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포드/김영진

1 # 존 포드는 어떻게 미국 신화를 창조했나[편집]

아메리칸 레전더리 (1) 존 포드

2003.05.02 / 김영진 편집위원

존 포드는 사실 평론가보다는 감독들의 존경을 더 많이 받았다. 존 포드의 완숙한 장인적 기량은 영화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포드가 현장에서 남긴 전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는 현장에서 두 번 이상 같은 장면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차례의 리허설을 거친 다음 촬영을 하고 그것으로 끝낸다. 되풀이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언짢아했다고 그와 작업했던 이들은 증언한다.

존 포드는 반세기 동안 미국영화의 얼굴을 대표했던 위대한 감독이다. 1924년 작 <아이언 호스>부터 1935년 작 , 1939년 작 와 1940년 작 <분노의 포도>, 1956년 작 와 최후의 걸작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이르기까지 포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전성기의 스타일과 내용을 확립한 거장이었다. 그는 당대 가장 인기 있는 감독이었으며 생전에 명예를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영화를 ‘직업’으로 여겼을 뿐 ‘예술’로 생각하지 않은 장인이었다. 1950년 무렵까지 그는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인터뷰를 두 번 남짓밖에 하지 않았다. 이 과묵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은 영화 예술 운운하는 호들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영화를 찍었을 뿐이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존 포드와 나눈 대담을 묶어 펴낸 ‘존 포드’의 서두에 적힌 다음과 같은 포드의 말은 그의 무뚝뚝하며 간결한 작품 세계를 잘 드러낸다. “난 존 포드요. 서부극을 만들었지.”

“난 존 포드요. 서부극을 만들었지”

훗날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보그다노비치는 1960년대에 한창 유행했던 작가 비평의 세례를 받아 존 포드에 감화받고 그를 모방하는 감독이 되길 꿈꿨던 영화 청년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포드가 왜 위대한 감독인지에 관한 자신의 평가를 털어놓고 싶어했지만 포드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영화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진 존 포드와 보그다노비치의 인터뷰는 현학적인 질문이 나오면 참지 못하는 포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포드의 영화가 중요한 예술이라는 보그다노비치의 주장에 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글쎄,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느낀 적은 한번도 없으니까요. 난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내 삶을 통틀어서 바칠 만했죠. 내 주변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배우들, 스탭들, 기술자들... 그 사람들과 함께 세트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줄거리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았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일찍이 영화감독은 화면 구도를 정하는 눈을 지녀야 한다고 배웠지만 어디서 그 능력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 일은 그것, 화면 구도를 잡는 게 다였죠. 어렸을 때 미술가가 되고 싶었어요. 곧잘 그렸고 칭찬도 꽤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영화를 찍으면서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건 굉장해’‘세상을 뒤흔들어야지’하는 따위의 마음은 없어요. 내게 영화는 일입니다. 난 그 일을 즐겼고 그게 전부입니다.” 존 포드는 사실 평론가보다는 감독들의 존경을 더 많이 받았다. 존 포드의 완숙한 장인적 기량은 영화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어하는 이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포드가 현장에서 남긴 전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는 현장에서 두 번 이상 같은 장면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차례의 리허설을 거친 다음 촬영을 하고 그것으로 끝낸다. 되풀이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언짢아했다고 그와 작업했던 이들은 증언한다. 그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언젠가 존 포드 영화의 전매특허인 롱 쇼트 화면을 준비하고 있을 때 촬영감독은 느닷없는 포드의 호령을 듣고 어리둥절해했다. “카메라가 원래 위치보다 약간 옆으로 비켜 있다”고 포드가 지적했다. 촬영감독은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포드는 그렇다고 단언했다. 과연 실제로 측정해보니 카메라는 50cm가량 옆으로 옮겨져 있었다.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카메라의 변한 위치를 귀신같이 알아내는 포드의 밝은 눈에 모두 기가 죽었다. 이런 식의 예는 끝도 없다. 2차 대전 후 자신의 영화사를 만들기 전까지 스튜디오의 고용 감독으로 늘 돈이 되는 영화를 찍었던 포드는 스튜디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유의 간결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포드의 영화는 편집실에서 잘려나갈 필름 여분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촬영 필름은 편집실에서 순서대로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됐다. 그가 여러 번 촬영하는 것을 싫어한 이유기도 했다.

