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la Cra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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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Eela Craig[ | ]

EELA CRAIG은 1970년 린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높은 예술적 기준을 염두에 두고 그들은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록, 클래식 음악, 일렉트로닉스, 재즈, 블루스를 혼합하여 예술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독립적인 혼합물을 수행했습니다. 뛰어난 드럼 연주자 Walther Waber (12/5/1947 in Linz)는 재즈에 대한 열정을 가졌고 올라운드 뮤지션 Harald Zuschrader (3/5/1944 in Freistadt)는 오르간, 기타, 플루트 및 기타를 연주했으며 둘 다 밴드 Melodas의 멤버였으며 주로 비틀즈 노래를 연주했습니다. Hubert Bognermayr (4/8/1948 in Linz)는 키보드에서 왔으며 다른 Linz 베스트 밴드를 이끌었고 주최자는 더 기념비적인 The Equals and the Frolics였습니다. 독일하르트 잉글리쉬 (2/18/1952 in Linz)는 베이스에서 왔고 하랄트 차라더와 핑크 플로이드가 우승했습니다. 오르간에서 킹 크림슨과 젠틀 자이언트 스타일로 연주된 젊은 오스트리아 청소년 챔피언쉽은 Georg Gerstmayr (5/3/1952 in Steyrgg)입니다. 보컬은 전통적인 블루스 전통에 뿌리를 두고 런던에 가서 기타 기술을 익히면서 Eddy Boyd와 Champion Jack Dupree와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Gerhard Englisch는 Eela Craig의 이름을 붙인 의미없이 처음 발명한 사람입니다. 이 이름은 Gerhard가 유명한 Rosenstüberl in Linz에서 1970년에 녹음하고 방송사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까지 살았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밴드의 잘 알려지지 않은 구성원의 충분한 증거입니다. Eela Craig이 Linz 음악 대학 (St. Valentine)에서 Orthorfer의 지도하에 약간의 음악 연구를 즐겼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Eela Craig이 형성되었을 때 그룹 Guru Guru Attention은 악기 제작에 전념했고 곧 Munich의 악기 제작에 전념하여 250000 DM에 달하는 장비가 판매되었습니다. 1.8톤 케이블이 1km로 구성되었습니다. Alfred Peschek은 밴드를 관리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지식으로 인정받았고 아방가르드 아이디어를 통해 밴드가 훌륭한 곡을 쓸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Eela Craig은 1971년에 클라우스 슈바거 (Claude Schwaiger)가 감독한 첫 번째 곡을 연주했습니다. 녹음은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Eela Craig은 헤드폰으로만 들을 수 있는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 녹음되었습니다. 비판적으로 인정되자 Emerson, Lake & Palmer보다 우월했습니다.

"Tarkus"와 수집가의 꿈은 현재 500달러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 데뷔 앨범은 단순히 "Eela Craig" (Pro Disc 20071)라고 불리며 몇 주 안에 매진되어 1500장이 추가로 인쇄되었습니다. 재발매는 긴 오버듀와 같으며 여기에는 4개의 이전 CD에서 처음으로 4개의 보너스 트랙이 있습니다. 밴드가 마스터 테이프를 잃어버린 후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Cedar 시스템을 사용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시스템은 표면 소음을 차단하고 간섭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스터 테이프 품질이 달성되기 전에 이 CD는 Horst Weber Magazine의 재발행을 통해 Emerson, Lake & Palmer와 비교되었습니다. 1972년에 음악적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Willi Orthorfer와 Heinz Gerstmair는 Harald Zuschrader, Hubert Bognermayr 및 Gerhard Englisch가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Tom Jones, Isaac Hayes 및 Hans Butt와 같은 다른 가수들을 지원했습니다. 밴드는 이 두 멤버가 몇 년 후에 차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함께 공연했습니다. Eela Craig은 드럼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Joe Droeber (11/17/1951 in Pattigham)이 추가되어 Eela Craig에 드럼을 추가했습니다. Alfred Peschek의 opus "Dimensionen zwischen Pop und Klassik" ("팝과 클래식 사이의 차원")은 1972년 취리히와 린츠에서 녹음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CD에 추가한 처음 두 보너스 트랙은 오케스트라가 콘서트에서 완수했습니다. 의회는 Oberösterreich과 Donated by Dr. Alfred Peschek에 의해 지원되었습니다. CD "Dimensionen" (A 156 238)이 출시되어 하랄트 추스크라더가 편곡했습니다. Eela Craig의 20분짜리 작품은 이 CD에 포함되었습니다. Harald Zuschrader는 밴드를 떠나기 전에 기타리스트로 2년 동안 참여했습니다. Fritz Riedelberger (11/10/1952 in Linz)는 기타, 멜로트론, 비브라폰 및 피들 연주자였습니다. Aiger와 Hubert Schnurser (4/18/1954 in Steyr)는 플루트, 멜로트론, 비브라폰 및 피아노 연주자였습니다. Ainos Jetschgo (3/25/1951 in Linz)는 장비에 대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1974년 Eela Craig이 독립적으로 레이블 "Stories" ("Stories" (ECS 1))에 3000장을 인쇄했습니다. 마스터 테이프가 손실되면서 지금은 구식입니다. 따라서 싱글 슬리브는 현재 비어 있습니다. 이 CD의 책자에 싱글을 인쇄했습니다. 1974년 10월 1일 린츠에서 Orf가 Eela Craig에게 한 편의 짧은 라디오 시간을 제안했습니다. 이 특권은

1974년 말에 Joe Droeber는 형과 함께 밴드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대체자 Frank Hueber (11/10/1955 in Vöcklabruck)는 경쟁 대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976년 Vertigo는 Eela Craig의 계약을 체결하여 앨범 "One nile"에 레이블을 붙였습니다. Willi Orthorfer는 앨범 "Holes of glass"에 합류하여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영향력이 더 강해졌습니다. By the way, Harald Zuschrader는 새로운 녹음 "Cheese"를 만들었습니다. 특수 버전은 1978년 LP "Messa universalis"에서 그렸습니다. 합성 개념 앨범은 4개 언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및 라틴어)로되어 있으며 Bruckner adaptations를 사용했습니다. 그리스어가 누락 된 기사들은 비판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좌절시킵니다. 1978년 Hubert Bognermayr는 팬들을 낙담시켰고 팬들은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Frank Hueber는 귀에 문제가 있어서 나중에 스테디 비트 녹음을 해야했습니다. 그는 Willi Orthorfer로 교체되었습니다. Follow-up album from 1980, "Virgin oiland"는 쓸모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비정상적이고 운명적인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또한 앨범에 "My-bake Jive" / "Carry on"이 추가되어 앨범에 게시되지 않은 날짜가 게시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987년에 Eela Craig은 의도적으로 해산하여 중단되었습니다. 1987년 Willi Orthorfer와 Hubert Schnauer는 기타 또는 미스의 싱글 4개와 오직 권리만으로도 "Hit or miss"라는 제목의 도로 팝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음악과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Eela Craig는 린츠에서 재결합되어 아마도 CD로 다시 출시될 것입니다.

Hubert Bognermayr는 Ulrich Rützel과 함께 Eela Craig과 새로운 시대를 형성한 후 Harald Zuschrader ("Erdenklang" Erdenklang 92500)을 추가했습니다. 1983년 "Bergpredigt" (Erdenklang 883301)과 1983년 "Sternentanz" (Erdenklang 91300)이 1991년에 Blue Chip Orchestra의 앨범 "Erdenklang" (Erdenklang 91346)에 합류했습니다. 1991년에는 Joe Droeber와 Ainos Jetschgo가 있었습니다. Blue Chip Orchestra는 앨범 "Wide river - red spirit"에서 자기 해산을 했습니다. 에르덴클랑. 1979년 Hubert Bognermayr는 광범위한 Erdenklang 전자 페스티벌과 Linz에서 Klagenfurt까지의 강의를 조직하고, Blue Chip Academy는 계속해서 흥미롭게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기타와 작곡을 사용하여 노래를 썼습니다. 게르하르트 잉글리시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조명 회사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으며 라이트 쇼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arald Zuschrader는 교수로 일하고 자신의 사운드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며 골드와 플래티넘 레코드를 여러 개 가지고 있습니다. Willi Orthorfer는 계속해서 음악을 작곡하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2개의 CD와 1000장 한정으로 2개의 월드 뮤직 곡을 발표했습니다. "Bad of roses"는 독립적으로 출시되었고, "Libero" (CCP Records, 100148-2)는 1998년에 출시되었습니다. Horst Waber는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었으며 그는 여러 스크레로시스를 가진 사람들을 병원에서 치료했습니다. 이 CD에서 얻은 모든 로열티는 기부됩니다.


