보드  연주는  Jeff  Beck  Group의  동료  Max

Middleton이 우정 참가해 주었고 Phil Chenn, Richard Bailey 라는 인

물들이 베이스와 드럼을 각각 맡아 해주었다.

 65년에 Yardbirds의 Chris Dreja는 Beck에 대해 '그는  1975년형  인

물' 이라고 표현했다는 일화가 있었는데 그 말이 예언이라도 된 듯 75

년에 Beck은 이 앨범 'Blow -'로 7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셈이다.

 앨범의 성공에 뒤이어 Jeff Beck은 75년을 미국 순회공연으로 장식했

다. 특히 이 순회공연은 저 유명한 Mahavishnu Orchestra와 함께 공동

으로 치룬 공연이었는데 출연진이 이렇게 쟁쟁한 만큼 좋은 성과를 이

룬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 이 순회공연중 Jeff Beck은 체코 출신

키보드 귀재 Jan Hammer를 만나게 되는데 그뒤 그와 함께 Beck은 종종

활동을 같이 하게 된다.

 76년 6월에 발매된 두번째 솔로앨범 'Wired'에는 이 Jan Hammer가 참

가하게  되는데 이 앨범 역시 'Blow -'에 이어 성과가 좋았고  (16위)

비평가들의 평도 좋아 Beck이 솔로 체질임을 보여주었다.

 이 'Wired'는 Beck이 'Blow -'에 이어 다시 탁월한 재즈-록 휴젼  사

운드를 들려준 앨범인데 'Blow -'에서처럼 Beck의 연주는  간결하면서

도 지적인 체취가 엿보이고 있다. 여기에 Jan Hammer의 키보드 반주는

Beck의 사운드에 더할 나위없이 긴장감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Jan Hammer 외에도 이 앨범에는 실력파 연주인이자 Mahavishnu의  일

원인 Narada Michael Walden도 참가했다.)

 이 앨범중 특기할 곡은 Walden이 쓴 'Come Dancing', 그리고  재즈계

의 거성 Charles Mingus의 곡 'Pork Pie Hat' 등이 있는데 'Pork -'는

Beck이 재즈에 대해 우수한 해석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곡이다.

 연주기법상으로는 Jan Hammer 작곡의 'Blue Wind'를 눈여겨볼 만한데

Jeff Beck이 아니면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절묘한 쵸킹(줄을 세게 당

겨 긴장감을 더하여 음정을 올림)이 발휘되고 있고 Jan Hammer와의 완

벽한 컴비네이션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보통의 기타리스트들은 리프(Riff : 여러번 사용되는 기본 프레이즈)

에 이 쵸킹을 사용하는데 Beck은 이 곡에서 보듯 리프외에도 다양하게

쵸킹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비평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서 'Blow -'나 마찬가지로 메시지 없

는 기교 위주의 재즈 사운드 앨범이라고 비판한 인물들도 있었다.

 'Wired' 발매후 Beck은 Jan Hammer와 함께 순회공연에 나섰다.  76년

에 수개월간 벌인 이 순회공연 실황은 Live Album  'Jeff  Beck  With

The Jan Hammer Group Live'로 발매되어 차트 23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은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Jeff Beck의 앨범중 최저  수

준의 졸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의 비판을 참고해  보면  이

앨범이 졸작이 된 이유는 Beck과 Hammer 양인이 서로의 연주를 절제하

지 않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나치면 부족

한 것만 못하다'는 격언이 들어맞은 셈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이 Live 앨범 역시 Jeff Beck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뛰어난 앨범이라 생각하며, 실황연주 앨범이 드문 Beck의  연

주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평론가들의 혹평이 이

해가 가지않는다. 이 앨범에는 스튜디오 앨범에는  없는  'Full  Moon

Boogie'와 'Earth'도 수록되어 있고 특히 'Full -'에서 보여주는 Beck

과 Hammer의 연주는 그야말로 신들린 손가락이라 표현할수 밖에 없다.

