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플래닛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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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La Planète sauvage → 야만의 행성
The Fantastic Planet, La Planete Sauvage
판타스틱 플래닛, 야만의 행성
  • 애니메이션/SF
  • 한국 개봉일 2004-04-09
  • 감독: 르네 랄루

 

 

   


2 # 거북이[ | ]

이 영화는 결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못된다. 이야기 진행도 관습적이지 않고 문학적이라서 드라마처럼 전개되지 않는 편이다. 디테일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나오다가 어떤 것들은 상징적으로 넘기고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여러가지로 봤을때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읽을만한 텍스트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정말 독특한 생명체들을 창조해냈던 것들이었다. 생명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낸 것은 이 영화의 애니메이터인 토포르던 에이리언의 미술감독이었던 H.R.기거던 똑같이 했던 것이지만 토포르의 그것은 귀여우면서도 생명의 엄정함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동물들의 모습은 두 화가를 연상시킨다. 하나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1516)이고 또 하나는 르동(1840-1916)이다. 르동은 르네 랄루와 그리 시대차도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나라니까 영향을 꽤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그림들을 먼저 찾아본 다음에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

워낙 피곤한 상태에서 봤기때문에 마지막 2-3분은 혼수상태에서 보다가 갑자기 자막이 뿅 올라와서 당황했는데 나중에 리뷰들을 보면서 내용을 되새김해보니 이 영화는 확실히 문명비판적인 면과 프랑스 스스로 비판하는 면 등은 있어보인다. 이런 백그라운드는 가지고 보는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건 김준양씨가 쓴 글을 읽는게 나을것이다.

하야오가 이런말을 했다고 해서 김준양씨는 하야오를 한참 까던데 나는 하야오쪽에 한표다.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기술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공명은 할 수 없었다. 보기를 아주 잘했지만 두번 볼 생각은 없다.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조잡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포르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을 전개시키기에 적당한 원작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 영화에서 주제가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토포르의 세계가 명백하게 영화 속에 창출되어 있었다.”

하야오는 명백하게 이 영화의 이야기 진행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며 그것은 내 보기엔 옳은 지적이라는 말이다. 더 좋은 텍스트가 되려면 좋은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이 영화는 실패한 감이 있다. 바람계곡의나우시카가 그 철학에서 '판타스틱 플래닛'보다 못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우시카를 보면서 울었고 판타스틱 플래닛은 보면서 졸았다. 이 두개의 차이는 부정할 수 없는거 아닐까.

그런데 왜 지금 개봉한거지? -_-a -- 거북이 2004-4-24 1:07 am

3 # 김준양 : cine21[ | ]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판을 비판하며 --원문:로긴필요

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은 탄생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프랑스의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는 1960년 단편 <쥐의 이빨>로 그의 세계를 열었다. 이 작품은 한때 정신병원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인형극과 연극을 상연했던 르네 랄루가 환자들의 집단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뒤 르네 랄루는 단편 <데드 타임즈>(1964)와 (1965)을 만들었고, 1973년에는 장편 데뷔작 <판타스틱 플래닛>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르네 랄루는 (1982), (1988)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지닌 애니메이터로 인정받아왔다. 은 애니메이션의 철학적 신기원을 이룬 르네 랄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지만, 갑자기 날아온 비보는 그의 죽음을 대신 전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쓰여진 글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지금 이 글은 르네 랄루에 관해 쓰여진 이 세계의 마지막 변론일 수 있다.

편집자

김준양/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저자

원제가 ‘미개의 행성’(La Planete sauvage)인 장편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1년 그것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미술의 부재를, 그리고 미술의 부재가 자신들을 2류로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은 ‘애니메이터’이기 때문에 미술이 선행하는 영화창작에 대해 저항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상당히 분별없는 폄하를 하였다.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기술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공명은 할 수 없었다. 보기를 아주 잘했지만 두번 볼 생각은 없다.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조잡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포르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을 전개시키기에 적당한 원작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 영화에서 주제가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토포르의 세계가 명백하게 영화 속에 창출되어 있었다.”-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1979∼1996> 도쿠마 쇼텐, 1997년, 149쪽.

롤랑 토포르의 일러스트를 위한 작품이라고?

