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2004)

(태극기휘날리며에서 넘어옴)

1 개요[ | ]

Taegukgi: The Brotherhood of War
태극기 휘날리며
  • 2004년 한국 영화
  • 감독: 강제규
  • 출연: 장동건(진태), 원빈(진석), 이은주(영신), 조윤희(유진-진석의 손녀), 공형진(영만), 장민호(노역 진석)
  • 상영시간: 145분
  • 1174만명 관객동원

 

2 줄거리[ | ]

6·25참전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에서 진석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서울 종로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구두닦이를 하는 진태와 그가 아끼는 동생 진석, 진태의 약혼녀 영신은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난 행렬을 따라 대구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대구역에서 진석이 강제로 징집되어 군용열차에 오르자, 진태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군용열차에 오르지만 진태 역시 징집되고 만다. 진태는 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다는 대대장의 말을 믿고 오로지 동생을 위해 전쟁영웅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갈수록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는 진태와 그런 형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석 사이에 갈등과 증오가 싹트기 시작한다. 이후 진태의 약혼녀 영신이 인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진석 역시 국군에게 죽음을 당한 것으로 믿은 진태는 진석의 죽음의 원인이라 생각되는 신임 대대장을 시해하고 중공군에게 끌려가 인민군 붉은 깃발부대의 선봉장이 되어 유명세를 떨친다. 형이 인민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진석은 제대를 하루 앞둔 날, 육박전 끝에 형을 만나지만, 이성을 잃은 진태는 진석을 죽이려 든다. 그러나 진석의 울부짖음에 진태가 제 정신을 차리고 밀려오는 인민군을 보고는 동생을 먼저 도파시킨다. 그 후, 진태는 총구를 인민군에 돌려 인민군과 싸우다가 집중사격 맞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50여년 뒤 노인이 된 진석은 손녀 유진 옆에서 형의 유골을 향해 오열한다.

3 # BrainSalad[ | ]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끄적여뒀던 이면지를 며칠전에야 찾아냈다. 물론 굳이 그거 아니라도 몇자 적을 수는 있었겠지만 좌우간 한참의 시간이 흘러버리면 확실히 감흥이 줄어들어서 리뷰라는 것을 쓴다는게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잔상만을 들춰내서 손질을 해야되기 때문이다. 영 엉뚱한 모양이 나올지도 모르는거 아닌가...

잘 알려진대로 이 영화의 모티브는 2000년도에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었던 한국전쟁 전몰장병 유골 발굴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전쟁영웅의 서사시도 아니고 정치와 이념체제의 갈등과 모순도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평범하고 무던하게 살아가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겪은 처절하디 처절한 고통과 슬픔의 역사만이 영화 전체를 뒤덮고 있다. 절대로 전쟁블록버스터, 스펙타클 영화로 초점을 맞추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반성과 후회로 점철되는 월남전 소재 반전영화들이나 미국만세 블록버스터들과는 그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철저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떠한 전쟁이라도 그 속에는 자국과 자민족을 위한 투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가?

이 영화에서 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전쟁이 빚어내는 존엄성의 상실과 집단적인 광기의 두려움이다. 이 땅에 얼마나 비극적인 상처가 남아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거나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세대들에게 굳이 반공이 아니라하더라도 올바른 의식을 가져볼 계기가 되어준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반공적이고 반북적인 시각과 감정을 지적하기도 한다. 보기에 따라서 그렇게 그렸을 수도 있지만 소름끼치는 인민군 쥐잡기 씬이나 포로를 소각하고 어린 동생을 포로이고 빨갱이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사살해 버리는 진태에게서 이미 좋은나라 나쁜나라 라는 어릴적 이분법적인 논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인민군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정당화시켜줄 수 없는 국방군들의 잔인함과 무분별한 광기에 더 치를 떨게된다. 공산주의가 그 당시에 보다 선동적인 이미지를 갖고 집단광기로 몰고가는 정도가 심했을 뿐, 사상과 이념이란 것은 전장에서 무의미하다. 내가 죽지않으려면 너를 죽이는 길 밖에 다른 선택은 없다. 그게 전쟁이다.

이념 얘기를 꺼냈으니 말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역사적 사건은 사실 여주인공 이은주가 허무하게 1시간 여만에 등장해서 희생당하고마는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 자체로 비극인 한국전쟁 속에서도 가장 부끄럽고 슬픈 일이고 리승만 정권의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함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스토리라인에 치중하다보니 부각되지는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이화장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어쩌구...소리를 하고 있는 꼬라지들을 보면 동상에다가 오줌이라도 갈겨주고 싶다.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정황과 세태로 볼 때 꽤나 민감한 시기에 개봉된 셈이다. 반미와 친북의 논쟁 소용돌이, 보수와 개혁의 대립의 벽, 세대교체의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이 낭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 영화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나 끝나고 난 후에나 이념을 논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전쟁 앞에 무기력하게 불려나간 인간의 공포, 일그러진 공포심에서 야기되는 폭력, 그 안에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아픔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닌, 이 영화만의...우리 민족만의 사정이 있다.

끝내 극으로 치닫는 두 형제가 바로 그대로 남과 북의 또 다른 상징들이다. 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극도의 증오와 폭력을 서로에게 가하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와 다름없다. 그래서 노인 진석의 마지막 오열… “형을 두고 오는게 아니었는데…”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도 북에 있는 형제들, 중국에 떠도는 형제들에 대해 연대 책임이 있는건 아닐까?

p.s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인상깊고 아름다웠던 장면은 그 잔상이 지금도 선명하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날 형제들의 시골집 저녁상 풍경은 적막함과 폭풍전야 그 자체이며 그 속에서 희미하게 시작되는 포화 소리와 전쟁의 공포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해서라도 가장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분명한 씬이었다.

“잠에서 깨면 꿈이었으면 좋겠어”

진석과 진태에게 자신을 스스로 투영해본다면 이 대사에서 묻어나오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악몽을 꾸기 직전의 그 아름답고 평화롭던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남는다.

4 같이 보기[ | ]

5 참고[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