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abarek

1 # 얀가바렉 4 for 1 공연리뷰[ | ]

발신: "김기범" <mailto:walrus@empal.com> 날짜: 2004/2/28 (토) 4:09am 제목: 얀가바렉 4 for 1 공연리뷰-실험과 파격속에서도 지루하지 않았던 명연

사실 그저께 공연이었는데 당일은 같이 본 인간하고 바로 째지고 날밤까고 일하다가...어제 저녁에 잔 후 일어나서 지금에야 글을 올리네요.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더욱 횡설수설입니당.

얀가바렉이란 뮤지션은 ECM과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뮤지션이란 생각이 드네요. ECM에서 보여주는 재즈와 뉴에이지의 경계, 흑인적인 색채보다는 뉴에이지와 유럽적인 느낌, 그리고 실험적인 듯하면서도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 복잡하지만 선명한 멜로디. 사실, 전 보지는 못했지만 2002년 공연은 지루했다는 반응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2년 공연의 경우, 신작이었던 Mnemosyne과 Ofrficum에서 보여준 힐리어드 앙상블과 함께한 공연이었는데,,,음반만큼이나 공연도 실험적이고 괜찮을 것 같다는 예상이 들지만, 성가대의 느린 호흡과 같이하는 공연이라 일반 대중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았난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얀가바렉이란 뮤지션을 음반으로 들었을 때 재밌게 연주하는 뮤지션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저처럼 섹스폰이나 재즈하면 적당히 *냄새에 찌든 짙은 인생의 향기..뭐 이런 쪽으로 몰고가는 부류에겐. 다소 차갑기 때문에...

아무튼 이번 공연은 섹스폰, 피아노, 드럼, 베이스의 4인조 밴드 편성으로 왔습니다. 이 정도 편성이라면 드럼, 베이스가 묵묵히 리듬으로 뼈대를 만들고 피아노와 섹스폰이 격렬한 필링으로 관객을 매료시키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결코, 예상이 완전히 깨져버렸지만. 4인조 편성으로 진행한 최근 앨범, Rites, Visible World, Twelve Moons위주로 레퍼토리가 진행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Rites를 들어볼까 말까하다가 2CD의 압박으로...ㅠ.ㅠ 홍보 문구에는 당연히 My Song을 앞세우고 왔지만,,,실제 공연제목은 4for1이었습니다. 4for1이란 공연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멤버들의 기량이 빠짐없이 출중하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한데 어우러져 있더군요. 모든 멤버는 중부 및 북부 유럽 출신이었고 하나하나가 가히 유럽 재즈를 대표할만한 인물들이었던 것 같네요. 공연 자체가 한 다섯 개 정도 밖에 안되는 곡을 두시간 가까이 연주했던 것 같습니다. 각 멤버들에게는 장시간의 솔로 타임이 확보되었죠. 솔로 타임 자기 악기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다른 멤버와 달리 얀가바렉은 관중석을 응시했는데 마른 얀가바렉이 처다보니 상당히 무서운 칼스마가 느껴졌습니다. 졸면 바리 날라와서 한 싸데기 날릴 것 같은.

공연을 통해 가장 돋보였던 연주자는 여성 퍼커션 연주자였던 Marilyn Mazur였습니다. 정장차림의 다른 남성 뮤지션과 달리 머리 산발한 여자가 소복 같은 입고 나온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지요. 마를린 마주어의 연주는 이제까지 본 어떤 드럼 및 퍼커션 주자보다 개성적이었습니다. 단순 드럼 세팅을 포함한 심볼위주의 수십가지 타악기군을 늘어놓고 그걸 뭐 거의 조금도 예측 불가능한 구성으로 진행을 하더군요. 종류만 다양한게 아니라 하나의 퍼커션을 치는 방식도 꽤 여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발로 쿵쿵거리고 괴이한 신음소리를 첨가할 뿐만 아니라 타악히 하나를 스틱으로 치고 빙빙 돌리면서 소리를 낼 때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런 식으로 따졌을 때 퍼커션으로 보여준 소리의 질감만해도 최소 수백개는 되었을 것 같은데,,,그걸 숨실 틈 없이 바꾸었으니. 퍼커션에서 나는 소리의 이런 연주자를 보면 늘 궁금했던게 과연 저걸 외우고 쳤을까 즉흥적으로 냈을까하는 생각. 저와 유사한 뇌구조를 가진 인간으로는 저걸 외우고 진행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은데 너무나 곡의 분위기와는 늘 계산적으로 고려된 것 같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를린 마주어의 음악경력도 엄청나더군요. 일단 마일즈 데이비스그룹, 웨인쇼터 퀸텟과 길에반스 오케스트라를 거친 초호화경력..그리고 덴마크 왕립음악원에서 타악기로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98,99 Jazzpar상의 후보, 기니에서 열린 타악기 페스티발 참가,,,10대 때는 크리에이티브 댄스 시어터에서 댄서로 활동까지 했다는. 이 여성 퍼커션 주자의 강점은 단순히 버라이어티함에 있는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댄서 경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동작하나하나가 퍼포먼스였으며 터치가 강하지는 않지만 야생하면서도 섬세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충격 그 자체. 이걸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기존의 드럼 연주자들은 음량 자체를 키우면서 퍼커션이 가지는 다양한 매력들을 간과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이스 주자인 Eberhard Weber 역시 아주 독특했습니다. 오래된 이탈리아를 새로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5번째 줄이 더해지고 긴목과 작은 사각형의 음향 박스가 더해졌다고 하네요.자기 말로는 일렉트로 베이스라나..아무튼 기존의 어쿠스틱 베이스의 두툼한 모양과 다른 날렵한 모양의 베이스였습니다. 그 역시 게리 버튼-6월에 내한하지요-및 랄프 타우너, 빌 프리셀, 라일 메이스 등과 같이한 엄청난 커리어의 뮤지션이었네요. 연주 방식자체가 역시 다양했습니다. 현을 사용할 때도 많았고 현을 쓸 때도 단순히 그을 뿐만 아니라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단순히 안정된 비트를 연주하는 베이스 주자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편이었죠. 확실히 들리는 멜로디를 연주했고 복합적인 화음 및 리듬으로 하나의 솔로 악기로도 손색이 없는 실험적인 연주자였습니다. 실제로 솔로 타임에서 보여준 연주에서는 오버 더빙을 포함하여 완전히 새로운 악기를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반면 피아노 주자인 Rainer Bruninghaus는 정통 클래식 피아니스트에 근접한 뮤지션이라고 봅니다. 어릴 때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했다고 하고 콜로냐 대학에서 사회학 학위를 땄다는군요. The Colours of Chloe라는 음반으로 독일 그래미를 수상한 경력도 있다는데..30살에 쾰른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석적이지만 그 기량만큼은 문외한인 제가 봤을 때만해도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순간 순간 자체의 터치 자체가 상당히 섬세하면서도 명쾌하더군요.

