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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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1587, A Year of No Significance: The Ming Dynasty in Decline
萬曆十五年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2 책소개 (알라딘)[ | ]

'중국이 왜 이렇게 정체되고 퇴보하게 되었는가'하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그 원인을 규명한다. 16세기 중국 사회의 전통적인 역사적 배경, 즉 아직 세계 조류와 충돌하기 전의 일면을 설명하며 중국의 정체 혹은 퇴보는 외부의 힘에 의해 개방된 근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16세기 후반 명의 만력 연간에 이미 그 징조와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거북이의 서평[ | ]

1999 05 17

먼저 책 제목이 무척 도발적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해'라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 해에 대한 기록을 왜 남겼는가? 책을 집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차례를 보니 금방 당대의 열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책의 의도도 직관적으로 들어온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당대에 살았던 중요한 인물들을 묘사하여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미칠 영향을 부여주는 책이겠구나...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저자 레이 황은 처음부터 객관적인 사가로 남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료들을 통해서 얻은 단서에 문학적인 상상력을 결합하여 그는 지속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들은 인물과 시대상을 친숙한 것으로 만들고 인물들에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당대의 분위기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사료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객관성이라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기에, 차라리 역사의 총체적 인식자라는 생각에서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서를 남기는 것이 어정쩡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낫다.

저자는 정치, 사상, 개인적 생활등을 혼재시켜서 당대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도 유효한 아날학파적인 방법론이다.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거나 '역사신문'류의 책들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윤리적으로 중요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이질적 행동이나 생활속에 나타나는 자기모순적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이 가진 한계, 언행일치의 정도 등을 독자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은 인간적인 모습들이라 역사속의 인물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서 명으로 대표되는 전제군주제와 문관관료제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짚어내고있다. 명대 최장기 재위 황제인 만력제와 당시 수석 대학사 장거정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당시에 황제가 할수있는 일과 없는 일,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며 보여준다. 여기서 황제가 겪는 인간적인 고뇌, 문관관료제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유교적 세계관을 이용하는가에 대해 묘사한다.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였던 만력제가 자신의 총명함을 황제라는 지위에 적용시키지 못하고 결국 명대의 쇠망을 가져오게 만드는 과정이 사극을 보는것처럼 묘사된다. 황제가 자신의 선생이었던 장거정의 비리들을 알아가는 과정 또한 황제의 인간적 섬세함을 잘 보여준다. 허나 결국 그는 문관들의 조직적 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으며 그 무기력감이 쇠망의 기초를 닦게됨을 보여준다.

도대체 개인사와 사회사는 어디까지 엮어지는 것일까. 후임 수석 대학사 신시행의 행동은 유교적 사회에서 문관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한 전형을 보여주고있다. 문관집단속에서 '중용'이라는 덕목은 어정쩡하고 두리뭉실한 삶을 지칭하는 말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저자가 평가하듯 신시행은 온갖 충돌점을 두리뭉실하게 감싸안아 넘긴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잠깐 진화한 것에 불과한지 당대에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명과같은 대제국의 상층부를 불안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그저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 할만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문관들이 어떠한 시스템으로 국가를 유지하는가를 보여준다.

누구나 과거를 뚫어야 문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거를 뚫기 위한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윤리학이다. '충효'로 대변되는 그 윤리학을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배우고 체현하려 한다. 그 지고의 가치를 현실화하기 위해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황제에게 간언을 하며 기록을 남긴다. 그것이 종종 개인적 부귀나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거나 이중적인 인간형이나 사회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 도덕성이라는 것은 유교문명권 이외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것이다. 저자 역시 이 유교문명의 지고함을 잘 알고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간과한 채 정치화하여 문제를 낳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서 법치의 부재를 계속 언급하여 은연중에 서구문명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좀 천박한 일면이다. 유교문명권은 물적 토대가 바뀌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서구의 침략을 맞았다. 물적 토대가 바뀌었을 때 그것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왕조나 시스템은 망할수밖에 없고 다른 체제가 나타났을 것이다. 허나 그러한 것을 주체적으로 실현해볼 가능성을 빼앗긴 채 그런 대접을 받는것은 좀 부당하다. 적어도 내가 접한 철학들중에서 유교이상의 보편성을 가진 철학은 없었다.

