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경주답사

1 경주 답사[ | ]

1.1 # 2003. 2. 22.[ | ]

1.2 경주의 첫인상[ | ]

드디어 경주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를 결정하고 2주. 지난주말에 예정되었으나 태훈의 사정으로 한주 미루어져 오늘 드디어 출발한다. 새벽 5시반쯤 힘겹게 일어나 평소 안 먹는 아침밥을 허기져 돌아다니기 힘들까 걱정되어 입에 우겨 넣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다 해서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태훈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미리 버스표를 사고 책을 읽으며 기다리니 태훈이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다음날 여행 떠날 놈이 적당히 할것이지. 7시 우등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아직 해도 뜰기미가 안보인다.

문득 잠에서 깨니 버스가 서있었다. 아직 경주는 아닌듯하고 정체인가 보다. 앞자리 아저씨의 전화통화를 엿들어보니 서대구 부근이라 했다. 그리고 다시 잠이들고 다시 일어나 보니 경주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경주는 꽤 큰 도시였다. 도로에 차도 매우 많고. 오히려 도로사정 대비 차의 수를 생각하면 서울보다 열악할 정도로 차가 많은듯 했다. 먼저 점심을 때우기로 하고 터미널 부근 한 음식점에 들어가 소머리 곰탕을 먹었다. 어째 밍밍한게 제 맛이 안났지만 따뜻한 것을 먹고 나니 비가 내려 서늘한 날씨에 딱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올즈음 조금 그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쏟아진다. 쏟아지기 보단 흩뿌린다고 하는게 좋겠다. 그다지 굵지도 않은 빗줄기가 짜증을 북돋았다. 이까짓 비에 포기할 소냐.

1.3 불국사는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 ]

계획한대로 정혜사지13층 석탑을 보려 했지만 광광안내소에서 적어온 시간표를 보니 203번 버스를 타는 건 무리였다. 2시간반에 겨우 한대 지나가니. 계획을 바꾸어 내일 둘러 보기로 하고 우선 불국사로 향했다. 10번 혹은 11번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따라 한 20분을 달리면 도착한다. 고등학교시절 수학여행으로 한번 와봤지만 무엇을 봤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불국사편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보리라고 결심하고 불국사에 들어섰다.

불국사의 전경은 정말 멋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흐린날씨에 뚜렷한 선을 보지 못할지라도 정말 멋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읽은 것들을 조금씩 더듬어보았다. 불국사의 축대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아래는 자연석을 위에는 인공석을 사용했다. 불국사 정면의 아래쪽 다리인 백운교가 자연석 축대를 위쪽 다리인 청운교가 인공석 축대를 오르는 다리이다. 자연석과 인공석이 맞닫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르지 못한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인공석을 깎아 얹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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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보고 싶지만 보존의 이유로 밟지 못하게 해놓았고 옆길을 따라 회랑안으로 들어섰다. 다보탑이 먼저보이고 저 건너편에 석가탑이 보였다. 오늘 아침 [사찰장식그빛나는상징의세계]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각각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두 탑은 묘법연화경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것인데 먼 옛날 먼 나라의 다보여래가 평소 "내가 부처가 되어 죽은 뒤 누군가가 법화경을 설하는 자가 있으면 내 그앞에 탑모양으로 땅에서 솟아나 '참으로 잘하는 일이다'라고 찬미하며 증명하리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오른쪽에서 설법을 하고 있고 왼쪽에 다보탑이 서있는 것이라 한다.

 

대웅전을 살펴볼때도 책에서 본바와 같이 닫집과 불상의 수인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불국사 대웅전의 닫집은 보개형이었다. 닫집은 불상의 머리위에 집모양의 장식품을 말한다. 천장이 함몰되어 집의 천장이 하나 더 있듯이 표현되있는 것을 보개형이라 하고 정말 집모양의 장식품을 만들어 매달아 놓은 것을 보궁형, 장식품대신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운궁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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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배치에 대해서도 읽은 것이 있는데 좌체우용이라 하여 대웅전을 중심으로 여래상과 같이 부처 자신의 불상들은 오른쪽에 보살상이나 범종같은 화현은 왼쪽에 배치한다 했다. 불국사도 대충 비슷하였으나 한문 실력도 부족하고 불교에 문외한이라 관음보살이나 여래등의 관계도 모르니 정확히 확인 하기는 힘들었다. 관람 코스의 마지막 부분에 있던 현대에 와 에밀레 종을 따라 만든 듯한 종이 절의 오른쪽에 있던 것은 분명 가람배치에 대한 몰이해의 소산일 것이다. 어느 정치인이나 재벌이 우격다짐으로 설치하지 않았을까.