[광월인, 이동훈, mailto:meddle@nuri.net]

eela craig - first album

일라 끄래이그는 국내에서 매우 친숙한 밴드입니다. 시완에서 이미 이들의 2, 5집이 라이센스 되었죠.
제 생각엔 2, 5 집 모두가 평범한 작품인것 같습니다. 글쎄요... 제가 요즘 맛있는 것만 들어서 그런지 모르 겠네요. 사실 예전엔 이들의 음악을 매우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정신' 제거된 음악은 거부하게 되는군요.
2, 5집은 심포닉 계열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당할것 같구요.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일라 끄레이그의 1집은 어떠한가... 우선 2집과는 판이하게 다른 [오르간-헤비록] 입니다.
70년대 초반의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계를 함축한 앨범인데요... 전체적으로 여러 슈퍼밴드의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반더그라프제너래이터) 음악을 [조합]해서... 그 위에 오르간과 플룻의 텁텁함을 더하면 바로 일라 끄레이그의 1집이 탄생됩니다. :-)
따라서 독창성은 형편없이 결여되어 있지요.
marquee에서는 환상의 명반이라고 하던데요 이건 절대적인 과대평가입니다. 아마 그 당시 판이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조금 오버된 평을 한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 배아프라고... 히히)

저는 차라리 일라 끄레이그의 1집 보다는 최근에 구입한 같은 국가 밴드인 isaiah의 앨범이 더 좋더군요. 최소한 소박한 맛이라도 들려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Circles The Mighty / The Nude / The Curse / The Blessed

Loner's Rhyme One Niter Medley Bendictus / Fuge / V.A.T / Morning / One Niter

Venezuela Way Dawn

EELA CRAIG - One Niter 오스트리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명화 Sound Of Music에서 스크린위에 펼쳐졌던 아름다운 배경들 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 산맥과 푸른 초원들,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들과 교회들... 또한 요한 스트라우스의 경쾌한 와츠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음악 도시 빈의 전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필자가 오스트리아의 음반들을 처음 접하기 시작한 것은 국내에서 한창 해외펜팔이 유행하던 1970년대 중반이었다. 물론, 당시 Eela Craig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주로 오스트리아의 요들송 음반들을 듣게 되었는데, 루디와 잉에라는 자매의 요들송 음반은 스위스, 독일, 그리고 미국의 웨스턴 요들과는 다르게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맛이 담겨 있어 가장 즐겨 듣는 음반이 되었다. "요들송은 스위스보다 오스트리아가 단연 뛰어나다"라는 자체진단을 내리게된 직후, 이상한 그림들과 음악들로 가득찬 Eela Craig라는 그룹의 작품들을 비로서 만나게 되었다.

주변국가들에 비하여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Progressive Rock/Art Rock 계열의 그룹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 계열에서 활동했던 Kyrie Eleison과 후신그룹 Iridigo 그리고 Opus,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Gandalf, Gaya 정도만이 고작 알려져 있을 뿐이다. 따라서 5매의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Eela Craig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단정짓는다 하더라도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본작은 Eela Craig의 데뷔작 으로 알려져왔었다. 필자도 1971년 Prodisc 에서 발매되었던 데뷔작에 앞서 본작을 먼저 접하게 되어 1980년대초 국내 방송망을 통하여 본작을 데뷔작 으로 소개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아무튼 Eela Craig의 연주를 처음 접하게되면 누구나 웅장한 스케일과 압도하는 음압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스트리아의 음악계는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는데 본작은 예외적으로 영국적이다. 특히, 진지하게 연주되는 부분에서 King Crimson과 Pink Floyd의 초창기 작품들에 크게 영향을 받은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그 어느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Eela Craig만의 음악 세계가 오스트리아의 음악적 자존심이 잠재되어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Progressive/Art Rock의 재발매 붐에도 불구하고 Eela Craig 작품들의 재발매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외 레코드상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CD 생산의 세계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본국 오스트리아에서 이렇게 Eela Craig 앨범들의 발매에 무관심해왔다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 Eela Craig의 제작자였던 Ulrich Rutzel의 소유 레코드사인 독일 Erdenklang으로부터 편집된 두 장의 CD가 발매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서 발매되는 정규 앨범에 담겨있는 (Venezuela)라는 곡이 배제되어 있다.

후에「Blue Chip Orchesta」라는 컴퓨터 뮤직을 발표 하게되는 키보드주자 Hubert Bognermayr를 주축으로 세명의 키보드 주자를 내세운 7인조 그룹(게스트 뮤지션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6인조) Eela Craig는 1976년작인 본작을 데뷔앨범 이후 5년간의 오랜 공백기를 거쳐 완성했다. 「One Niter」는 두 개의 조곡을 담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컬보다는 뛰어난 연주력을 내세운 작품이다. 웅장한 Mellotron 음향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Hammond C3와 아나로그 신세사이져 그리고 Mini-Moog 등의 사용이 돋보인다. 비장한 단조로 시작되는 첫 번째 조곡 (Circles)의 앞테마 (The Mighty)는 1984년 봄에 막을 내렸던 한 심야프로그램의 마지막날 방송의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었던 작품으로 타이틀 트랙인 (One Niter)와 함께 국내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아무튼 본작을 비롯하여 곧 국내에 소개될 예정인 Eela Craig의 최고 걸작 「Missa Universalis」 를 통한 음악여행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음악적 체험이 될 것이다.
EELA CRAIG DISCOGRAPHY Eela Craig/Same(1971, Prodisc 208711, Austria) Eela Craig/One Niter(1976, Vertigo 6360 635, Austria) Eela Craig/Hat Of Glass(1977, Vertigo 6360 638, Austria) Eela Craig/Missa Universalis(1978, Vertigo 6360 639, Germany) Eela Craig/Virgin Oiland(1980, Ariola 10395, Austria)

글/이춘식

2 # One Niter[ | ]

오스트리아는 록 역사에 대한 기여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련한 펍 퀴즈 참가자조차도 "오스트리아 록 음악가를 최대한 많이 대시오"라는 주제가 보너스 라운드로 나오면 술집이나 슬롯머신으로 향합니다. 누군가 밝게 Falco를 제안한 다음 침묵하고 생각에 잠기는 데 돈을 걸 것입니다. 10,000명 중 1명은 Weather Report의 Josef Zawinul을 지명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질문에서 '록' 요건을 엄격히 준수하지 못하여 감점을 받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실수로 "Plastic Bertrand"를 외치면 펍 뒤쪽으로 끌려가 쓰레기통에 묶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1985년에 트라우마적인 'Live Is Life'를 세상에 물려주어 오스트리아 음악가들에게 영원히 방사능 누출만큼 유독한 이미지를 씌운 Opus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속임수를 놓친 것에 대해 모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운이 좋고, 더 고도로 진화된 유통 시스템과 순풍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Eela Craig라는 이름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Eela Craig는 1970년 린츠에서 결성되어 일부 인원 변경과 간헐적인 중단을 거쳐 1988년까지 주로 존재했던 뛰어난 심포닉 록 그룹의 이름이었습니다.

린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60년대 비트 그룹 두 곳의 음악가들이 Eela Craig의 중추를 이루었습니다. 오르간 연주자 Harald Zuschrader와 드러머 Horst Waber는 Melodias 출신이고, 키보드 연주자 Hubert Bognermayr는 The Jupiters의 멤버였습니다. 베이시스트 Gerhard Englisch, 기타/오르간/보컬리스트 Heinz Gerstmair, 그리고 약간 후에 보컬/색소폰 연주자 Wil Orhofer가 숫자를 채웠습니다.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Eela Craig가 라인업에 키보드 연주자를 세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Lieutenant Pigeon보다 한 명 더 많고, 이것이 그들에게 제공한 다재다능함이 밴드로서의 기량의 핵심이었습니다.

몇몇 멤버가 브루크너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Eela Craig는 특히 뛰어난 출신 성분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고인이 된 위대한 Hubert Bognermayr는 당연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학구적인 고전주의자이자 전자 음악의 열렬한 옹호자였습니다. Bognermayr의 계시는 1969년 영국 여행 중 The Marquee에서 King Crimson 공연을 목격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그는 유럽 고전 전통과 새 록의 떠오르는 소리(Life Magazine의 거창한 표현을 빌리자면)를 결합하는 명확한 수단을 단번에 보았습니다. Eela Craig 결성은 불가피한 다음 단계였지만 Bognermayr의 비전은 밴드 설정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1999년 비극적으로 요절하기 전에 Bognermayr의 수많은 업적에는 Blue Chip Academy를 통해 새로운 악기 개발, Ara Electronica Festival 창립, 자연 컴퓨터 샘플로 구성된 최초의 CD(The Erdenklang Symphony) 발매, Bob Moog, Herbert von Karajan, Mike Oldfield를 포함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주요 인물과의 성공적인 협업이 포함되었습니다. Bognermayr는 또한 1985년 함부르크에서 Andre Heller와 함께 한 달 동안 진행된 'Palace Of The Winds' 제작에 참여했는데, "바이올린 연주자와 두 명의 방귀 뀌는 음악가"로 구성되었습니다. 저희는 DVD를 고수할게요, 감사합니다.

