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Town의 책 이야기

DarkTown의 책 이야기

1 # 외면일기(미셀 투르니에)[ | ]

ISBN:8972752754

지금까지 읽은 수필집중 최고의 책이다.
트루니에 식의 위트와 삶에 대한 성찰, 그의 박식함과 졸라의 제자다운 특유의 주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읽는 사람에게 삶의 한장을 잠시 덮어두고 쉬어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외면 일기중-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우리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자 한다고 예고해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아니, 대통령이 왜 너희 집에 와서 식사를 한다니?"
"내가 유명한 사람이니까."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대꾸한다.
"그런다고 내가 믿을 줄 알고!"
...
어느 일요일 아침 어머니가 TV에서 미사 드리는 광경을 시청하고 있다.
사제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의 모험 이야기에는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상상해낸 네 번째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여간 재미있는게 아닙니다."
...
"그것 보세요. 내가 아주 이름 없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일요일 설교 때 내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니까요!"
어머니의 말: "아, 분명히 알아둬! 신부님이 작가 미셸 투르니에라고 했어."
나의 대답: "그래서요? 그건 사실 아닌가요?"
어머니의 대꾸: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괴테나 빅토르 위고였다면 작가 괴테, 작가 빅토르 위고라고 하진 않았을 거야."

그어머니에 그 아들 -_-;;;;


2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파울로 코엘료)[ | ]

ISBN:8982817425

코엘료의 책들은 전체적으로 밋밋한데다가 문체가 유려한것도 아니고, 완성도가 있다고 보기도 힘든 구석이 많다. 연금술사를 읽고 실망한 사람이라면 그와는 코드가 맞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그의 책을 보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왜 사는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날이 많은 사람은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저런 질문을 던지면, 조언을 해 준답시고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불교나 성경의 한구절을 읊조리거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재난인데도,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아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앞뒤 맞지도 않는 괘변따윌 듣느라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저 책을 읽는게 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당신이 살아온 삶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가 없고, 앞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절망하였을때 당신을 무었을 할것 같은가?
만약 삶이 앞으로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고, 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삶이란 것은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살아지는 것'이 아닌 '자기로 살아가는 것'일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코엘료는 이 책의 주인공인 베로니카와 그녀의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살고 싶은데로 사시기를..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것이므로..

-소설 중-

'나 자신을 다스려야 해. 난 한번 결심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이야.'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많은 일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모두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합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둔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수도원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삶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 죽음의 앙티샹부르


3 # 파도소리 (미시마 유키오)[ | ]

ISBN:8970133755

올해 생일엔 유독 책을 많이 선물 받았는데, 그중의 한권이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파도소리'다.
혹자에겐 군국주의 찬양자로, 혹자에겐 20세기 최고의 일본 소설가로 평가가 엇갈리는 그의 소설이기에, 호기심반 기대 반으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유독 미시마식의 삐뚤어진 인물묘사나 폭력등이 배제된, '현실에 가장 가까운 파라다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인 신지와 하쓰에, 두 사람 모두는 노동의 신성함을 몸으로 실천해 가며, 학교에서 주입 받은 지식 대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인물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억누르는 법이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으로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서로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인정할 줄 아는 캐릭터들로 묘사되고 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책의 스토리 라인이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로맨스 소설들과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실린 작가와의 가상 인터뷰중에 보니 그리스 소설'다프니스와 크로에'의 일본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독서 패턴을 바꾸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볍게 읽기에 좋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4 #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아라이 만)[ | ]

ISBN:893565258X 에펠탑의검은고양이

요즘은 여유가 좀 생겨서 학교 도서관을 뒤져가며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일본 소설쪽에 흥미가 생겨서 이것 저것 빌려다 보고 있습니다. (예전엔 한달에 못 읽어도 책 6권 정도는 읽었는데 요즘은 잘 시간도 없어서 책을 거의 못 봤어요..ㅜ.ㅜ)

일본 소설쪽을 뒤지다가 아라이 만의 책이 눈에 띄어서 재밌을듯 싶어 집어왔는데.. 과연...

이 책은 에릭 사티의 전기를 쓴 소설입니다. 사티는 훗날 라벨, 드뷔시등과 어깨를 견줄만한 작곡가가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사후에는 생전에 누렸던 명성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 했죠. 이 책에 묘사된 사티는, 불안정하고 가난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모습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인 이유는 에릭 사티가 젊었을때 일했던 클럽 이름이 검은 고양이 클럽이었고, 사티의 별명도 검은 고양이 신사였기 때문(손잡이가 검은 고양이 모양인 박쥐 우산을 들고,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녔음..--)이랍니다.

