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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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지식의 지도[편집]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 같다. 아마도 책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을 것 같다. 즉 책에 대한 책, 책읽기에 대한 책이라는 일종의 메타 책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는 얘기이다. 다른 동기로는 이런 자아성찰 외에도 자기도취라는 면이 분명히 있어보인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ぼくはこんな本を読んできた, 立花隆, 1995)와 같은 자신감 가득한 제목의 책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지적 성취를 공유하고자 하는, 더 나아가 자신을 어떤 형태로든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지적허영은 다른 물질적 허영이나 권력지향적인 모습들에 비하면 나름대로 바람직하다. 부자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십상이지만 지적인 사람은 괴롭힐만한 대상이 그리 많지 않다. 허투르게 과시하려다간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이 메타 책이라는 것은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타입이 있다. 하나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책을 정리한 책이다. 먼저 책에 관한 이야기로서의 책을 보자. 이런 책은 책의 역사, 책을 만드는 방법, 책이 문화에 끼친 영향,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다가 생긴 에피소드 등등에 대한 것들이 적혀있다. 말하자면 대부분 '이야기 소재'로서의 책이고, 매체로서의 책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책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책에 관한 책으로서 정말 종류가 많은 것은 바로 책읽기를 도와주는 지식도우미로서의 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독서감상문 모음이다. 이러한 책들은 먼저 읽은 선배가 이제 곧 읽을 후배들에게 부연설명을 해주거나 자신의 의견을 다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책의 편집 방침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주로 교양서적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하거나 한 개인의 서평모음집과 같은 형태를 띤다.

개인의 서평모음집이라는 것은 소위 도서평론가(reviewer)들이 적은 서평들을 모은 것들이 주된 것이지만 이런 것들이 과연 묶일만한 것인가라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 도서평론가가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안에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있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겠다. '장정일의 독서일기'(1995~)의 경우 장정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분명 좋아할만한 책일 것이고 문화집단 퍼슨웹에서 만든 '대담한 책읽기'(2004)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책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담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소 색다른 기획의 책이다.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燕巖集)에는 박지원이 다른 북학파 동지들의 책들에 적어준 서문을 모아둔 편(2008년 현재 '나는 껄껄선생이라오'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있다)이 있고 반대로 김석희의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1997)처럼 역자 후기만을 묶어서 책을 낸 특이한 경우도 있다. 그러고보면 이 서평모음집이라는 것도 간단치는 않다. 개인 취향에 맞춰 읽으시라. (참고로 연암집은 박지원이 편집한 것이 아니니, 박지원에게 서문을 모아서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나 하는 오해는 하면 안된다. 연암집은 골수 친일파인 박영철이 간행했다.)

좀 더 정치적인 것은 '교양'이다. 교양이라는 것은 규정하기도 모호할 뿐 아니라 교양을 모를 경우 '교양없는 자'가 되기 때문에 꽤나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교양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개인의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어떤 메타 책들은 교양을 규정하곤 하여 읽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런 규정을 위해 만들어지곤 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대학별 권장도서 모음집이나 해제집이다. 권장도서 해제집(서울대), 연세필독도서(연세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서강대) 등 많은 학교에서 자신들의 교양서적을 규정하여 설명을 붙인 책을 내놓는다. 한국인들의 서울대병 때문에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은 출판 마케팅에서 꽤 영향력있는 키워드로 행세하고 있다. 이런 브랜드를 이용하여 교양을 강요하는 제목의 책으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교양'(2005)이라는 시리즈까지 있으니 교양이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이란 은근히 강하다.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교양이다. 각 분야에서 천재들이 거시적인 것을 규정해나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하고 그것을 위해 개인은 더욱 자신의 분야만을 파고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자기분야 외에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편협한 시야를 벗어나 자신과 사회 전반에 걸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면 교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논술열풍이 가세하여 지금 서점가에는 교양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넘쳐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논술열풍 때문에 교양이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교양론이 가졌던 문제라고 하면 교양은 어떤 것인가를 규정하기보다는 교양은 무엇인가를 규정하려 했다는 점을 꼽고싶다. 대개의 교양론은 교양을 규정해놓고 그것들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달아왔다. 그러한 주입식 교양론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그것에는 '내가' 빠져있다. 나와 공감할 수 있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교양이다. 나를 감복시킬 수 없는 지식이라면 그것은 교양도 무엇도 아니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데 그것이 무슨 교양이겠는가. 그렇다면 교양을 나열하는 것 보다는 교양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식의 지도'를 제공하고 그 지식의 지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양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교양은 또 다른 교양으로 이어지며 이렇게 자연스러운 교양의 흐름을 따라갈 때 나는 어느새 교양인이 되는 것이다.