Eela Craig에 관해서는 밴드가 1970년 린츠의 Rosenstueberl에서 열린 데뷔 공연의 텔레비전 방송과 1971년 자체 타이틀 데뷔 앨범 발매로 도약했습니다. Moodies/Crimson 스타일의 마이너 코드 멜로트론의 묵직한 조각으로, 블루스와 재즈의 영향이 점재되어 있으며, 작은 Pro-Disc 레이블에서 최소한의 1,500장 판매되었습니다. 이 블루스 영향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앨범 발매 후 1년 이내에 밴드는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Orhofer, Waber 및 Gerstmair는 블루스/재즈 성향을 다른 곳으로 가져갔습니다. 특히 Ice Planet이라는 새로운 밴드로 말입니다. Bognermayr, Zuschrader 및 Englisch는 Eela Craig와 멜로디한 심포닉 프로그 록 추구를 견뎌냈습니다.

1972년에서 1974년 사이에 밴드는 Alfred Peschek의 Dimensionen zwischen Pop und Klassik 컨셉 앨범에 기여했고 비교적 사치스러운 5,000장으로 싱글 'Stories / Cheese'를 발매했습니다.

1975년 Vertigo와 녹음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이것은 밴드가 최고의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앨범인 '76's One Niter'를 녹음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심포닉 프로그 록 과장의 교과서적인 예입니다. 음악을 듣기 전에도 뒷면 슬리브에는 밴드가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야외에서 장비(이 모든 키보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Ummagumma에 대한 어설픈 끄덕임일 수도 있지만, 밴드 멤버들 자신처럼 장비 포르노 애호가들 사이에서 침을 흘리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자랑스러운 수단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또 다른 수준에서는 빈번한 허세 넘치는 펑크로의 일탈로 밴드 사운드에 전례 없는 강인함을 도입합니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얼굴인 Fritz Riedelberger(기타), Hubert Schnauer(키보드/플루트) 및 Frank Hueber(드럼)는 자신감 있게 연주하며, 특히 Riedelberger는 유창하고 구리빛 솔로와 웅장한 Gilmouresque 모티프로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One Niter의 두 개의 긴 멀티 파트 세트 피스인 'Circles'와 'One Niter Medley'는 밴드가 프로그와 펑크 충동의 균형을 맞추고 통합할 수 있었던 우아함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Circles'를 소개하는 위엄 있는 멜로트론 브라스 팡파르(The Mighty)는 'The Nude'의 거칠고 도시적인 클라비넷 주도 그루브로 바뀌기 전에 'The Curse'의 피아니시모 고요함과 'The Blessed'의 고조된 강렬함으로 바뀝니다. 한편 'One Niter Medley'는 깃털처럼 가볍고 추정적인 하프시코드 도입부, 단계적

바로크 간주곡, 전기 피아노 시냇물, Huggy Bear 펑크의 또 다른 포주 롤링 조각 및 Floydian 위엄의 코다를 성공적으로 조화시킵니다.

One Niter에서 2년 후 Eela Craig의 다음 행보는 크리스 드 버그의 'A Spaceman Came Travelling'을 논란이 많은 Barclay James Harvest 스타일로 재작업한 Hats Of Glass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었고, 싱글로도 발매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교육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1978년 모든 영국 밴드에게 있어 펑크의 Year Zero의 여파가 여전히 귀에 울릴 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 드 버그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대립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간주되거나 자신의 이마에 '나는 음악적 취향이 없다'는 포스트잇 메모를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Palace Of The Winds'를 기억하십니까? 이와 크리스 드 버그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방귀 뀌는 사람들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Eela Craig는 그러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고 인지된 시대착오나 소위 음악적 추방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전염병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알지 못했기 때문에 'A Spaceman Came Travelling'에 대한 그들의 진심 어리고 경외심에 찬 버전은 실제로 작동합니다.

같은 해의 기독교 컨셉 '록 미사' 앨범인 Missa Universalis도 마찬가지입니다. YouTube에는 "이것은 히피 음악이 아닙니다. 이것은 종교 음악입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교황을 위해 노래했습니다."라는 환상적으로 일관성 없는 팬 댓글이 달렸습니다. 특히 "Kyrie"는 신성한 기쁨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어 당신을 발로 차버립니다. 주저하는 하모니 보컬과 재잘거리는 전자 음악이 마침내 천둥처럼 울리는 환희로 쌓이면 환호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다음 고백합니다.

끊임없이 안절부절못하는 Bognermayr는 1979년에 밴드를 떠나 앞서 언급한 많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여기에는 Harald Zuschrader와 함께 자신의 Erdenklang 레이블에서 여러 전자 앨범을 녹음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1980년의 결함이 있지만 흥미로운 지구 인식 명상인 Virgin Oiland는 Eela Craig가 컨셉 앨범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욕망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1995년 린츠에서 열린 감동적인 재회 콘서트가 없었다면 밴드의 초라한 묘비가 되었을 1988년의 엄청나게 대표성이 없는 Eela Craig-in-name-only Hit Or Miss, 예술성 없는 팝 몽유병보다 수천 년 더 나은 것은 확실합니다.

오랫동안 연기된 One Niter의 CD 영국 발매는 프로그 광신도들에게 Eela Craig의 사려 깊게 구성되고 능숙하게 연주된 음악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 뒤늦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들이 차트의 날카로운 끝에서 주요 선수들을 밀어낼 수 있었다고 제안하는 것은 환상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펑크 시대가 그들의 얼굴에 문을 닫아 심포닉 스톡-인-트레이드를 사실상 쓸모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Gentle Giant 및 PFM과 같은 밴드가 누렸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영국, 유럽 및 미국 전역에 걸친 노출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햇빛 속에서 자신의 순간을 열렬히 얻었습니다. 34년 후, 여기 있습니다.

MARCO ROSSI Dorset, 2010년 6월

제작: Ulli A. Rützel & Eela Craig 녹음 및 믹싱: Jürgen Koppers 합창단: Park et Ingrid & Martina 1976년 4월 및 6월 뮌헨의 Arco-Studio에서 녹음 1976년 6월/7월 뮌헨의 Music Land Studio에서 리믹스 Jürgen Koppers의 마스터 컷 Polydor int. Hannover, Langenhagen에서 마스터링 Eela Craig가 편곡한 모든 타이틀 Alois Janetschko의 커버 아트 Wolfgang Kraml의 커버 디자인 및 사진 Intersong Hamburg에서 발행한 모든 타이틀 도움을 주신 Jurgen Koppers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유영재, mailto:espiritu@hitel.net, 93.3]

EELA CRAIG One Niter

흔히 프로그레시브 음악하면 거론되는 나라가 이태리나 영국, 프랑스등 이다. 그리고 독일도 이 음악의 강국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 주위의 여러 유럽 국가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독일에 바로 인접해 있는 오스트리 아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강국이라는 말이 전혀 걸맞지 않으며, 실제로 이 나라에서는 아트록 그룹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오스 트리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프로그레시브의 대표적인 그룹으로 꼽히는 벤 드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Eela Craig이다.
이들은 7인조 편성의 심포닉 록 그룹으로서, 70년대에 오스트리아에서 배출된 거의 유일한 록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의 결성 시기는 23년전인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TV 세션때 서로 만난 음악인들이 서로 음악적으로 의기투합해서 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후 1년뒤 이들은 데뷰 앨범을 발표한 뒤 무려 5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데뷰 6년뒤인 1976년에서야 비로서 이들 의 2집인 [One Niter]가 발매 된다. 오늘은 [Missa Univeralis]와 함께 이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One Niter]를 소개하고자 한 다. Eela Craig는 처음에는 6인조로 구성되었으나 뒤에 리드 보컬리스트 인 Will Orthofer가 들어오면서 7인 편성이 된다. 그리고 파격적인 것이 이 밴드는 트리플 키보드 체제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멤버 구성은 다음과 같다.

