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을알기는어렵다

1 2006 01 18 : 중국인을 알기는 어렵다[편집]

업무를 핑계삼아서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 직장생활 내내의 작은 소원이었으나 언젠가 일본에 잠깐 나가본 것 이외에 영 기회가 생기질 않았다. 그 때는 나에게 하루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으니 뭐 이거야. -_-

어쨌거나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낼름 물었다. 물었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날아갈 뻔 했지만 내가 꽉 잡았기 때문이다. 업무상 출장인만큼 전혀에 가까울만큼 준비없이 나왔다. 업무 관련된 것만 챙기기에도 바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노트북을 준비해와야 했고, 어떤 책들을 사야할까 리스트도 챙겨야 했다. 그래서 그냥저냥 당일치기로 옷만 챙긴 채 나왔다.

인천공항 가는 길은 꽤 멀다. 강남 교보타워에서 30분은 여유가 있겠지 하고 일찍 탔는데 1시간 반이나 걸려서 약속시간을 딱 맞췄다. 대신 공항에서의 수속이 아주 일찍 끝나서 시간이 좀 비었다. 나야 면세점에서 살 것도 없고 하니 그냥 탑승구 앞에 앉아서 책을 좀 읽었다. 읽다가 빌린 카메라를 챙겨볼까 하고 이것저것 해봤다. 셀카를 찍으면서 테스트를 한 게다. 그런데 생각보다 영 안나오더군. 내 비주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썩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튼 맘에 안들어서 한참을 이리 찍고 저리찍고 해봤다. 아마 내가 건너편 의자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는 넘을 보았다면 저런 덜 떨어지는 넘이 있나 하고 웃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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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개중 잘나온 셀카였다. 셀카 잘 찍는 애들은 부단히 노력을 한 것이 분명하다.

아시아나는 기내식이 형편없었다. 경영상태가 안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가보다. 기내식을 기대하며 열시 반까지 쫄쫄 굶고있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기 몇조각을 남기고야 말았다.

중국수도공항에 내렸는데 뭐랄까 분위기는 좀 황량하다. 하도 중국이 자본주의화했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는 자본주의의 치장이 화려한 북경을 기대한 모양인데 뭐 아직은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날도 건조하고, 건물들도 그만큼 건조했다.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잡은 것은 중국의 한자이다. 식민시대와 독재시절을 거치면서 결국 일본과의 단절을 시도하지 못했던 우리는 일본식 한자어를 너무나 많이 쓰기에 일본의 한자어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가 알고있는 한자어와 전혀 다른 한자어를 쓰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일단 거리감이 느껴진다.(예를들면 우리가 사장事長이라고 쓰는 말을 걔들은 동사董事라고 한다.) 게다가 그 기괴한 간자체는 영 볼때마다 눈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인의 살아있는 신이었던 마오가 남긴, 저주에 가까운 이 문자들은 어느새 나에게 마오의 미친짓을 가장 잘 증언해주는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간자체의 글자를 조금이라도 읽어보려던 나는 곧 그 밑의 영어 문장을 통해 광고를 이해하며 편안해했다. 이런 정신머리로 과연 중국어를 언젠가 공부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안할 수는 없는데. -_-

공항 밖으로 나가니 로스케 군바리들이나 쓸거 같은 털모자와 제복을 입은 넘들이 많다. "저 넘들 공안인가요?" "아뇨, 쟤들은 그냥 도로 교통정리 해주는 애들인데요. -_- 택시 승차거부하면 벌금을 먹이기도 하지요." 우리를 마중나온 차장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차장님은 상당히 박식하신지라 여러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주셨다. 일단 수도공항은 북경 시내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었는데 그 도로변에 나무를 잔뜩 심어두었다. 거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한다.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할 때 관계자들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매연이 가득한 북경에서 올림픽이라니 마라톤 선수 폐암으로 죽일 일있냐?" 그래서 충격받은 중국정부는 나무를 왕창 심어서 열심히 키우고 있는 중이고 그 덕에 매년 해뜨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날씨도 지랄같은데다가 매연때문에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원래는 참 적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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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택시는 운전석에 칸막이가 있다. 현찰이 있는 택시기사를 노리는 넘들이 많아서 생긴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꽤 흉해서 아마 올림픽 전에는 이 칸막이를 다 없애지 싶다.