“존 웨인, 자네가 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시적인 함축을 갖춘 존 포드의 스타일은 후대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 사상 걸작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을 찍기 전에 오손 웰스가 교과서로 삼았던 영화도 존 포드의 였다. “데뷔작 <시민 케인>을 만들 때 나는 연극 연출자였으며 영화에 문외한이었다. 존 포드의 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아마 쉰 번은 봤을 것이다. 그쯤 되니 영화 편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존 포드는 내 영화 스승이다.” 는 아무런 예술적 자의식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장르 규칙의 완성을 표한다는 점에서 ‘고전’이라 불러 마땅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1939년은 존 포드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는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에서 처음 찍은 서부 영화였으며 (이후 포드의 서부 영화 하면 모뉴먼트 밸리의 풍광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배우 존 웨인과 첫번째로 작업한 영화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존 웨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포드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어느 파티 석상에서 포드와 담소하던 웨인은 다음 영화로 모뉴먼트 밸리에서 찍을 서부영화를 기획하고 있는데 주연 배우로 누가 좋겠느냐는 포드의 질문을 받았다. “글쎄요...” 머뭇거리던 웨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포드가 한마디 했다. “듀크(존 웨인의 애칭), 자네가 해.” 존 웨인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존 웨인은 이후 가족, 공동체, 국가에 관한 미국적 가치를 중시하던 포드의 영화에서 튼튼하고 과묵하며 억센 미국식 영웅의 원형을 연기했다. 의 초반 장면에서 총잡이 링고 키드를 연기한 존 웨인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하나의 영웅 신화가 개막되는 순간으로 썩 어울린다. 막 서부로 떠난 역마차를 위협 사격으로 불러 세운 링고 키드는 의아해하는 마차 승객들 앞에서 빠른 솜씨로 총을 빙빙 돌리다 총집에 집어넣는다. 총을 통해 자기 보전을 해야 하는 황무지에서 가족과 집단의 안전을 보장하는 문명 사회를 이룩하는 과정을 다룬 미국 사회의 건국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서부 영화에서 존 웨인은 가장 듬직한 신뢰감을 안겨준 영웅이었다. 포드는 존 웨인을 통해 한발은 황야에, 다른 한발은 문명 사회에 딛고 있는 고독한 영웅을 찬미했다. 포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해야 하는 개인주의를 찬미하는 동시에 그런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서부 사회가 문명의 초기 단계로 진입한 것을 향수에 차서 돌아본다. 우연찮게 마차에 동승하게 된 창부와 여러 사람들의 곡절을 담은 기 드 모파상의 중편 소설 '비곗덩어리'에서 상황을 빌어와 서부 시대로 배경을 옮긴 는 창부, 감옥에서 막 나온 총잡이, 신사, 군인 장교의 부인, 술주정뱅이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승한 역마차 여정을 통해 이질적인 집단이 인디언과 대적하며 백인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 고전적인 절제미의 표본

오손 웰스가 경탄한 의 스타일은 경제적이고 간결하다. 영화 초반에 동승한 마차 승객들이 간이역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창녀 댈러스와 총잡이 링고 키드가 식탁 한 편에 앉아 있고 기병대 장교 부인 루시와 노신사가 맞은편에 앉아 있다. 루시는 그 자리가 불쾌하다. 천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링고 키드가 댈러스에게 의자를 권하자 댈러스는 얌전하게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는다. 이 화면에서 아주 짧게 카메라는 그들에게 전진 이동한다. 그런 다음, 그런 그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루시의 상반신을 비추는 정면 화면으로 커트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댈러스와 링고 키드는 루시의 시점 화면으로 보여지는 반면, 그들과 식탁 맞은편에 있는 루시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객관적인’ 각도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시점 화면의 주인공에 따라 관객이 감정 이입된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이 장면에서 관객은 당연히 루시의 시점에 따라 식탁의 불청객인 링고 키드와 댈러스를 불쾌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댈러스와 링고 키드의 측면 모습을 담은 화면 다음에 그들을 바라보는 루시의 정면 모습이 커트되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관객은 스크린의 중앙에 자리한 루시의 당당한 전면 상반신 모습과 댈러스와 링고의 측면 모습에서 이것이 두 다른 사회적 계급간의 은밀한 충돌을 다룬 사회 드라마가 이 장면에서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된다. 별다른 대화는 오가지 않지만 루시가 사회의 내부인이고 유부녀이며 관습의 옹호자라면, 댈러스는 외부인이며 식탁의 규범을 깨는 창녀다. 위풍당당한 루시는 화면에서 차지하는 그 공간적 부피감 때문에 화면 구도에 따라 이미 권력을 부여받고 있다. 루시에 비해 왜소하게 화면 주변부에 밀려난 구도로 잡힌 링고와 댈러스는 화면 내의 왜소한 공간 부피만으로도 고립되고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상한 것은 화면에선 루시에게 권력을 주었는데도 관객의 심리는 댈러스와 링고에게 더 기운다는 것이다. 댈러스는 루시의 시선을 회피하듯이 눈을 내리깔고 있지만 이어지는 화면에서 루시의 도도한 모습이 잡히면 관객은 이 장면에서 댈러스의 모욕감을 전달받게 된다. 존 포드는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주고받는 의례적인 화면 나누기를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화면에서 루시는 다른 자리를 권하는 한 신사의 권유를 잠시 머뭇거리듯이 우아하게 받아들인다. 그 모습은 댈러스와 링고의 시점이 아니라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선으로 찍혀진다. 겉으로 잘 지각되지 않는 미묘한 화면 구성이지만 포드의 이런 스타일은 요란을 떨지 않고도 등장인물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는 고전적인 절제미의 훌륭한 표본이라 할 만하다. 영화학자 피터 울른이 지적했듯이 를 비롯한 모든 존 포드의 서부 영화는, 핸리 내시 스미스가 저서 ‘처녀지’에서 증명한 대로, 사막의 이미지 미국과 정원의 이미지 미국간의 대비를 통해 주제를 만든다. 존 포드의 서부 영화는 황야와 정원, 농기구과 칼, 정착민과 유목민, 유럽인과 인디안, 문명과 야만, 책과 총, 결혼과 미혼, 동부와 서부 등의 대립항으로 나타난다. 후기작으로 가면서 문명과 야만, 유럽인과 인디언 사이에 놓인 이 대립항의 정체성은 분리되기 시작하며 최종적으로는 뒤집힌다. <샤이엔의 가을>과 같은 작품에서 야만인은 바로 백인이며 인디언 주인공은 야만인의 희생자로 묘사된다.

