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생애

1 생애[ | ]

1.1 학력[ | ]

1.2 유년기 및 청소년기[ | ]

1971년 2월 27일, 아버지 최국현과 어머니 정옥숙 사이에서 태어났고 2살 위로 누나가 있다. 서울특별시 은평구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며, 누나는 배우 최진실이다. 배우 최재성과는 6촌 관계이고 최재성의 아버지이자 최국현의 사촌 형인 최상현은 연극 배우 출신의 KBS 드라마 연출가였다. 경복고등학교 재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최국현은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경찰 공무원이었던 최진영의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배우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최상현이 최국현을 돕기 위해 삼촌을 설득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2][3]

누나 위로 이복형제가 두 명 있다. 창작과 그림에 소질이 있던 미용사 정옥숙은 1968년 9월 28일 9살 연상이자 택시 운전사 최국현과 결혼하였고 최국현에게 따로 자식이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결혼 후에 알게 되었다.[4] 최진영이 태어나던 해에 최국현이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앓아눕게 되고 그러면서 소유하던 택시를 팔 정도로 가산이 급격히 기울게 되었다. 건강 회복 후 최국현이 중동에 노동자로 나가 있는 기간에 부쳐오는 돈으로 정옥숙이 집도 장만하고 경제적으로 잠시 안정되었는데 중동에서 돌아온 최국현이 노름과 사업에 빠지면서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최진실은 편애하고 최진영은 학대하던 최국현은 최진영이 중학교 3학년 때인 1985년에 가출하였고 13년 후인 1998년 10월에 정옥숙은 최국현과 이혼했다. 정옥숙은 자녀 돌봄 노동을 전담하다가 최진실과 최진영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비혼자로 복귀한 것이었다. 이는 정상 가족 신화가 팽배한 사회에서 부모들이 흔히 보이는 태도여서 정옥숙만의 특별한 모습은 아니었다. 최진실과 최진영은 정옥숙의 기여에 대해 충분히 보상했다. 최진영은 최국현의 정조 의무 위반, 폭력, 아동학대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신이 혹시 최국현을 따라할 수 있어 경각심을 갖고 살고자 비혼자, 무자녀자 포지션을 견지했다.[3][5]

돈을 벌면 그 돈 들고 정기적으로 단기 가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여자 하나 달고 나타나던 최국현이 1985년에는 완전히 가출해버리자 정옥숙은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되었다. 경제공동체를 재결성하게 된 정옥숙은 화장품 외판원, 포장마차 운영을 하게 되고 고등학교 2학년이던 최진실도 햄버거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안정된 잠자리도 확보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중학교 3학년이던 최진영도 노숙을 전전하다 잠시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이 때 쇠를 깎는 기계에 다리를 다치기도 하였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6촌 형 최재성의 도움으로 광고 모델이 되었고 이 일을 하며 정옥숙이나 최진실보다 수입이 괜찮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모델 일에 성실하게 임하게 되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최진실의 연예계 입문에도 좋은 조언자가 되어 주는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잠시 노숙하던 시기에 주머니에 얼마간 돈이 있어 빵을 사서 먹고 있는데 주변 노숙인들이 자신을 부럽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래도 살만하구나라고 느꼈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6][7][4]

최진영은 어린시절부터 기타 연주 습득에 열정을 보이는 등 음악에 흥미가 있었고 노래에 소질이 있었으며 가수 조용필을 동경하였고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을 즐겼는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4] 최진영은 1992년MBC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조용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최진영은 배우로서 무대에서 노래 한 곡을 하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조용필이 최진영에게 "너 노래할 생각 없니? 네가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내가 제작을 하겠다"라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8][9]

