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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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이와아키 히토시
  • 원제:七夕の国(1997)

1 # 이와아키 히토시 작품목록[ | ]

  • 「風子のいる店」 全4巻 (1987~1988) 講談社

寄生獣のイメージ強いですけど、初期のこの作品は、ほんとうにもうなんでもない、ごく普通の喫茶店を中心とした物語です。主人公がドモリ症というくらいです・・・が、それを克服しようと頑張る姿が、人々に何らかの影響を与えていきます・・・。何とも言えない味がある作品です。 この頃から、日常生活をきっちりと描ける方だとは思っていましたが・・・。

  • 「骨の音」 全1巻 (1990) 講談社

初期短編集。この頃から、既に「寄生獣」のイメージに近い作品が生まれている。

  • 「寄生獣」 全10巻 (1990~1995) 講談社

怪奇ものとしても逸品ですが、それよりも何よりも、「人間とは何か?」という命題にまで踏み込んだ、数々の問いを投げかける力作です。SF作品として、海外に出しても引けはとらない、と巷では言われていました。 ストーリー的には、ある日突然飛来した寄生生物が、人間の脳(いや、頭か)を乗っ取り、次々と猟奇的な「餌漁り」が始まります。日常生活の中、静かに、静かに・・・。だんだんと知性を身につける彼らと対峙するのは、偶然脳を喰われずに、腕やその他の部位に寄生し、人間と共生を始めた同じ”寄生生物”と”宿主”達・・・。知性を身につけると共に、「人類とは何か」を、別の生物の視点から、客観的に描くという事になっていくわけですが・・・。 そういう意味で、非常に奥が深い物語です。

  • 「七夕の国」 全4巻 (1997~1999) 小学館

未だに全貌が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歴史ロマン・怪奇作品です。はたして「窓が開く」ということは、どういうことなのか、それ以上に、あの奇怪な姿の意味するものは・・・?

  • 「峠の雪・剣の舞」 全1巻 (2001) 講談社

2 # 남의 리뷰 2[ | ]

[칠석의 나라] - 당신의 신은 어디 있는가

영혼? 그 따위 건 처음부터 없었어. 거대한 세포 덩어리, 그 안에 누군가 푸른 액체를 주사해 넣었을 뿐이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혈관 속을 스며들어 퍼져나가지. 온 몸의 신경을 타고 자라나 결국엔 날 지배하겠지. 차라리 내가 되 버리겠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살고 싶다며 내 안에서 꿈틀대겠지.

시작

그래. 모든 것의 시작이 당신이었다고 하더군. 나를 만든 것도. 너를 만든 것도. 이 멋진 세상을 만든 것도. 당신이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하더군. 당신 뜻 대로라고 하더군.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듯, 목숨 바쳐 사랑하는 애완동물에 불과하듯. 우리도 당신의 것이라더군. 당신은 나의 주인이시니, 당신은 나의 목자이시니, 나의 모든 선과 행복은 그대의 축복이지만, 내 모든 악과 불행은 그저 나의 부덕함 때문이리라. 태초에 당신을 닮게 우릴 만들었다더니, 아니되면 조상 탓하는 한심한 버릇도 모두 그대를 닮았나보네.

경전

당신이 인간의 언어를 빌어 적어놓은 빌어먹을 규칙들. 보되 만지지 말라. 만지되 맛보지 말라. 맛보되 삼키지 말라. 수많은 모순들로 점철된 문장들. 질문은 그만둬. 반항은 해로워. 언제나 답은 하나지. 위대한 신의 섭리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법, 진실로 믿으면 곧 알게 되리라. 하지만, 알지 못하고는 완전히 믿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당신이잖아. 왜 완전하고 고결한 당신의 뜻을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적어 놓아서 골 아프게 하는지 한번쯤 말해줘도 되잖아. 물론 그 역시 인간의 손에 의해 쓰여졌으니 진정 당신의 뜻인지 악마에 홀린 이단의 방언인지는 모를 일이겠지만.