Hubert Bognermayr : Keyboard, Vocal Hubert Schnauer : Keyboard, Flute Harald Zuschrader : Keyboard, Flute, Guitar Fritz Riedelberger : Guitar, Piano, Vocal Frank Hueber : Drum, Percussion Gerhard Englisch : Bass, Percussion Will Orthofer : Lead Vocal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멤버 대부분이 교수 출신의 엘리트들이 라는 점이다. 암튼 이들이 이 앨범 [One Niter]를 발표했을 때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오스트리아 국내에서 이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 며, 그 여세를 몰아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도 이 앨범은 발매가 되어 이 밴드의 이름이 전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A면의 첫번째에 실린 20여분에 걸친 조곡 'Circles'는 그들의 4집 앨범 [Missa Universalis]에 실린 'Kyrie'와 함께 가장 뛰어난 명곡으로 손꼽 히는 작품이다. 참고로 이곡은 9년전인 1984년 4월 9일 성시완씨가 진행 했던 '음악이 흐르는 밤에' 마지막 방송의 고별송으로 방송되기도 했던 곡이다. 이 조곡의 첫파트인 'The Mighty'는 웅장한 키보드의 합주로 시 작 된다. 그 뒤를 잇는 챔벨로와 코러스 효과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 내며, 요소요소에서 신디사이저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 파트의 후반부에 는 힘찬 드러밍과 함께 맨처음 멜로디가 반복되고, Fritz의 기타 연주가 곡을 주도하는 두번째 파트 'The Nude', 폭발음과 함께 Will의 잔잔한 여성적 분위기를 풍기는 보컬이 인상적인 'The Curse', 비장한 느낌의 기타와 키보드 연주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The Blessed'로 쉴새 없 이 치닫는다. 극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으나, 다채로운 멜로디와 화려한 키보드가 심포니록의 전형을 이루는 좋은 곡이다. A면의 두번째곡 'Lon- er's Rhyme'은 이 앨범에서 키보드의 비중이 가장 적은 곡으로 펑키하게 까지 들리는 기타와 오르간, 타악기등의 합주가 현란한 사운드를 이루고 있다. B면의 또하나의 조곡이자 앨범 타이틀곡인 'One Niter Medley'는 다섯 파트의 구성치곤 다소 짧은 12분짜리 곡인데, 연주와 구성면에서 앞면의 조곡 'Circles'와 상당히 흡사하다. 앞부분의 코러스 효과나 중 반부를 기타가 주도하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을 기타와 키보드가 장식하 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들이 이곡을 통해서도 양질의 심포니록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두번째곡 'Venezuela'는 이색적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플룻의 연주로 시 작하는데, Will의 잔잔한 보컬이 편안한 느낌을 주며 중반의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퍼커션과 함께 흐르는 플룻 연주가 인상적이다.
마지막 'Way Down'은 이전의 수록곡들과는 달리 Fritz의 기타 연주가 곡 의 주를 이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보컬 파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극적인 맛이 없고 수록곡이 모두 비슷한 분위기여 서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지루한 기분도 가져다 줄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각 악기 파트의 테크닉도 그리 뛰어나 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록과 클래식을 아주 깨끗하게 융화시켜 멋진 심포니록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 앨범이 아트록의 명반 대 열에 군림하게 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심포니록과 키보드 음악을 좋 아하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3 Hats of Glass[ | ]

유럽엔 다양한 개성의 프로그레시브 씬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오스트리아의 이미지는 희미하다. 이는 클래식 음악, 즉 빈이 존재하기에, 프로그레시브 씬이 태동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잘 알려진 스티브 해켓과의 교류로 알려진 간다르프, 미국으로 건너가, 샐리 포지오와 같은 존재가 된 알렉스 마카체크, 그리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SERENITY 정도가 있겠지만, 심포닉 록 밴드로서 지금에 이르러서야 70년대의 작품이 소개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오리지널 형태로 CD화 된 EELA CRAIG의 앨범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밴드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

<EELA CRAIG에 대하여>

밴드의 결성은 70년대, 오스트리아 중북부,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도시, 린츠에서 이루어졌다. 당시부터 사이키델릭, 프로블럼, 클래식, 전자 음악, 재즈, 그리고 블루스를 혼합하는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멤버는, 비틀즈 커버 밴드였던 MELODIAS 출신의 홀슈트 바버(드럼), 하랄트 쿠슐라더(오르간, 기타, 플루트, 색소폰), THE JUPITERS 출신의 휴베르트 보프너마이어(키보드), 게르하르트 잉글리쉬(베이스), 하인츠 게르슈트바이어(기타, 오르간, 보컬)이다. EELA CRAIG라는 밴드명은, 게르하르트와 하인츠의 아이디어로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1972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비르투오소인 빌 오르트너(색소폰)가 참여하게 되면서, 이 밴드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알프레드 페슈케가 밴드의 매니저를 맡게 되었지만, 성격이 강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멤버들과 자주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밴드는 자작곡을 포기하고 커버곡 위주로 연주하게 되었다. 밴드는 곧 오리지널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퍼스트 앨범을 발매하여 ELF의 "Carolina County Ball"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밴드가 제작한 이 앨범의 복사본은 1,500장만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CD화(마스터 테이프의 손실로 인해) 되어 있지만 희귀한 아이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72년,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홀슈트, 하인츠, 빌이 블루스를 추구하게 되었고, 하랄트, 휴베르트, 게르하르트가 EELA CRAIG의 심포닉 록을 추구하게 되었다. 드러머로 조 로바지가

본격적으로 합류한 후에는 쮜리히와 린츠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Dimensionen zwischen Pop und Klassik'라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주요 멤버로는 기타리스트 프리츠 리델베르거(기타, 멜로트론, 보컬), 휴베르트 슈나우어(플루트) 등이 합류했다. 1974년에는 싱글 'Stories/Cheese'를 발매했다. (두 곡 모두 Hats of Glass에 수록). 밴드는 1974년 1월 15일, ORF의 라디오 쇼에서 20분간 정기적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1974년 말에 드러머가 다시 교체되어, 조가 탈퇴하고, 프랑크 휴버가 합류했다. 곧 Vertigo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밴드는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두 번째 앨범으로, 심포닉 록으로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One Nighter'를 발매했다. (이후 4개의 앨범은 모두 독일에서만 발매되었다). 1978년에는 빌 오르트너가 재가입하여 'Hats of Glass'를 발매했지만, 이미 시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1978년에 앨범을 발매했다. 1979년에는 휴베르트가 건강상의 이유로 탈퇴하고, 프랑크가 귀 질환으로 인해 탈퇴했으며, 빌이 드럼을 맡게 되었다. 1980년에는 Ariola 레코드사에서 'Virgin Oiland'로 이적하여 싱글 'Mo bike jive Carry On'을 발매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1981년에는 활동을 중단했다.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하지는 않았지만, 1988년에 빌, 휴베르트, 그리고 게리 세더가 합류하여 'Hit or Miss'를 발매했지만, 내용은 지나치게 팝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참고로 2015년 11월에는 재결합 콘서트가 열렸으며, 성황리에 끝났다고 한다. 오히려 휴베르트 보프너마이어가 울리히 뤼펠과 Erdeklang 레이블에 합류하여 발매한 'Erdenklang(국내에도 발매됨)'이라는 한 장의 작품이 프로그레시브 팬들에게 어필할 것이다.

<Hats of Glas에 대하여>

1977년 9월부터 11월까지, 린츠의 자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프로듀서는 EELA CRAIG와 울리히 뤼펠이 맡고 있다. '음악여행'은 크리스 데 버그의 작품으로, 이 곡에서만 백 보컬로 데이비드 한셀만이 참여했다. 일부에서는 싱글 커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스타일 변화를 잘 보여주는 앨범으로, KAYAK이나 ANYONE'S DAUGHTER와 같은 신스팝적인 심포닉 록 밴드를 연상시킨다. 빌의 하이 톤 보컬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클래식 음악과 정면으로 마주한 듯한 분위기는 약화되었다. 전자 피아노를 활용한 연주는 결코 나쁘지 않으며, 보코더를 활용하는 점도 눈에 띈다. 앨범 타이틀 곡인 'Hats of Glass'는 기존의 심포닉 스타일을 추구한 넘버로, 스트링 신시사이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플루트 소리가 울려 퍼진다. 킹 크림슨을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전개가 인상적이며, 빌의 보컬 파트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기타 솔로는 훌륭하며, SEBASTIAN HARDIE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손이 많이 가는 편곡이다. 이 곡은 앨범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여겨지며, CD 'Symphonic Rock'에도 'Glovers Mill'와 함께 단독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이 곡은 1974년 싱글의 B면 곡이지만, 트롬본은 사용되지 않았다. 보컬 스타일은 기타 리프가 담당하고 있다. 인트로가 인상적인 'Clans Arc'는 보컬이 들어가면 THE NICE를 연상시키는 오르간 록으로 변모한다. 끈적거리는 베이스 라인도 인상적이며, 기타와 신시사이저의 유니즌도 훌륭하다. 간간이 나오는 해먼드 오르간이나 클라비넷 활용법 등은 이전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펑키한 면모를 보여준다. 'Holstenwall Fair'는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브라스 신시사이저를 배경으로 한 보컬 파트가 끝나면, EELA CRAIG 특유의 키보드 솔로로 전환되는데, 이 키보드 연주야말로 밴드의 진가일 것이다. 이어서 기타와 신시사이저 배틀로 이어지는데, 마치 콜트레인과 매클로플린의 인터플레이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흥미롭다. 멜로트론 솔로를 지나 보컬이 다시 돌아오면, 테마를 반복하며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Caught on The Air'는 발라드 곡이며, 'Cheese'는 'Stories'와 커플링되어 있던 싱글의 B면 곡인데, 이 곡은 올 인스트루멘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볍고 쾌활하며,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프리츠의 기타 솔로는 이 앨범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로 손꼽힌다.


