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Frisell/BusterKeaton

   

1 # Sonimage[ | ]

Bill Frisell Music for the films of Buster Keaton Go West / High Sign / One Week

1995년에 빌 프리셀이 버스터 키튼의 세 편의 무성영화를 위한 음악을 발표했을 때, 그의 음악은 미국이 가진 사운드적 전통에 절충주의를 결합시킨, 소위 아메리카나 시절의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가 92년에 발표하여 대단한 호평을 얻은 앨범 [Have a Little Faith]는 이러한 그의 음악적 행로를 가장 극명하게 직시하도록 한 앨범이었다. 이 커버버전들만을 수록한 앨범에서 빌 프리셀은 애론 코폴란드와 찰스 아이브스, 존 필립 수사와 같은 작곡가들의 곡과 밥 딜런에서 존 하이아트, 머디 워터스, 소니 롤린스, 스티븐 포스터, 마돈나의 곡들을 자신의 음악적 컨텍스트 내에서 미국이라는 주제 하에 결합시켰다. 10분에 달하는 [Live To Tell]이 그의 솔로 레코딩을 통상적으로 수식하는 ‘경계없는’, ‘느리지만 광활한’ 사운드를 여실히 들려주었고, 이 앨범에 대한 분분한 비평적 찬반양론에도 불구하고 빌 프리셀의 음악적 마인드는 [Have a Little Faith]에서 확실하게 이후의 지향점을 드러냈다. 빌 프리셀의 두 장의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 대한 앨범 [Go West]와 [High Sign/One Week]는 작곡가로서의 빌 프리셀이 버스터 키튼에 의한 기존의 텍스트에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부여한 앨범으로서 이러한 지향점들과도 부분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빌 프리셀은 볼티모어 출신으로 십대 시절부터 클라리넷을 연주해왔고, 기타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소명을 발휘한, 대단한 지명도를 가진 아티스트이다.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학교에서 팻 매쓰니와 함께 공부했고 마이클 깁스, 존 다미안 등으로부터 배웠으며, 이후 독일 레이블 ECM의 대표적 기타리스트 중의 한명이 되었다. 그의 명성은 청자들에게 ECM 스타일의 기타리스트로 각인되는 것으로 시작하였으나, ECM을 벗어나 일렉트라 산하의 넌서치에서 자신의 음반을 발매하면서 그가 가진 스타일이 ECM 컨벤션과 상당 부분 다르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특히 그의 연주가로서의 역량은 그가 스탠다드 재즈에서 헤비 메틀, 쓰래쉬 메틀에서 아방-가르드, 블루스, 팝에 이르기까지 기타 테크니션으로서는 전 장르를 아우르며 매번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그는 80년대 뉴욕에서 존 존과 함께 음악적 실험주의의 최전선인 네이키드 시티에서 활동했고, 존 존의 [Big Gundown], [Spillane], [Cobra] 등에 참가했고, 진저 베이커, 찰리 헤이든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으며, 엘비스 코스텔로의 초청으로 엘비스 코스텔로와 버트 바카락의 음악을 재구성한 [The Sweetest Punch]를 발매했고, ECM시절에는 재즈 드러머 폴 모티안과 여러 장의 레코딩을 함께 했고, 버논 레이드와는 듀오 프로젝트를 구성했고, 얀 가바렉, 로빈 홀콤, 라일 메이즈, 폴 블레이, 에버하르트 베버, 웨인 호르비츠, 존 스코필드 등의 조력자로 크레딧에 그 이름을 올렸다.

빌 프리셀이 기타리스트로서, 혹은 연주가로서 참여한 앨범들은 그의 음악적 모색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위에 언급한 여러 뮤지션들과의 작업 속에서 단순히 자신의 음악적 영역에 대한 탐색전을 펼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작업들 속에서 웨스 몽고메리, 짐 홀, 지미 헨드릭스를 우상으로 한 자신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최고의 테크닉을 발휘한다. 그 테크닉들에는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는데,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예를 들어 빌 프리셀 밴드의 Before We Were Born과 같은 앨범에서는 블루스와 재즈 임프로바이제이션, 인더스트리얼 록, 웨스턴과 같은 명시적인 장르들을 마치 트랙별로 세분하여 들려주는 작업과 같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빌 프리셀의 음악관은 음악에서의 경계에 대한 거부에 대한 천명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재즈에 기반한 연주가 보편적인 록에 가까운 시도들로 넘쳐나거나 [Nashville]에서 대가들을 모셔놓고 컨트리 음악에 대한 집적물과도 같은 음악들을 시도하는 것과도 같은 것은 빌 프리셀의 솔로 레코딩에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솔로 레코딩들은 웨스턴과 블루 그래스, 블루스에 보다 많은 중심을 두는 시도들로 넘쳐난다. 이러한 솔로 레코딩들은, 이전의 다른 레코딩들에서 연주가로서의 빌 프리셀을 기타리스트 중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던 것과는 별개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역량이 연주가로서의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일렉트릭 기타의 클라크 켄트(수퍼맨)라고 불리며(스핀 誌), 미국 음악에 대한 명상과 음악적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뮤지션으로 불린다(뉴욕 타임즈, GQ 誌). 이러한 평가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의 음악적 절충주의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한 ‘미국’이라는 테마는 그의 버스터 키튼에 대한 레코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Go West>는 버스터 키튼의 1925년 영화이다. 주인공 청년 프렌들리스(Friendless)는 고된 나날을 보내다가 꿈을 찾아 서부로 가서 어느 목장에 취직한다. 그는 자신의 납작한 모자(버스터 키튼의 트레이드 마크인)를 고수하며 카우보이 모자를 거부하는 서투른 카우보이가 된다. 그리고 그는 황소에 받칠 뻔한 자기를 구해준 암소 브라운 아이스를 생명의 은인으로 모시는데, 브라운 아이스가 도살업자에게 끌려가게 된 위기의 상황에 라이벌 목장과의 전투에서 우여곡절 끝에 공을 세워 브라운 아이스를 상으로 받게 된다. 이 영화는 그리피스의 의 여주인공 브라운 아이스와 등장인물 중의 하나인 프렌들리스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그리피스 작품에 대한 패로디가 된 작품이기도 하며, 그의 이전의 최고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그가 자신의 프로덕션 이름으로 만든 최초의 작품인 1920년의 <One Week>에서 막 결혼한 버스터 키튼은 신부의 옛 남자친구로부터 1주일만에 다 지을 수 있는 DIY 집을 선물받는데, 집을 구성하는 부품들은 상자별로 나뉘어져 순서가 매겨져 있어서 순서대로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신부의 옛 남자친구가 순서를 엉망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일주일 후에 만들어진 집은 제대로 된 집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1921년 작품인 <High Sign>은 여러 가지 트릭으로 최고의 사수인양 행세하던 버스터 키튼이 어느 지주의 보디가드가 되면서 동시에 이 지주를 살해하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청부업자로 고용된다는 내용이다.

