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며 후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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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하게시리 이런 글도 썼었군. 어디다가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동아리 후배들에게 쓴 거 같다.


뭐 대부분의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하는 생각이야 다 비슷할 것이다.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홀가분함이란 지겨운 전공공부에서 해방된다는 것이고 아쉬움이란 대학생활에서 가질 수 있는 빈둥거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뭐 그런거같다. 협소해지는 것. 현대문명이 워낙 거대화되고 분화되다보니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처럼 보편주의자generalist를 추구하는 인간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보편주의자라는 것에 대해서 간단하게 적어보자면 고대의 현인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들에게는 박사doctor of philosophy라는 칭호가 붙여졌고 사람들이 현인으로 존경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내려와 지금도 박사Ph.D.라는 칭호는 존재하지만 그들처럼 한 분야만 협소하게 공부해서는 결코 현인이 될 수 없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싶은 것이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찾자면 군자라는 이름이 어울리리라.
나는 그래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어왔다. 다른 사회과학 서적들이나 역사서들도 결국 그런 목적에서 읽은 것이다. 정말 할수록 나 자신이 얼마나 바보인가라는 사실만을 재확인할 뿐이지만 그래도 나를 꾸준히 자극하는 것은 그런것들 뿐이다.
그런데 대학 공부는 전혀 다른 것들을 강요했다. 어설픈 학부제로 인한 잘못된 커리큘럼이 전공필수라는 이름으로 나를 옥죄었고 다들 어영부영 진학하는 모습처럼 적당히 전공공부나 해서 일단 대학원이나 가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전공과목들을 들었다. 3학년때까지는 그런 생각이었다.
졸업논문때문에 대학원방에 들어가서 일년정도 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들이 다들 유쾌한 사람들이었고 뭔가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게 된 나는 꽤 즐거웠다. 비록 세부적인 것들이었지만 자신이 목적의식 하에 샘플링을 하고 직접 그것을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으니 샘플링이나 분석 자체는 노가다의 결정체였고 한다고해서 뭔가 신통한 결과가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결정적으로 석박사 선배들이 하는것은 결코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으며 좀 심하게 말하자면 교수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신은 학위를 받는 매우 부정적인 도제관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석사에 진학한 사람들은 큰 맘먹지 않으면 박사진학시 전공 바꾸기가 매우 힘들고 이나라에서 박사를 하는 것은 교수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라고 많은 이들이 그러더라). 이러저러하여 박사학위를 받아 재수좋으면 교수자리 얻고 재수없으면 연구직에 눌러앉고 요즘같이 재수 더럽게 없으면 노는 것이다.
십년이상 (별 재미도 없는) 공부를 하면서 가는 길이 이렇게 분명히 보이는데 그것을 내 길로 정하기에는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러한 판단을 좀 일찍 했다면 일찌감치 전필만 듣고 전선은 수학이나 전산같은 과목으로 때운 후 나머지를 사회대나 인문대 강의듣는데 쏟아부었을 것인데 좀 안타깝다.
그런데 내가 들어왔던 다른 강의들에서도 그리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한것을 생각해보면 많이 억울한건 아니다. 내 보기엔 기본적으로 대학공부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자질이 부족하여 합리적인 교육을 못시키는 듯 하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니까. 학생이 소비자고 교수는 공급자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는 생각조차 않은 채 자기 (석박사)전공대로 적당히 커리큘럼을 짠다. 하긴 공부를 안하니 더 이상은 잘 알지도 못한다. 교수 규탄장이 아니니 여기까지 하겠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언제나 그래왔지만 내가 얻은것은 결국 사람들과 떠들고 내가 생각하고 그 지적 충동에 의해 책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후배들은 이것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진학대신 선 병역문제 해결과 후 언론직 종사라는 길로 굳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강의 이외의 대학생활은 나름대로 매우 알찼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 매우라고 하기에는 정말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으니 그냥 알찼다고 해두자. 다양한 친구들, 이래저래 알게된 후배들, 동아리에서 만난 호기심많은 이들은 모두 내 삶을 다양하게 해준 사람들이다. 물론 맘에 안드는 인간들도 있지만 뭐 그놈들도 나를 맘에 안들어할테니 신경 많이 쓸 필요는 없고.

논어 바로 첫머리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배우고 종종 그것을 실천하니 역시 기쁘지 않은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군자라 할만하지 않은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우는것은 그런대로 즐거운데 실천이란것은 아직 못해봐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친구가 놀자그러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을 준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여러가지 관심가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만큼 유쾌한 것도 없다. 나는 대학에서 그런것을 얻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이젠 졸업을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동아리에서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오면 언제나처럼 밥먹자고 올 것이다. 나는 여럿이 모여서 왁자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만나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하니 종종 볼 기회가 있을것이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사족처럼 후배들에게 한마디만 해두자면 너무 부지런해지지 말라는 것이다. 기우일까? 이 말은 몸이 시키는대로 해주라는 것이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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