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록이 우리나라에 체계적으로 소개된 것은 아마도 킹 레코드와 포노그램 레코드가 유로피안 컬렉션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최초일 것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과 같은 프로그레시브 계열 앨범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의 앨범이었지만, OSANNA와 ATOLL, ANGE와 같은 거장들 사이에 오스트리아라는 록과는 거리가 먼 나라의 밴드가 끼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인 Eela Craig이다.

원래 오스트리아에는 록 씬이라는 것이 없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제네시스 풍의 명작 앨범을 발표한 KYRIE ELEISON을 제외하면, OPUS INDIGO, KLOCKWERK ORANGE 등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밴드들뿐이어서, 우리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무시해도 좋은 나라였어야 했다, 사실은. 하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완성도를 지닌 앨범을 연이어 발표한 Eela Craig이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오스트리아는 우리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앞에 크게 부각되어 오는 것이다.

자, Eela Craig이다. 밴드의 결성 연도가 언제인지는 자료가 부족해서 알 수 없지만, 71년에 오스트리아의 PRODISC LABEL에서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의 사운드는 그 후의 웅대한 심포닉 록이 아니라(오르간을 중심으로 한 70년대 초반의 전형적인 것이었다), 그 후 5년의 간격을 두고 버티고 레이블에서 76년에 2집 '원 나이터'를 발표했다. 이때의 멤버는 Hubert Bognermayer (Key), Hubert Schnauer (Key), Harald Zuschrader (Key), Fritz Riedelberger (G), Gerhard Englisch (B), Frank Hueber (Ds)의 6인 편성이 되어 있으며, 독특한 트리플 키보드에 의한 투명하고 웅대한 심포닉 사운드가 완성되어 있다.

또한, 길모어나 라티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Riedelberger의 달콤한 기타도 완전히 밴드의 핵심이 되어 있다. 그 후 77년에 Will Orthofer (Vocal)를 맞이하여 3집 '햇츠 오브 글래스'를 발표했다. 투명감 넘치는 부드러운 사운드와 전담 보컬리스트에 의한 완성도 높은 곡들은 특필할 만하다.

더욱이, 이 앨범에는 Walter Karlberger를 영입함으로써 작사에도 힘을 쏟은 작품이 되었고, 같은 해 국제 브루크너 페스티벌에서도 연주되었다. 유럽 전통적인 예술을 승화시킨 유로록 역사에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멤버 변경을 거쳐 더블 키보드 체제가 되어, Virgin Island에서 5집 앨범 'Oiland'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를 테마로 한 내용이면서도 팝적인 요소도 도입하고 있다.

[원 나이터 & 햇츠 오브 글래스] 76년에 발표된 '원 나이터'는 트리플 키보드라는 편성이 된 첫 앨범으로 실질적인 1집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웅대하고 투명감 넘치는 독특한 사운드가 확립된 이 앨범은, 전담 보컬리스트가 없는 탓인지, 이 앨범부터 이어지는 심포닉 록 3부작 중에서도 인스트루멘탈 파트에 더 중점이 놓여 있어,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 대한 어필도 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곡의 시작부분의 두꺼운 키보드만 들어도 그들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Riedelberger의 기타는 이 시점에서 완성되어 있어, 독특한 톤으로 밴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다음 해인 77년에 발표된 '햇츠 오브 글래스'는 전담 보컬리스트가 가입하여, 더욱 다양성이 풍부한 내용이 되었다. 특히 1번 트랙 '어 스페이스맨 케임 트래블링'은 유럽 팝의 대가 Chris De Burgh(후에는 매우 유명한 팝 가수가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수입 전문점에 가면 거의 모든 가게에 코너가 있다)의 히트곡이지만, 클리어하고 박력 있는 보컬에 얽힌 키보드군, 정과 동의 선명한 편곡, 그리고 매력적인 멜로디. 나는 여기서 심포닉 록의 무한한 가능성을 느낀다. 심포닉이란 단순한 키보드 멜로디 록이 아니라, 웅대한 공간 속에 강력한 리듬과 장대한 편곡, 매혹적인 멜로디가 울려 퍼지고, 청자의 상상을 초월한 순간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며, 그것이야말로 Eela Craig이 보여준 소리다. 그렇게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곡들도 '원 나이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타이틀 곡을 비롯해, 약간 팝적인 감성을 지닌 그들의 지향점이 다양한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 해인 78년에 그들은 최고작 '미사 유니버살리스'의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4 # Missa Universe[ | ]

지난 두 세기 동안 종교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음악은 두 명의 앙숙 형제와 같았습니다. 모차르트, 하이든, 바흐, 슈베르트와 같은 위대한 교회 음악가들이 엔터테인먼트 및 댄스 음악도 작곡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음악적 통일체를 형성했습니다.

나는 수년 동안 두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는 새로운 종교 음악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하느님과의 중요하고 때로는 대체할 수 없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벼운 뮤즈의 많은 창의적인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때때로 자신의 레퍼토리 내에서 작곡의 형태로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적 감정을 표현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록 그룹 EELA CRAIG는 "록 미사"에 도전하여 미사 텍스트를 돕도록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록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프로젝트를 실현할 기회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전자 악기와 록 음악의 요소를 사용하여 엄격한 전례 스타일로 여러 언어로 된 고위 성직자였습니다.

미사는 미사 오르디나리움의 모든 부분을 포함하며 라틴어, 독일어, 영어 및 프랑스어로 된 필수 통일 텍스트를 사용합니다. 부분적으로 안티폰과 후렴구를 기반으로 작곡되었으며 라틴어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사를 관통하는 붉은 실과 같습니다. 작곡에는 오래된 코랄 모티프와 브루크너 모티프가 반영됩니다. 보이스의 분배는 칸토르, 스콜라, 민중에게 엄격하게 전례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발터 칼베르거

미사는 이미 1976년 9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열린 교회 음악 축제에서 "팝 미사"라는 이름으로 초연되었습니다. 독일 초연은 1976년 11월 뒤스부르크에서 있었습니다.

같은 해 8월에 그룹은 이 미사를 교황 바오로 6세에게 헌정했습니다. 교황은 1976년 10월 25일자 서한으로 이 헌정을 수락했습니다. 1978년 9월, "미사 유니버살리스"는 린츠의 브루크너하우스에서 국제 브루크너 페스트 '78을 맞아 여기에 제시된 버전으로 초연되었습니다.

당시 "팝 미사"라고 불리던 미사가 1976년 9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열린 교회 음악 축제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이후 독일 초연은 뒤스부르크에서 있었습니다. 같은 해 8월 그룹은 이 작품을 교황 바오로 6세에게 헌정했고, 교황은 같은 해 10월 25일자 편지로 그들의 헌정을 수락했습니다. "국제 브루크너 페스트 '78"은 린츠의 브루크너하우스에서 "미사 유니버살리스"의 현재 버전을 홍보했습니다.


밴드의 모체는 70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시, 다뉴브 강에 면한 거리, 린츠에서의 일이다. 결성 때부터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클래식, 퓨전, 재즈, 그리고 블루스를 믹스한 음악을 추구하게 되었다. 멤버는 BEATLES의 커버 밴드였던 MELODIAS 출신의 슈미트 발터(드럼), 하울트 슈라다르(기타, 플루트, 색소폰), THE JUMPERS 출신의 휴베르트 보그너마이어(키보드), 겔하르트 엔클리쉬(베이스), 하인츠 잘츠게버(기타, 보컬). EELA CRAIG라는 이름은 겔하르트와 하인츠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한다. 그라츠에서 행해져, 오스트리아 방송국 ORF에 의해 방송된 몇 곡에 빌헬름 오르트너(색소폰)이 참가한다. 이로 인해 밴드는 일약 주목받게 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큰 돈 25만 독일 마르크를 획득한 계약금을 입수한다. 알프레드 페쇼크 박사가 밴드 매니저를 맡게 되었지만, 자신이 세금 대책이며, 이 일도 밴드의 활동 아이디어에 영향을 미쳤다. 밴드는 자작에서 모든 오리지날 곡을 연주하고 있다. 첫 번째 앨범은 ELP의 "Tarkus"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밴드 이름을 딴 이 앨범은 1500장만이 프레스되어, 기발매반은 CD화(마스터 분실로 발생)되어 있지만 한때는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72년에 음악성이 변화한다. 호스슈토인, 빌코블루스를 추구하게 되어 하랄트, 휴베르트, 겔하르트가 EELA CRAIG의 이름을 계속하여 심포닉 락의 탐구를 계속하게 된다. 드러머로서 조 로버트가 참가하여,