구원

날 때부터 우리는 죄인이었다고 하더군. 죽을 때까지 용서나 빌라 하더군. 바보처럼 착하게만 평생을 살아도 당신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데, 죄짓고 회계하고, 죄짓고 회계하고, 죄짓고 회계하고… 그러면 천당에 갈 수 있다 하더군. 이건 마치 죄지은 놈들이 지어낸 거짓말 같아. 아니, 죄지을 놈들이 지어낸 거짓말 같아. 어차피 당신에겐 별 상관없겠지.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로 고통받는 것은 결국 인간들이니, 당신은 그저 팔짱이나 끼고 있다가 당신을 따르는 아첨꾼에게 상이나 주면 그만이겠지. 영원히 내 몸 속을 꿈틀대는 이 모든 악마의 속삭임. 나를 죽이는 길만이 내 안의 악마를 없애는 길인데, 자살한 영혼은 구원받을 수도 없다고. 아마도 자애로우신 당신은 사탄도 인간과 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이겠지.

손이 닿는 힘과 창 밖이 보이는 공포.

당신이 남겨놓은 것은 단지 그것뿐. 손이 닿는 힘. 어떤 일관성도 없이 때때로 발휘되는 기적. 바다가 갈라지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봉사가 눈을 뜨고, 죽은 자마저 살아나는 놀라운 기도의 힘. 아무도 설명할 수 없고,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그 경이로운 힘의 비밀이 바로 당신이라고. 창 밖이 보이는 공포. 죽음, 그 이후. 아무도 가본 적 없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는 곳. 아니, 아무도 가본 적 없기에 더욱 두려워지는 곳. 그곳에서 당신은 우리를 기다린다고. 당신을 따르는 것만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것만으로 당신이 이 곳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흔들림 없는 당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밖에. 당신이 이제 우리에겐 관심조차 없다고 해도, 아니 죽어 사라져 버려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그저 영원히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 밖에. 하늘만 쳐다보며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도하는 수 밖에.

고해

어쩌면 당신은 인간보다 훨씬 큰 힘을 갖고 있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을 지도 몰라. 인간이 눈앞에 있는 개미를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개미들을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어쩌면 당신은 인간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지만, 모든 걸 알지는 못할지도 몰라. 모든 인간들의 일거수일수족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마음속은 알지 못할지 몰라. 당신도 결국 그렇게 당신이 보이는 만큼만을 가지고 우리를 심판할지도 몰라. 이미 알고는 있었어. 당신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쯤. 공정한 신의 판결이란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란 것도. 당신은 한번도 자신이 정의롭다고 말한 적 없었으니까. 신. 그 자체로 정당할 뿐이지.

이젠 고백해. 나 진정으로 당신을 따르고 있던 게 아니지. 손이 닿는 힘과 창 밖이 보이는 공포. 목을 옭아매는 그 보이지 않는 사슬들에 묶여 있었을 뿐. 이 끝없는 현실의 불행을 끝내줄 희망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손 내밀어 꺼내줄 구원을 찾고 있었을 뿐. 진정 원한 것은 일확천금의 행복을 노리는 복권과 죽음 그 이후의 행복을 위한 보험. 그 뿐이었지. 기적을 일으키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당신의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오만과 허영으로 가득한 인간이란 동물들 중 과연 그 누가 스스로 당신을 향해 굽신거리며 당신의 뒤를 쫓을까. 어리석고 사악한 나는 가끔 당신이 정말 존재하는 지조차 의심스러워. 하지만, 당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한가지만은 확실해지지. 만일 당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당신은 단죄되어야할 대상이지 숭배받고 찬양받을 존재는 아니라는 거야.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 어리석을 정의라는 것에 따르면 말이야.

팜므 파탈. 아름다운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타락한 영혼의 안식처, 그 순수한. 세상을 구원할 왕자, 마녀의 주문에 얼굴을 잃어버리고 검은 망토를 두른 채 사막을 걸어가겠지. 거짓이 영원하다면 진실이 될테고, 환상이 영원하다면 현실이 되겠지. 넌 그저 보잘것없는 비겁한 아일랜드 녀석… 대지는 흐르고 하늘은 멈추지. 바다가 노하여 바람을 부르니. 이젠, 마지막이 오는 날.

