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냥족과 웰빙족의 공존

1 # 천냥족-웰빙족 공존 시대 “돈 좀 있으면 웰빙 원해”[ | ]

"1천원짜리 값싼 상품과 고가의 웰빙상품이 동시에 잘 팔리는 모순된 현상이 요즘 나타나고 있다. "

글 김문영 자유기고가 (mailto:mykim@empas.com)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 위축된 소비심리 덕에 저렴함을 최대의 무기로 내세운 ‘천냥’ 쇼핑몰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까지 진출한 천냥쇼핑몰들은 오랜 불경기가 오히려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여느 때보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천원짜리 물건과 값비싼 웰빙상품이 함께 잘 팔리는 모순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천원의 재발견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 30대 직장인들이 지난해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문제는 ‘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랫동안 무할인 정책을 고수해 오던 해외 유명 패션브랜드들이 세일과 판촉이벤트를 검토하고 시행할 정도니 소비심리 위축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돈 1천원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사실 1천원은 그 동안 설움 아닌 설움을 받아왔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1천원짜리 지폐 한 장 넣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빠진 경기와 가벼워진 주머니, 여유를 찾기 힘든 마음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

하지만 1천원짜리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면 그것도 쉽지 않다. 껌값은 이미 무시 못할 정도로 올랐고 일반버스 왕복요금도 1천원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단가로 치자면 담배 한 개비가 1백원씩 하는 세상이 됐고 1천원으로는 길거리 떡볶이 한 접시도 사먹기 힘들다.

그런데 최근의 소비 트렌드는 1천원의 효용가치를 다시금 주목하게 만든다. IMF 시절 크게 늘어났던 천냥하우스가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천냥하우스는 각종 생활용품을 균일가 1천원에 파는 상점으로 사람들 왕래가 많은 거리 상점가에서는 꼭 한두 군데씩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오프라인 천냥하우스 컨셉트를 그대로 가져온 천냥쇼핑몰들이 성업중이다. 이들 쇼핑몰에서는 각종 생활용품, 주방용품, 문구용품 등을 1천원에 판다. 1천원에서 10원을 뺀 9백90원 균일가 쇼핑몰도 있고 20∼30원을 에누리해 파는 쇼핑몰도 생겼다. 1천원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인 셈이다.

원래 천냥쇼핑은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끈 아이템이다. 일본도 지속된 경제불황으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정가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가격파괴와 할인이 난무했다.

그 와중에 등장한 1백엔 쇼핑몰은 실용성 지향의 일본인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1백엔 쇼핑몰 대표주자인 다이소산업은 전국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1백엔숍 다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1백엔숍과 같은 형태로 만든 한국의 천냥하우스는, 그러나 일본만큼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IMF 시절 전국적으로 천냥하우스들이 크게 늘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매출 규모나 소비 패턴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1천원짜리 상품들을 모아 파는 상점에 흥미를 보였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상품을 사는 것은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1백엔숍 붐을 일으킨 다이소의 성공비밀은 1백엔짜리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는 데 있다. 다이소는 1백엔만큼의 가치를 가진 상품을 모아 1백엔에 판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값나가는 상품을 1백엔이라는 균일가에 판매했다. 수백엔 내지 1천엔 이상에 해당하는 상품을 1백엔에 공급했다.

한 가지 상품을 대량 제작해 단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전략이다. 1백엔숍은 워낙 물가가 비싼 일본시장에서 조심스러워진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도 일본 1백엔숍 같은 형태의 천냥하우스가 생겼지만 일본의 경우와 개념이 달랐다. 국내 천냥하우스는 1천원 이상 가치있는 상품을 저렴하게 팔기보다는 1천원 수준의 상품을 한데 모아 판다는 느낌이 강했다.

게다가 1천원짜리 상품은 미끼일 뿐 막상 상점 안에서 파는 물건들은 시장이나 대형 할인점에서 저렴하게 파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을 1천원에 살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소비자들은 그러한 형태의 상점에 한 번 발을 들여놓기는 해도 지속적으로 찾지는 않았다.

