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다른 뜻에 대해서는 블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The Best of[ | ]

  (EMI, 2000) ★★★★☆

“데이먼이 U2가 되길 바랬다면, 나는 항상 폴 the Fall 처럼 되길 바랬다.” 데이먼 알반의 연인이었던 일래스티카 Elastica의 저스틴 프리쉬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녀는 블러의 키잡이라 할 수 있는 데이먼 알반이 품고 있는 야망을 비교적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데, 락스타 노릇에 만족하는 오아시스 형제들은 아티스트를 꿈꾸는 블러에 비하면 차라리 소박해 보인다. 미국 인디 락적 성향이 짙었던 [Blur]와 [13]을 거쳐 이 아트 스쿨 출신 뮤지션들의 최종 목적지는 토킹 헤즈 Talking Heads 같은 아트 팝 밴드를 지향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블러도 이제 앨범을 6장이나 낸 밴드로서 베스트 앨범이 하나쯤 필요하다면, 중대한 변신을 앞에 두고 있는 2000년은 가장 적절한 시점이었다.

‘There’s No Other Way’와 ‘She’s So High’는 슈게이징과 배기 비트가 어울려 있었던 데뷔 앨범 [Leisure]의 수록곡이다. 블러 중기와는 사뭇 다른 음악을 들려 주지만 위의 두 곡은 블러의 라이브에서도 즐겨 연주되었고 팬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브릿팝의 전형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도기적 앨범이었던 [Modern Life Is Rubbish]에서는 ‘For Tommorrow’ 한 곡만이 선정되었다. 역시 이들의 대표작인 [Parklife]에서 ‘Girls & Boys’, ‘This Is a Low’등의 다섯 곡이 수록되었고, [The Great Escape]에서는 어떤 조사에서 이들 노래 중 가장 우아한 곡으로 뽑힌 바 있는 브릿팝 심포니 ‘The Universal’ 과 오아시스의 싱글 ‘Roll with It’과 같은 날 풀려 유명한 경쟁을 벌였던 ‘Country House’ 등이 수록되었다.

1997년 셀프 타이틀 앨범 [Blur]에서부터 이들의 음악에 ‘제 2부’라는 제목을 달아 줄 수 있다면, ‘Song 2’는 ‘위-후’ 후렴구 하나로 브릿팝이라 불려지던 것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던 이들의 시도가 세계적인 인정 (영국에서는 홀대)를 받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것이 미국 인디, 노이즈 신의 직접적인 영향이 느껴지는 앨범이었던 반면 1999년도에 발매된 [13]은 미국의 사운드도, 영국의 사운드도 아닌 블러의 소리를 담고 있다. 런던 가스펠 합창단을 동원한 ‘Tender’가 보여주는 비전은 동시대 미국과 영국의 밴드들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과는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듯 보인다. 브릿팝에서 노이즈 락과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리아를 거쳐온 블러가 지금 주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레이엄은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 [Golden D]에서 예의 미국 인디락에 대한 애정을 고수하고 있지만, 가파른 변화폭을 보이는 데이먼 알반의 음악 취향은 다음 앨범에 대한 예측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고릴라즈 Gorillaz라는 힙합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데이먼 알반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서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아프리카의 리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월드 뮤직과 힙합의 선구자가 된 듯한 태도는 많은 팬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고, 팀의 베이시스트 알렉스 제임스 마저도 데이먼을 “런던 서부에서 가장 시커먼 놈 the blackest man in west London” 이라고 비꼬았다.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신곡 ‘Music Is My Radar’를 통해 예측해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다음 앨범은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무척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원래 이 곡은 블러 사상 최고의 노래라는데 멤버 전원이 동의했다는 ‘Black Box’ 의 B면 곡으로 녹음되었는데, A&R 맨이 감동해 눈물까지 훔쳤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Music Is My Radar’가 아니라 17트랙에 달하는 언제나 훌륭한 팝 밴드였던 블러의 궤적이다. 신곡과 나머지 앨범 전부를 기꺼이 바꿔도 좋다는 식의 블러의 자기 부정은 그 동안의 블러 모습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솔직히 아니꼬운 광경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 베스트 앨범이 수용자에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vanyll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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