불국사를 나왔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본것일까. 천왕문까지 나와 한참을 걸으며 내가 불국사를 답사한건지 어제 그제 읽은 책을 답사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읽은 내용중 기억 나는 부분만 봤을 뿐이지 석가탑 탑신부에 어떤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선생대신 책을 따라다니며 두번째 수학여행온거나 다름없다 생각이 들어 태훈에게 다시 보고 오자고 했다. 언젠가 도올이 책만 읽고 생각이 없는 사람과 배우지는 않고 생각만 많은 사람은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전자에 해당하는 건가.

다시한면 석가탑과 다보탑만 이라도 구석구석 살펴보고 멀리서도 감상해보며 뭔가 부족한 답사에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터덜터덜 불국사를 나왔다. 나의 한계일까. 유홍준이 답사의 초급과 중급과 고급을 나누는 기준에 따르면 난 분명 초급이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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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의 아랫부분. 사방에 계단옆 두개씩 서있는 돌기둥 안쪽으로 파여있는 저 구멍은 어떤 용도인가? 혹시 일제시대때 해체후 다시 조립하며 무엇인가 빠트린건 아닌지.

1.4 다시보는 박물관, 여전히 발전없다.[ | ]

국립경주박물관 역시 두번째 방문이다. 불국사에서 분명 그 때보다는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되니 여기서도 달라지겠지, 7년간 자란 생각도 있으니. 그러나 별간 다를 것 없었다. 관람 첫 코스는 언제나 한반도의 선사시대로 시작해서 어딜 가든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탁본이 걸려 있고 토기 몇점 전시되있다. 이 부분은 대충 훑듯이 지나가고 바로 신라관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신라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지금 기억 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처음에는 각 유물의 설명을 하나하나 읽었는데 잠시서서 앞의 것이 기억나는지 머리속을 헤집어 보니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유물 옆에 쓰여진 상세한 설명들이 다르게 보였다. 의미없는 전문용어들의 나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러 유물간의 관계나 시대적인 특징에 대한 힌트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바로 옆의 것과 어떤 관계가 있어서 같이 진열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실패한 전시관이 아닐까. 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간 누가 유물 이름 하나라도 기억하고 갈지 의심스럽다.

국은이란 의사가 기증한 기념전시관을 포함해 4관중 신라관을 뺀 나머지는 뭐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수학여행때 와서 구경하다가 토기에 붙은 토우중 성행위 모양의 토우가 있어 우르르 몰려들었던 그 토기를 다시 찾았던 것 이외에는.

밖으로 나가 에밀레 종과 고선사삼층석탑을 찾았다. 에밀레 종이 울리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았으면 좋으련만. 4시정각에 울린 테이프에 녹음된 종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느 범종이든 종을 매단 부분에는 용모양의 용뉴라고 하는 장식이 있다. 이것은 용은 바다에 사는 경어(고래)와 천적이어서 용이 경어를 만나면 큰 비명을 지른다고 하여 종을 치는 나무는 물고기를 본뜨고 종 상부에는 용조각을 달아 놓는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태훈에게 해주었지만 별 재미없는듯 시큰둥. 유홍준선생이 박물관 뒤 뜰에서 정말 볼만한 석탑은 제쳐두고 모형으로 만든 가짜 석가탑과 다보탑 앞에서 사진찍는 다고 비꼬았던 것이 생각나 고선사삼층석탑을 일부러 찾아갔다. 육중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좀 비만인 아주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탑신부나 기단에 문양이 없는지 보았는데 탑신부에 구멍이 뚤려있는게 보였다. 뭔가 장식을 고정시켰던 것이 아닐까 한다. 구멍이 위아래 가장자리와 가운데에 대칭으로 몰려 있는 것을 보니 열쇠장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탑신부에는 부처를 지키는 사천왕같은 수호신이나 극락세계의 입구를 뜻하는 열쇠장식을 한다는 것을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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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나가려다 태훈이 화장실에 간다고 들린 미술품 전시관이 꽤 볼만한 것 같아 한바퀴 돌아보았다. 여러 석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석탑안에서 발견된 사리장치등이 있었다. 많이 피곤해서 그런지 아님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태훈은 잠시 앉았다하면 졸고 있었다. 나도 신발이 젖어 걷기 힘들고 슬슬 허리도 아파와 안압지는 제쳐두고 분황사만 보고 숙소를 잡기로 했다.