최진실이 노래는 잘 못하고 그림을 잘 그린 반면 최진영은 그림은 잘 못그리고 노래를 잘했다. 그래서 숙제로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최진영은 최진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최진실은 최진영의 노래를 듣는 것을 즐겼다. 최진영은 최진실의 그림 실력을 부러워했고 최진실은 최진영의 노래 실력을 부러워했다. 최진영은 시험 기간에 놀 것은 다 놀면서도 성적이 좋아 시험 준비하느라 바쁜 최진실은 최진영의 머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최진실은 최국현이 자신은 편애하면서 최진영은 괴롭힌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최진영이 머리가 좋은 것은 최국현의 악랄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보니 그렇게 된 면이 있다고 의미를 짚기도 했다. 최진실은 학교에서 빵을 받으면 반쪽은 꼭 집으로 가져와 최진영에게 먹이곤 했다. 최진영은 1988년 최진실의 프로필 사진도 찍어주고 그 사진들로 모델 에이전시에 홍보도 다니며 최진실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진영은 최진실과 연기를 하며 잘 놀았다. 그렇게 평소에 연습해둔 것을 명절 때 친척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곤 했다. 최진영이 중학생일 때 최재성은 KBS 1TV고교생 일기》에 출연하고 있었다. 최진영과 최진실은 서로에게 좋은 연기 파트너였고 이에 둘은 1986년 KBS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6개월 과정의 연수비 38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그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진영은 결국 4년 후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최진영과 최진실은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면서 일생동안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4]

1.3 청년기 이후[ | ]

1.3.1 활동 개요[ | ]

  •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광고 모델로 활동하였다. 주로 교복 모델을 했다.[10]
  • 1989년 - 뮤지컬에 출연하였다.[11]
  • 1990년 - 최진실의 영화 《남부군》 고사 현장에 따라갔다가 영화제작자 이춘연의 눈에 띄어 영화 배우로 데뷔하였는데,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12]
  • 1991년 -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는 1980년대 교복 자율화 세대를 다룬 하이틴 영화인데, 최진영과 최진실이 친구로 함께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12월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진실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인기 스타상을 수상했으며, 최진영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신인 남우상을 받아 이들은 최초의 남매 수상자가 되었다.
  • 1992년 - 3월에 KBS92 고래사냥》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TV 드라마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혔다.[13]
  • 1993년 - 경원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MBC우리들의 천국》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청춘스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 1994년 - 육군에 입대하였다.[14][15] 군 복무 기간 동안 총 21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16]
  • 1995년 - 군 홍보 영화 《멀고 먼 해후》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한국 전쟁 특집극으로 텔레비전에서 방영하였다.
  • 1996년 - 군 홍보 영화 《젊음의 문을 열고》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군 제대 후 2월에 SBS도시남녀》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11월에 KBS아내가 있는 풍경》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12월에 MBC사랑한다면》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영화 《깡패 수업》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 1997년 - 9월에 MBC방울이》에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 1998년 - 영화 《러브 러브》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 1999년 - 'SKY'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데뷔하였다. 11월에 1집 앨범 《Final Fantasy》를 발매하였다. 가수 데뷔시 '영원' 뮤직비디오가 먼저 공개되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 배우 장동건·차인표·김규리 등의 화려한 출연진과 한 편의 영화같은 영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러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그 주인공이 배우 최진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7] 가수 조장혁이 '영원'의 디렉팅을 맡았다.[18]
  • 2000년 - SBS 가요대전에서 부문에서 수상하고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에서 신인가수상을 탔다. 1집 앨범 수록곡인 '반전(反轉)'은 영화 《아나키스트》(2000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져 선보이기도 하였다.[19] 7월에 최진실과 롯데칠성의 미과즙 음료 '2% 부족할 때' 광고에 함께 출연했다.[20]
  • 2001년 - 3월에 납치될 뻔한 사건을 겪었다.[21] 11월에 2집 앨범 《영원 Ⅱ》를 발매하였다.
  • 2002년 - 1월에 최진실과 함께 토크 쇼 KBS 《서세원 쇼》에 출연하였다.[22]
  • 2004년 - 9월에 3집 앨범 《Sky The 3rd》를 발매하였다. 3집 앨범 수록곡인 '백야'는 배우 권상우가 메인 모델인 화장품 광고에 삽입되기도 하였다.[23]
  • 2005년 - <아이기스엔터테인먼트>의 기획이사가 되었다.
  • 2006년 - 7월에 '백혈병 어린이 돕기 자선 패션쇼'에 동참하였다. 이 행사는 '모델라인 발전위원회', 모델협회 자선단체 '사랑의 손길', 슈퍼모델 봉사단체 '아름회', 디자이너 '김삼숙'이 연대하여 마련한 행사였다.[24] 12월에 최진실과 함께 여성의식캠페인 사진전에 참여했다. 이 사진전은 출산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담아낸 특별한 사진전으로, '여성'을 주제로 다양한 캠페인을 열고 있는 세정의 여성의식캠페인 오프닝 행사였다. 이 사진전에는 최진실·최진영 남매 외에도 다수의 유명인이 참여했다. 이 여성의식캠페인은 대통령직속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홀트아동복지회, 아름다운가게 등이 동참한 행사였다.[25][26]
  • 2007년 - KBS사랑해도 괜찮아》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 2008년 - 11월에 조장혁의 6집 타이틀곡 '희재(熹渽)'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였다.[27] 연탄배달, 재난지역복구활동 등 자선활동에 참여하였다.[28][29]
  • 2009년 - 한양대학교 예술학부 연극학과에 입학하였다.[30] 6월에 한양대학교 교수 최형인이 연출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출연하면서 연극 무대에 섰다.[17] 대학생으로서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31][32]
  • 2010년 - 2월에 <엠크라우드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었다. 3월에 <엠크라우드엔터테인먼트>와 기자단의 간담회가 열렸고, 최진영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여 연예계 활동과 관련하여 향후 계획을 밝혔다.[17][33][34][35]

