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hrodite's Child - End Of The World

1 개요[ | ]

Aphrodite's Child
End Of The World (1968)

2 1968 Aphrodite's Child End Of The World Vertigo 6333 008 / MCY 20140[ | ]

" 대학때의 몇몇 친구들끼리 모여 자연스럽게 만든 팀이었습니다..사실 우린 jazz를 연주할 목적으로 결성한 팀이었죠..순수한 아마츄어밴드였을 뿐 결코 전문 아티스트가 된다던가 아님 큰 돈을 벌 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리이스에서 꽤 유명해졌고 stadium에서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연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나는 이것을 대단한 성공이라 느꼈습니다...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성공을 경험한 것이었으며 또 이런 경험을 일찍 하게 된 것을 운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로 데뷔 싱글 "To Roloi (The clock)"을 발표한 뒤 Vangelis는 앞으로 펼칠 음악적 방향을 jazz-fusion쪽으로 잡은 후 서둘러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때 팀의 맴버가 된사람이 Demis roussos와 Lucas Sideras그리고 Anargyros Koulouris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출신의 roussos는 We five와 The idols라는 그리이스의 teen-band에서 베이시스트와 보컬리스트로 주목을 받고 있던 신인이었다.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양질의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 어릴 때 부터 타고난 음악적 감각과 다양한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재원으로 성장해갔다.드러머인 sideras는 1944년 12월 5일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피아노교습선생이었던 어머니탓에 일찍이 클레식 교육을 강요받았지만 현대음악에 눈을 떠 베이스와 드럼에 재주를 가진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1966년 말엽에 접어들어 Vangelis가 맴버로 활약했던 그리이스의 최고의 pop band The Formnyx는 해체의 길로 접어 들었고 이 무렵 Vangelis는 Demis와 만나게 된다..George Romanos등의 팝가수들의 음반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꾸준히 음악적 경력을 쌓아나가던 Vangelis는 67년 가을 세 명의 맴버와 함께 팀을 결성하고 역사적인 첫 번째 싱글인 'Plastics nevermore'와 'The other people'을 recording한다. 사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클럽을 돌면서 미국이나 영국밴드들의 힛트곡들을 번안하여 부르는 정도가 고작이었고 밴드명도 아직 정하지 못한 채 The Formynx의 이름을 빌어 무대에 오를정도로 형편 없었다.

같은 해 그리이스의 Philips records에 첫 번째 싱글의 demo tape을 건낸 이들은 A&R director Nikos Antipas의 권유로 영국에서의 활동을 추진하게 된다. London에 위치한 Mercury records에 잠깐 동안 둥지를 튼 바로 이 시점에 자국에서 터진 Papadopoulos의 쿠데타는 Vangelis를 비롯한 맴버들, 아니 그리스의 대부분의 예술인들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음악인들이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으며 맴버 들도 일시적인 recording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을 앞으로의 활동 거점으로 삼는 대신 그리이스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맴버 koulouris가 입영문제로 귀국하는 바람에 결국 팀은 기타리스트가 빠진 trio가 되는 악재까지 겹치게 되었고 맴버들은 여행을 핑계로 프랑스로 건너가 팀을 재정비하는데 전력을 투자하게 된다..Dover항에 머물러 있을 즈음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이들은 영국으로의 재입국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할 수 없이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여기서 이들은 국제적인 운송 파업과 학생 폭동의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호사다마라고 프랑스의 Phillips records의 A&R 간부인 Pierre seberro가 이들의 demo tape을 듣고 가능성을 확신하여 즉각 음반계약을 제안하면서 길고 긴 아마츄어 밴드생활을 벗어나게 된다. 아직 적당한 팀명이 없었던 터라 Vangelis는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신 Aphrodite를 떠올리면서 자신들은 그 이후의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즉 after Aphrodite) Aphrodite's child라는 팀명을 확정짓게 된다..여건이 충분히 주어졌던 만큼 이들은 짧은 시간안에 음반을 구상해 냈고 68년 5월 드디어 데뷔싱글 'Rain and tears'를 발표한다. 폭동으로 어지러운 프랑스에서 이 싱글은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프로컬 하름(Procu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은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다. Boris Bergman의 낭만적인 가사와 Vangelis의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멜로디라인이 잘 조화된 꽤 잘 만든 곡이었다..