[기생수]를 통해 인간중심주의에 비판적 시각을 제기했던 Iwaaki Hitoshi가 이번에는 [칠석의 나라]라는 작품으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고전적인 그림체와 연출방식은 여전하다.)

'까치'가 아니라 '선조님', 또는 '조상신'이라고 해도 별 상관없지만…

아무튼 지금부터 천년쯤 전, 이 땅에 '까치'들이 나타났다네. 예를 들면 상공에서…. 지금부터 천년정도 전, 상공에 나타난 '까치'들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것은 무릇 신들의 나라… 인간을 초월한 능력이나 그 모습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야말로 '신'의 것이었겠지. 적어도 거역할 자는 없었어. 그리고, 신이 된 '까치'들은 정기적으로 이 땅을 찾아오게 되었지.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신, 그리고, 해마다 신이 내려오는 '신의 산'인 마루카미 산에서 횃불을 밝히며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것이 축제의 시작이었지.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까치'들은 발길을 끊어버렸어. 그래도, 사람들은 해마다 축제를 계속한다네. 한해, 두해, 그리고 천년이 흘러… 아무리 기다려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지.

그렇게 매년 '까치'를 기다리는 칠석제를 행하고, 그 칠석제의 장소인 마루카미 산을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마을 주민들의 행동이 실제로는 까치를 정말 숭배하거나 공경하기 때문은 아니야.

지금부터 천년 전, '까치'들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핏줄 속에 '손이 닿는 힘'과 '창 밖이 보이는 공포'를 심어 놓았어. '창 밖', 견딜 수 없는 공포와 고독이지. 그것이 심어진 자들이 '창을 여는 자'들이야. 이 마을에 많이 있는 '창을 여는 자'들은 가끔씩 꿈속에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는 '까치'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어.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까치'는 이곳을 자기들의 식민지 후보 또는 그 실험실로 생각한 게 아닐까. 거기서 서식하는 동물(인간)을 충실한 종으로 길들이고 나아가서는 자기들의 교배실험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도 해마다 '까치'를 기다리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이 마루카미 산을 포함한 지형은 충성심의 확인일껄세. "영원히 이 땅을 떠나지 마라."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고 이 지형을 보존하며 우리의 도착을 기다려라" 그러기 위해 '손이 닿는' 힘이라는 무기, '창을 여는' 공포심을 준거야. 그래서, 어느 시대나 이곳 사람들은 - 이 산에 성을 쌓거나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사람들로부터 - 이 지형을 한사코 지키려 했다네.

'까치'가 왜 이제는 나타나지 않는지는 모르네. 그냥 이 땅을 버렸는지, 아니면 이미 멸망해버렸는지…. 어느 쪽이든 발길을 끊은 지 수백년일세. 기대하기는 힘들어.

이 작품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까치'가 상징하는 것이 외계인이냐, 신에 준하는 그 무엇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위대하고 놀라운 능력의 존재일지언정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존경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현실과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은연중이라도 그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예를 들면, 전생의 업보라거나 죽은 후에 보상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주는 '힘'이나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그들 자체를 진정으로 숭배하고 공경하는 인간도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결국 너희들 모두 이단이라는 이야기다.)

비록 까치가 상징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라도, 이 작품이 현실의 종교에 대한 꽤 정교한 은유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마저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도에 응답하는 기적'과 '죽음후의 구원'으로 간단히 대치될 수 있는 '손이 닿는 힘'과 '창 밖이 보이는 공포로부터의 구원'은 물론, '손이 닿는 힘'을 가진 자들이 그 능력을 사용할 수록 '까치'의 모습과 닮아간다는 설정은 현실에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으로 무슨 종교직의 감투라도 쓴 자들이 마치 신처럼 특별한 대접이나 존경을 받거나 일반신도들의 믿음이나 행실을 심판하려드는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또한, 수백년 동안 쌓이고 쌓인 불안과 공포에 대한 울분 때문에 자신의 초능력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끝내는 자살을 택하고 마는 요리유키의 모습은 일본의 옴진리교 독가스 사건이나 한국의 오대양 사건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종교 광신도들의 테러와 집단자살에 다름이 아니다.