'지식의 지도'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교과서와 백과사전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 교과서라는 것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책이 교과서라고 생각했건만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교과서만큼 잘 정리된 책도 참 드물다. 언젠가 고등학교 윤리교과서를 보고 감동한 기억이 난다. 동서고금의 윤리와 철학이 한권의 도덕 교과서에 착실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 안에 요체가 있건 없건 간에 그정도의 정리만으로도 굉장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나중에 참고용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익혀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교과서가 싫었던 것은 그것을 짧은 시간 내에 외워야 했고 그것으로 시험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자발적으로 읽을 수 있는 지금은 교과서는 참으로 교과서적인 책이구나 하는 여유로운 생각마저 할 수 있다. 당신이 교과서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그리고 졸업하면서 깔끔하게 소각하지 않았다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양의 지도는 단연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이다. 어차피 다 외웠을리가 없을 것이므로 어디를 펴더라도 새로울 것이다.

백과사전은 당대 지식의 표준이며 방대한 분량의 지식을 보편적인 시각과 균형잡힌 감각으로 편집한 지식 창고이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담고 있으며 내가 찾고자하는 것이라면 대충이라도 적혀있는 공간이다. 항목별로 씌여있으므로 교과서를 보면서 뭔가 새로운 개념이나 단어가 나왔을 때 찾아보면 충분히 좋은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요즈음에는 고전적 스타일의 백과사전 뿐 아니라 검색엔진, 더 나아가 인터넷 자체가 거대한 백과사전이 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탓에 무엇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가 어지럽고, 그다지 쉽게 씌여있지는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얼마전에 누군가 여유있는 사람 하나가 브리태니커 백과를 다 읽고 그 여정을 적은 책('한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도 하나 나왔다. 나도 한가롭게 백과사전을 완독하고 싶다.

사실 교과서(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좋고 일반인을 위한 교과서도 좋고)를 읽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선택하기 좋은 교양 습득 방식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사실 교과서와 백과사전을 만든 이유도 교양 교육을 위한 것이니 이것이 최적화된 학습방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당신이 조금이라도 지식에 대한 욕심을 부린다면 백과사전과 교과서는 금새 밑천을 드러낸다. 교과서와 백과사전은 자기 영역 내의 '모든 것'을 다루려들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일을 넓게 벌리면 집중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집단에 당신이 놓였을 때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 친해지려 하지만 그것은 누가 친한지 탐색하는 시간일 뿐이고 사실 정말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며 이것은 교양 습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 시점에 본격적인 '지식의 지도'가 필요해진다. 책이라는 교양의 덩어리는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무작정 덤벼들면 그 덩어리에 우리는 묻혀버리고 만다. 어떠한 길로 가야 그 산을 즐길 수 있을까.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좋고 적당한 위치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알려주는 노하우라고 해도 좋고, 선사가 제자에게 내리치는 죽비라고 해도 좋다. 누군가 먼저 간 길이 있다면 다른 험한 숲보다는 그 길로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 누구나 원하는 것일게다. 굳이 정글로 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빼고.

지식의 지도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래의 몇가지 요소를 제안하고 싶다.

  1. 항목 : 주제를 결정한다. 이 주제는 10가지 정도의 이정표(추천책?)를 가져야 한다. '마르크스 주의'는 너무 넓은 주제이므로 '해방정국과 마르크스 주의' 정도로 범위를 적당히 끊어야 한다.
  2. 초록 : 최소한 이것이 무엇이다라는 것은 짧게나마 적어주어야 한다. 자세한 설명은 백과사전에 맡기자.
  3. 입문(서) : 아주 생초보에게도 유용해야 한다. 중학생 정도의 수준? 꼭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반도 도움이 된다.
  4. 기본(서) :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해주면서도 해설서는 가능하면 지양하고 원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어가 아닌 책을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하니 자제하라. 어떤 번역본이 좋을 것인지 추천해주면 더욱 좋다.
  5. 심화 : 더 읽어야 할 것을 적는다. 영어나 일본어 문서도 좋고 논문 형식도 괜찮다.
  6. 참조 : 관련된 항목들을 제시한다.

결국 지식의 지도는 백과사전의 한 형태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단 설명울 위한 백과사전이 아닌 가이드로서의 백과사전이 될 것이다.

가끔 직장을 구하는 어린 친구들이나 아니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주변인들에게 상담을 해주곤 한다. 순전히 내가 상담해주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저 약간의 경험 정도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항상 필요한 것은 인생의 멘토이고 동네의 촌로와 같은 현명한 선배인 것이다. 지식의 지도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 독서지도 교사 노릇을 해줄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읽었다면 그 시점에서 당신은 지식의 지도를 적을 자격과 의무가 생긴다. 한번 써볼까? -- 거북이 2008-2-29 9:34 pm

기고 -- 거북이 2008-3-12 7:47 pm

2 # 샘플[편집]

/조지오웰 /사회언어학

3 # 촌평[편집]

ㅎㅎ 이 글을 보니 혹시 다음번에는 책이 아니라 지도를 전달해주시는건 아닐런지.. -- 큐니 2008-3-5 10:50 am

일단은 책일세. :-) -- 거북이 2008-3-5 2: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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