그외에 'Freeway Jam'과 'Scatterbrain', 'Blue Wind'가 스튜디오  앨

범과는 또다른 곡 해석과 (전혀 다른 코드 진행이지만 결국은  원곡을

충실히 소화해 내는 Beck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연주로 감흥

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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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d...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8)                 11/27 11:36   118 line


               제 3 장  기복이 심했던 80년대

            - 3년만에 내놓은 앨범 'There & Beck'

 Jan Hammer와 순회공연을 끝낸 뒤 Jeff Beck은 80년도까지 거의  3년

간을 활동정지 상태로 보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기간동안  Beck

은 자동차 경주에 몰두하여 지냈다고 한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부정기

적으로 연주하기도 했지만 그와 비견되는 인물들인 Eric Clapton이 솔

로로, Jimmy Page가 Led Zeppelin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것에  비하

면 은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80년 7월에 Beck은 앨범 'There & Beck'으로 3년만에 재기를  이루었

다. 이 앨범은 수록곡 대부분이 그가 과거에 Jan Hammer와 녹음한  곡

이어서 다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차트 순위는(21위) 물론, 비평

가들의 평가 역시 재기 앨범으로서는 별로 손색이 없었다.

 이 앨범에서 Beck은 재즈-록 휴젼 사운드에서 약간 방향을 돌려 하드

한 취향의 록 사운드를 위주로 들려주고 있는데 순수한  연주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새삼 자각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앨범에 참가한 인물들로는  Hammer 말고도,  Tong Hymas(키보드),

Mo Foster(베이스), Simon Phillips(드럼)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영국인이라 Beck으로서는 Yardbirds 시절 이후 처음으로 영국인만  모

인 밴드에서 연주를 한 셈이었다.

 Jan Hammer, Stanley Clark등 여러 재즈계의 베테랑들과의  접촉으로

Jeff의 연주는 자연스럽게 성장해갔는데 그동안 갈고 닦은 감성이  이

앨범에 자연스럽게 담겨있다. 그당시 성행하던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투명히 장대한 음의 세계를 창조해 냄으로서 Beck은 그야말로  고독한

기타 영웅으로서 추앙받을 만한 인물임을 입증한 작품이며 어느곡에서

나 탁월한 설득력으로 돌진해 나가는 Jeff의 기타 연주가 돋보인다.

 이 앨범 발표후 Beck은 또다시 활동정지 상태로 들어갔다. 그동안 그

는 자신의 앨범은 제작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앨범에는 많이 참

가했는데 그 중에는 Mick Jagger, Rod Stewart, Tina  Turner,  Diana

Ross 등의 세션이 있었다.

 한편 다발성 동맥 경화증에 걸린 기타리스트 Ronnie Laine을 위해 벌

인 ARMS(다발성 동맥 경화증 치료 연구 기금)  자선  콘서트에  참가,

Eric Clapton, Jimmy Page와 함께 연주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거의 5년만에 발표한 앨범 'Flash'는 여러가지 점에서 변화를 준  작

품이다. 우선 이 앨범에서 뚜렷한 것은 70년대 중반에 나온 그의 앨범

들에 비해서 상업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만든 앨범이라는  점이다.  또

싱글 발매를 노린 듯한 곡들 'People Get Ready', 'Escape' 등이 수록

되어 있고, Jeff Beck Group 시절의 동료 Rod Stewart를 오랜만에  자

신의 앨범 제작에 참여시켰다.

 이 앨범은 Nile Rodgers와 Arthur Baker가 공동으로  제작했는데  그

덕분에 80년대의 팝계에서는 빠져서는 안되는 댄스 뮤직의 리듬이  가

미된 것도 이 작품이 보인 변화중 하나이다.