숙소에 짐을 풀었다. 체크인을 하고있는데 뭔가 신용카드 받는 방식이 고전적이다. 카드 위에 영수증을 대고 긁는 방식 말이다. 들어보니 중국 내에서는 신용카드 되는 곳이 거의 없으며 다들 직불카드만 쓴다고 한다. 중국인은 현찰박치기 감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 신용카드로 책을 많이 사려는 마음에 환전을 별로 하지 않은 나에게는 하나의 시련이 생겨났다. -_- 내 구좌의 돈이 위안화로 인출되지 않으면 돈을 구걸해야 할 판이다. 어쨌거나 일박은 60위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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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서교호텔(西郊宾馆, 시쟈오삔깐) 앞쪽의 거리

묵은 곳은 북경어언대 근처인 오도구(五道口, 우다오커우)인데 대학가이고 중국 유학생 세명중 하나가 한국인이어서 한국간판이 많은 곳이다. 점심도 곰씨식당이라는 곳에서 불고기 보쌈을 먹었다. 한류열풍인지 뭔진 몰라도 오늘 하루종일 은근히 한글이 많이 눈에 띄었다.

회사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하면서 중국인에 대해 들은 얘기는 다양했다.

  • 현실적이다. 오늘의 백원과 내년의 만원중에서 고르라면 오늘의 백원을 고를 넘들이다.
  • 친해지려면 신뢰가 쌓여야 한다. 솔직히 별로 믿을 넘도 없고 믿기지도 않는다.
  • 대략 만족하면서 산다. 뭔가에 대한 개선의지가 참 적어서 불편한 것을 그대로 두면서 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 중국에서 수년 이상 삽질 안하고 성공했다는 한국사람 얘기를 들으면 그건 그 사람이 이미 충분히 중국화해서 구라를 서슴없이 치는 것의 증거이다. 절대 거짓말이다.
  •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가장 흔한 자원이다. 사람이 해도 되는 것에 굳이 기계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워밍업을 한 우리는 북경어언대를 한바퀴 돌면서 오늘의 일정을 마감했다. 김희선 사진이 담긴 성형외과 포스터를 중간에 보았다. 이제 청나라 넘들도 한국 여자들을 모두 성형미인이라고 부른댄다. 날은 은근히 춥다. 싸늘한 음기가 항상 주위를 감돌고 있어서 으슬으슬한 느낌을 주는 기분나쁜 추위다. 돌아다니다보면 감각이 무뎌진 발가락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우리와 다른 목적으로 파견나온 사원들과 함께 저녁으로 회를 먹었다. 기모노를 입은 꾸냥들이라니 뭔가 심히 어색하다. 분위기를 풀면서 저녁을 먹은 뒤 그들 중 몇몇이 모여 DVD따오판을 사러간다기에 나는 낑겼다. 한인촌에 있는 가게였는데 거기는 특히 한글자막이 들어간 따오판을 많이 판다고 한다. 가보니 벌써 태풍과 나의 결혼원정기가 정품 구운건지 캠판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팔리고 있다. 하여간 그런거엔 참 잽싼 넘들이다.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임권택의 한국전 영화들인 증언(1973),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아벤고 공수군단(1982)의 일본판을 구운 따오판을 발견하여 샀다. 국내 미출시이면서 일본에서만 나왔나하고 봤더니 출시된 적은 있는거 같지만 찾아보기는 어려운 아이템인듯 하다. 나름 만족스럽다. -_-

1.1 촌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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