파리에 둥지를 튼지 1년이 채 안되어 이들의 명성은 이웃 나라 영국과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알려진다. 프랑스 차트에서는 TOP 10에 랭크되었으며 영국 차트 최고 27위까지 오를 정도로 큰 성공이었다. 이에 힘을 입은 band는 아마츄어 시절 작곡 해둔 'Plastic nevermore'와 'The other people'을 수록한 4곡짜리 EP앨범을 Portugal과 Italy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약 한 달여간의 레코딩 끝에 같은해 6월 데뷔앨범 'End of the world'가 발표된다. 앨범은 당시의 사이키델릭 록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고향인 그리이스의 전통적인 포크록을 테크니컬하게 융합한 독특한 음악스타일로 채워져 있었다. 개인적으론 팝적인 코러스가 재치있는 'Don't try to catch a river'와 포크록적인 'Mr. Thomas', 그리고 본작에서 가장 명곡으로 손꼽히는 'Valley of sadness', 싱글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웅장한 피아노 인트로의 'End of the world'등을 꼽고 싶다. 특히 'Valley of sadness'는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과 초기 Vangelis의 음악색이 드러나는 어레인지가 인상적이다. 이 외에 지금도 세계 각국의 라디오 request song으로 인기 높은 'Rain and tears', 그리스 음악의 색깔이 진하게 뭍어나는 'The shepherd and the moon'등도 본작의 놓칠 수 없는 명곡들이다. 세 번째 싱글 'I want to live'는 애절한 보컬과 역시 망향의 한이 깃든 듯한 멜로디라인으로 크게 인기를 모았는데 이 싱글의 b-side에 수록된 'Magic mirror'는 강렬한 일렉기타와 Vangelis의 하몬드올겐 solo가 어우러진 록지향의 넘버로 밴드의 또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 곡은 앨범에는 수록되지 못했다. 이듬해인 69년 5월 팬들의 기대속에 새 싱글 'I want to live/magic mirror'가 발표된다. 싱글은 단숨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했으며 독일과 스위스의 TOP40안에 랭크되는 대 성공을 거둔다. --사용자:albedo

3 거북이[ | ]

반젤리스는 죠르주 로마노스와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싱글을 한장 녹음하게 되었고 이미 그 때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멤버들과 세션을 하고 있었다. 데미스 루소스는 위 화이브 등의 밴드에서 어느정도 인기를 얻고있었던 특색있는 보컬이었고 다른 멤버들도 상당한 실력파들이었다. 이들은 그리스에 군부정권이 들어서자 프랑스로 건너가서 활동을 시작한다. 데뷔를 준비하던 도중 기타리스트인 쿨루리스가 그리스로 돌아가는 통에 멤버는 3명만이 남게되었지만 순조롭게 데뷔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이들의 첫 싱글 Rain and Tears는 반젤리스가 터뜨린 최초의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68혁명의 먼지속에서 전세계에 발매된 이 싱글로 그들은 순식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5개월 뒤에 공개된 이들의 데뷔앨범은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올렸으며 이후 음악 활동은 순탄하게 진행된다.
앨범 타이틀 아래 인기를 의식해서 Rain and Tears라는 곡명을 조그맣게 달고 나온 이 앨범은 타이틀곡이자 두번째 싱글이었던 End of the World 뿐만 아니라 Day of the Fool, Valley of Sadness등의 좋은 곡들을 담고있는 훌륭한 데뷔작이었다. 이 앨범은 서정적인 곡들이 가장 훌륭한 편이지만 팝적인 멜로디와 락적인 훅을 함께 가지고 있는 곡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You always stand in my way에서 데미스가 들려주는 울부짖는 호소력 있는 보컬을 들어보면 이후 발라드가수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그가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앨범이 그렇게 색다른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데미스의 급변하는 보컬색의 공이 크다. Don't try to catch a river에서는 포밍크스 스타일의 락큰롤이 들려오지만 콩가 드러밍이 포함된 연주에서 이미 아마추어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Mr.Thomas같은 곡들은 영화음악의 영향이 느껴지며 The shepherd and the moon에서는 아주 역동적인 락연주를 들을 수 있다. The grass is no green나 Day of the fool에서 들을 수 있는 서사적인 구성은 반젤리스라는 음악감독이 가진 역량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곡들이다. 그는 여러 뮤지션들과 협연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켜왔던 것이다. 반젤리스는 여전히 훌륭한 건반주자이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음악 감독이 되었다.
포밍크스 시절에 비하면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음악은 질적 변화가 느껴진다. 물론 포밍크스도 상당히 개성적이고 즐거운 음악을 남겼지만 그들의 음악에서 작가주의를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는 동시대의 영미권에 견주어도 더 훌륭하면 훌륭했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 앨범은 상업성 뿐만 아니라 락앨범으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변방의 음악이었기에 이들에게는 다른 밴드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개성과 그리스 특유의 애상미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이들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거북이 2003-4-27 7:44 pm

4 참고[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