그래, 모른다. 책임도 못 지고. 그냥 열 불나서 방해하는 거다, 왜!

요리유키와 함께 자살을 택하려는 사치코를 말리던 남마루는 '창을 여는 자'의 심정도 모르면서 무책임하게 방해하지 말라는 요리유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고자 했던 일종의 메시지가 아닐까. 다들 이 세상의 넓이를 너무 모른다고. 세상은 넓고, 너무 넓어서… 청소하는 것도 굉장히 힘이 드는데…. 세상일들을 TV로 대충 보고 아는 척 하지 말라고. 그런 건 다 가짜라고.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주 작은 곳이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지혜, 실패나 새 출발이 모여 있어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넓다고. 그에 비하면 무서운 꿈도, 보이지 않는 사슬도, 요란한 초능력도 작은 거라고. 겨우 일부 일뿐이라고. 그러니까, 무엇이든 한가지 문제에만 너무 빠져서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해치거나 자신의 목숨을 끊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살아남는 것이 더 행복할지는… 책임 질 수 없지만, 죽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우리 함께 있는 것만큼은 할 수 있으니까,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고. 죽지도 못하는 겁쟁이인 나와 함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같이 살아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때로는 정말 슬프고, 때로는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주었으면 좋겠다고. 너무나 이기적인 바램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큼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ps. 죽음이 '까치'에게로 가는 통로, 즉 '구원'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살을 택하는 요리유키의 마지막은 작품을 급히 마무리한 듯한 의심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느껴지고, 동시에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악한 M씨였다면 지구를 통째로 날려 버렸텐데….

3 # 남의 리뷰[ | ]

<html>


<기생수> Vs <칠석의 나라>'기생수'와 '칠석의 나라' 두 작품은 모두 Hitoshi Iwaaki라는 만화가의 작품입니다.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비교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만, 동일한 작가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은 또 어떨런지요? 시작해보겠습니다. ^.^; 성장에 관한 두 만화. <a href=" "><img src=" " width="114" height="160" alt="기생수" align="left" hspace="10" vspace="10" border="0"></a><a href=" "><img src=" " width="113" height="160" alt="칠석의 나라" align="right" hspace="10" vspace="10" border="0"></a>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의 머리를 차지했을때 받은 명령은 '이 종족을 죽여라!' 자유롭게 머리 부분의 근육을 조절해서 사람의 몸을 마구잡이로 사지절단 해버리는 괴 생물체와, 역시 이 생물체의 습격을 받았지만, 오른손을 괴 생물체와 공유하며 괴 생물체들과의 한판 승부를 겨루게 되는 신이치의 이야기를 다룬 '기생수'. 알 수 없는 과거에 이계로부터 날아온 자들에 의해 초능력을 가지게 된 마을. 그리고 그 초능력을 이어받은 후손들 중의 하나인 남마루. 대학 졸업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에 휘말린채, 선조들이 살던 마을에서 모험을 벌이게 되는 '칠석의 나라'.

