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병일기0314

# 3.14 (수)[ | ]

어제의 목감기는 어쩔수 없이 갔던 목욕이후 오한이 겹친 몸살로 변했다.
오한이란 것에 걸린것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추웠다.
훈육분대장과 소대장 모두 걱정은 해주었지만 (의무대는 지금 갈 수 없으니) 일단 자란다.
군대는 이런 곳이다.
친구들이 이렇게 저렇게 준 약을 먹고나니 나아졌다.
몸을 따듯하게 하고 잔 것이 도움이 된것 같다.
오늘도 열은 좀 나지만 약보다는 코코아가 더 좋을듯 하여 종교행사로 왔다.

어제 했던 목욕은 너무 비극적이었다.
지난번에 목욕갔을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좁은 탕에 모두를 처박고 십분정도만에 씻고나오라고 닦달하는데 완전 아비규환이다.
매우 슬프다.
군대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이것은) 폭력과 짜증, 비효율의 확대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음부턴 목욕을 가도 탕에 들어가지 않겠다.

교관이 사격에 대해 설명할 때 총을 여자에 비유했다.
오늘 했던 사격의 느낌은 첫 섹스의 느낌과 비슷했다.
하기 전에는 두렵지만 하고나면 별것 아닌.
그리고 두려움과 설레임이 겹치는 묘한 쾌감.
총은 섹시한 기계다.
지금 내 느낌은 guilty라는 단어가 어울릴거 갈다.

그녀석이 무척 보고싶다.

  • 해설

내가 오한이 들었을 때는 정말 몸이 덜덜 떨려서 의무대라도 꼭 가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녀석들 하는 말이, 시간이 지났으니 일단 자고 내일 가자는 거다.
뭐 이런 곳이다.
어쨌거나 깔깔이[공식명칭은 방상외피, 초가집에서 할머니들이 입고있는 조끼같은 방한복인데 효과 만점이다, 군대물건중에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깔깔이와 가죽장갑이었다.]를 두개 입고 전우들이 가지고있던 감기약을 먹고 잤더니 다행히 열이 내렸다.
여기서 감기약이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들도 아파서 의무대에 갔을때 간신히 얻어온 것인데 그것을 나에게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기환자가 폭증하자 나중에는 감기약을 주지도 않았다.
나도 챙겨들고왔던 콘택600을 나중에 심하게 앓는 전우에게 주었었는데 그 친구가 그것을 먹고 좀 나아졌을 때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했다.
그만큼 절실하다...젠장.
여튼 아프면 안된다.

목욕하기 전에 옷갈아입는 공간은 정말 좁다.
거기서 수많은 녀석들이 동시에 옷을 벗고 입는다.
자기옷도 못찾고 애들이랑 부딪히면서 빤쓰가 뒤바뀌고 신발을 잃어버리며 바지도 못입고 나오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간병들이 빨리하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아비규환이다.
붓다가 생이 바로 지옥이다라고 말했다던가? 뭐 아님 말구.
거긴 정말 생지옥처럼 느껴졌다.
눈물날뻔 했다.

그렇게 들어가서 비누칠도 제대로 못하고 물만 한 두어번 들이붓고 나오는 것이다.
그 쥐털만한 곳에서 240명을 한번에 씻기려는 발상 자체가 글러먹은 것인데 그런 짓을 태연하게 한다.
감기걸렸는데도 강제로 씻고 나오라 한다.
그러니 오한같은 것이 들지...닭대가리들.

이녀석들은 처음 총쏘는 것을 처녀사격이라고 불렀다.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을 다룬다는 것은 떨리면서도 끌리는 뭔가가 있다.
나에게도 야성과 살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건지.
그리고 총을 쏜 다음에 사격 결과를 살펴보는데 정말 과녁이 뚫려있는 것이다.
총쏠때 긴장하고 흥분해서 조교가 하는 말 따위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만큼 총은 남자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저것만 집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 들게하는 그 무엇.
자기를 울트라맨인듯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라는 생각과 쏘고싶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래서 guilty라는 말을 쓴 것이다.

총을 쏜다라는 행위는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코드화된것 같다.
섹스가 그러하듯.

그런데 그 순간 그녀석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있었는지도 모르겠다...하...하...


훈련병의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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