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기행

평택기행 나는 학부 4학년을 대학원 연구실에서 시다노릇을 하며 보냈었다.

지구 화학 연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원에 안가기로 마음을 먹었다...-_-

제 목:평택기행 관련자료:없음 [ 3165 ] 보낸이:정철 (zepelin ) 1998-11-24 00:19 조회:53

오늘도 평택으로 당일치기 야외조사를 다녀왔다.

간 곳도 역시 가스 저장소에 수압을 가하는 시설(water curtain)이었는데 이 시설에서 다른 지하수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사전 조사가 목적이었다. 이를 위하여 가스저장소(cavern)에 들어가서 지하수 샘플링을 해오는 것이었다.

좀 답답한 것은 사람들이 시설을 설계할 때 구멍을 파는데만 열중해서 환 경조사를 위한 시설을 전혀 계획에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뭔가가 제대로 되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나마 물을 채취해야 했기에 지하 120미터의 동굴로 들 어갔다. 가보니까 높이 22미터의 천장에서 물이 쫄쫄 나오는 것이다. 선배 들이 가장 쫄따구인 나를 시켜서, 크레인에 실린 바구니를 타고 내가 올라 가게 되었다. 이거 놀이기구도 아니고 아찔하더구만. 나는 초등학생 벌서듯 팔을 쭉 펴고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은 정말 쫄쫄쫄...나온다. 팔이 아파 죽을 지경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덜컹하더니 바구니(말이 바구니지 인디아 나 존스에 나오는 화물칸 비슷한 것이다)가 흔들리는게 아닌가. 장가도 못 가보고 안녕히 가시는줄 알았다. 그 와중에 받던 물 반은 쏟았다...흑.

겨우 다 받았다.

우리와 함께 간 사람은 우리과 선배이자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사람인데 눈가에 매혹적인 점이 있는 누님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이**씨는 저기 타 고싶어도 못타요. 여기 들어오는 것두 안되는데...'이러더라. 나는 궁금해 서 왜 못들어와요? 이랬는데 알고보니 그들에게는 터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동굴이다. 동굴을 파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일하 는 막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부정타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재수가 없거든. 동굴은 구멍이다. 구멍은 수컷의 것이 아니라 암컷의 것이다. 암컷 의 것에 암컷이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

이런 논리에서이다. 그사람들에게 그런 어처구니없으며 이성애주의적인 사 고 운운하면 죽도록 맞고 두어대 더 맞는다. 현실이란 그런게 아니다.

우리사회에 이런 놀라운 금기가 아직도 사회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대해서 한가지를 더 배운듯 하여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나서 점심을 먹었다.

아까 물을 받을때 밖에서 사람들이 자꾸 재촉을 하길래 나는 꿍시렁거리며 '어휴 니들이 받아봐'이러며 벌서고 있었다. 내려가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점심시간이란 무지무지 중요한 것이었다. 중고생이 점심을 아예 2 교시 직후 까먹거나 5분만에 후닥닥 먹고 남은 시간에 축구를 하거나 디비 자는것을 알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십여분이상 희 생하는 것은 참을수 없는 짜증이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수당이 더 나오는 것두 아니었으니까. 역시 사회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그러고 나서 마저 물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근처의 바닷물을 떠오게 되었다. 역시 여자는 배를 안태워준다. 이번에는 또 뭐냐고? 남자들 사이에 는 '...배에 올라탄다.'는 표현이 있다. 미성년자들도 무슨 뜻인지는 다 안 다. 그래서 여자는 타면 안된다. 이러니 여자들이 토목공학이나 조선공학같 은 것을 한다면 선배나 어른들이 결사코 말리는 이유를 알만하다.

엄청난 벽이다.

그러니 또 내가 배를 타게 되었다. 이건 뭐 땅굴갔다가 배를 타고...여기 가 여수같은 경우라면 오며가며 비행기를 탔을것이니 육해공 전면작전이었 을 것이다. 한 이삼백미터 나가서 바닷물을 떠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분석하는 동안 나는 동굴로 들어가서 또다른 쫄쫄쫄 샘플링을 하게 되었다. 쫄따구라고 나만 굴린다. 이번에는 높이가 한 7,8미 터쯤 된다. 여기서는 왠 트럭이 동원되었다. 특수한 트럭이었는데 뒤에 짐 싣는 부분을 전면 개조해서 그 부분이 주루루룩 올라가게끔 되어있다. 내 생각에는 천장에 빨리 굳는 콘크리트를 바를때 쓰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것에 올라타서 이번에는 안정감있게 받을 수 있었다.

신기한거 많이 타본다.

이러구러 샘플링도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니 7시 반이다. 그런대로 하루를 알차게 보낸 셈이다. 일을 열씸히 시킨 다음에는 맛있는걸 먹여야 한다. 그 래야 석박사급 인력들이 (물론 논문때문에 다니는거지만) 궁시렁거리지 않 고 열씸히 일할것 아닌가. 같이 일했는데 다들 맛있는걸 먹으면서 나만 짜 장면을 줄 수는 없다. 신림동 조선면옥이란 가게에서 소갈비를 뜯고 냉면을 먹었다. 역시 잘 먹고 봐야한다.

굳이 조선면옥이란 상호를 밝힌 이유는 맛과 서비스가 일품이었기 때문이 다. 비록 양이 좀 적긴 했지만 정말 고객감동이 목표인 가게라는 생각이 절 로 든다. 좀 비싸도 잘해주면 결코 망하지 않는다.

아, 이 글의 주제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금기-특히 성에 대한-가 존재한 다는 것이다....^^

August 14, 20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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