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병일기0320

# 3.20 (화)[ | ]

유격의 핵심은 올빼미라는 말에 있다.
훈련병을 한마리 동물로 간주하고 굴리는 것이다.

오늘의 짜증으로 유격은 끝이 났다.
오늘 온 교관은 상당히 유쾌한 녀석이었다.(방금 VTR에서 JeanMichellJarre의 음악이 나왔다) 사람 다루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욜라 굴리다가 '어머니'를 외치게 하여 눈물이 나오게 했다. 애들 한 절반은 울었다.(이번엔 PinkFloyd의 Time과 Brain Damage가 BGM으로 깔리고 있다)

왼쪽 새끼발가락이 아프다.(MikeOldfield의 Tubular Bells도 나오네)

  • 해설

이 교관은 결국 마지막에 가장 우수한 교관으로 뽑혔다.
인기상이라고나 할까.

일단 유격을 합리적으로 시켰다.
전날 교관은 어리버리한 주제에 50번씩 100번씩 마구 시키는 바람에 애들이 아무 정신도 못차렸는데 이녀석은 딱 10번씩만 시켰다. 대신 숫자셀 때 마지막 숫자를 외치면 한차례 굴렸지만 뭐 이거야 언놈이나 똑같은 것이고.
그랬기때문에 애들은 오히려 열심히 했다.
나도 전날에 비해 피로를 덜 느끼고 굴렀는데...

한참 굴리다가 뒤로취침상태에서 하늘을 보고 '어머니!'라고 여러차례 외치게 했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반쯤 벗겨진 철모를 뒤집어쓰고 누워서 어머니를 외치는데...
난 얼핏 저런 상투적인 교관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만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나에게 있어 가족이란 그다지 확고한 끈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언론이나 이나라 정서가 부추기는 투의 절대적이고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순간 눈물이 나왔다.
극한상황에 있을 때 어머니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보호막의 존재를 절실히 느끼는 걸까.

괄호치고 무슨 음악이 나온다고 적은 것은 교육비디오 보는 도중에 나온 백그라운드뮤직을 적은 것이다.
나처럼 음악듣는 형들은 다 그런 비디오를 볼 때 앗 이건 이놈의 곡이자너라는 생각들을 다 했다고 한다.
유유상종이다.

이때 본 비디오들은 진지구축, 구급법, 사격, 약물남용예방 등등의 잡다구리한 교육비디오였는데 그 조악한 편집, 상투적인 연기, 황당한 내용등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여 지루한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가장 웃기는 비디오는 약물남용예방이었는데...의사가 아주 진지하게 사례를 들어가며 약물남용과 술, 담배 등의 해악을 얘기하는 거였다.
그중 한 녀석은 어릴적 선배들에게서 본드를 배웠는데 본드를 많이하던 선배 하나가 기형아를 낳은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만...본드에서 가스로 바꾸었단다...참 내.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데 다들 웃겨서 죽는줄 알았다.
정신교육비디오는 편집도 훌륭하고 내용도 최근내용에 자료화면들이 많아서 아주 좋았었는데 이 비디오들은 영 꽝이었다.


훈련병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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