1.4 사망[ | ]

최진영은 누나 최진실의 생전에도 누나를 도와 조카들의 양육에 힘을 썼고[36][37], 최진실의 사후에도[38][39] 어머니와 함께 최진실의 두 자녀를 양육했다[40][41][42].

2009년 5월 28일에 대법관 박시환은 폭행과 여론조작 피해자 최진실한테 손해배상청구를 한 소송의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던 2심에 대해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2010년 2월 9일이대경은 박시환의 판결 내용을 반영하여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인권단체는 박시환이 최환희, 최준희를 공격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폭행범이자 여론조작범 손을 들어준 셈이 된 이 판결이 있은 후 48일째가 되는 날인 2010년 3월 29일 최진영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43] 직접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이고[44], 유족들의 요구로 부검은 하지 않았다.[45][46][47]

2010년 3월 31일 발인식을 갖고 한양대학교 노제를 거쳐[48][49] 경기도 성남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되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 있는 갑산공원 내 최진실 곁 가묘(假墓)에 안장되었다.[50] 최진영의 영정 사진은 배우이자 사진작가인 조민기의 작품으로, 연극 《한여름 밤의 꿈》(2009년)의 홍보용 사진이었다.[51]

2010년 4월 2일 갑산공원에서 최진영의 삼우제가 있었다.[52] 2010년 5월 16일 갑산공원에서 최진영의 사십구재가 있었다.[53]

2010년 7월 6일 사후 100일째 되는 날을 맞아 정식묘에 재안장되었다. 가묘로 안장된 곳에서 2m 가량 자리를 옮겨서 최진실 곁에 좀 더 가까이 위치하도록 조치되었다. 각자의 비석에 새겨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구도로 배치되었다. 납골묘 상단에 얹어진 최진영의 비석에는 "나 언제라도 저 하늘이 날 부를 때 한없이 사랑했던 추억만은 가져갈게"라는 최진영의 가수 데뷔곡 ‘영원’의 가사와 악보도 새겨졌다.[54][55]

1.4.1 추모[ | ]

2010년 3월 29일 최진영의 미니홈피에 100만여 명의 네티즌들이 방문하였고, 많은 이들이 방명록에 추모글을 남겼다. 트위터에는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온라인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어 네티즌의 온라인 추모가 이뤄졌다. 최진영은 20여 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게 허위사실 유포를 겪었는데, 누나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악성 루머와 악성 댓글 등에 시달렸다.[56][57][58][59][60][61] 그 일에 대해 뒤늦은 사과의 글을 올리는 네티즌도 있었다.[62][63][64][65]

최진영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친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최진영을 회상하였고,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김태원은 최진영에게 '백야'라는 곡을 주었던 인연이 있었다.[66][67]

2010년 3월 30일 Mnet와이드 연예뉴스》가 최진영을 추모하기 위해 <최진영 히스토리>편을 방송했다.[68]

2010년 4월 1일 가수이자 사진작가인 빽가(본명 백성현)는 최진영의 미공개 사진 18장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공개하며 최진영을 추모했다.[69]