1.5 날씨처럼 쓸쓸한 분황사에 큰실망을 안고[ | ]

분황사까지 1.3km. 걷기는 애매한 거리라 택시를 타고 갔다. 입장료 1000원을 주고 들어가니 보이는 것은 모전석탑뿐 절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분황사지 모전석탑이라고 들은 듯 하다. 절이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정말 볼것은 모전석탑과 약사여래동상 뿐. 둘이서 허무다는 말을 연거푸 연발하고 숙소를 찾아 시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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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 분명 여기가 그 장면이었는데..[ | ]

어디서 내릴까 망설이다 결국은 터미널에서 내려 시청을 찾아 갔다. 태훈도 춘천이 생각나서 인지 시청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많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춘천이야기고 경주의 시청근처에는 고분만 즐비했다. 다행히 좀 깨끗해보이는 여관과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어느쪽을 들어갈까 망설이다가 게스트하우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방을 써야 할지도 모르고 화장실도 불편할 것이라 여관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했다. 그 게스트하우스는 론리플레닛에 나온 곳이라해서 태훈은 조금 아쉬운 듯 했다.

아까 이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골목의 이미지가 분명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아! 생활의 발견. 분명 생활의 발견에서 후반부는 경주가 배경이었다. 경수가 선영의 집에서 어슬렁 거리던 그 장면. 이 골목이 분명 그녀의 집이 있던 그 골목이다. 짐을 풀고 혼자 나와 바로 그 골목을 찾으려 부근을 돌아다녔다. 경수가 근처의 언덕에 누워 선영을 기다리던 그 언덕은 바로 고분이었던 것이다. 그럼 옆에 작은 고분이 있고 골목에서 집 입구까지 깊이 들어가는 골목을 찾으면 될것이다. 한 20분을 헤맸을까. 결국은 찾지 못했다. 비슷비슷한 낮은 담장과 좁은 골목은 많이 있었지만 영화속의 그 골목은 찾지 못했다. 영화의 기억과 함께 패키지로 얻을 뻔한 추억이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여관주인 아저씨께 맛있는 식당을 물어보고 시청건너 골목이 다 괜찮다길래 그 부근 고기집한 군데를 들어갔다. 갈비가 4000원이었다. 왜이렇게 싸지? 둘이서 4인분을 배터지게 먹었고 군것질거리를 사들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마침 황남빵공장이 돌아오는 길에 있어 한상자 사들고 들어와 편히 휴식을. 태훈인 질리지도 않는지 내리 잠만 잔다.

1.7 # 2003. 2. 23.[ | ]

1.8 아쉬움은 뒤로하고[ | ]

10시가 다되어 일어났다. 대충 저녁에 남은 과자와 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어제 관광안내소에서 적어온 버스 시간표엔 11시50분에 버스가 있기에 느긋히 시간에 맞추어 여관을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를 않았다. 차는 꽉꽉 막히고 왜그리 경적을 시끄럽게 울려대는지. 경주사투리 처럼 경적도 닮은 꼴인가 보다. 그래도 경주사투리는 좀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경주 토박이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농도 짙은 사투리속에서 203번 잘 안다녀란 부분 이외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가 없었다.