 이 앨범에서 Beck은 톱니같이 날카로운 Distortion과 뜨거운  열광선

같은 Feed Back 연주를 들려주어 앨범의 상업성에 실망한 팬들에게 그

실망감을 보상시켜  주고  있는데  이  연주를  듣노라면 과거  Jimmy

Hendrix의 걸작 'Electric Ladyland'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한 점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곡이 바로 'Ambitious'인데 바이브

레이션 강한 연주속에서 곡의 핵심적인 소절에 이르면 성난 파도 같은

리드 기타 연주가 이어진다. 덕분에 이  앨범이  80년도의  'There  &

Beck' 이후 처음 나온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연주를 듣다 보

면 그가 시대를 타지 않는 기타리스트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앨범은 Beck이 Rod Stewart와 함께 옛날의 컴비를 보여주고  있는

데 Curtis Mayfield의 영감 넘치는 밸러드 'People Get Ready'는 예전

'Truth' 앨범에서 이들 양인이 'Ol' Man River', 'Morning Dew'  등의

곡을 소울 감각이 넘치게 만들었던 일을 회상시켜 주며, 초인적인  기

타 테크닉이지만 인간적인 순수함과 따스함을 잃지 않은 역작으로  평

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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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be continued...from KEEL

JEFF BECK 이야기 (완결)              12/01 01:09   140 line


               - 앨범 'Flash'로 그래미 안아

 5년만에  발표된  앨범  'Flash'는  차트  35위까지  진출했고  싱글

'People Get Ready'도 차트 상위를 기록했다. 또 이 앨범중  'Escape'

는 Beck에게 제 28회 그래미상 '최우수 록 악기  연주'상을  안겨주었

다. 이 수상은 Beck으로서는 처음 기록하는  그래미상이기도  하였다.

이는 또 5년만에 록계에 되돌아온 Beck이지만 그의  영향력이  조금도

줄지 않았음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했다.

                     - Jeff Beck의 Style

 Jeff Beck은 그의 기질 그리고 여러 연주인들을 기용했다가 또  해고

시킨 전과로 인해 록계의 악동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사실 그는  70년

대 중반, Punk라는 사조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부터 벌써 록계에

서는 Punk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즉 그는 록계의 시류를 항상  거

부하고 시대를 앞선 기타리스트로 평가될 만하다.

 또한 사운드의 장르 역시 거부한 것도 그의 매력중  하나이다.  그는

재즈 잡지에서 '올 해의 록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가 하면 록 계열의

잡지에서는 '올해의 재즈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 이변을 만든 기타리

스트이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양쪽 장르에서 모두 수용되는 기타리스

트란 흔치 않다. 또 록계의 주류보다 한발 앞서 재즈-록 휴젼등  많은

사운드의 유형에서도 그 어느 기타리스트를 앞지를 만큼 다양하게  만

들어냈다. 팬들이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들  때

문일 것이다.

 물론 Beck의 기타에 대해 Eric Clapton처럼 서정성이 모자라고 기교,

공격성, 날카로움 위주라고 평하는 인물들도 많지만 적어도 유연함 한

가지에 있어서만은 Beck은 Jimmy Page나 Eric Clapton에 비하여  떨어

지지 않으며 오히려 최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편 Beck은 전자  기타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중에서는  처음으로

Fuzztone(Fuzz-box를 이용해 나는 '윙윙'하는 사운드 또는 전자장치를

통해 보통 기타에서 끌어낸 디스토션을 말한다.)을 사용한 기타리스트

이기도 하다.

 또 그는 Feedback 주법을 그 누구보다 폭넓게 사용한 기타리스트이며

Yardbirds 시절에서 볼 수 있듯 선법(旋法)과 인도풍의 음계를 록  사

운드에 가미한 기타리스트로서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가 록 사운드에 가장 기여한 점은 소위 '휴젼 뮤직'의 등장

에 일익을 담당한 점일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에 있어서 다양한  테크

닉을 창출한 점이다.

 우선 그의 기타 주법중 대표적인 것으로서 Jeff Beck 하면  떠오르는

주법으로는 Feedback 주법, Wah-Wah 주법, Slide 주법, Octave  주법,

Arming 주법, Picking Harmony 주법 등이 있다.

 그의 Picking 테크닉은 Picking의 강약, Picking의 위치를  연주전에

충분히 고려하여 정확히 선을 집어내기 때문에 기타리스트들로서는 본

받을 만한 존재이다.