다음 작품도 하랄치가, 프리츠 리앨범거(기타, 보컬, 뉴벨 슈나프루트)가 멤버가 된다. 다음 작품은 싱글 "Virgin/Cheese"를 릴리스. 모두 Erna Craig의 극장에서 CD화 수록. 밴드는 라이브를 월에 돈다. ORF의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빈번히 출연할 수 있게 된다. 74년에 다시 드러머가 교체. 조가 탈퇴하고, 플랜서 뷰버가 가입하지만, 음악성은 프로그레 일색이 되어, 이 일이 상업 베이스에는 연결되기 어렵고, 심포닉 락으로서의 대표격으로 되어 있는 "One Nite in Vienna"를 릴리스. 싱글 컷으로서 "Hats of Glass"를 릴리스하지만 시대는 프로그레 쇠퇴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78년 이후는 뉴벨 슈나프루트가 탈퇴. 프랑스 국적의 멤버가 더해져 각각 탈퇴하고, 볼가스트 바이스가 가입하게 된다. 80년에 싱글 "Missa/Carry On"을 릴리스하지만 7년을 마지막으로 정지한다. 밴드는 다시 모젤을 더해 "Missa/Maria"를 릴리스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덧붙여 99년에는 재결합 콘서트가 열리거나, 수록도 된 것 같다. 현재도 뉴벨트 바리체베 & Enderling 레이블에서 산발적인 프로그레 팬에게는 어필할 것이다.

Missa Universalis에 대하여

본작은 "Hats of Glass"와 함께 릴리스되고 있지만, 원래 76년 오스트리아, 아른슈타인 성에서 열린 브루크너 페스티벌이며, 그 모습이 라디오 방송되었다. 당시 불리고 있었다. 당시 디어팝 뉘이스부르크에서 키프는 이 작품을 듣고 감명을 받고 있다. 브루크너 페스티벌에 불린 버전이 연주되고 있다. 녹음은 바로 EELA CRAIG의 스튜디오에서 행해지고 있다. 앨범 타이틀과는 정반대의 사운드가 훌륭한 것이다. 보컬 어레인지는 우연히도 스페이시한 라디오 홀리의 곡조를 자아내고 있다. 어떤 의미, 어둠의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한 심포 파트에 이어 보컬이 들어오지만 과도한 연출은 완벽하게 억제되어 있어 귀를 기울이면 리듬 섹션이 새겨져 문어 하드한 사운드가 되는 것을 제외하면 청량한 기분이 된다. 이 곡에 있어서 앤디 위너의 프리지아 선법의 플레이는 그의 경력 중에서도 최고의 플레이이다. "글로리아"는 아름답고 따뜻한 보컬 하모니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EELA CRAIG의 시그니처인 브라스 신디사이저가 액센트로서 효과적이다. 후반은 더욱 과장되어 드라마틱하다. 조금 빨리 말한다. "크레도"는 3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어, 처음에는 발라드조이지만 2분 지나서 어쿠스틱 기타를 배경으로 심포로 변화해 간다. 이 곡의 사용법은 뉴 바로크적. 심포 팬에게는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상투스"는 브루크너의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지만 엔딩에서는 "웅 메일 잇히 바이스 보 힌"이라고 노래하고 있어 눈을 REFUGEE를 연상시킨다. "아뉴스 데이"는 중후한 하드 락조이지만 엔딩 근처에는 이 밴드다운 키보드 사운드파가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아멘"은 짧은 넘버로 조금 뱅겔리스에 울린다. 총괄하면 연주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작은 크라우트 독일풍 프로그레조로 불리고 있어 각각 내용은 동일하다. 빛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깊은 하카타에서 선렬하고 감히 산산은 생략하고 원문의 읽어내려 문에 맛있는 하라카나로 해석하고 각각의 가사가 일본어에 담겨 프랑스 정신은 완전히 배척되어 각각 쏟아냈다.


Kyrie Goria Credo Sanctus Agnus Dei

MISSA UNIVERSALIS 지금 소개가 되는 Eela Craig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그룹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음악은 4명 의 키보드 연주자를 포함하고 있는 멤버 구성이 말 해 주듯이, 키보드를 비롯한 건반 악기를 주 로 사용하여 모든 곡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고 그 위에 기타를 이용하여 예쁘게 치장을 한 듯 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모든 멤버가 음악 학교 교사 출신으로써 이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은 한 TV프로그램에서의 인연 때문이었다 한다. 1970년도에 한 TV프로에 세션으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룹을 결성하기로 한 이들은 이듬해인 1971년도에 same title앨범을 Prodise라는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서 발표하게 된다. 현재까지 CD로 재발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이들의 데뷰앨범은 현 재 이들의 네장의 앨범중 최고가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데뷰 앨범 발표 이후 유럽 여러 지역을 돌며 공연 활동을 한 이들은 Vertigo레이블을 통해서 본 앨범과 함께 Si-Wan Record를 통해 발매가 될 2집 'One Niter'를 76년에 발표하게 되고 그 다음해에 뒤이어 3집 'Hat of Glass'를 역시 Vetigo레이블을 통해 발표하게 된다. 지금 소개가 되는 'Missa Universalis'는 레이블을 Vetigo에서 Philips로 옳긴 후 1978년도에 발 표한 이들의 마지막 앨범으로써, 본 앨범을 끝으로 Eela Craig는 해산하게 된다.

이후 이들 멤버들의 음악적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키보드를 담당했 던 Hubert Bognermayr와 Harald Zuschrader만이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한것으로 알려진 다.

본 앨범과 함께 또 다른 이들의 수작인 'One Niter'를 라이센스로 기획하던 중에 독일의 Erdenklang레이블을 통해 두 음반이 CD로 재발매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다소 라이 센스화에 혼선이 있었으나, 독일에서 재발매된 CD에는 두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빠진 곡들이 있는 관계로 국내 라이센스화를 그대로 기획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곡 구성은 이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Kyrie)를 시작으로 모두 6곡의 미사곡(각 주 참조)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 앨범을 이루고 있는 곡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서 쓰이는 이미 정격화 되어 있는 일련의 미사곡들을 그대로 옮 겨와 앨범을 구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장엄하고 숭고한 종교적 분위기를 건반 악기로 들려줄 수 있는 웅장함, 안락함 그리고 신비로움 등을 이용, 여러 키보드 주자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또한 몇 몇 곡에서는 팝 적인 요소까지 적절히 가미시켜 중후함과 팝적인 면의 조화를 잘 이루어 낸 이들의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록의 정신으로 종교 음악에 가장 충실히 따르면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잃지 않았던 Eela Crai의 'Miss Universalisi' 이 한 장의 음반 역시 국내 아트록 매니아들의 가슴속에 남기를 바라며 , , ,

'Glory be to Thee. O.Load..'

「각주」

미사곡: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미사의 각종 전례문에 붙여진 곡.미사에서 쓰이는 전 례문 중 5개의 통례문이 있는데, Kyrie(연민의 찬가) Gloria(영광의 찬가) Credo(신앙 선언) Sanctus(감사의 찬가), Agnus Dei(평화의 찬가)가 바로 그것이다.

1. Kyrie 원래는 Kyrie Eleison으로써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로 시작되는 짧은 응창

2. Goria 영광송으로써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특정한 발성에 답하여 신도들이 행하는 창 화 "주여, 당신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 Credo 신앙선언의 일종인 사도신경에 붙인 곡.

4. Sanctus 삼성창으로써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여'로 시작되는 찬송가.

5. Agnus Dei 신양송으로써 미사, 성제에서 성체배령에 앞서 불리워 지는 세가지 기도.

글-맹경무(ARC)

5 Virgin Oiland[ | ]

EELA CRAIG는 1970년대 초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결성되었으며,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록, 클래식, 전자 음악, 재즈, 블루스 음악을 독창적이고 예술적으로 세련되게 혼합하여 연주했습니다. 그룹의 첫 네 장의 LP는 1971년과 1978년 사이에 발매되었습니다.