얀가바렉은 템포의 급격한 변화와 강렬한 필링을 내세우기 보다는 차가우면서도 선명한 톤으로 미드템포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섹스폰 주자였던 것 같습니다. 다소간의 이펙트가 들어간 톤 자체가 상당히 독특하던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4인조 연주 상황에서 소리만 놓고 보자면 얀가바렉의 섹스폰이 뚜렷하게 리드하더군요. 사실 My Song에서 들어났듯이 멜로디 전달력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런 선명한 멜로디 라인에서 흘러나오는 테마들은 상당히 다양한 편인데 그게 유럽 성가, 인디언 음악, 그리스 전통음악, 남미음악, 심지어 극동의 정서까지... 그런데도 놀라운 점은 그런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모국인 북유럽의 정서가 묻어난다는 점입니다. 얀가바렉도 그것을 늘 분명히 하고 있고. 서구 뮤지션이 아리랑의 테마를 연주했다고 동서양의 조화를 언급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의 다른 음악과 제대로된 크로스오버를 하려면 문화자체를 이해하고 그걸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켜야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라면 결과적으로 이국적인 느낌 속에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살아있어야되겠지요. 그런면에서 얀가바렉의 성과는 충분히 출중하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4인조에서 보여주는 리드파트와 리드파트의 구분과 달리 드럼&베이스라인은 단순히 음공간을 확보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활기를 불어넣은 역할을 했고 피아노와 섹스폰은 선명한 멜로디라인을 비교적 정석적으로 연주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꽤 많은 좌석이 비어있었고 관중들의 매너도 그다지였습니다. 공연 중에도 짜증나는 장면을 꽤 많이 목격했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 끝나고 땡하면서 바로 나가는 사람들...글세요, 전 공연을 놀러가는 사람이라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의 여운을 음미하고 싶은데 비싼 자리에서 뮤지션 인사하는 것보고 서둘러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저와는 다소 다르다는 걸...또, 아쉬운 점이라면 얀가바렉의 섹스폰에서 노이즈가 좀 심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섬세한 파트에서는 너무 크게 들리더군요.

뭐 이런 아쉬움에도 이번 공연은 충분히 기억에 남을 공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실험성과 파격성이 돋보이는 공연 같으면 처음에는 와~하다가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파격성에 실증이 느껴지면 금새 피곤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게되는데 상당히 파격적인 리듬파트의 진행과 전체 음악의 다양한 실험적 테마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지루하게 안느껴진 이유는 아마도 피아노와 섹스폰이 선명한 멜로디를 전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공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점이 바로 여기에 있네요. 충분히 실험적이면서 참신한 것을 보여줬지만 일반 대중에게도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

장황하고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오늘 하루 충분히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p.s 지금 비치보이스와 조니 미첼의 4500원짜리 DVD를 보고 있네요. 만족입니다. 비치보이스는 보컬하모니의 매력을,,,조니 미첼은 목소리 자체도 좋지만 백밴드가 자코, 펫메스니, 마이클 브레커, 라일 메이스 입니다...거의 환상이죠. 조니 미첼을 보면 지적이긴하지만 물에 젖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한 포토그래퍼의 생각은 대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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