 Feedback 주법에 관해서는 그 선구자로 Jimmy Hendrix 등 여러  기타

리스트를 꼽을 수 있지만 Beck 역시 그 선두주자 대열에 꼭  끼어야할

인물이며 현재도 이 주법에 있어 그의 권위는 인정해줄 만하다.

 Wah-Wah 주법은 Beck이 Eric Clapton의 영향을 받아 특히  BBA  시절

부터 많이 써온 주법인데 앨범 'Blow By Blow' 중 'Cause We've Ended

As Lovers' 같은 곡에서는 그 빼어난 Wah-Wah 페달음을 들을 수 있다.

 Octave 주법은 Beck이 다채로운 곡 해석을 위해  사용하는  기법으로

'BBA Live -' 앨범중 'Jeff's Boogie'(이 곡은 Yardbirds의 앨범에 수

록되어 있다.)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Slide 주법은 Yardbirds 시절, 그의 대명사처럼 쓰이던 주법이다.

 Arming 주법은 다른 기타리스트들로서는 따를 수 없을  만큼  Beck의

특출한 장기중의 하나이다. 컨트롤이 잡  잡혀져  있는  그의  Finger

Vibrato(손가락을 떠는 듯한 빠른 움직임으로 음조 변화를 주는 것)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도저히 쫓기 어려운 절묘한 솜씨이다.

 그가 지금까지 사용한 기타는  Fender  Stratocaster와  Gibson  Les

Paul 두가지인데 어느 한쪽을 편애한 것이 아니라 두가지 기타를 골고

루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Schecter社 기타도 종종  사

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역시 무대 위에서 기타를 두들겨 부순다거나 하느 모습을 가끔 보

이지만 Richie Blackmore나 Jimmy Hendrix 만큼 요란하지는 않다.

 앞으로 몇년이 있어야 그의 앨범을 또 들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나 록

계에서 가장 영향력 많은 기타리스트의 한사람으로서 그의 위치가  불

변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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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월간 팝송 86년 8월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 다음번의 연재도 성원 부탁합니다...(다음엔 뭘 쓰나...)

# 쓰느라 고생한 keel이 ...읽느라 곤역인 언더동 록팬에게...

# 다음 연재 예고....Tommy Bolin 편...
# 오는 12 월 4일이 Tommy의 타계일이죠..그런 의미에서..

 송상헌   (FAB4    )
HISTORY OF JEFF BECK -1-                     07/19 00:37   86 line

제프 벡은 1944년 6우러 24일 잉글랜드 서레이 지방에서 출생했다..
그는 기타를 자기 혼자 독학했는데 그것도 자기가 직접 펜더 스트라토
케스터를 본따 만듣 수공기타로 배웠다고 했다...
그것도 순전히 레코드로 듣고 익히면서 말입니다...
쩝...
첨부터 반말이었네..히...
죄송합니다...
하여간...
그는 버디홀리나 에디 코랜 같은 록 연주자들을 즐겨 들었고...
일찍부터 동양음악에 매력을 느꼈다고 하네요..
그는 음악에 심취하며...
윔블던에 있는 예술학교에 입학을 했고...
18세가 되던해에는 그의 첫 그룹인..TRIDENTS를 조직해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러던 그가 야드버즈에 가입하게 된 것은...
당시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야드버즈에 가입하도록 요청받은
지미 페이지가 건강의 악화로 인해 제프 벡을 강력히 추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프가 가입할 시절의 야드버즈는 FOR YOUR LOVE란 곡을
크게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는데...
제프가 가입한 1년 반년여 동안 이러한 여세를 모아
엄청나게 많은 상업성에 치충하게 됩니다..
하지만 키스 렐프가 그의 반항성을 무진장 발휘하는 바람에..
자주 공연에 펑크를 내게 되고..키스 대신에
폴 샘웰 스미스와 제프가 대신 리드 보컬을 맡아야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릅니다...
이에 격분한 스미스는 그룹을 탈퇴했고..그의 후임으로 지미 페이지가
베이시스트로 가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기타리스트였던 크리스 드레자가 베이스를 어느정도 익히자
야드버즈는 제프와 지미의 2인조 리드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화려한 사운드를 발휘하게 되죠...
당시의 제프를 지미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인물이나 한번 연주에
몰두하면 대단한 열정을 기울이는 인물'이라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뭐..지미가 어떻게 회고하던 간에..
야드버즈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죠...
결국 68년 그룹은 해산하게 됩니다..
한편 제프는 66년 11월 그룹을 탈퇴하게 되는데...
수많은 전문가들은 야드버즈 활동기에 제프는...
휘드백 주법을 포함한 여러 전자효과음을 사운드에 도입하려는등의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히...
야드버즈를 떠난 후 제프는 67년 중반까지 솔로로 세션활동을 하며 지냈고..