유교적 엄정함을 몸으로 체현한 이로 저자는 해서를 들고있다. 해서는 유교적 윤리관을 뼛속까지 체현하고 있는 인물로 그것에 따라 무모한 행동일지라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일을 하고도 살아남았으며 후대까지 길이 남는 '스타'가 된 것은 그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충신들은 정말 부지기수이다. 허나 해서로 대표되는 그 충신들이 있기에 중국과같은 거대한 영토를 통치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들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정치적 야심이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도 저자는 분명히 적어두었다. 황제에게 직언을 한 이는 역사가 충신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 수천년간 보장되어있었으니까. 그리고 충신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었다. 가문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말단관리 주제에 관을 마련해놓고 상소문을 올리는 일을 감행했던 해서의 행동은 선비들에게 있어서 진정 자존심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이들이고 무지한 백성들을 잘 살게 해주는, 적어도 잘 살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긍지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착한 위정자였던지 백성을 등치는 위선자였는지는 몰라도.

해서는 신시행에 비해 매우 급진적으로 행동을 취했고 서로가 보기에는 바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한쪽은 수정주의자로, 한쪽은 비타협자로. 이미 선악을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허나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가운데서 그의 존재는 종종 체제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인물이었다.

문관들에 밀려서 고독하게 생을 보낸 무관으로 척계광이 나오고있다. 그는 왜구들과 변방의 오랑캐들을 무찌른 당대의 무장이었고 문약에 빠진 나라를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장거정의 후원속에서 그는 강한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장거정이 죽자 문관들의 적개심속에서 그는 실권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저자는 명대의 문치가 가지고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척계광이 힘을 잃어갈 무렵 서구에서는 스페인의 아르마다가 영국의 드레이크에게 박살나고 세계 최강국이 되던 시점이었음을 저자는 말한다. 당대인은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이러한 순간들이 종종 후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에게 겸허함을 느끼게한다.

평소에 매우 궁금하던 이지도 이시기의 학자였다. 자신의 책을 묻어버릴 책藏書, 태워버릴 책焚書라고 이름 불이며 온갖 금기에 돌을 던지던 학자. 그러면서도 자신이 속한 향신계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거나 부자 친구들 덕에 잘먹고 잘살았던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학자가 바로 이지이다. 이지의 책을 읽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으나 이지는 학자적 정직성을 호소했던 학자라 한다. 요즘처럼 학문을 위한 학문이 종종 판치는 시기에 경각심을 느끼게 할만하다.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차 모르면서 글을 주절거리는(지금 이순간의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지만 저자가 묘사하는 이지 역시 그것을 모르는 인간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수있는 인간이 되고싶다.

이러한 인간들에 대한 열전이 바로 이 책이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명대 문관제도가 꼭대기에 이르렀고, 모든 것은 꼭대기에 이르는 순간 내리막길로 가는 것이며, 이러한 모든 것이 누르하치가 북방에서 세력을 잡게 한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들의 행동은 실패였다고 말한다. 당대에 했던 행동들의 결합이 후대에 파멸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쓴 것 자체도 그렇거니와 그의 논조를 보면 그는 결코 이것을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이들이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들 개개인이 이루어놓은 도덕적 성취는 어떻게 중국이 수천년간 그 광대한 영토를 쥐고있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좀 더 나아가면 우리나라가 단일왕조를 오백년씩이나 유지할 수 있었던, 세계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을 해내었던 것의 원인이 모두 이러한 인간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왕조체제가 누천년간 골격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유지되었던 것은 그것들이 그만큼의 효용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무엇이 이러한 인간들을 내보낼 수 있었는지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직도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지만 그들을 비판함에 있어 앞뒤를 생각하지도 않고 유교문명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반푼이 지식인들도 딱 그만큼 문제를 안고있는 자들이다. 정말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4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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