<a href=" "><img src=" " width="188" height="140" alt="* 1 : 접촉을 통해 잘리워지는 몸 *" align="left" hspace="10" vspace="10" border="0"></a><a href=" "><img src=" " width="88" height="140" alt="1-2 : 초능력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짐으로써 잘리워지는 몸" align="right" hspace="10" vspace="10" border="0"></a>두 만화는 사지절단을 다루는 만화이다. '기생수'는 칼과 같은 이물질에 의해 접촉되어진 살갗의 베어짐을 다루었다면, '칠석의 나라'는 살갗이 초능력과 같은 비접촉을 통한 다른 세계로 옮겨짊을 통해 사지의 절단을 표현한다. '기생수'는 바로 그 이물질인 칼날을 살갗으로 옮기기 위한 동작들이 늘어남으로써 박진감 넘치는 액션씬이 많은 반면, '칠석의 나라'는 단지 손동작에 의해 그러한 과정의 생략을 통해 상당히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물론 Hitoshi Iwaaki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살의 절단의 고통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목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두 만화는 성장에 관한 만화이다. '기생수'가 피끓는 사춘시 시절의 한 소년이 어떻게 내부속에 자아를 만들어가는가에 관한 질문의 작가 나름의 답변이었다면, '칠석의 나라'는 그러한(과정이 꼭 아니라도 다른 경로의) 성장을 통해 내부속의 자아를 이루어낸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이번엔 어떻게 외부와의 소통을 이루어나가면서 외부속의 자아를 이루어내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인 것이다. 두 작품을 별개로 이야기해나가면서 풀어가기로 한다. '기생수' - 사춘기, 사춘기. 아주 우연하게 오른손에 자리잡은 '오른손이'와의 만남을 통해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는 자신에 관한 질문을 접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인간'이라고 규정하면서 인간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들에 집착한다. '오른손이'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그의 생각의 한 입장을 대변한다. 객관적인 입장이 바로 그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인간만 잡아먹는 기생수가 여러 종의 생명체들을 맛으로 잡아먹는 인간에 비해 죄가 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단지,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기생수들에 대해서 발끈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이 이즈미 신이치가 인간이라는 이유일까? <a href=" "><img src=" " width="186" height="140" alt="* 2 : 컬트씬. *" align="left" hspace="10" vspace="10" border="0"></a>가장 최소한의 단위인, 그래서 개인의 범주에 들어갈, 가족에 대해서도 이즈미 신이치는 고민을 겪게 된다. 신이치라는 존재를 의존적이게 하는 상징적인 요소인 어머니라는 존재가 이계의 기생수에 의해 제거되어짐으로써, 즉, 어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닌, 이제는 혼자 살아야 하며, 새로운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사토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이치는 오직 유일한 독립적인 존재로서 성장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강해졌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칠석의 나라' - 사회 준비생. 마루카미 일족의 후손인 대학 4년생 남마루(미나미마루 요지). 역시 같은 일족인 마루카미 교수의 초대에 응하게 되고, 수수께끼 투성이인 마루카미 고을로 가게된다. 일족의 후손임을 알 수 있는 증거는 구멍을 뚫어내는 초능력. 그리고 남마루의 이러한 능력으로 인해 '신기능 개척 연구회'라는 동아리까지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설정 속에서 남마루가 겪게되는 고민거리들은 무엇일까?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이, 오직 눈꼽만한(그것보다는 조금 더 큰) 구멍 뚫기의 능력만으로 동아리 활동만 하다가 졸업을 눈앞에 둔 남마루. 같은 동아리의 후배인 아사노의 현실적인 비판앞에서 그는 무력하기만 하다. 취직도 불투명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계속할 작정도 아닌 것이다. 기생수에 비해 이 작품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남마루에 대한 미래상에 관한 비전 제시부분이다. 사치코라는 또 다른 주인공을 통해, 즉 현실이 아닌 다른 이계로 도피하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상담을 해주는 방식으로 남마루는 자신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한다. 외부인에 자신의 갈 길 없음의 딜레마를 비추어 풀어가는 형식이다. "세상일들을 TV로 대충보고 아는체 하지마! 그런거 다 가짜라구!"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의 백배, 천배는 더 넓다구!" "그에 비하면 무서운 꿈도, 보이지 않는 사슬도, 요란한 초능력도 작은 거야! 겨우 일부라구! 그런 것에다 왜 목숨을 맡겨!" <a href=" "><img src=" " width="181" height="140" alt="* 2 : 컬트씬. *" align="left" hspace="10" vspace="10" border="0"></a> 마치며. 이번엔 좀 짧았네요.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은건 다 했는데, 어떠셨는지요? Hitoshi Iwaaki의 작품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열광..하죠.) 특히 제멋대로 판단해버린 그 하드코어적인 성장에 관한 고찰은 정말 독특함, 그 자체죠.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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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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