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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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37404206 아 짜증나는 이문열의 얼굴이다. 글은 잘 쓰는 넘이 어쩌다 이런 꼴보수 마초가 되었을까.


<제 2차 과제물>

     나 역시 젊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질 해양학과 95319-041


                                                       정철      


내가 가장 먼저 접한 이문열의 소설은 '사람의 아들'이었다. 지난날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기독교와 그 외의 종교에 관하여 가졌던 의구심을 더욱 구체화 시켜주었던 작품이다. 워낙 철이 없을때 읽어서 자세한 건 기억에 없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사탄을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본 관점의 전환과 아하스 페르츠가 보여주는 치열한 절대자에의 추구는 내겐 큰 감동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이문열의 여타 소설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젊은날의 초상'역시 이미 읽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감상문(?)을 쓰려니 다시 한번 읽게되었고 지난날에는 느껴지지 않던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먼저 이 소설이 삼부작으로 되어있는 만큼 그 처음인 '河口'에 대한 감상을 먼저 적어본다. '河口'는 주인공이 청소년기의 방황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부분이다. 주인공인 '나'는 이미 세상일을 상당히 겪어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인물로 설정되어있다. 특히 작품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나'의 현학적 기질이 이미 보여지고 있다. 이런 현학적 기질을 가진 인물은 이 소설만이 아니라 이문열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데 그가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소설을 쓴다는 것을 고려하면(특히 '변경'에서 두드러진다)아마도 작자 자신에게 현학적 취향이 있지 않은가 의심스럽다.
'河口'에서는 '나'보다는 세 인물군의 삽화(최광탁과 박용칠,서동호 가족,황씨 오누이)가 주된 흐름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삽화들이 삶의 단편적인 모습을 그려 그 시대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라는 정도 외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나'가 공감하는 쪽은 같은 '流謫'의 분위기를 풍기는 황씨 오누이 정도이다. 그것도 그들과 함께하지는 못하고 단지 방관자로서. 따라서 '河口'에서는 별 감상은 없다. 있다면 황씨 오누이의 모습이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에 나오는 극단적 연인들이 생각나는 정도.
'우리 기쁜 젊은날'은 짤막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단편들은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길동무들'에서는 '하가'와 '김형'이라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둘은 모두 나름대로의 개똥철학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이다. 소설상에서는 그들의 의견이 외견상 중요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비치는데 내가보기엔 나름대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것 같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문학이라는 다소 비관념적인 세계로 들어왔다가 다시 관념을 향해 돌아서는 '나'의 모습이 나온다. 여기서 '신'에 대하여 주절대는 부분이 있는데 분명히 궤변이었지만 궤변도 머리에 뭔가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하였다. '사랑놀이'와 '해따기'에는 너무나 빨리 끝나버린 사랑이 나오는데 비록 빨리 끝나더라도 그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으면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 아직 실연의 쓴 맛을 못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진한 감동을 준 건 '새지 않는 밤'이었다. 순수하지 못한 지식과 논리가 순수함에 의해 씻겨내려간다는 다소 진부한 내용이었지만 그 소년의 순수함보다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잘못을 정말로 뉘우치는 '나'의 깨끗한 양심과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가끔 내 자신이 너무나 계산적이고 이중적이지 않는가 하고 느낄때가 많다. 지금이야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솔직하게)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지만항상 머리 한구석에는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항상 뭐든지 계산하고 시기하는 나... 언제나 이런 모습을 버릴 수 있을는지.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젊은이만이 보일 수 있는 신선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나는 이를 보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수치심을 느꼈지만 과연 내가 이런 순수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것인가는 의문이라는 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그 해 겨울'은 '나'가 그동안 쌓인 무언가를 풀어버리고 세상에서 또다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떠난동안의 이야기이다. 비록 결과적으로 그가 얻은것은 절망이었지만. 여기에도 몇기자 삽화가 나오지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윤양'이 '나'를 보내며 "사실 그는 시인이 아니었어요 ..... 그렇지만 저는 시인을 사랑하고 싶었거든요..... 오래 오래 절 기억해 주시겠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왜 감동적이냐고 묻는다면 할말이없지만 나는 가슴이 찡했다. 아마도 '윤양'이라는 가진것 없지만 순수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껴서일까?
그리고 좋았던 부분은 '나'가 단지 '바다가 부른다'는 황당한 아유만으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으로 뛰쳐나간 부분이다. 아마 내가 '나'의 입장이었다면 결코 그런 자살행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나'가 가진 열정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계산적인 내가 싫다. 이렇게 쓰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안나가는게 당연하지'하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과민한건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칼장수 노인의 삽화는 무의미한 듯 하다.
어째 쓰고나니 다소 두서없기도 하고 나의 고민만을 늘어놓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읽을 때 느끼던 것 그대로 쓴 것일 뿐이다. 이문열이란 작가는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져 독자를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당대 최고의 작가 중 하나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것 같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소재로 이렇게 재미있으면서 가슴에 와닿는 소설을 쓰는걸 보면 말이다.
나도 '나'처럼 젊은이이다. '나'와같이 살 수는 없지만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다. 나도 젊음을 바쳐 '나'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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