미국영화의 교과서

존 포드가 만든 서부 영화의 흐름은 곧 미국 서부 영화의 주제가 심화되고 수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에서의 와이엇 어프, 에서의 이든 에드워즈,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톰 도니폰 등은 존 포드의 영웅상을 대변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다르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와이엇 어프는 구조적으로 세 인물 중 가장 단순한 인물 유형에 속한다. 그의 행로는 자연에서 문명으로, 과거의 유산인 황야에서 미래의 모습인 정원으로 가는 순탄한 여정을 따른다. 와이엇 어프는 가족과 함께 서부로 소몰이 여행을 가는 도중 툼스턴 마을 근처에서 동생을 잃고 소를 도둑맞는다. 마을 근처의 OK 목장을 경영하는 클린턴 일가의 짓이라는 걸 안 어프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툼스턴 마을에서 보안관 생활을 하면서 기다렸다가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존 웨인이 강인한 영웅이라면 이 영화에서 와이엇 어프를 연기하는 헨리 폰다는 총잡이면서도 인간적인 회의를 감춘, 남성성과 여성성을 겸비한 영웅이다. 와 같은 해에 나온 <젊은 링컨>을 통해 존 포드와 인연을 맺은 그는 법전과 학교와 문명의 가치를 믿는 에이브러햄 링컨 식의 섬세한 영웅 이미지를 창조했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에서 어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를 읊을 줄 알고 청순한 처녀 클레멘타인에게 신사답게 구애할 줄도 아는 문명인이지만 동시에 총이 아니면 해결될 게 전혀 없는 서부의 거친 생리에도 잘 적응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영웅이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에서 존 포드는 불가시 편집과 딥 포커스라는 자신의 스타일을 원숙 단계로 올려놓았다. (흔히 딥 포커스가 오손 웰스가 창시한 미학으로 오해받지만 사실이 아니다. <시민 케인>의 촬영감독인 그렉 톨랜드는 존 포드와 <머나먼 귀향> <나의 계곡은 얼마나 푸르렀는가> 등에서 딥 포커스 미학을 이미 완성시켰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의 중반 이후부터 존 포드는 그 유명한 선인장 구도를 선보인다. 멀리 모뉴먼트 밸리가 보이는 툼스턴 마을 이발소 근처에 서 있는 선인장은 황야 속의 돌산과 문명화된 마을의 이발소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여주인공 클레멘타인이 마을에 도착할 때 처음 화면에 등장하는 선인장은 그때부터 곧잘 화면 구도의 초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술집 여급인 치하하우와 동부에서 온 교양 있는 처녀 클레멘타인이 대립하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황야와 문명의 대비는 극적인 시각화로 표현된다. 멀리 돌산을 배경으로 한 치하하우와 선인장을 뒤로 한 클레멘타인의 모습을 한 화면 안에 묘사하면서 포드는 영화 내내 강조하는 문명과 황야의 대립이라는 드라마의 맥락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교회 준공식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이 들판에서 댄스 파티를 벌일 때 와이엇은 망설이다가 클레멘타인에게 춤을 청한다. 이때 그들 사이의 화면 배경에는 돌산이 보인다. 와이엇이 댄스 무대에서 인사할 때 화면 멀리에는 선인장이 보인다. 이런 장면의 꼼꼼한 시각적 구도와 함축미는 <내 사랑 클레멘타인>을 시적인 신화로 상승시키는 흑백의 회화적 완결체로 보이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서부로 떠나는 와이엇 어프와 그를 영접하는 클레멘타인을 보여주는 화면 구도의 균형은 완벽하다. 마을은 이제 문명화됐고 길에는 가축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며 와이엇 어프는 멀리 모뉴먼트 밸리의 돌산이 보이는 황야로 다시 여정을 떠난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똑같다. 다시 서부로 떠나는 것이다. 의 이든 에드워즈는 와이엇 어프에 비해 훨씬 복잡한 인물 유형이다. 