결국 정혜사지13층석탑은 포기하고 양동마을만 구경하기로 했다. 200번 버스를 잡아타고 20분쯤을 가니 양동민속마을이란 안내방송이 들렸다. 뒷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기차길을 따라 좀 걸어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버스에서 내렸다. 10분쯤을 걸어가니 산자락에 자리잡은 한옥들과 초가집들이 보였다. 가는 중 10미터도 안되보이는 작은 역이 있어 구경하면서 쉬었다. 매표소도 보이지 않고 차양과 타일로 깔아놓은 플랫폼, 벤치와 철로가 전부였다. 여기서는 손을 흔들면 기차가 서는 것일까. 버스정류장인지 기차역인지.

양동민속마을은 용인민속마을 같은 곳과 달랐다.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고 농사를 짓는 마을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시설은 몇개의 안내표시판과 공중화장실이 전부였다. 실제 사람 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들어가서 구경해볼 수 있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옛사랑채라든가 정자뿐이었고 사람 사는 집은 모두 대문을 꼭꼭 걸어두었다. 얼마전 TV에서 양동마을에서 그림인지 고서인지 하는 문화재가 도난당했다는 뉴스를 얼핏들었는데 그 때문에 인지 모르지만 대문 안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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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옛 한옥마을의 골목 정취만 잔뜩 느껴보고 마을을 나섰다. 태훈이 경주역에 내려 기차표가 있는지 알아보자고 해서 들려보니 천만다행으로 취소한 사람이 있어 표를 살 수 있었다. 사실 버스타고 올라갈려니 피곤하기도하고 차막힐 생각을 하면 짜증부터 났는데 잘되었다. 잔달음으로 터미널에 가 어제 사둔 버스표를 환불하고 경주역부근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태훈은 역시 역이나 터미널근처의 음식점은 맛이 아니라 위치가지고 먹고 사는거라고 투덜투덜 말이 많았다.

항상 서울을 향하는 길에선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돌아가기 싫은 것을 느낀다. 내일을 생각하면,출근할 생각을 하면. 이래저래 상념에 잠기다 책읽다 되풀이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귀경길의 아쉬움은 사라지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1.9 # 정보[ | ]

1.9.1 비용[ | ]

  • 우등버스 (서울->경주): 23,400원
  • 점심 (소머리곰탕): 5,000원
  • 시내버스 (터미널->불국사): 1,150원
  • 불국사 입장료 (학생): 2,500원
  • 군것질 (쥐포): 1,000원
  • 시내버스 (불국사->국립경주박물관): 800원
  • 국립경주박물관 입장료: 400원
  • 택시 (국립경주박물관->분황사): 1,500원
  • 분황사 입장료: 1,000원
  • 시내버스 (분황사->터미널): 1,150원
  • 숙박료: 12,500원 (25,000 * 1/2)
  • 저녁 (갈비2인분 + 맥주 + 공기밥): 12,000원
  • 군것질 (황남빵 + 이것저것); 7,350원
  • 시내버스 (터미널->양동민속마을): 1,500원
  • 시내버스 (양동민속마을->경주역): 1,500원
  • 점심 (짜장면 + 군만두): 4,000원
  • 새마을호 (경주->서울): 30,600원
  • 총합: 107,350원

1.9.2 참고(203번 버스 시간표: 터미널)[ | ]

  • 시외버스터미널앞->옥산서원(독락당, 정혜사지13층석탑)
    • 08:50
    • 11:50
    • 14:20
    • 16:30
    • 18:50
  • 옥산서원->시외버스터미널
    • 07:30
    • 09:45
    • 12:55
    • 15:25
    • 17:35
    • 19:40

1.10 # 답사기를 읽고[ | ]

하하 쉽게 유홍준 아저씨처럼 느낄 수는 없겠지. 네 글은 진솔하다고 생각된다. 오죽했으면 나도 유럽여행을 AFC라고 생각하겠냐. 도피성 여행을 다니는 네녀석이 안쓰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구나.
나도 언젠가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한번 가 본 것밖에 없는데.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너처럼 슬슬 국내여행을 다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네가 뭔가 얘기하려고 할 때 심드렁하게 있었다는 네 친구녀석의 사진을 찍었으면 아마 화룡점정의 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 거북이 2003-2-24 23:13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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