HI HO SILVER LINING이라는 팝 취향의 싱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68년 3월 제프는 ROD STEWART(보컬), MICK WELLER(드럼), RON WOOD
(베이스, 하모니카)등을 규합하여 드디어 제프 벡 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블루스를 하던 뮤지션들이었고블루스를 사랑하던 인물들이라..
그룹 결성 후 이들의 사운드가 블루스 짙은 사운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당시 로드와 제프가 만난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사실 제프는 야드버즈 탈퇴후 한때 기타 기피증세가 있을만큼의 슬럼프를
겪었습니다.."당시 난 키타에 손도 댈 수 없었어요..기타 연주를 다시
하려니까 내겐 이제 가망이 없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죠..하지만
지미 페이지와 함께 ㅔ션을 하다 보니 다시 기타에 대한 의욕이
생겼고 그 덕분에 제프 벡 그룹을 결성하게 된 거죠.."
이러한 이유로 제프는 다시 왕성한 활동을 재개하게 되는디...
그가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블루스적인 보컬에) 로드 스튜워트를
끌어 들이게 되죠..당시 로드 역시 제프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보컬리스트라 그들의 만남은 쉬울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막상 그룹에 가입하게 된 것은 존경심보다는 동정심이었다고
해야겠죠.."나는 우리 모두 벡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기타리스트가 HI HO SILVER LINING같은 곡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거든요.."..로드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꺽....
근디 제프벡 그룹이 결성된 이후로도 제프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죠...
다른 구성원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업적인 곡들을 계속
녹음해댔습니다..쩝....
그리고 이러한 곡들은 TRUTH라는 이름으로 발매되기에 이르르죠...
이 앨범 발매 이후 제프는 이 앨범을 "앨범 여백을 채우려고 적당히 곡을 쑤
셔
넣은 앨범"이라고 말했으니까요...
히...하지만 'ROCK MY PLIMSOUL'만은 모든 멤버들이 만족을 느낀
곡이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은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차트 15위를 기록하고..미국 팬들에게...
영국의 새로운 수퍼 밴드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환영을 받았죠...
쩝....
이렇게 제프 벡 밴드는 어정쩡한 출발을 보입니다...
대중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속에서 말입니다...
어쩌겠어요....
다음에는 1기 제프 벡 그룹의 미국 순회공연과 그들의 계속되는 불화..
그리고 해체와 BBA의 결성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쩝.....
그럼 안녕히~!!~

 송상헌   (FAB4    )
HISTORY OF JEFF BECK -2-                     07/19 19:17   60 line

