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les/락의시작

번호:149/150  등록자:ZBDEBU35  등록일시:94/09/03 06:15  길이:196줄
제 목 : Rock 대항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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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가 빚어낸 60년대 Rock 르네상스

- 60년대 Rock과 비틀즈
'비틀즈는 예수보다 위대하다.'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John  Lennon의
말이다. 서양문화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 흐름 중  하나인  헤브라이즘,
그리고  그것의 표상인 예수. 60년대의 비틀즈는  그런  예수와  비교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존재였다. 예수가 2천년의 우상화를 통해 얻은  사
회적 영향력을, 비틀즈는  겨우 10년도 안 되는 창작활동을 통해 획득했
다. 그렇지만 비틀즈의 성공이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에만 기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모든 문화현상과  마찬가지로 비틀즈의 등장과  성
공  역시 그 배경/원인의 명확한 규명을 위해서는 문화적 관점에서 벗어
나 좀더  거시적인 사회적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60년대  비틀즈의
등장과  성공의 바탕엔, 문명발생 이래 축적된 인류사회의   문화/경제/
기술적 성과들이  있었고, 바로 그  성과들이 비틀즈에게 위대한 존재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린  비틀즈의
성공과 그에 의한 60년대 락  부흥의 함의를 파악하기 위해 사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60년대 락의 융성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구체적인 해답은 락이라는 대중음악을 비틀즈의 궤적을  통해  고찰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비틀즈가 60년대 락의 사회적 제
의미를 극명하게 나타낼  정도로 락의 모든 속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
에. 이 글에서는 60년대 락과  비틀즈를 음악적 관점보다는 사회적 관점
에 집중하여 분석하려 한다. 우선 락의  부흥을 가능케 했던 문화  외적
배경과  락의 음악적 뿌리에 대해 살펴 보겠다. 그 다음엔 음악적  변화
를  구분기준으로 삼는 시기별 분석틀로 사회적 의미를  많이  찾을  수
있는 비틀즈 초기와 중기 음악의 '본질과 현상'에 접근하려 한다.

- 대중음악이 자랄 수 있는 토양
산업혁명 이래  생산력은 비약적인 증가를  거듭했고, 물질문명은  전시
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물적토대의
그러한  성장은 당연하게 상부구조의 변화로  이어졌다. 문화  역시  정
치, 종교 등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국면
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문화의 대중화' 현상이  강화된  것은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의 모습이다.
즉, 계급/계층/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던 문화가, 경제환경의 절대
적  향상으로 인해 제한적  특수성보다는 개방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향유의 문제를 중시하게 됨에
따라 문화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졌고, 문화 외적인 '장벽'이  느슨해짐
에 따라 대부분의  예술장르 역시 보편화되어 예술에서도 다양성이 추구
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의  다양성은 문화를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속성과 상품화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계급/계층
/지역을  초월한 대중음악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대중음악은 전기한 사회변화 과정의 산물이다.  오늘
날엔 서양사회  지배계급만의 전유물이었던 고전음악도 왕궁의   화려한
홀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장르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CD라는 똑같은  테크
놀로지 속에 담겨 존재한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고전음악과
락 중 어느 것을 들을 것이냐 하는 행복한  고민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전대와는 달리 문화 외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의  기호에
충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몫이 그것을 향유
하려는 주체의 선택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동
류문화(Peer Culture)인 락의 출현과 지속적인 발전/분화  등을  가능케
한 기본 토양이기도 하다.

