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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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거북이[편집]

일단 이덕일 선생의 지속적인 작업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 보기에 그는 역사학계의 강준만이라고 불러도 될것 같다. 성실성과 도발적인 자세에서 그렇게 느낀다.

이 책은 정약용을 통해 본 정조, 순조시대의 초상이지만, 정조 사망 직전까지를 다룬 1권은 정약용을 핑계삼아 쓴 정조 찬가에 가깝다. 2권은 현재 보는 중이니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조는 정약용에게는 임금이요 아비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정약용은 정조의 신임에 충실하게 보답하면서 시대적 역할을 해나갔다.
기본적으로 정조가 위트있는 인간이었겠지만 그것을 오밀조밀하게 책 속에 잘 짜넣은 솜씨는 이덕일의 그것일 것이다. 정약용과 정조에 얽인 감동과 해학의 편린들을 옮겨본다. 이 사례들이 아니더라도 정조는 남인의 수퍼 루키 정약용에게 화가 미치려 할 때마다 그것을 현명한 방식으로 막아주었으며 정약용은 그 그늘에서 자신의 재능을 조금씩 발휘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정조같은 왕과 함께 하면 신하는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왕이 먼저 공부하고 시험하며 관리의 자질을 확인하는 이런 자세 속에서 조선 후기 문화가 꽃피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정조의 치밀함은 비슷한 시기에 청나라의 황제였던 옹정제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일곱살때 천연두를 앓았는데 이 병은 훗날 정약용이 여러 자식들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병이었으나 그는 눈썹 한가운데가 나누어지는 작은 흔적만 남았을 뿐 순조롭게 치러냈다. 정약용은 이 흔적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눈썹이 세 개인 사람'이란 뜻의 삼미자라는 호를 짓는 해학을 보였다. 정약용은 10세 이전에 지은 시를 모아 삼미자집을 지었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1권 p39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제법 문자를 알았다. --1권 p38, 정약용이 자찬묘지명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평한 부분


하루는 내가 소보의 용춘당집을 읽는데 그 안에 나모전이 있었다. 나라는 글자를 알 수가 없어서 자서를 모두 찾아보았으나 어떤 책에도 없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스스로 기뻐하기를, 이것이면 정옹(이가환)을 곤경에 빠지게 할 수 있겠다"라면서 급히 말을 타고 공을 찾아갔다. ... 물었더니 ... 자네 혹시 소보의 나모전을 읽은게 아닌가. ...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워버리는데 글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1권, p56, 정약용이 이가환을 시험하는 대목


8월의 시험에서도 고등을 차지한 정약용은 중희당에서 정조를 알혔했다.

팔자백선을 받았는가?
받았습니다.
대전통편은 받았는가?
받았습니다.
국조보감도 받았는가?
받았습니다.
근일에 내각에서 인쇄한 서책을 네가 모두 얻었으니 더 이상 줄 책이 없구나.

정조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술을 가져오너라.

계성주 큰 사발이 나왔다.

술을 못하옵니다.
다 마시라.

할수없이 다 마신 정약용은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 잠사후 사돈인 승지 홍인호가 소매속에서 책 한권을 꺼나 은밀히 건네주며 정조의 말을 전해주었다.

네가 장수의 재주도 겸하고 있음을 알기에 이 책(병학통)을 내려준다. 훗날 나라에 도적이 생기면 너를 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1권 p77, 성균관시절 항상 수석을 하던 정약용에게 책을 하사하는 장면


정약용이 초계문신으로 있을 때였다. 정조는 초계문신들에게 논어를 읽게했는데 매일 3-4편씩 7일안에 마쳐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것을 정조 앞에서 강의해야 했다. 정약용이 상의원에서 직숙하던 날이었다. 한밤중에 각리가 찾아와 소매속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이것이 내일 강할 장입니다.
어찌 미리 얻어볼 수 있단 말인가?
걱저하지 마십시오. 임금님께서 하교하신 일입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전편을 읽는 것이 마땅하다.

정약용이 끝내 거절하자 각리는 웃으며 돌아갔다. 다음날 다산이 경연에 나가자 정조가 명을 내렸다.

정약용은 특별히 다른 장을 강하라.

정약용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강을 끝내자 정조가 웃었다.