쩝...
어제 어디까지 말했더라...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지은 어머니 언제 이쪽까지 들어오셨어요???
어제 이거 쓰고 보니까 지은어머니 질문이데요..거참...
흠흠..목소리를 가다듬고...
첫번째 앨범이 제프벡 그룹의 멤버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냈고 그들은 순조롭게 첫 미국공연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공연은 순조로웠지만..제프의 성격이 어디 순조로운가요..쩝...
68년 5월애 개시된 이들의 첫 미국 순회공연은...
로드 스튜어트라는 새로운 보컬리스트와 야드버즈 시절에 명성을 떨치던
제프의 기타를 앞세워 좋은 반응을 얻게됩니다..여기까지는 순조로와요..
하지만 69년 2월 결국 베이시스트 론 우드와 드러머 믹 월러는 해고하죠..
당시 벡은 "그들의 연주 솜씨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그들의 해고 이유를
밝혔지만 이에대해 한 비평가는 "야드버즈 시절 SHAPES OF THING에서 보인
제프의 솔로 연주와 앨범 TRUTH의 졸작 연주에서 벌어진 격차는
어떻할 것인가?'라고 비꼬기도 했죠...
이 사태에 대해 로드 역시 나중에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
그들이 짤리기 직전 제프 벡 그룹은 BECK-OLA의 제작을 앞두고 있었는데..
꺽...그들 대신 드러머인 토니 뉴먼과 베이시스트에 더그 블레이크라는
이눌을 가입시켰습니다..하지만 블레이크는 단 한번의 공연을 치룬 뒤
해고 당했고 그 후임으로 론 우드가 재가입하게 됩니다..
음...여러분들은 이런 론 우드가 정말 속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로드의 말을 빌면..그는 다른 밴드를 찾을 동안 임시방편으로
다시 가입했다고 합니다..
하여간 이런 형편이니 그룹이 얼마나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꾸려저
나갔는지를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멤버간의 악감정과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각 멤버의 연주는
뛰어났고...
음악도 계속 향상되어 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69년 6월 앨범 BECK-OLA가 발매됩니다...
이 앨범은 일관성이 없는 앨범이었는데..특히 미국팬들을 겨냥해서
50년대의 록큰록을 리바이벌 했죠...
하지만 제프는 1집보다 한층 진일보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1기 제프벡 그룹은 한마디로 제프 벡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들이 끌려다니는 꼴이었죠...
한마디로 제프는 제프 벡 그룹의 독재자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제프 벡이라는 한 독재자와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다른 멤버들...
그것이 1기 제프벡 그룹의 구도였죠...
이것은 로드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난 제프 벡 그룹에 2년 반을 있었지만 그와 눈을 똑바로 쳐다본 적은
한번도 없었죠..그와 얘기할 때면 언제난 그의 셔츠나 다른 것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했으니까요..'
꺽...
이러한 상황은 제프 벡 그룹의 해산후..제프는 로드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드가 제프에 대한 비난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데에서도
나타나죠...
꺽...
1기 제프 벡이 해산되자..로드와 론우드는 FACES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고.
.
로드는 악동들의 모임이라는 FACES에서 차차 명성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제프역시 슈퍼그룹 결성이라는 거창한 계획에 몰두하게 됩니다...
근데 그것은 무산되게 되죠...
이다 학원 갔다와서 시간이 될래나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되면...
그 이야기를 마저 하고...
제 2기 제프벡 그룹에대한 야그를 이어가기로 하죠...

 송상헌   (FAB4    )
HISTORY OF JEFF BECK -3-                     07/23 23:16   46 line

음냐...오랜만이네요..꺽..
지난번에는 삐거덕 거리던 1기 제프벡 그룹의 해체까지 말했던가요..쩝...
하여간 제프 벡 그룹의 해체 이후 제프는 바닐라 퍼지의 두 멤버를 영입해
슈퍼 그룹을 만드려고 했습니다..바로 카마인 어피스와 팀 보거트를
끌여 들여 그룹을 만드려고 했죠...
카마인 어피스의 설명을 빌자면..
'나와 팀이 바닐라 퍼지를 떠났을 때 우리는 제프 벡, 로드 스튜워트와
함께 그룹을 결성하자고 했었죠..하지만 그들의 매니저들은 허락하지 않았어
요..
제프는 당시 레드 제플린과 경쟁할 만한 그룹을 원했어요.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연주할 것을 레드 제플린이 먼저 내놓아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에게 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진짜 그룹을 원했던 것이지만 그의 매니저 측에선 그런
모험을 원치 않었던거죠..그러던 중 제프는 자동차 사고를 당했죠.."
교통사고를 당하기 얼마전까지도 제프는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
템프테이션등을 위한 세션 연주를 해주었는데...
당시의 모타운 음악은 제프의 개성과 어울리지를 않아서
그다지 주목 받지는 못했죠..
69년 12월 자동차 충돌사고로 부상을 입은 제프는 거의 2년간
활동을 중단했고 이 때 그의 편집 앨범 'BEST OF JEFF BECK'와
JEFF BECK WITH ROD STEWART'등의 앨범이 발매됬죠...