- 락의 음악적 뿌리와 탄생의 배경
락의 음악적 모체는  50년대의 Rock'n'Roll(이하 RnR)이었다. 2차대전과
한국전 후의 불안정한 사회상을 반영하듯 50년대 RnR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의식의 표현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RnR 자체가 저
항의식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RnR에 몰입한 행위  자체가
반항의식의  구현이었다. 사회참여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같
은 복잡한 문제는  상관않고 음악에만 몰두하는 현실외면에 불과했던 것
이다. 물론 전쟁의 참상에 자극  받은 의식있는 젊은이들은  정치의식이
강한 Folk라는 장르를 선호했지만, Folk는 아직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다. 사랑, 이별 등 일상의 가벼운  소재를  가사로   다룬
RnR은 이전의 음악들보다 훨씬 흥겨웠고,  젊은이들이 그것에만  몰두하
여 다른 것을  잊게 만들 만큼 요란했다. 침체된 시대상황  속에서 그것
은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이었고, RnR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로서
젊은이들에게 어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구적인 기능은 했지만 예술
장르로서의 완전한 정체성을  갖추지는 못했던 RnR은, 사회가 안정을 챰
시작한 60년대 초 전쟁  전의 부드러운 음악이 다시 득세하자  퇴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과 핵사용  등 기성세대의 '범죄행위'에 여전히 불만을 갖고
있던 많은 젊은이들은, 완성된  예술성을 갖추고 동시에 그들의  사회의
식을 표출시킬 수도 있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 비틀즈의 등장과 Rock의 성격
영국 리버풀에서 비틀즈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점이었다. 비틀즈
를  비롯한 선구적인 초기 락  밴드들은 확고한 음악적 양식을 구축하여
RnR에  정체성을 부여하였다. 음악적인  면에서 RnR과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진일보한  락이란 장르를 재구성해낸  것이다. 1962년에 데뷔한 비
틀즈의 멤버 4명은  부모들이 모두 노동자 계급이었지만, 아버지 세대와
는 달리 공장에 나가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다. 그
들은 사회모순의 직접표현이나  암울한 분위기로  억압을  간접표현하는
식으로 계급성을 반영하기는 커녕, 오히려 감각적인 가사와  단순한  사
운드를  결합시킨 대중적인 음악을  들고 나왔다.  I Wanna  Hold  Your
Hand, Love Me Do, P.S.  I Love You 등 데뷔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제목
만 봐도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의 음악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락을 추구하는 동시대  많
은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비틀즈는 데뷔  1년만
에  영국의 대중음악계를 장악하고 전세계  시장으로의 교두보인 미국시
장 정복에  나서는데 그들은 상륙하자 마자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비
틀즈의 성공으로 락이  오버그라운드 장르로서의 자리를 확실하게  굳힌
것도 이때이다. 60년대 락의  중요한 특징은 락 뮤지션이나 락 매니어나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였다는  점이다.
즉, 창작자와 향유자  간 의식공유/소통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인데, 음악의 수용주체가 별  어려움 없이 창작주
체로  나설 수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은 락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50년대 RnR 시대까지만 해도  대개의   경우  음악은  가수,
Back Band, 작곡자,  작사자,편곡자 등 독립적인 여러  관계자들의 협력
하에 가능했다. 게다가 음악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는   마치  도제처럼
음악을 배우며 자기차례를 기다려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방식은
고전음악에서 연유하는데, 자신의 음악성을  철저히 스스로  구현하면서
음악을 하기엔 부적합한 방식이었다. 확실히 비틀즈를 비롯한 많은 60년
대 락 밴드들은 기존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존재양식을  지녔다.  RnR을
듣고 자란  새로운 세대는 음악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춘 하나
의 단위를 이뤄, 창작활동으로 경제문제까지 해결하면서 자신의  음악성
을 스스로 구현했으니까. 락은 무슨 소재이건 젊은이들의 관점에서 해석
했고,  또한 누구나 자신의 음악성이나 사회의식을 락의 형식에 담아 표
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재생산이 신속히 이뤄지고, 음악적 발전과 분화의  속도도
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제 음악을 즐기던 사람이 오늘은  나름대로의
음악을 시도하는 식이었으니  다양성 보장의 극대화가 이뤄진 셈이었다.

- 비틀즈의 변화 그리고 변화
그런데, 비틀즈가 미국에  진출한지 6개월만인 64년 8월, 또다른 변화의
원인을 락에게  제공한 일대 사건이 터졌다.  미국이 북베트남과의 전쟁
을  시작한 것이다. 음악적  형식에 있어서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던 락
은, 내용면에서의 변화를 겪는 계기를 맞는다. 기성세대가 일으킨  전쟁
에서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젊은이들이었고, 당사자인 그들에게는
자연히 전쟁에 대한 회의와  사회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
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 사이에선 의사소통의 매체로 동시에   사회
에 대해선 훌륭한 언로로  기능할 수 있는 락은, 앞서 말한 Folk의   사
회의식을 흡수하면서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비틀즈  역
시 이런 변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들도 다른 락 밴드들
이 그러했듯 가사에 비중을 둔 프로테스트 성향의 곡을 발표하게  된다.
사회모순의 비판과 이상  지향을 내용으로 하는 당시의 락 가사는  그에
걸맞는 진보적인 사운드에 실리게 되는데, 사운드 이펙팅과 다양한 악기
의  도입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비틀즈의  중기
앨범들은  실험적인 사운드와 이상주의적 가사  내용으로 그 성격을  요
약할 수 있는데,  비틀즈  최고의  명반으로  인정받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도 이 시기에 발표된  것이다. 이때 반전을  외
치며  평화주의와 락을 신봉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저항
을 아예 생활양식으로 삼는 히피운동과 사랑을 의미하는 꽃을 내세운  '
플라워무브먼트' 등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에  충격을 던지며  거대
한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회의는   현실로부터의
탈출욕구로 이어지면서,  사회의식을 담은 락은 점점  현실감과  의식의
건강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허무주의로 진로이탈을  하는  락  밴드가
생기고, 평화를 외치던 많은 젊은이들이 마약에 휩쓸렸다. Janis Joplin
이나  심미적인 경향과 철학적인 경향을 동시에 추구하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던 60년대 후반 싸이키델릭 락의 경우, 뮤지션들은 그들을  지지
하는 히피와  마찬가지로 마약에 빠져  낙천주의와 쾌락적 요소들로  음
악을 장식하다 끝내는  현실괴리의 처참한 모습으로 붕괴될   정도였다.
결국 이런 문제점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당시의  수많은
락 밴드들은 이 시점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회의식의   반영
을 절제한다. 쉽게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해주는  자본주
의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예술의  상업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 지나친  사회의식과 테크놀로지의 도입이 예술의 도구적 기능을  높
이긴 하지만 반면 예술성이나 형식미의 심화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월남전의 영향으로  인한 락의 파행적 변화에서 이러한 두
가지  교훈을 얻은 비틀즈는 음악적 변화를 꾀한다. 실제로  음반회사와
의 계약상  문제로  앨범을  낸  지   2개월만에  억지로  만든  Yellow
Submarine이란 타이틀의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가장  저조
한 성과를 거둔 앨범으로 상업화  지양과 예술정신으로의 복귀를 목표로
하는 후기 앨범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보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설립한 자체 레이블인 애플에서 발매된 그 앨범이 메이저   배급회
사들의 판매망을 통해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대중예술의 상업성을  완
전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해주며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의   딜레마
를 암시한다.