1천원짜리 상품의 가치

몇몇 인터넷 천냥쇼핑몰도 이전까지의 오프라인 천냥하우스와 사정은 비슷하다. 상품 종류는 수백 종에 달하고 카테고리도 다양하지만 막상 사고 싶은 상품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천냥쇼핑몰에서 파는 상당수 상품들은 지하철이나 거리의 행상들이 중소기업의 자금확보를 이유로 특가에 판다는 상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배송비라는 장애요소도 있다. 배송비를 내지 않으려면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해야 한다.

인터넷 천냥쇼핑몰을 이용하는 네티즌의 중요한 성향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에 의해 상품을 구매한다는 점이다.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인터넷쇼핑몰은 소비자들에게 구매를 부추긴다. 사람들은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아이쇼핑을 즐긴다.

필요한 물건이 없더라도 쇼핑몰에 들러 어떤 예쁜 옷이 나와 있는지, 세일하는 브랜드는 뭐가 있는지를 살핀다. 쇼핑몰의 메인 페이지에는 항상 특가할인이나 기획전 같은 형태의 이벤트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50∼70% 할인’이라는 광고나 그럴 듯한 사진과 제품설명들을 보고 있으면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구매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천냥쇼핑몰에는 딱히 충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미끼가 없다. 천냥쇼핑몰들도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종합쇼핑몰들이 내거는 요란한 이벤트에 익숙해진 네티즌들에게 소소한 이벤트가 큰 유인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사고 싶은 물건도 많지 않다. 결국 천냥쇼핑몰이 살 길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아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뿐이다. 자취생활을 시작한 학생이라면 주방용품이며 욕실용품, 청소용품 등을 살 만하다.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소소한 사무용품 일체를 천냥쇼핑몰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사고자 하는 물건, 쇼핑의 목적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천냥쇼핑몰은 큰 이점을 제공한다.

2003년 한국 사회는 명품 열풍을 겪었다. 강남, 압구정 등을 중심으로 고가의 해외 유명 브랜드 상품을 대여해 주는 명품 대여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패션 브랜드에만 명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전, 휴대폰은 물론이고 심지어 휴대폰 벨소리나 배경화면에도 명품 딱지가 붙었다.

잘 먹고 잘 살기

명품 트렌드와 함께 떠오른 소비 트렌드는 ‘웰빙(Well Being)’ 즉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웰빙족이 추구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웰빙 상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공기청정기, 연수기, 항균침대, 무공해 식품 등 자연친화적인 건강제품들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인체 건강과 별 상관 없이 만들어진 제품들에 비해 웰빙상품들은 비싸다. 보통 상추보다 무공해 상추가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웰빙족들은 비싼 상품들을 찾고 구매한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종합쇼핑몰들은 웰빙 기획전을 열고 있다. 물론 웰빙 열풍이 자연스러운 문화 흐름인가, 상술에 의해 초래된 현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많다.

웰빙 열풍과 천냥하우스의 호황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천냥하우스를 찾는 사람과 웰빙 상품을 찾는 사람은 다른 사람일까. 보통 상품보다 값비싼 것을 흔쾌히 구매한다는 점에서 웰빙족은 명품족에 가까운 듯 보인다.

그러나 명품 트렌드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 반해 웰빙은 정신과 신체, 자연과 문화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천냥쇼핑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상품을 구매한다. 품질을 엄격히 따질 필요가 없거나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문제되지 않는 상품들, 소모성 제품들은 최대한 저렴하게 구하는 길을 택한다.

불황이라고 해서 모두 돈을 꽁꽁 숨겨놓는 것은 아니다. 천냥하우스와 웰빙 붐은 언뜻 상반되고 모순돼 보이지만 삶의 질, 물질의 가치, 돈의 가치를 좀더 신중히 생각하게 된 트렌드를 반영한다.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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