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건설뉴트렌드

1 건설 테마 도심속 그림같은 집[ | ]

[Economy21]2002년 12월 13일 글 양우성/ 공공정책 및 경영전 (mailto:yws627@empal.com)

모든 비즈니스에는 일정한 ‘트렌드’가 있다. 문제는 이 트렌드라는 게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쟁기업들보다 비즈니스 트렌드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간파해 경쟁우위를 압도적으로 확보한 기업들은 승승장구한다. 이에 비해 삼척동자도 다 알아차릴 때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막차 타듯이 트렌드에 적응하려는 기업도 있다. 물론 대개 후자의 기업들은 존폐의 벼랑 끝에 서기 십상이다.

결국 급변하는 비즈니스 트렌드에 순응하는 기업은 성공 대열에 합류하고, 트렌드에 부적응하고 역행하는 기업은 쇠락의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하게 된다. 결국 무엇이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이고 어떻게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를 일찌감치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 모든 기업가와 CEO들을 괴롭히는 영원한 숙제다.

오늘은 우리나라 주택건설업계의 CEO들에게 고민거리인 비즈니스 트렌드에 관해 살펴본다. 지난 10월 중순 서울시는 강북개발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의 입장과 시각은 언제나 그러하듯 둘로 나뉘었다. 강북타운 개발계획을 지지하는 입장은 강북지역의 개발을 활성화해 강남-강북간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또한 아파트에 대한 초과수요를 흡수해 서울의 과도한 아파트 가격 상승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비판적 입장은 서울 강북에도 재개발과 재건축 붐이 일면서 아파트 투기붐을 잠재우기는커녕, 새로운 부동산투기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3곳의 뉴타운 후보지역 집값이 크게 오른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외국 각종 부대시설 갖춘 고급 아파트 붐

어찌됐든 서울 강북지역 개발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그 뒷면에 흐르는 비즈니스의 새로운 트렌드에 건설업계 경영자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주택건설 업계에 부는 새로운 트렌드란 무엇인가? 우선 최근 주목할 만한 경험들을 살펴보자.

지난해 봄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 세종로 대로변에서 한참 안으로 들어간 이면지역에 낡은 주택들을 허물고 새롭게 고층의 고급 대형 아파트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인다는 점을 광고의 초점으로 내세운 분양광고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바로 앞에 사무용 빌딩들이 즐비한 세종문화회관 뒤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 기존 상식과 다소 충돌한다고 생각할 법했다.

또하나의 다른 사례가 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도심 일대에서 아파트 재건축 붐이 일어난 것은 벌써 몇해 전부터의 일이다. 낡은 저층 아파트를 헐고, 고층의 새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건설업체와 지주들이 적절히 개발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이 서울지역 아파트 재건축의 핵심 동기다. 대다수 건설업체들이 그래서 재건축 가능한 아파트를 물색하러 다니고, 서로 재건축 수주를 선점하기 위해 과당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롯데건설이 프리미엄 아파트의 품질 차별화를 기치로 내세우며 서울 강남지역에서 높은 브랜드 파워와 분양성공률이란 성과를 거뒀다. 기존 건설업계는 후발주자인 롯데건설이 거둔 성과에 당황했으며, 자연스럽게 아파트 건축에서 품질경쟁이 치열해졌다.

한편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 마포 일대에서 불기 시작한 재개발은 삼성그룹에 주택건설업계 분야에서 새로운 입지를 만들어주었다. 주택건설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삼성물산 주택부문은 마포의 낙후지역 재개발을 수주하면서 아파트 건설의 품질경쟁을 주도했다. 단기적 이익보다는 주택시장에서 삼성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한 결과 같은 지역의 경쟁업체 아파트들보다 같은 평형대에서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든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뒷면에 흐르는 트렌드를 읽어내보자. 만일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주택건설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열쇠를 하나 갖고 있는 셈이다.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젠트리(gentry)는 영국의 신분제도에서 유래한 말로, 왕족에 이어 귀족 다음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둔 상류층을 일컫던 말이다. 도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 전문가들이 선진국의 도시발전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현상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서구 선진국가 도시들은 산업화와 도시팽창, 과밀화가 극심해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계층들이 도심을 떠나 교외의 쾌적한 신주거지역으로 이주했다. 그 결과 선진국의 대다수 도시들이 도심지역 황폐화와 슬럼화라는 홍역을 겪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중산층과 상류층들이 다시 도심지역의 매력과 이점에 눈뜨게 됐다. 그러면서 빈민이나 단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내주었던 도심지역의 낡은 주택이나 건물을 되사들이고, 여기에 건설업체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이 지역을 고급 아파트로 재개발하기 시작한다. 사업성이 좋았음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국내도 젠트리피케이션 나타나기 시작

원래 도심지역의 이점은 중심업무지구와 가까이 있어 통근이 편리하고, 고급 레스토랑, 공연장, 쇼핑타운 등이 몰려 있어 생활이 편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반면에 교외나 외곽지역의 이점은 도심보다는 덜 혼잡해 호젓하고 안락한 휴식과 주거가 가능하고, 공기오염이나 소음 측면에서도 안전하다는 점들이다.

그러나 교외지역도 인구가 증가하고 팽창하면서, 통근거리와 시간이 늘어나는 불편을 겪게 됐다. 이에 비해 도심지역의 대기오염은 점점 개선되고,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울수록 생활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경험적 지식이 축적됐다. 이에 따라 상류층과 부유층들이 다시 도심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소비자의 욕구를 간파한 영리한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도심을 고급 아파트 지역과 부대 편의시설 중심으로 재개발하면서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미 일본 도쿄에 가면 도심의 상당수지역이 고급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급 호텔에 뒤지지 않는 부대시설과 관리서비스, 첨단 안전과 경비서비스, 공원 같은 단지조경 등으로 도심속에 새로운 ‘그림 같은 동네’를 만들고 있다. 물론 매매가격이나 임대료는 부유층이 아니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다.

이제 젠트리피케이션 흐름이 한국에서 다소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강북타운 개발계획, 강남북 균형발전, 직장과 주거 근접형 도심개발 등의 공론과 공공정책이 이런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제껏 분양 가능성이 좋은 아파트 건설부지를 확보하는 것에만 주력하던 기존 주택건설 업계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다.

종합상사이던 삼성물산이 주택건설 경험도 없이 후발주자로 성공하고, 롯데건설이 품질경쟁의 기치를 들고 기존 건설업계를 뒤흔들며, 무명의 중견 건설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도약하는 이유는 바로 주택건설 업계에서 마케팅과 경쟁전략 개념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도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트렌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우연히 소가 뒷걸음질치다가 쥐잡는 식의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트렌드에 부합했던 셈이다.

아직도 많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시공능력과 자금력만을 금과옥조로 신봉한 채 소규모 부동산 컨설팅 회사나 개발업자들에게 기획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들은 외주 시공회사로 전락하거나, 자금부분을 해결해줘 간신히 대등한 수평관계를 유지한다. 그나마 분양은 분양대행사, 심지어 천박한 떴다방들에게 의존하는 식으로 사업전략을 고집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을 것이다.

2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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