71년 10월 제프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이 변모한
JEFF BECK GROUP을 이끌고 ROUGH & READY라는 앨범으로 재기합니다..
2ㄱ 제프벡 그룹은 전혀 다른 인물들로 구성돼있는데..
보컬에는 BOB TENCH,키보드에는 MAX MIDDLETON, 드럼에는 COZY POWELL등이
새로등장한 제프 벡 그룹의 라인업이었죠...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키보디스트인 맥스 미들튼인디...
그는 재즈 취향의 키보디스트였기 때문에 ROUGH & READY의 곳곳에서
재즈적인 취향이 보이고 있고...
후일 제프의 솔로 앨범에도 참가했는디..그와의 교류
와 더불어 제프의 앨범은 점차적으로 재즈 록이라 불리는
사운드로 변모하기 시작하죠...
하여간 ROUGH & READY는 음악적으로 꽤 좋은 성과를 거둔 앨범이지만
차트에는 49위에 밖에 오르지 못하는등 상업적으로 부진을 보이죠...
72년 5월 그들은 그들의 셀프 타이틀 앨범을 발매하며
비평가와 대중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냅니다...
(차트 15위...)......음냐...
하지만 이 두 앨범 모두 제프가 기대한 사운드는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까..제프는 교통사고 이전에 구상했던 그룹을 다시 만드려고
했고...그 결과 오랜 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카마인 어피스, 팀 보거트,
제프 벡으로 구성된 BECK BOGERT&APPICE가 탄생돼게 됩니다..
- BBA로도 잘 알려진...-
꺽.......
나머지는 다음에 야그하죠 뭐...
고럼 안뇽~~!~

 송상헌   (FAB4    )
HISTORY OF JEFF BECK -4-                     07/29 22:18   31 line

제프는 BBA 결성당시 어피스, 보거트와 공동의 음악적 취향아래 각기
뺴어난 연주 솜씨로 획기적인 앨범을 발매하려는 야망을 품게됩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BBA의 활동사항은 그러한 기대를
만족시켜줄만한 것은 못되었죠..
73년 3월에 발매된 그들의 셀프 타이틀 앨범에서 제프는 하드록으로
복귀합니다..비록 앨범차트 12위까지 올라가기는 하지만
많은 평론가에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게 되지요..
이것은 멤버간의 음악적 불일치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이 앨범의 사운드가 산만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나죠..
뭐랄까...하나의 일관된 개성보다는 이것저것 짜맞춘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데
그래도 멤버들의 연주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보거트와 어피스의
탄탄한 리듬라인위에 펼쳐지는 제프의 기타가 뺴어난 앨범이기는
했습니다..쩝...
하여간 배가 많으면 사공이 산으로 간다고 (이게 아니었나??)..
멤버들의 개성이 조화되지 못해 그들은 BBA LIVE IN JAPAN이라는
앨범을 일본에서만 발매를 하게되고..그리고 녹음된 한장의
스튜디오 앨범은 발매도 못한체 그룹을 해산하게 됩니다..
BBA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기 때문에 제프는 엄청난 실의에 _?지게 되죠
..
그러면서 그는 1년에 걸친 공백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1년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솔로로서 활동하려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제프의 화려한 시기가 펼쳐지게 되죠...
커....
지금까지 살펴본바와 마찬가지로 제프는 야드버즈 탈퇴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이거는 다들 제프의 괴팍한 성격때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쩝..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이러한 시행착오 이후 그는 드디어 BLOW BY BLOW라는 명반을 발매하며
화려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럼 그의 솔로활동은 담부터 야그하기로 하죠...

