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어

  ISBN:8976680804

  • 저자 : 이익섭(李翊燮) 외
  • 원제 : 한국의 언어(1998)

나는 종종 실용서에서 강한 감동(?)을 받곤 하는데 그것은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짜임새있는 구성과 그 결과를 내기까지 저자들이 쏟아부은 치밀한 노력 등이 눈에 보일 때 그러하다.

이 책 ƒ한국의 언어„도 나에겐 그러한 책이었는데 과도하지 않은 양에 한국어의 다양한 모습을 이정도로 쉽고 아기자기하게 설명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내 야심(!!)때문에 고른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한글 세벌식 사용자이며 조합형을 지원하는 아래한글 2.5를 사용해 이 글을 쓰고있다. 한글 조합형과 세벌식 자판 문제는 한글 기계화[ 보다는 전산화 ]과정에서 나온 해묵은 논쟁들이지만 아직까지도 전혀 해결이 되지 않고있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두벌식보다는 세벌식을 완성형보다는 조합형을 지지하는데 그거야 세벌식과 조합형이 한글 창제/제자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벌식과 완성형이 표준처럼 되어있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천지인 한글이 아닌 다른 자모조합방식으로 입력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다. 비합리적인 수단으로 한글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극도의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나는 영어로 된 우리 음악 사이트[ http://koreanrock.com ]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표준화되지 않은 우리말의 영문자표기romanization때문에 가공할만한 짜증을 느낀 사람이고 그때문에 내 임의로 그 표기법을 규정해 쓰고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동일인인 마르크스가 맑스와 마르크스라고 이원화해서 적혀있는 것을 읽게 될 때 느끼는 짜증을 정말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조선말을 이따위로 오남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체계적으로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그때문에 나는 이상하게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몇달전 그 글에 손을 댔다가 현재 넉아웃되어 공부나 해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지내는 상태인데 항상 오만한(-_-+) 나는 그 야심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야심은 내 독서 방향의 한가지 축을 이루게 되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그쪽 일에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서울대와 뉴욕 주립대가 함께 한국을 미국에 제대로 소개하자는 뜻에서 기획한 총서로 기획된 11권 중 하나로 애초에 영어로 쓰여지고 대상이 미국의 교양인인 책이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었기에 한국인들이 대개 알고있을 법한 내용들도 상세히 적혀있으며 논의의 수준을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라고 저자는 쓰고있지만 미국의 왠만한 교양인은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은 많은 부분을 꽤 깊이있게 다루고있다 ].

따라서 조선어만 만 25년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이미 알고있는 사실과 잘 모르던 사실, 혹은 알되 인식하지 못하던 사실들이 마구 섞여있는 이 책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예가 수록되어있고 한국어가 가진 여러가지 특징을 문법에 치우치지 않고 기술하고 있어 지하철에서 낄낄대며 읽기에는 좋은 책이라 하겠다.

총론에서는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가에 대해 지리적 분포,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문자, 여러 알타이어족 언어들과의 비교를 통한 계통, 어순, 경어법 등을 들어가며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어가 얼마나 색다른 언어인지 맛을 보게된다.

사실 한국어의 맛을 진짜 알려면 아마도 최소한 4-5개국어의 기초문법정도는 알아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깝깝하다. 학교다닐때 쓸데없는 공부 대신 이런 언어공부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과 제 2 외국어였던 독어시간에도 조느라 바빴던 내 자신에 대한 회상이 교차하면서 결국 문제는 언제 어떤 동기가 그 인간을 후려갈기느냐에 따라 그 인간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극을 계속 해야한다.

여기서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는 우리는 우리말을 표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이고 한글 모아쓰기라는 방식이 가지고 온 엄청난 언어생활의 변화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모를 조합해 음절단위로 구성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그것이 우리 언어생활을 규정한다는 것은 잘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외래어의 표기를 다루면서 한자가 우리말에서 차지하는 비중 뿐 아니라 영문자가 차지해가는 위치를 다루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짧게나마 영문 차용어의 발음이 한글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가를 다루어 나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 책은 문법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높임말과 사투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재미가 또 쏠쏠하다.

저자는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로 높임말을 들고있으며 여기서 그가 제시한 높임방식들을 조합해도 수백가지의 높임말 표현이 나온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이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말의 정교한 높임말은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조선 스타일의 위계질서 확립을 가져오긴 하지만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저자는 이 높임말의 방식이 젊은 세대로 내려올수록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말이 어떤 식으로 변할 것인지 두고보겠다는 학자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사투리에 대해 읽으면서 재미났던 것은 내가 사투리에서 느끼던 억양이라는 것이 우리말에 담겨있는 성조의 흔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음장이야 아직 표준어에도 일부 남아있지만 성조같은 요소는 이미 사라져버렸으니까. 나는 제주도 사람이 많은 동아리와 경상도사람이 많은 과를 졸업한지라 이상한 성조[ 보다는 말투 ]가 익어버린 토종 서울사람이다. 가끔 사람들은 내 말투를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성조를 반영한 말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얼마나 다양해질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중국 여자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청각적 쾌감이라고 표현해도 좋으려나.

그리고 사투리를 지역별로 정리해보면 어떤 패턴이 조금이나마 드러난다는 사실 또한 재미나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사투리가 형성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면 무척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쓰는 말이 나를 규정한다는 것을 알게되어 그 이후 나를 만들어나가는 수단 중 하나로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 의지를 말로 표현하고 그것을 내 귀로 들으면서 나는 내 말을 어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히 말 뿐만 아니라 이렇게 글로 적고 그것을 다시 내 눈으로 읽어가며 역시 되새김을 한다.

나를 규정하는 이 언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October 3, 2001 (17:04)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