과연 전편을 읽었구나.

--1권 p88, 정조의 엄한 수시테스트


그해 6월 12일, 정약용이 달을 구경하면서 한가하게 앉아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오시오.

내각의 아전이었다. 그는 정조의 유시를 대신 전했다.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했다. 너를 불러 책을 편찬하고 싶어서 주자소의 벽을 새로 발랐다. 아직 덜말라 정결하지 못하지만 그믐께쯤이면 들어와 경연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2권 p24, 낙향한 정약용을 꼬시는 정조의 유시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조와 정약용은 3개자가 1개자로 합성한 한자 쓰기 내기를 하게 되었다. 晶, 姦, 森, 磊 등을 쓰는 내기였다.

전하께서 한 자만은 신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자전에 있는 모든 자를 다 암기하는데 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란 말이 웬말이냐?
그래도 한 자만은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둘이 각자 쓴 것을 교환했더니 과연 정조가 한 자 부족했다. 三자를 빼놓은 것이었다. 군신은 서로 무릎을 치며 웃었다. --2권 p100, 정조를 회상하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황사영의 체포에 조정은 환호했다. 체포당시 스물일곱의 청년이던 황사영은 한때 신동으로 소문났던 인물이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인 정조 14년 사마시에 급제해 진사가 되어 정조를 만났는데, 이때 정조는 이렇게 일렀다.

네가 20세가 되거든 나를 만나러 오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네게 일을 시키고 싶다.

--2권 p110, 젊은 수재 황사영에 대한 묘사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놈과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암놈이 낚시 바늘을 물고 엎드릴 적어 수놈이 이에 붙어서 교합하다가 낚시를 끌어올리면 나란히 따라 올라온다 이때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음란한 것을 탐내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2권 p220, 정약전이 수생 생태학 저서 현산어보에서 홍어를 설명하는 부분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려 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른 채 책을 읽다가 황사영에게 정조가 한 말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나는 정약용이나 황사영이 부러웠던 것이다. 나에겐 정조처럼 나를 알아줄 수 있는 선배, 선생님 아니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마냥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조가 신하를 아끼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 애틋함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리고 정조와 같은 철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론에 그렇게 화가났고, 왜 사도세자를 죽이고 왜 늙으막에 자기보다 쉰 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을 해서 훗날 정순황후라는 화의 씨를 만들었는지 영조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정말 가감없이 말한다 할지라도 정조가 있었기에 정약용이라는 걸물이 나올 수 있었다. 엄하면서도 해학이 있는 군주, 그리고 긴 관점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군주가 정조였다. 조선사를 통틀어 창업자를 제외하고 '조'라는 휘호를 얻을 자격이 충분했던 유일한 왕이 아마 정조일 것이다.

이 책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니만큼 정약용과 그의 동복형제 두 사람에 대한 내 느낌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주인공인 정약용은 신하, 학자, 아버지, 선생님, 동생으로서 사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유배생활 18년동안 자신의 학문체계를 모두 정리했다는 점에서 개인사적 고난을 사회적 가치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숭고한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둘째형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부들과 지내면서 흑산도의 수생 생태학서인 '현산어보'를 집필해낸다. 학문이 아니라 자연에서 스스로를 구원했고 그것을 치밀하게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정약용과 비슷한듯 다른 길을 걸었다. 특히 흑산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잠시 유배지를 옮기려 할 때 온 주민이 달려들어 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주변인들의 덕망을 얻은 사람이다. 정약용이 일종의 학문적 도피 내지는 미래에의 준비를 시도했다면 그는 땅에 찰싹 달라붙어서 호흡하며 살아갔다.

그의 셋째형 정약종은 가장 마지막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람이지만 끝까지 천주교를 지키다가 주변인들의 죄를 모두 뒤집어쓰고 사형당했다. 그는 궁핍한 시대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종교적인 길을 택했다.

결국 이 삼형제는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모두 시대의 사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꿋꿋이 걸어나갔으며 모두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비타협적으로 종교를 지켜나간 정약종의 태도쪽이 약간 공감되지 않는 면이 있지만 그들 셋이 걸어간 길은 모두 같은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셋에게 공통된 것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인간을,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면서 의지가 강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거북이 2004-8-25 1:26 am

3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