그룹의 사업을 담당하던 Hubert Bognermayr가 1979년에 밴드를 떠나면서 분쟁이 끝났습니다. 다른 밴드 멤버들은 그가 언론 매체에 자신의 행동을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끔 보도한 것을 비난했습니다. 대중은 Hubert Bognermayer가 Eela Craig를 대표하는 반면 다른 예술가들은 단순히 대체 가능한 배경 연주자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를 밴드에서 내쫓은 두 번째 이유는 다른 멤버들이 전년도 교회 문제에 대해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다소 한심한 "Missa universalis" L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신념에 반하여 기독교 가사와 터무니없는 의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했고, 이제 그 분노가 마침내 터져 나온 것입니다. 1979년 말, Frank Hueber도 영구적인 소음 노출로 인해 청력 손상이 발생하여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룹을 탈퇴했습니다. 노래 외에도 Will Orthofer는 드럼 연주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룹은 다음 음악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음악 학위를 마치고 린츠에서 음악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Gerhard Englisch (1952년 2월 18일 린츠 출생)는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를 연주했으며, 1967년에 일찍이 아코디언 세계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습니다. Harald Zuschrader (1944년 3월 5일 Freistadt 출생)는 키보드, 기타, 플루트를 연주하며, 기타 음악 교수이자 인기 있는 스튜디오 음악가 (가명: Nils O'Hara)입니다. Will Orthofer (1950년 3월 19일 St. Valentin 출생)는 드럼과 보컬을 연주하며, 그의 노래 역할 모델은 Chris Farlowe입니다. Hubert "Who" Schnauer (1954년 4월 6일 Steyr 출생)는 키보드, 기타, 플루트를 연주하며, 린츠 브루크너 음악원에서 횡적 플루트와 피아노를 공부했습니다. Fritz Riedelberger (1952년 11월 29일 린츠 출생)는 기타, 피아노, 노래를 연주하며 그룹의 가사를 대부분 썼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사운드 엔지니어 Alois Janetschko (1951년 3월 25일 린츠 출생)는 린츠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1979년, 위에서 언급한 라인업 변화의 해에 Eela Craig의 남은 멤버들은 린츠 근처 리히텐베르크에 있는 버려진 사각형 농가에 ECS-Tonstudio (사운드 스튜디오)라는 자체 24트랙 사운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이 스튜디오는 주로 음악가들 스스로가 설치했으며, 모든 것이 최첨단이었습니다(이 책자 29페이지의 재현 참조). 다른 음악가들도 그들의 녹음을 위해 임대할 수 있었습니다. 라인업 변화와 그들 자신의 농장 덕분에 그룹 내 분위기는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다음 LP인 "Virgin oiland"(Ariola 202311)는 1980년에 새로운 레이블로 발매되었으며, 이 스튜디오에서 두 달 동안 주야간으로 녹음되었습니다. 그 장인 정신은 - 항상 그랬듯이 - 완벽했습니다. 그것은 지구와 인류의 운명적인 역사를 묘사하며, 자체 파괴를 향해 점점 더 빠르게 나아갑니다. 제목의 말장난은 앨범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우리의 세계는 원래 상태였고, 그 후에는 인간 문명의 끔찍한 개입이 있었습니다. "Virgin island", 즉 손대지 않은 섬은 "Virgin oiland"가 됩니다. 그것은 석유 시대의 신랄하고 때로는 아이러니하며 냉소적인 스케치이며, 따라서, 원한다면, "녹색" 컨셉 앨범입니다. 영어 가사는 이 책자 중간의 16페이지와 17페이지에 빨간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How it started"를 제외한 모든 가사는 Fritz Riedelberger가 썼습니다. 원래 계획된 LP 제목인 "We Shall overcome"은 함부르크 석유 회사가 회사 이름 사용을 거부하여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아홉 번째 트랙인 "Love to hate you baby"에서는 P. Dale의 연설 중에 배경에서 희미하게 연주된 "We shall overcome"과 "All you need is love"의 짧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LP 뒷면 커버에는 자체 작성 트랙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CD에는 개별적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본판(King Records/Ariola K22P-119)은 1981년에 발매되었습니다. 이는 Eela Craig 스타일의 교향악 사운드가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일 MC 에디션(Ariola 402311)도 1980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뮌헨 Bertelsmann 레이블 Ariola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계약 협상가인 잘츠부르크 콘서트 에이전시 Schlote가 그들과 함께 적절한 조건과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협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티스트(라이선스 제공자), Schlote 콘서트 에이전시, 그리고 Ariola-Eurodisc Ltd. 간의 20페이지 계약은 9개월 지연 후 1980년 1월 20일에 체결되었으며 모든 당사자가 서명했습니다. LP는 1980년 5월 5일에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그룹이 마스터 테이프를 너무 늦게 전달하고 커버 인쇄에 몇 가지 추가적인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여 마감일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날짜는 독일의 경우 1980년 6월 23일, 오스트리아의 경우 1980년 6월 27일로 정해졌습니다.

LP를 위한 두 가지 홍보 전단지가 있었습니다. 한 페이지 전단지(30페이지 참조)와 4페이지 전단지로, 손에 든 소책자의 10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단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밴드는 LP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Virgin Oiland는 인간(= Oiland)에 의해 형성되고 영향을 받은 세상 또는 그가 원하는 세상(= Virgin)입니다. 인간은 실수하기 쉽고, 금지된 열매를 기꺼이 먹으려고 합니다. 그의 범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까? ('Birds of a feather', 인간은 자기 비판에서 자만심이 강합니다('Pig City', 'Still')),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과도하게 과대평가합니다. 그는 실패하고 항상 새롭게 시작합니다('Carry On'). 그는 자신의 예측된 파멸을 무시하거나 라디오에서 생중계할 것입니다('Love To Hate You Baby'). 그러나 그는 유죄가 아니라 신성하고 악마적인 게임의 일부입니다('The Seven Minutes'). Virgin Oiland는 아틀란티스 또는 Mu일 수도 있으며, 그 운명은 모든 세계의 운명과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도록 선고받았고 피학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즐깁니다. 아마도 에덴동산으로 가는 문을 느끼는 노인은 언젠가 신과 사탄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자문할 것입니다('The Seven Minutes'). 아마도 그 소녀는 언젠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헤밍웨이의 사자('Lions Covering The Beaches')를 만날 것입니다. 어쩌면 언젠가 죽음이 'Beecher's Brook'을 건너는 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Virgin Oiland'는 마침내 끊임없는 일곱 번째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Virgin Oiland'는 독창적인 항해자의 발명이 아닐 수도 있고, 아마도 신과 사탄은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Josef는 결국 무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매우 일반적인 용어로 "가사는 일관성이 있고, 음악은 가사에 잘 어울리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다양하게 다가옵니다. 개별 노래는 상당히 다양하지만 이상적인 컨셉 앨범처럼 동질적인 전체를 형성합니다. Eela Craig 음악가들은 악기를 훌륭하게 마스터합니다. 일단 배우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문적인 자만심, 엘리트주의적인 오만 또는 차가운 완벽주의는 결코 없습니다. 다양한 키보드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는 감정적인 신디사이저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 남용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음악적 감각, 악기 숙달,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정교한 사운드 스튜디오 장비 처리는 항상 표현된 주제에 전념합니다. 밴드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이제 상황이 유리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연주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7인치 싱글, 1980년의 "Carry on"("we found daddy hangin' on the xmastree"(Ariola 102833)와 1981년의 "Mo-bike jive" / "Carry on"(Ariola 103023)는 "Carry on"을 제외하고 트랙이 LP에 없기 때문에 수집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두 곡은 이제 보너스 트랙으로 CD에 추가되었습니다.... 그 후, Eela Craig는 실제로 해체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1987년부터 Willi Orhofer와 Hubert Schnauer는 기타리스트 Gerry Moder 또는 드러머 Arno Hemala와 함께 다소 당황스러운 싱글을 여러 장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얕은 팝 LP "Hit or Miss"(MCP Records 130.606)를 녹음했는데, 이는 당연히 무시되었습니다. 해당 앨범의 MC(MCP Records 130.606)와 CD(MCP Records 130.606)가 동시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모든 자료는 Eela Craig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지만 이전 Eela Craig와 공통점이 없었고 아예 제작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1995년 11월 17일에 린츠에서 열린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다시 모일 때까지 그룹에 대해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며, 이 공연은 전문적으로 녹음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린츠 포스트호프에서 한 번 더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공연의 DVD는 Willi Orhofer의 아들 Bernhard가 발매했습니다. 원년 라인업의 음악가인 Heinz Gerstmair, Harald Zuschrader, Gerhard Englisch가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첫 번째 LP에서 4곡을 연주했습니다.