  1. 이지현. 누나 상 중인 최진영, 눈물의 대학 '합격' 소식. 노컷뉴스. 2008년 11월 3일.
  2. 6촌 오누이인 최재성 최진실. 동아일보. 1994년 2월 5일.
  3. 3.0 3.1 김민주. 故최진실 알려지지 않은 친아버지 최국현씨 단독 인터뷰. 레이디경향. 2008년 11월호.
  4. 4.0 4.1 4.2 4.3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정옥숙, 웅진윙스, 2011년) 참고.
  5. 김연지. 故최진실 남매 부친 "내가 애들 죽을 이름을 지어줬나 봐". 중앙일보. 2010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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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오미정. 비극으로 막내린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드라마같은 삶. 노컷뉴스. 2010년 3월 29일.
  8. 이현우. 최진영 "조용필 선배 제안으로 가수 데뷔". 뉴스엔. 2008년 7월 24일.
  9. 안효은. 최진영 "데뷔곡 '영원', 김정민한테 뺏었다". 마이데일리. 2008년 7월 24일.
  10. 1990년 6월 TV CF 모음
  11. 김민주. 누나 잃은 슬픔 극복하고 연극으로 복귀하는 최진영. 레이디경향. 2009년 7월호.
  12. 김성훈. 잘가요, 피터팬. 씨네21. 2010년 4월 5일.
  13. 92 고래사냥 최진영 태권도 킥복싱 즐겨. 경향신문. 1992년 3월 26일.
  14. 1994년 2월 28일 306 보충대에 입소하였고 이후 5사단 훈련소를 거쳐 5포병여단으로 자대배치되었다.
  15. 오미정. '민방위' 최진영 · '예비군' 정민, 군대 얘기로 웃음꽃. 노컷뉴스. 2007년 5월 15일.
  16. 박세연. 최진영 "군장성들 앞에서 베드신 찍느라 진땀". 뉴스엔. 2008년 8월 22일.
  17. 17.0 17.1 17.2 문미영. 최진영, 배우로 가수로 산 21년의 세월. 스포츠한국. 2010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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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홍석민. 2% 부족, 시장 90% 석권‥성공 비결은. 동아일보. 200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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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카렌듈라 퍼밍 에센스[(과거 내용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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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이은지. 김정민-최진영-최현우 소속, 엠클라우드 기자간담회 개최!. 티브이데일리. 2010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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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고 최진실씨 동생 탤런트 최진영 씨 숨져. YTN. 2010년 3월 29일.
  44. 나지연·서보현. "누나, 상처, 부담, 자살"…故 최진영, 스스로 마감한 39년 (종합). 스포츠서울닷컴(매일경제에서 기사 출고). 2010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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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봉준영. 故 최진영 한양대 노제, "당신은 우상이었습니다". OSEN. 2010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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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이다정. 故 최진영 영정사진, 알고보니 조민기가 찍은 최진영 컴백작 모습. 스포츠조선. 2010년 4월 15일.
  52. 박세연. 故최진영 삼우제, 유족-동료 참석..가족묘 변화할듯. 뉴스엔. 2010년 4월 2일.
  53. 남혜연. 故 최진영 49재에 두 조카 환희-준희 참석. 서울신문. 2010년 5월 16일.
  54. 차연. 故 최진영, 사후 100일 만에 누나 최진실 옆 안장. 노컷뉴스. 2010년 7월 6일.
  55. 오대일. 데뷔곡 "영원" 새겨진 최진영 묘비. 노컷뉴스. 2010년 7월 6일.
  56. 주진우. 전쟁 같은 삶 살다 간 ‘시대의 아이콘’ . 시사인. 2008년 10월 7일(56호).
  57. 김은구. 최진영 “원만한 해결 위해 최선 다할 터”. 뉴스엔. 2006년 6월 9일.
  58. 박종환. '뺑소니 혐의' 탤런트 최진영씨, 벌금 5백만원 약식기소. 노컷뉴스. 2006년 9월 28일.
  59. 오미정. 최진영, 누나 최진실 편들다 드라마 제작진과 다툼. 노컷뉴스. 2007년 9월 18일.
  60. 이현아. 최진실 동생 최진영 커플 축하. 스포츠한국. 2007년 11월 22일.
  61. 이민지. '휴먼다큐 사랑' PD "故최진실 자녀 4년만 출연, 재섭외 이유는..". 뉴스엔. 2015년 4월 29일.
  62. 신민섭. 조성민 최진영 합의에도 풀리지 않는 것들. 3M흥업. 2008년 12월 8일.
  63. 김성한. 네티즌, 최진영에 뒤늦은 사과 "우리가 당신을 죽였다". 스포츠한국. 2010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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