 송상헌   (FAB4    )
HISTRY OF JEFF BECK -5-                      07/31 00:16   63 line

75년 3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프는 1년간의 공백을 딛고
그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BLOW BY BLOW 를 발매하게 됩니다.
비틀즈의 프로듀서였던 GEORGE MARTIN의 지휘하에 발매된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재즈 취향으로 일관됨으로써 지금까지의 제프의 앨범이
산만한 분위기였다는 단점을 극복했으며
제프 벡 그룹 시절부터 문제가 됐던 보컬문제를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전부 연주곡으로 채워나간 앨범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프는 자시느이 기타사운드에 어울려줄만한 보컬리스트를 찾지
못했거나 찾기를 단념한 것 같습니다...
비록 보컬은 _?졌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이 앨범은 메니아들보다는 연주인들이 먼저 들어봐야 될
앨범..'이라는 평을 내릴정도로 완벽한 기타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 앨범은 재즈와 록을 훌륭히 퓨전화 시켰고 이러한
재즈 록 휴전 사운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내 앨범 차트 4위에
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앨범의 성공에 뒤이어 그는 75년을 미국순회공연으로 장식했습니다..
이 공연은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와 함께 치르게 되는데
이 공연에서 그는 얀 하머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커..이러한 만남은 76년 6월에 발매된 WIRED에 까지 이어져
이 앨범에 얀 하머가 참가해줘 그의 록과 재즈의 퓨전에 대한 시도는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앨범역시 많은 평론가들로 부터 호평을 받아냈고 차트 16위에 오르는
상업적인 성공역시 거두게 됩니다..
WIRED발매 이후 제프는 얀과 순회공연을 벌이게 됩니다..
이 공연은 JEFF BECK & THE JAN HAMMER GROUP LIVE라는 앨범으로 발매,
차트 23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많은 비평을 받게 되지요...
아마도 이 앨범이 기대에 미치치 못한 이유는 제프와 얀이
서로 잘난척(?)을 하느라고 서로의 연주를 절제하지 못해서
각각의 연주는 뛰어났지만 전반적인 연주에 짜임새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얀 해머와의 순회공연 이후 제프는 80년도까지 활동 정지상태로 보내게
됩니다..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기간동안 자동차 경주에 몰두했고
스튜디오에서 부정기적으로 연주를 했다고 하네요..
80년 7월 그는 THERE & BECK이라는 앨범으로 3년만에 다시
팬들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죠...
이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은 과거 얀 해머와 녹음한 곡이라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차트 21위에 오르고 비평가들 역시 좋은 반응을 보였죠...
이 앨범에서 제프는 재즈 록에서 약간 방향을 돌려 하드한 취향의
록 사운드를 많이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이 앨범의 발매이후 제프는 다시 앨범활동을 정지하게 되는데..
그는 그 기간중 다른 사람들의 앨범에 참가해주게 됩니다..
믹 재거, 로드 스튜어트, 티나 터너, 다이아나 로스 등이 그당시
세션으로 참가해준 아티스트 들이죠..
한편 그는 다발성 동맥 경화증에 걸린 기타리스트 로니 래인을 위해 벌인
ARMS(다발성 동맥 경화증 치료 연구 기금) 자선 콘서트에 참가,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같이 연주를 해서 큰 화제를 모았죠..
85년 그는 다시 5년만에 FLASH라는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나일 로저스가 프로듀스 했는디..그의 탓일까..하여간
댄스 뮤직의 리듬을 가미하는등 상업성을 보이는 앨범입니다..
간만에 로드스튜어트가 이 앨범에 참여한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죠..
비록 이 앨범이 상업성을 띠고 있다고는 하지만
곳곳에서 번뜩이는 제프의 연주가 빛나고 있죠..
그래서 벡은 28회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록 악기연주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의 첫번째 그래미 수상이었죠...
그 뒤의 소식은 뜸해서 잘 모르겠고..히...
89년이었나 90년이었나 하여간 그는 다시
UK의 드러머였던 테리 보지오와 공동제작으로 GUITAR SHOP이라는 앨범을
발표했고 이 앨범으로 두번쨰 그래미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정말 뭐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네요..히...
너무 궁금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발매될 시대를 타지 않는 기타리스트..
제프 벡의 새 앨범을 기대하며 그의 이야기를 모두 마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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