우선 내가 위와 같은 글을 인용한 이유는 <판타스틱 플래닛>의 이야기가 조잡하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칸의 심사위원들이 그림만 보고 이 영화에 특별상을 줄 만큼 바보였을 리도 없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대로 <판타스틱 플래닛>을 창조한 두 주역인 르네 랄루와 롤랑 토포르가 미술 경력을 가진 이들이고, 특히 후자의 미술 감각이 그 작품 세계의 구축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은 토포르가 빠진 상황에서 만든 르네 랄루의 이후 장편들인 (Les Maitres du temps, 1982)과 (Gandahar, 1987)의 화면이 비록 뫼비우스와 필립 카자 같은 걸출한 만화 작가와의 작품이었을지라도 <판타스틱 플래닛>의 그것과 크나큰 대조를 보이는 점에서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롤랑 토포르는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인 동시에 작가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폴란드 출신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주연(이자벨 아자니와 함께)의 라이브액션영화 (Le Locataire, 1976)의 원작자이고, 앙리 조뇌 감독의 (Marquis, 1989)에서도 원작과 미술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 있다. 은 애니메이션과 라이브액션, 인형극과 관상술을 조합한 이색적인 가면극 형식에 대혁명 직전의 바스티유 감옥 안에서 사드가 자신의 페니스와 논쟁을 하는 도발적이면서도 사변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그러므로 토포르가 자신의 미술을 내세우기 위해 타인의 원작을 골라서 <판타스틱 플래닛>을 만든 것 같다는 미야자키의 추측은 한마디로 난센스이다.

르네 랄루 역시 미술로 시작하긴 했지만 ‘애니메이터’이기도 했으며 더욱이 줄곧 시나리오를 (토포르, 뫼비우스와는 공동으로) 직접 쓴 시네아스트였다. 그가 당시의 누벨바그, 특히 트뤼포의 작가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토포르에서 뫼비우스로, 뫼비우스에서 필립 카자로 옮겨가면서도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늘 일관된 경향, 특히 타자의 시간과 타자의 장소를 소환하는 경향을 갖는다. 거대해진 달팽이들이 인간의 문명세계를 파괴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르네 랄루의 초기 단편인 (Les Escargots, 1965)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보다 20년 정도 앞선 작품이었다. 을 함께 만든 르네 랄루와 롤랑 토포르가 그것의 상상력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다음 작품이 바로 <판타스틱 플래닛>이다.

핵 공포, 프라하 침공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이루는 세계관과 인물은, 대규모 전쟁 이후 근대문명을 잃고 퇴행해버린 인류, 이런 인류를 대신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거인 종족, 그리고 이 존재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도하는 현자로 요약된다. 이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물론이고 <판타스틱 플래닛>의 제작 기간에 해당하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연달아 발표된 <행성 탈출>의 5부작도 떠올린다. 흥미롭게도 <행성 탈출>의 원작자 역시 피에르 불이라는 프랑스 작가이다(그는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들 ‘포스트 묵시록적’(post-apocalyptic) 장르의 공상과학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이 핵 시대의 히스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환경이 아니라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일본 사람들의 내셔널리즘적 운명에 관한 영화이다. <행성 탈출>의 속편 <원숭이의 행성 아래에서>(1970)는 동굴 속 세계에서 원자폭탄을 신으로 숭배하며 숨어사는 피폭 생존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비슷하게 핵을 모티브로 한다고 해도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그것은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핵 또는 핵 전쟁은 거인 종족이 인류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주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예의 영화들과 달리 핵 폭발 자체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판타스틱 플래닛>이 주로 그려내는 것, 관객의 시선의 중심에 제시하는 것은, 인간이 거인 종족에 의해 하찮은 벌레처럼 다뤄지다가 급기야는 박멸의 위협까지 맞이하게 되는 섬뜩한 장면들이다. 걸리버의 거인국 여행으로 시작한 환상은 인류가 거인 종족의 거대한 공에 깔리고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여지고 살충제에 중독되며 대량으로 죽어가는 홀로코스트로 변한다. 이런 면에서 주인공의 성장과 그의 선택이 출애굽기의 모세와 유사한 점도 퍽 의미심장하다.