Harald Zuschrader는 현재 음악 정교수이며 자신의 사운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골드 또는 플래티넘을 수상한 여러 아티스트와 앨범을 제작했습니다. Gerhard Englisch는 오스트리아의 사운드 장비 및 조명 시스템을 위한 가장 큰 렌탈 에이전시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Hubert Schnauer는 프리랜서 음악가이자 작곡가입니다. Alois Janetschko는 Hubert Bognermayr와 자주 협력하여 다시 그림에 전념합니다. Will Orhofer는 항상 음악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프로듀서, 작사가, 편곡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2010년 5월 16일부터 5월 17일 밤에 린츠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Fritz Riedelberger는 이미 2004년 10월에 같은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Sony/BMG의 발표에 따르면 해당 권리에 대한 주장이 만료되었으므로 해당 CD는 아티스트 및 콘서트 에이전시 Schlote와 협력하여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Love to hate you baby"에 포함된 "We shall overcome"과 "All you need is love"의 두 스니펫은 개별 트랙으로 나열되지 않았습니다. "virgin oiland"의 CD 에디션은 아직 없습니다.

불행히도 Eela Craig 웹사이트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그룹과 일부 멤버에 대한 독일어 및 영어 위키피디아 버전에는 최소한 항목이 있습니다.

Harald Zuschrader, Gerhard Englisch, Hubert Schnauer, Alois Janetschko, Klaus Schwaiger, Michael Schlote, Claudia Keim (Sony/BMG) 및 Jurgen Kaun에게 친절한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5.1 음반의 인서트[ | ]

EELA CRAIG는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꾸준한 노력과 음악적 요구뿐만 아니라 가사적 요구의 성공은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선도적인 콘서트홀, 오페라 하우스 및 교회, 축제 참가, 국제적으로 발표된 4개의 장편 음반, 히트 퍼레이드 진출, 오스트리아 최대 산업 도시의 문 앞에 있는 사각형 농가에 자체 24트랙 녹음 스튜디오를 포함하여 서유럽 및 동유럽 6개국에서 거의 200개의 콘서트와 15개의 투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성공은 다양한 종류의 실패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 서클의 개인적인 실망, 무지 및 오만, 그들의 독단성은 다른 음악적 견해를 드물게 허용하고, 가사 개념을 거부하고, 권력을 이용합니다.

EELA CRAIG는 결코 스스로를 쉽게 만들지 않았지만 외부적으로도 요구 사항을 가파르게 설정했습니다. 그렇게해야만 독립적으로 일하고, 그렇게해야만 수준을 달성하고 유지하고, 그렇게해야만 음악적 추세를 피할 수 있으며, 비판 할 권리가 있습니다.

10주년 기념 행사와 이 기간 동안 얻은 경험을 계기로 EELA CRAIG는 AMNESTY INTERNATIONAL을 위해 공연합니다. AMNESTY INTERNATIONAL은 신념, 피부색, 민족적 기원, 성별 또는 종교로 인해 투옥 된 사람들에게 전 세계적으로 도움을 제공합니다. AMNESTY INTERNATIONAL은 정치적 재판에 감시자를 보내고,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고, 감옥과 수용소를 방문하고, 정치적 수감자의 가족을 돕고, 의약품을 보내지 만, 자체적으로도 도움, 협력 및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EELA CRAIG와 AMNESTY INTERNATIONAL은 EELA CRAIG의 음악과 새로운 조명 및 무대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논의하고 현재 LP "VIRGIN OILAND"의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AMNESTY INTERNATIONAL의 작업과 목표에 대해 알릴 것을 초대합니다.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 된 입장료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순이익은 전액 AMNESTY INTERNATIONAL의 독일 지부에 전달됩니다.

콘서트 프로그램은 다양한 장편 음반 발췌뿐만 아니라 새롭고 이전에는 발표되지 않은 제목으로 구성됩니다. 그룹 자체 스튜디오에서 올해 개발, 제작 및 믹싱되어 80년대의 첫 번째 Lyrock-LP로 간주되는 현재 녹음이 특히 중요합니다.

EELA CRAIG는 다음과 같이 연주합니다. GERHARD ENGLISCH :베이스, 멜로트론, 퍼커션, 피아노 WIL ORTHOFER : 보컬, 드럼, 퍼커션 FRITZ RIEDELBERGER : 멜로트론, 콩가, 기타, 보컬, 피아노 HUBERT SCHNAUER : 플루트, 피아노, 멜로트론, 비브라폰 HARALD ZUSCHRADER : 하몬드 오르간, 전자 피아노, 신디사이저, 플루트,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멜로트론 ALOIS JANETSCHKO : 믹싱 콘솔, 음향 기술

지금까지의 장편 음반 : EELA CRAIG (1971) Pro-Disc 208 711 ONE NITER (1976) Phonogram (Vertigo 6360635) HATS OF GLASS (1978) Phonogram (Vertigo 9336638) MISSA UNIVERSALIS (1978) Phonogram (Philips 6380634) VIRGIN OILAND (1980) Ariola 202311

Eela Craig : 재에서 부활하는 불사조 재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린츠 그룹 Eela Craig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록 그룹의 내부 분쟁과 해산 징후 후에 남은 폐허에서 현재 부상하고 있습니다. 죽었다고 말한 사람들은 가장 오래 살고, Eela Craig는 그 어느 때보 다 활기차게 살아 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앨범 "Virgin Olland"로 그들은 국제적인 고공 비행에 좋은 시작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Hubert Bognermayer와 헤어진 후 Eela Craig에 대한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음반이 없고, 공연이 적고, 그들과 함께라면 어쨌든 끝날 것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 동안 Eela Craig는 조용히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린츠 근처의 리히텐 베르크에있는 농가로 이사하여 분쟁과 소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으며 새로운 음반 회사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24 트랙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리히텐 베르크의 Eela-Craig-Hof는 음악가, 친구, 심지어 이웃을위한 만남의 장소가되었습니다.이웃은 장발의 록 뮤지션에 대한 모든 편견을 버렸습니다. 이 친근한 작업 환경은 "Virgin Oiland"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Eela Craig가 지금까지 만든 것 중 최고입니다."(Fritz Riedelberger). 원래 앨범의 제목은 "We Shell Overcome"이어야했지만, Shell Hamburg와의 2개월간의 협상 끝에 벤진 회사는 이 단어 놀이에 대한 회사 로고와 이름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그 앨범이 그녀에게는 석유 친화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Virgin Oiland"는 인류에 대한 아이러니 한 자기 성찰이며, 그 기원 이후 점점 더 빠르게 자신의 파괴를 향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Love To Hate You, Baby"라는 곡으로 우울한 결론이 내려집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만심으로 라디오에서 자신의 몰락을 방송합니다. "Hate Unlimited Orchestra"의 대히트를 광고하고 비누 광고로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라디오 방송사의 말은 느슨한 무해함으로 인해 끔찍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이 지점이 이미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오버외스터라이히셰 나흐리히텐, 1980 년 7 월 22 일

Paul Hollingdale이 진행하는 인류의 최신 라디오 방송의 냉소주의는 현실에 의해 오랫동안 따라 잡혔습니다. ORF의 광고에서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 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사용됩니까? "쇼핑이 행복하게 만든다"(구매는 행복하게 만든다)와 같은 슬로건조차도 벌금없이 매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 라디오 방송 후-상징적으로 "We Shall Overcome"과 "All You Need Is Love"로 시작-인류와 함께 "Virgin Oiland"에 있습니다. 그리고 "7분"에서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세상이 새롭게 창조되고, 경주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수 있고, 영원한 순환이 계속됩니다. Eela Craig는 이 주제를 일관된 곡으로 처리하지 않고 모자이크처럼 합쳐지는 다른 곡으로 포장했습니다. 수년 동안 성가 팝을 연주 한 그룹에서 실제로 기대하지 않는 일부 노래의 부드러움은 놀랍습니다.

그들은 과도한 악기 "부풀려"로 좋은 작곡을 피하여 앨범을 다양하고 쉽게들을 수있게했지만 일반적인 히트 퍼레이드 패턴과는 거리가 멀습니다.

"Virgin Oiland"는 전 세계에 출시되는 최초의 Eela Craig 음반이 될 것입니다. 유럽 ​​대륙에서는 "Pig City"가 싱글로 발표되고 영국에서는 "Love To Hate You, Baby"가 될 것입니다. 이 제작에서 열려있는 유일한 소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사가 중요하고 좋아서 표지에 독일어로도 인쇄해야합니다. 아니면 레코드가 충분히 성공적이라면 Eela Craig는 독일어 버전 (Peter Gabriel 참조)을 녹음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 : AMNESTY INTERNATIONAL Bundesgeschäftsstelle, Heerstr. 178, 5300 Bonn 1, Postacheck-Konto Köln 2240 40-502 EELA CRAIG : c/o Konzertdirektion Schlote Ges.mbH., Danreitergasse 4, A-5020 Salzburg

"Virgin Oiland"비판에서 : "... 이제 스스로 사운드 스카이를 망치기 위해. 음악보다 자신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존 록 비평가에 의해 괴롭힘과 경멸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Craigs는 이제 스타일을 통합하여 그들을 - 확실히! - 대륙 록 음악의 선두에 서게 되었습니다." (룬디, 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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