- 60년대 Rock으로부터의 90년대 Rock
서두에서 언급한 존  레넌의 말은 비틀즈가 활동하던  당시는  물론이고
해산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실적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앞
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락은  비단 예술로서만이 아니라  욕구배출과
의식표출의 도구로서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젊은이
들만의 음악이다. 시대에 걸맞는 표현양식의 구축과 감각적인 언어의 구
사,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사회의식의 표현, 그리고 예술정신의  발현.
비틀즈에 의해 오버그라운드로  신분상승되어 오늘날까지 계속 되고  있
는 락에는, 그들이 시기별로 추구했던  목표이기도  한  이런  요소들이
혼재하고 있다. 창작주체가 지향하는 음악성과 이런  요소들의 변증법적
통일이 바로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된 락 장르일 것이다.  90년대
Rocker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틀즈의 시행착오에서 이미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비틀즈는 역시  대단한 존재이다. 비틀즈가 없었다면,
락은 아마도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Rocker들이 그저 비틀즈를 답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비틀즈가  그러했듯 그들 역시 계속 변해가는 사회로부터  새로운  것을
추구할 기회와 자극을 제공받고 있다. 예를 들면 비틀즈 시대를  포함한
오랜 기간 동안  Rocker들의 기본 표현도구였던 기타의 역할을, 이젠 기
술발전으로 인해 저가에  공급되고 있는 신디사이저,  Midi가 대신 해내
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문화 외적 지형은 지금도  끊임없이 변
하고 있고, 만약 제2의 비틀즈가  출현한다면 그 역시 사회변화의  필연
적 산물일 것이다. 50년대의 RnR처럼 예술성  미확립으로 인해 그  가치
를 인정받지 못한 채, 몸동작, 춤, 화려한 조명 등 음악  외적 요인으로
만 인기를 얻었던 디스코, 댄스, 랩 등의 수많은 장르가 유행처럼  일어
났다 수그러든 것은  그것이 진정 젊은이들의 음악이  될 수 없기  때문
일것이다. 사회의식이 결여된 랩이 욕설을 담아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
시했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의식을 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업주의와
의식공백이  만든 대중예술의 아노미  상태에서, 현실에 고민하는  젊은
이들의 건강한 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대중음악은  현재 오직 락뿐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담담한  어조로 사회를  비판하는 Alternative  Rock이
댄스나  랩 등의  장르를   몰아내고  있는데,  9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Alternative Rock은 글자 그대로  '대안'으로서 존재하는 것 같다.   앞
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구매력을 지닌 90년대  젊은이들이  결국  락을
선택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며, 이는 60년대  이후로도   현실
참여의 전통을  유지해  온  락이 90년대에  거둔  성과일 것이다.
Alternative Rock의 젊은 천재 Kurt Cobain은 자신의 음악이 상업화되는
현실을 비관하며 최근 자살했다. 그의 자살행위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예술성  파괴에 대한 무언의 저항, 그리고 철저한 사회참여의 일면을 찾
을 수 있을  것이다. 락은 젊은이들의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
다. 오늘날에도  비틀즈가 위대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미 20년전  락
을 세상에 선물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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