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를가졌던한젊은이

사실 제가 축구를 하는 내내 가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절박함은 일종의 주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광희중학교 시절과 동북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키가 작았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소개가 되어 잘 아실 겁니다. 저는 또래 선수들보다 휠씬 작었어요. 중학교에 입학할 때 150센티미터 정도였고, 고등학교 입학 때에도 겨우 160을 넘겼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의 이 키가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이후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국가 대표로 뽑히게 된 계기를 아십니까? 저는 공격형 미들 필더로 뛰고 있었고, 대학교 3학년 때 당시 남대식 감독님이 저의 포지션을 바꿔준 이후에 국가 대표로 선발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축구 선수를 지망하는 학생으로서 선망 대상이었던 고려대에 왔지만, 이전의 작은 키로 인해 기본기는 있지만 알려진 선수는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도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2-3학년이 되었을 때, 초고교급 스타였던 서정원, 김봉수, 김병수, 노정윤 등이 차례로 후배로 들어왔죠. 너무 네임 밸류가 높은 후배들이다 보니 대학선발과 대표팀 선발 대에 저는 명함도 내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뒤에 있는 선수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

그런 저에게 미더필더에서 스위퍼로 내려가라고 감독님이 지시하셨을 때는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수비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수비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스위퍼나 중앙수비수라는 자리는 많은 경험이 있지 않으면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대량 실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해도 괜찮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감독님이 저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권유하시지 않았나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장신과 개인기를 이용해 저만이 할 수 있는 스위퍼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만일 감독님의 선견지명을 제 자존심을 내세우고 거부했다면, 또 제가 스위퍼로 내려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안주해 버렸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공격이 가능한 수비수, 지금의 '리베로'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첫 단추는, 주어진 상황을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내 모습 중에서 꼭 닮았으면 하는 부분은?"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인내심'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에게 인내심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축구로 이만큼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변변히 주전으로 뛰지도 못했을 때, 걸출한 후배 선수들에게 기죽어 최선을 다하기를 포기하거나, 또는 포지션 변경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했다거나, 아니면 과거 포항 스틸러스 시절에 해외 진출이 뜻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거나, 지난 2002년 월드컵 대표 선수 자리에서 잠시 빠져 있었을 때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자신이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1997년 J리그 진출 이전, 저는 K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인 MVP를 거머쥔 이래 목표를 상실했었습니다. 목표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직 한참 나이인 저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 아직 더 발전해야 하는 제가 목표를 잃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J리그였던 것입니다.

저에게 J리그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나, 새로운 세계에서 처음부터 다시 축구를 시작하는 셈이었습니다. 그러한 문화적 충격이 있었기에 저는 더 노력하고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 축구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일본의 한국 교포들이 제가 뛰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갖도록 하겠다는 목표가 저를 채찍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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