사티 주변의 친구들과, 그의 연인이었던 쉬잔. 쉬잔을 사랑했던 로트렉의 이야기등이 꼼꼼한 고증과 자료 조사 과정을 거쳐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책 중간에 들어있는 컬러화보 부분인데 사티의 초상화와 19세기 말의 파리 풍경, 사진등이 곁들여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하더군요.

아라이 만이라는 인물 자체가 작곡가, 가수, 프로듀서로도 상당히 유명하지만, 소설가로서도 아쿠다카와 상을 수상할만큼 깊이 있는 글을 쓰는 인물이라서 구미가 더 동했었는데, 읽어보니 과연 그답게 글을 잘 풀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라이 만의 곡중에는 사타의 영향을 받은것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네요..(안들어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소설을 읽고나서 갑자기 사티의 곡들이 듣고 싶어져서 여기저기 뒤적거리면서 찾고 있는중입니다..

그의 곡들은 지금 들어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상당한 파격과 대담성을 지니고 있는데, 소설에 묘사된것처럼 그가 머릿속으로 진짜 소금에 절여진 괄태충을 생각하면서 흐물흐물해 졌었을까요?

아라이 만 다운, 앞으로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무기력함에 대한 묘사일것 같습니다.. ^^


5 # 여성론 (아우구스트 베벨)[ | ]

ISBN:5000101168

좋아했던 친구에게 대학교 2학년때 생일 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역사와, 자본에 의한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에 대해서 해석한 책입니다.

100여년전의 맑시스트가 21세기의 남성보다 더 열린 시각으로 여성해방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습니다.

베벨은 엥겔스의 수제자중 한명이었습니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몸소 체험했던 프로레탈리아 해방운동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정형화시킬 수 있을 만큼 탁월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거의 100년도 전에, 사회 발전의 방향으로 제시했던 "남성과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대접받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성이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현재까지도 여성운동의 모토인것을 보면, 베벨이 이 책을 저술하던 1800년대 말과 현재의 사회가 표면상의 급진적인 변화는 이루었지만, 실제적인 의식 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에겐 '여성운동'에 대해 또다른 의식 전환을 가져다준 책이었습니다.


6 # 이대조 (모리스 메이스너)[ | ]

대학때 '동양문화사'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중국의 혁명사에 푹 빠졌었습니다.
모리스 메이스너는 중국혁명사에 있어서는 손꼽히는 세계적인 석학중의 한명이죠.

그가 쓴 '이대조'라는 책은 중국의 맑시즘 전파와 중국식 사회주의의 기본 바탕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북경대학 교수였던 이대조의 삶과 사상적 변화과정을 연대기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이대조는 중국식 사회주의 구축을 위해 맑시즘을 중국의 사회 현실에 맞춰 재해석 했습니다.

즉, 프롤레탈리아 혁명 대신 농민 혁명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균형을, 결정론과 능동주의의 조화등을 고려해 중국식 사회주의의 초석을 닦았던 것이지요.

이대조의 이러한 중국식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동시대의 사상가가 존재했는데, 그의 이름은 '진독수'였습니다.
모리스 메이스너는 책에서 진독수의 '원칙에 충실한 맑시즘 해석'노선과 이대조의 '중국식 사회주의' 노선의 비교도 빼놓지 않고 설명을 하고 있죠.

두 인물 다 뜻은 순수하고 좋았으나 이대조의 노선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진독수는 역사속에 묻히게 됩니다.
책 리뷰를 쓰다보니, '중국혁명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한번 연상 되는군요.

중국 혁명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흥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7 # 채털리 부인의 사랑 (David Herbert Richard Lawrence)[ | ]

ISBN:8985695762

저의 사춘기 시절에 저의 성에 대한 가치관과 남성관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책을 꼽으라면,
채텔리 부인의 사랑이 1순위가 될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매일밤 자기전에 채텔리 부인의 사랑을 반드시 읽고 자서, 고등학교 졸업할때 쯤엔
Hard Cover였던 겉표지가 너덜너덜 다 떨어질 정도가 됐었지요.

지금 생각해 봐도 코니와 올리버의 정신적, 육체적인 교감에 대한 로렌스의 묘사는 어떤 책에서도 본적이 없었을 만큼 고결하고 순수했던것 같습니다.

책에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부분은, 코니가 우연히 올리버의 목욕 장면을 보면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올리버가 코니에게 보냈던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편지 내용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결코 상대방을 구속하지 않고, 서로 별과 별사이와 같은 균형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내용을 담은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편지였지요.

산지기 올리버에 대한 묘사중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생각이 나는군요.
"그는 그녀보다 10살 위였지만 경험은 1000살이나 위였다."

저는 아직도 올리버 같은 남자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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