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마니아

1 포스트잇 마니아[ | ]

며칠 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두 권의 책이 있다. 시리즈로 나온 이 책들은 일본의 유명 경제캐스터, 저술가 니시무라 아키라가 만들어낸 기획서들이다. 제목은 역시나 선정적인 스타일의 “CEO의 다이어리에는(and 정보감각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라고 되어있는데 뭐 나름대로 배울 점과 버릴 것이 명확한 책이었다고 판단된다. 책에 대한 촌평이나 요약은 독서일기에 남길 것이고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내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버린 요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로 포스트잇Postit이 그 주인공이 되겠다.

이거 안 써본 사람 없을 것이다. 반대로 매일 쓰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매 시간 쓰는 사람이나 항상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만은 정확히 알고있다. 니시무라 아키라와 바로 필자BrainSalad다.

사실 니시무라의 시간관리법이나 정보관리법에는 탐탁지 않은 부분 내지는 질리게 만드는 부분도 많다. 이것은 생각 자체의 차이점도 있겠고, 저자 자신의 생활패턴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도 상당하기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기는 곤란한 점도 많을 수 밖에는 없어 보인다. 사실 일본인들이 쓰는 자기계발 서적들의 대부분이 실용적이고 방법론적인 관점에서는 특유의 정리정돈 문화와 보편적인 편집정서가 어우러져 탁월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반면, 본질적인 접근이나 철학이 담긴 깊이 면에서는 다소 가벼운 책들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이번 시리즈 저서에서 내내 소개되는 매력적인 방법론이 바로 "포스트잇 활용도 극대화" 방법이다. 나 또한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익히 공감하고 있고 실천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었지만 – 보이스펜까지 고려해보았다. PDA는 현실적으로 나와는 맞지않는 아이템인데, 디지털기기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은 구세대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 이처럼 쉽고 간편하며 유용한 방법을 진작에 왜 생각 못했을까 싶다.

솔직히 대단한 발견이 결코 아니다. 어차피 포스트잇은 그 자체로서 메모장이다. 그런데 일반 메모지와 다른 중대한 차이점을 갖고있으며 이것이 포스트잇을 활용한 시간과 정보관리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동성”과 “대체성”이 그것이다. 이 놀랍지도 않은 발견은 다이어리를 기록하고 일정을 관리해나가는데 있어서 혁신적인 다이나믹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편리하다 못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휴대성으로 시간, 장소의 제약을 최소화하면서 나의 소중한 아이디어, 찰나적인 생활의 발견들을 고스란히 채집해 오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수첩을 통째로 다 들고 다니며 끄적이는 것보다 훨씬 일본인스럽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럼 도대체 이동성과 대체성이 무슨 얘기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아직 눈치를 못 채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말해주자면, 우선 약속이건 해야 할 일이건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점과 계획대로 마음 먹은대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점, 생각이 떠오르는 순서와 우선순위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들을 먼저 기억하자. 이제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그래도 뜬구름잡는 소리같다면 더 구체적으로 활용법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포스트잇을 언제 어디서건 들고 다니면서 생각나는 것마다, 생기는 일거리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중에 남겨둬야할 것 마다 장당 1 항목씩 적는다. 이제 이것은 당신의 스케쥴 리스트이자 아이디어 리스트가 된다.

이제 기한이 정해질 수 있는 것들은 다이어리의 해당 주일, 날짜 등에 덕지덕지 붙여놓는다. 우선순위와 단기,장기 계획에 따른 자리 선정은 편한대로 하면 될 것 같다. 하루하루 다이어리를 체크하면서 완료된 일들, 즉 포스트잇을 떼어내서 버리거나 씹어먹거나…나의 경우엔 주요한 것들은 “포스트잇 명예의 전당”이란 이름의 클리어파일로 차곡차곡 다시 쌓이게 된다. 이것은 후에 비망록이요, 나의 역사요, 연봉협상을 위한 업무실적 정리에 기막히게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질적으로 다이어리에는 적을 것이 없어지는 셈인가? 그래도 그날그날 떼어내는 포스트잇 중에서 중요한건 해당 날짜에 기록해둔다. 개인역사를 더 빨리 스크롤하는 수단이 된다.

오늘 해야 할 포스트잇에서 미처 못 끝낸건 금주의 리스트로, 금주에 다 못끝낸 포스트잇은 다음주로, 뒤로 한참 밀린 스케쥴은 밀린 그 시기로, 무기한 연기될 경우엔 다이어리 뒷면에 별도의 리스트들에 모아두었다가 시시때때로 점검해서 가능한 시기로 다시 조정하면 된다. 이동성이 다이어리에 주는 다이나믹스이자 깔끔함이다. PDA보다 몇 배는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위에서 별도의 리스트라고 했다 이건 또 뭔가? 날짜별 일정에서 벗어날만한 메모들이 다량 쏟아질 수 있다. 특히 나 같이 뜬금없는 이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이런 포스트잇은 여러가지 카테고리를 만들어 다이어리 뒤쪽 페이지들에 카테고리마다 페이지를 할당해서 따로 목록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일정표와 싱크시키면 된다. 내 경우엔 연락해야 할 지인 목록 / 가보고싶은 곳 best / 새롭게 만나볼 성공인 목록 / 해보고싶은 것 best / 기억해둘 것들 best와 같은 다양한 리스트가 존재한다. 포스트잇에서 생활공작소 관리의 힘도 나오고 자기경영의 모든 전략실천도 가능해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줬다.

개인적으론 니시무라에게 감사해야겠다. 그의 방법론이나 여러가지 사고방식(책에서 보여준)들에 반대의 견해도 많긴 하지만 포스트잇 활용아이디어만 얻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잇 활용법도, 시간관리 노하우도, 생활패턴 만들기도 모두 자신이 연구하고 노력하기 나름이다. 니시무라가 3시에 일어나는 생활패턴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미쳤냐?”라고 반응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것이지…나도 이제 나만의 시간관리 패턴을, 생활패턴을 서서히 정립해 나갈 것이다. 아마도 35 이전에는 매우 정교해질 거라고 믿는다.

니시무라는 커다란 다이어리에 7.5*2.5 규격의 포스트잇을 애용한다고 한다. 나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5*1.5 규격의 포스트잇을 애용하고 있다. 두 권의 책을 사면서 이벤트패키지로 딸려나온 CEO 다이어리의 규격과 잘 어울리기 때문인데, 한편으론 메모공간이 부족해서 조금 쓸거리가 있는 메모의 경우엔 7.5*2.5 규격의 포스트잇도 함께 갖고 다니면서 번갈아 쓰곤 한다.

포스트잇을 달고 다니면서 이놈 없이는 허전해지는 생활이 벌써 한달 째이다. 나 또한 편집광인가 하는 걱정보다는 이제야 시간관리와 아이디어관리에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하는듯해서 날듯이 기분이 좋다. 옆에서 아내도 나를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각종 생활비 사용처와 사용금액을 포스트잇을 활용해서 지갑에도 붙여두고, 여기저기 돈 쓸때마다 적어두었다가 가계부 정리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 오우, 이것은 정말이지 실용적이고 바람직하다. 내가 협조만 잘해준다면 100원단위까지 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포스트잇으로 자산관리의 기초중에 기초를 실천할 수 있다.

응용은 다른 여러 가지 형태로도 가능할 것이다. 우선 다른 것 다 잊고 메모지로서의 순수한 기능을 위해서 포스트잇을 휴대하고 다녀보자. 당신의 일상에도 변화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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