이 영화와 영화 속 주인공의 이미지는 훗날 미국 영화감독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존 밀리어스는 영화에 반해 자신의 아들 이름을 아예 이든이라고 지었다. 폴 슈레이더는 말한다. “일년에 한번은 꼭 를 다시 본다. 좋은 연기와 시나리오로 된 영화는 많다. 그러나 는 불가사의한 예술적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택시 드라이버>를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를 참조했다. “의 대사는 한 편의 시다. 다채로운 예술적 표현은 미묘하고 위대하다. 일년에 한두 번은 이 영화는 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를 만들 때 현장에서 를 보면서 영감을 얻곤 했다. 자신이 믿는 삶의 가치를 위해 오랜 여정을 떠나는 영웅의 이야기, <미지와의 조우> <택시 드라이버> <디어 헌터> <하드 코어> 등의 1970년대 말에 나온 중요한 미국영화는 모두 이 영화, 에서 이야기의 원형을 따왔다. 의 주인공 이든은 코만치족에게 납치된 어린 조카 데비를 찾는데 15년의 세월을 바친다. 그 사이에 데비는 이미 인디언이 돼 있지만 이든은 인디언의 품에 안겨 있는 조카를 상상하면서 맹렬한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인생을 건 여정을 계속한다. 결국 인디언이 된 데비를 찾은 후에 이든은 그녀를 죽일 생각을 품지만 용소하기로 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데비는 생물학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는 종래의 어떤 서부 영화보다 비극적이다. 많은 점에서 이든은 그가 쫓는 인디언 추장 스카와 유사하다. 그는 방랑자이며 야만스럽고 법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그의 친척들처럼 그는 백인이며 인디언의 숙적이다.

미국적 삶의 가치를 그린 감독

이든의 방랑은 다른 많은 포드의 영화에서처럼 하나의 탐색이자 추구이다. 포드의 대다수 영화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이라는 주제로 구성된다. 성서의 엑소더스를 미국식으로 재현한 이 여정이 황야 대 정원, 유랑민 대 정착민이라는 대립항의 결합 위에서 구축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오늘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명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국적 이데올로기의 깊은 뿌리다.) 이든 에드워즈의 여정은 그러한 주제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다. 그의 목적은 스카를 찾아내 그의 머리 가죽을 벗기려는 파괴적인 데 있다. 이든은 스카를 죽임으로써 동시에 자기가 존립할 수 있는 세계도 파괴하는 것이다. 야만적인 인디언이 없는 세상에선 야만적인 백인 총잡이도 필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등의 말년 서부 영화에서 포드는 그가 그토록 찬미했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깊은 체념, 또는 무정부주의적 혼란을 담아낸다. 존 포드는 물론 서부 영화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는 프리츠 랑의 과 함께 유성 영화의 사운드 미학을 훌륭히 성취한 교과서이며 <분노의 포도>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모범작이다. 그러나 어떤 영화를 통해서든 포드는 서부 영화를 통해 제시한 미국적 삶의 가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영화는 미국 역사에 대한 자긍이 회의와 번뇌로 완만하게 옮겨가는 성숙한 예술가의 고통스럽지만 장중한 탐색을 담는다. 그의 영화 대다수가 위대한 탐색이었다. 인간의 영혼이 시련에 찬 여정을 통해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보여준 영웅주의를 통해 포드는 가장 미국적인 영웅의 이미지를 가장 복합적으로 스크린에 구현한 감독이다.

2 # 촌평[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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