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대화하기

책과 대화하기[ | ]

현대를 일러 흔히 ‘정보화 시대’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세상은 온통 정보로 넘쳐납니다. 텔레비전, 인터넷, 거리 빌딩의 전광화면, 손 안의 PCS 등 정보를 쏟아내는 매체도 갖가지입니다.

정보는 이제 우리가 가만있어도 눈과 귀에 스며들어올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일방 통행하는 정보의 숲 어디쯤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인지… 소슬한 가을바람 속을 거닐며 문득 생각해 봅니다. 사방에서 던져지는 정보만 대충 챙겨도 무식은 면할 수 있게 된 세상이 우리를 얼마나 안일하게 하는지.

누구는 말합니다. 보름은 걸어야 도달하던 한양 천 리 길을 반나절도 안 걸려 주파하게 됐다고. 우리가 서른 배쯤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그만큼 행복해졌느냐고. 그것은 우리가 무시했던 ‘구태의연’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속도를 얻는 대신 산천경계(山川境界)를 누리고 시를 읊던 여유와 감성을 잃었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첨단매체와 책의 관계도 그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놀랍게도 과거보다 수십 배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수십 배 현명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쉽게 얻는 지식은 양식으로 축적되지 않는가 봅니다. 아름다운 고갯길을 차를 타고 지나서는 운치를 제대로 느낄 수 없듯 말입니다.

인터넷이 폭증하던 몇 해 전, 종이책이 곧 사라지고 말 거라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아무래도 섣부른 폭언으로 굳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훌륭히 지켜내고 있으니까요.

읽고 싶던 책을 사서 첫 장을 열었을 때, 그 살폿한 종이 냄새부터가 유리질의 컴퓨터 화면과는 맛이 다릅니다. 한 줄 한 줄 활자가 전하는 감명은 또 어떻습니까? 그에 비하면 인터넷의 속도와 화려한 텔레비전 영상은 차라리 무례한 유혹에 가깝습니다.

독서에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쏟아넣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학창 시절, 밤새워 책을 읽다 훤히 밝아 오는 새벽창을 느꼈을 때의 뿌듯한 희열을. PC방에서의 밤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명감이 거기 있었습니다.

어느 작가는 말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애인에게 시를 외워 주지 않는 것 같다” 라고. 독서에 태만하고, 그 간극만큼 무뎌지고 얕아진 인성을 질타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식과 정보로 무장된 사람만이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이 가을, 책상 위에 설레임으로 펼쳐 볼 당신의 책이 놓여 있기를…. 진정 나를 지혜롭게 하고 주변을 따듯하게 하는 사람은 책을 잡는 여유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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