<행성 탈출> 5부작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핵이 이야기의 구조를 이루는 반면,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그것은 하나의 시대적 배경으로만 머물고 홀로코스트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이러한 차이는,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과 일본의 그것에 대해 갖는 지정학적 차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이를 드러내주는 또 다른 사례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두편의 영화이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담은 <밤과 안개>(1955)로부터 4년 뒤에 시선을 원폭의 현장으로 향하여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을 만들었다. 전자가 다큐멘터리, 후자가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한편 <판타스틱 플래닛>은 그것이 만들어진 곳에서 그 무렵 실제로 일어난 정치적 사건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당시 체코의 국영영화사인 크라트키필름의 이지 트릉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제작에 돌입한 해는 1968년이었으며, 때마침 그 나라에서는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자유화 운동을 소련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르네 랄루는 대담하게 이 사건을 영화의 시대 배경으로 의도하였고, 그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판타스틱 플래닛>의 제작 기간이 5년 남짓의 세월에 걸쳐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판타스틱 플래닛>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결정적 차이

좀더 나아가서 우리는 ‘미개의 행성’을 의미하는 이 영화의 원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미개의 행성’은 사실 거인 종족이 지배하는 행성의 ‘위성’에 해당하며 거인 종족의 ‘번식’을 위한 장소로 이용된다. ‘미개’의 ‘판타스틱’한 그 ‘위성’은 말하자면 일종의 식민지인 셈이다. 그런데 왜 이 전후의 영화에서 식민지적 음영이 부조되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프랑스는 전후까지도 식민지를 유지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특히 1954년에는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운동에 대한 무차별 진압 전쟁이 자행되기도 했다. 결국 알제리의 독립은 1962년에야 성취되지만, 그로부터 몇년 뒤에 비슷한 성격의 전쟁이 일어난 베트남도 100여년간 프랑스 식민지였다. 68년 5월혁명과 더불어 전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목되는 알제리 전쟁은 오랫동안 불문에 부쳐져 프랑스사회에 역사의 기억상실을 초래하였지만, 누벨바그 감독들은 당국의 강력한 검열을 받으면서도 그 문제에 천착하였다.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르네 랄루도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거인 종족은 단순히 막연한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초과학 문명을 이룩하고 민주적인 의회 정치를 운영하면서 명상을 하루 일과로 삼으며 세포 재생술로 몸을 유지하는 웰빙 생활을 영위하지만 자기들과 다른 인간들을 위험하다는 혐의로 벌레처럼 취급하고 간단히 박멸을 결정해버린다. 인간들이 거인들의 지식과 테크놀로지를 배우고 연대 투쟁하여 새로운 위성에서 독립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은 식민지 독립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르네 랄루는 그뒤에도 에서 행성들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시간(=역사)을 역행시키는 수수께끼의 지배자들에 관해 언급하고, 에서는 유전자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과정에 희생되어 그 변방에 숨어사는 기형 신체의 흑인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피해자의 고통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형상을 영화 속으로 소환하여 피해자의 고통과 병치시킨다. 이것은 서두에 인용된 미야자키 하야오와 결정적인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모두가 그저 피해자일 뿐 가해자의 형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원폭이 일본 사람 전부를 순식간에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탓일까? 미야자키는 과거에 제국으로서, 그리고 전후에는 선진국으로서 일본이 아시아에 대해 갖는 가해자로서의 위치에 별 의식이 없어 보인다. 유럽과 일본이라는 이분법적 공간만을 축지법으로 왕복하는 그는 <판타스틱 플래닛>을 보고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술을 삼류 싸구려라고 개탄하면서 그 원인을 ‘풍토의 상실’에서 모색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술이 삼류 싸구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풍토’가 아닌 ‘역사’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의 이야기가 조잡해 보였다면, 그것은 영화가 자꾸만 초현실적 풍경들 사이로 현실의 삶의 기억인 역사를 끌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삶이란 대개 늘 조잡해 ‘보이지’ 않던가?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렇듯 이 애니메이션영화에는 <행성 탈출> 같은 충격적 반전이라든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드라마틱한 희생과 눈물이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낯설게 다가오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낯섦 가운데에 우리 자신의 억압된 현실과의 조우, 이것은 <판타스틱 플래닛>의 미술이 기초하고 있는 초현실주의의 미학이기도 하다.

미야자키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미야자키 하야오도 아마 이제는 조잡한 이야기의 미덕을, 기억상실 상태에 있는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너무 늦기 전에. 동시에 이것은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에도 해당하는 과제이다. 교육과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마리 이야기>의 준호들과 남우들도 여전히 많지만,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실 분’이라는 거리의 광고들도 불과 수십년 전에 식민지 시대를 마친 한국사회의 현기증나는 동시대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준양/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저자

4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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