버스터 키튼은 보더빌 배우이자 흥행주였던 아버지와 함께 생후 3주도 되지않아 보더빌 무대에 섰던 배우이자 감독이다. 그는 대역 연기자 없이 위험한 연기들을 감수해냈던 훌륭한 스턴트맨이었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이면에 흐르는 감정을 슬랩스틱의 연기로 표현해낸 연기자였고, 전성기 이후에는 개그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뚱보 애버클에게 픽업되어 스크린에서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와 함께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통을 만들어냈던 영화인이다. 그가 만들어냈던 인물들은 결코 영웅과 동일시되지 않은 평범한 주인공들로 일상적 삶 속에서 어리석음과 선함으로 충만한 인물들이다. 40년대 말에 비로소 그의 영화들은 찰리 채플린 영화의 드라마틱함과 넘쳐나는 파토스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평가되기 시작하여 96년 사망할 때까지 여러 회고전들을 통해 그의 작품의 영화사적 가치들을 인정받았다.

빌 프리셀의 솔로 레코딩이 가진 음악적 구성력이나 작곡가로서의 그의 능력에 회의를 가졌던 청자들에게도(그의 음악에 천의무봉의 탁월한 사운드만 있고 주제의식은 결핍되었다고 비판하는) 버스터 키튼에 관한 두 장의 앨범은 뛰어난 구성을 가진 트랙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버스터 키튼은 빌 프리셀의 솔로 작업에서의 시도들과 가장 잘 부합한 텍스트였는데, 무성영화에서 일종의 내러티브로서 기능할 수 있는 영화음악은 빌 프리셀의 ‘다양한 화제를 가진’ 스케일들과 코드들의 말을 거는 듯한 특징적인 진행들과 잘 들어맞는다. 버스터 키튼의 <Go West>가 존 포드식의 전형적 서부영화의 영웅담과는 한참 거리를 둔 작품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빌 프리셀의 음악 역시 웨스턴에 기반하면서도 모던한 시도들로 일관된다. 더불어 버스터 키튼의 멜랑콜리아는 빌 프리셀 음악의 ‘블루스 드림’적 요소와 더없이 조화된다. 결국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은 빌 프리셀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부여받았으며, 빌 프리셀은 외부의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 작업을 완결시키게 되었다.

두 장의 버스터 키튼에 관한 앨범은 빌 프리셀이 작곡하고 빌 프리셀 트리오, 즉 빌 프리셀(g)과 커밋 드리스콜(b), 조이 바론(d)이 함께 연주했다. 빌 프리셀은 구스 반 산트의 , 빔 벤더스의 <밀리언 달러 호텔> 등의 사운드트랙에 참가한 바 있고, 최근 <파인딩 포레스터>의 사운드트랙에도 참가했다.

  • 월간 KINO 2001년 9월호.

-- Sonimage 2004-4-11 10:28 pm

2 # 촌평[ | ]

이 원고를 쓰기위해 빌 프리셀 앨범을 이것저것 많이 들었다. 그때 앨범을 빌려준 박형민 군에게 감사. 그렇지만, 빌 프리셀은 나로서는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뮤지션이었다. 저렇게 많은 음악적 장점들(?)을 늘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당시의 시의성을 고려해서 <파인딩 포레스터>의 에이빈드 강에 대해 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잡지이니 만큼 독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음악보다는 영화이다. 아무래도 구스 반 산트보다는 버스터 키튼을 다시 환기시키는 것이 값진 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름의 정치적 선택이었다고나 할까.
-- Sonimage 2004-4-13 11: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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