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 락 궁시렁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한 영국 중고음반 할아버지 업자들의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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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990년대 영국의 중고음반가게 운영자들은 대부분 1970년대와 80년대부터 중고음반점을 운영했던 사람들이고 1960년대 후반부터의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락 애호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한국의 1990년대 중후반시점에 프로그레시브 락 이라는 명칭에 대한 설전이 예바동이나 천리안, 하이텔에서 있기도 했었죠. 당시 학생신분에 저렴한 것들로 음반 석장씩 (석장이 넘어가면 세관에 걸리던 시절) 사 모으던 시절 영국의 중고음반 업자들에게 '프로그레시브 락' 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써서 팩스로 묻기도 했습니다. 금성 가가호호 팩스기는 매일오더 하는 사람에겐 필수였죠. 새벽에 가가호호 팩스의 열전사지를 통해 판매 리스트를 뱉어내면 형광등을 키고 리스트들을 쭈욱 보면 돈 없어서 사지 못하는 오리지널 음반 타이틀들이 엄청났었죠.

그중 몇명의 업자들이 자기 생각을 휘갈겨 써서 팩스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업자는 Vinyl Tap , Reddington Rare Records, 프랑스쪽에 상태좋은 희귀음반만 취급했던 할배도 타이핑친 글을 편지로 보냈던 기억도 나네요. 그분들이 저에게 상당한 내용을 보내줬었는데 다 잃어버리고 ㅜㅜ 몇가지 기억의 파편에 의존해서 간단하게 써보죠. 개인적으로 업자라고 다 같은 업자는 아니지만 실력있는 업자는 그 분야 평론가들 싸다구 수백대는 때리는 내공과 지식을 가지고 있죠.

당연 프로그레시브 락 이라는 명칭은 후대에 만들어진것이죠. 영국에서 시작된 명명입니다. 여기서 음반업자 할배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갈립니다.

  1. 새롭게 나온 기계들과 장비들을 이용해서 진보적인 사운드와 새로운 연주,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락 음악.
  2. 영국에도 불어닥쳤던 히피문화와 진보의식은 영국 젊은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그래서 히피문화와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했던 락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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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의 경우 Rod Argent라는 뛰어난 뮤지션이 만들어낸 명곡 좀비스를 예를 들어보죠.

https://www.youtube.com/watch?v=qzpPy9hJYA8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시대를 몇발자국 앞서간 세려된 곡전개와 슈가팝의 원조 같은 달콤하면서도 정신적 당이 필요할때 가볍게 즐기기에 충분한 팝의 명곡입니다.

좀비스의 노래보다 1년전에 녹음한 프로콜 하럼의 명곡을 들어보죠.

https://www.youtube.com/watch?v=Mb3iPP-tHdA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선율이 느껴지는 명곡입니다. 좀비스와 같은 악기를 사용하고 비슷한 악기구성임에도 완전히 다른 무게감과 신비감을 가진 음악이죠.

1번이라 생각하는 업자들은 프로그레시브 락의 시작은 프로콜 하럼 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킹 크림슨이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죠. 이당시 영국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킹 크림슨 1집에서 가장 놀라운 곡으로 생각했던 곡은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이었다고 합니다. Crimson 이라는 단어는 영국 상류 엘리트들 모임에서 사용하는 명칭 이라고 합니다. 막노동 하는 분들이 모여서 귀족클럽 이라고 명명 하는건 자유지만 그러면 더 무시만 당하듯이 처음 킹 크림슨 이라는 명칭에 다수의 영국 음악산업 종사자들은 비웃었지만 처음 접한후 그들의 사운드와 연주력 그리고 보컬의 조화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킹 크림슨이 데뷔앨범을 발표한후 앞으로 이런 그룹은 나오기 힘들것이라는 분위기 였다고 하네요.

즉 1번 지지자들은 프로콜 하럼이 시작해서 킹크림슨이 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한게 프로그레시브 락 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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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썰을 간략히 써보겠습니다.

그당시 영국의 분위기는 세대간 갈등과 반항 이었다고 합니다. 유럽 전체가 그런 분위기 였고 68혁명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60년대 휴대가 가능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보급과 요트에서 방송을 하는 사설음악 방송국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불법 언더그라운드 방송국 답게 자기만 알 것 같은 숨겨진 음악들을 발굴해서 방송하는 역할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손에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게 유행이었기에 언더그라운드 음악 문화가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할배들 라디오 들고 다니는게 사실 그분들 젊을땐 그게 최첨단 유행이었던거죠.

사회에 팽배한 세대간 반항의 분위기는 고전음악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게 고전음악이 아닌 새로운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성공하고 싶은 행동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Rick Wakeman 같은 젊은이 들은 소나타와 심포니가 뭔지 아는 음악 엘리트이므로 프로그레시브 락의 컨셉트 앨범이나 대곡의 구성력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적합한 인재들이죠. 그리고 60년대 부터 재즈클럽들이 영국의 곳곳에 만들어졌습니다. 미국보단 운영이 힘들었지만 재즈를 영국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죠.

그래서 이쪽을 지지하는 할배들은 여성가수 pat cole arnold의 백업밴드였던 The Nice의 69년 데뷔 앨범을 최초의 온전한 프로그래시브 락 앨범이라 생각합니다. 킹크림슨 같은 프로그레시브 락의 수퍼밴드와 성향이 같은점이 있고 다른점이 있죠. 같은점은 연주자의 임프로비제이션을 통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들려주고 음악적 완성도를 만드는 내공을 보여준점이라 생각합니다. 다른점은 각자 알아서 생각하는게 좋을듯 하네요.

1970년 ELP가 isle of wight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들의 음악을 들려줬을때 기성세대 음악산업 종사자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독 혹은 정신사납다 라고 생각했으나 젊은이들 만큼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죠. 급진주의가 파괴를 통한 새로운 질서를 바라는 행동이고, 기존의 것과 다르면서 더 나은것을 추구하는게 진보주의 라고 정의한다면 그당시 사회분위기속 진보주의에 탐닉했던 젊은이들의 큰 지지를 얻는 실험적 성향의 락 밴드들의 집단들이 프로그레시브 락 이라고 주장하는 업자 할배들이 있었습니다.

간단한 예를들면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 이쪽 할배들에겐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이 아닙니다. 싸이키델리과 스페이스 락을 지향한 메인스트림 락계의 잘 나가는 락밴드였던 거죠.

반면 이 할배들에겐 캔터베리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락이 되는거죠.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중 소프트 머신이나 캐러밴 같은 캔터베리씬이 만들어낸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대간 반항을 방랑과 자유속에서 찾았던 비트닉족에서 음악쪽을 대표하는 캔터베리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락 장르에서 소외시키는것은 각자의 몫이겠죠.

개인적으로 캐러밴의 데뷔앨범은 영국 락음악사에 꼭 들어야하는 수많은 명반중 한장이라 생각하는데 매직맨 이라는 곳에 아래와 같은 가사가 있죠. 캔터베리씬의 단결력이라 생각합니다. Soft Machines, Heart Club Bands and all are welcome here with me.

제 경험상 역사에 남는 좋은 밴드들이 들려주는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들은 연주기량을 뽐내는듯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연주들과 귀에 잘 붙지 않는 실험성과 난해함을 포함시킨 음악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을 피하고 골라서 듣는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프로그레시브 락 음악들은 결코 대중의 귀맛에 맞춘 음악은 아니었죠. --사용자:FVI 2018년 4월 17일 (화) 10:1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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