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람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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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Pictures at an Exhibition
전람회의 그림
  • 1874년, 러시아의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가 쓴 피아노곡
  • 총 10곡으로 구성됨
  • 각 악장 사이에 프롬나드가 붙어 있어 각 악장 간의 유기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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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포럼 1995년 9월호, pp.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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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변용

MODEST PETROVICH MUSSORGSKY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글 / 윤정열

작곡가 무소르그스키를 말하면 누구나 <전람회의 그림>을 떠올릴 정도로 이 곡은 무소르그스키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피아노로 된 원곡은 워낙 관현악적 색채가 강해서 여러 형태로 편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만큼 다양한 편곡이 존재하는 곡도 드물 것이다.

1. 무소르그스키 (1839-1881, 러시아)

무소르그스키는 발라키레프, 큐이, 보로딘, 림스키-콜사코프와 함께 러시아 국민악파 의 한 멤버이다. 이 다섯 작곡가는 예술사가(藝術史家)인 스타소프가 정신적 지주였으며, 1863년부터 2년간 공동생활을 하면서 서로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무소르그스키의 본업은 공무원으로, 음악이 주업이 아니었다. 음악교육조차도 매우 애매하여, 5인조의 리더였던 발라키레프에게 받은 음악 교육이 거의 전부였다. 그의 음악적 상상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이를 관현악으로 옮기는 데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대부분의 걸작들은 다른 작곡가의 손을 한 번씩 거치게 된다. 특히 림스키-콜사코프의 무소르그스키에 대한 깊은 이해는 수많은 작품의 편곡으로 빛을 보게 된다.

그의 음악은 여러 예술분야에서 얻은 임프레션을 그대로 음악화하는 경향이 짙었으며, 이 과정에서 서유럽의 전통적인 작곡법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다. 그가 정규음악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는 점이 오히려 독창적인 작곡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흔히 그의 음악이 인상주의, 표현주의적이라 하여 드뷔시와도 많이 비교되는데, 무소르그스키의 러시아적 인상주의를 드뷔시가 프랑스적 인상주의로 발전시켰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평소 음주벽이 심했던 그는 42세의 나이에 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2. 작곡 경위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의 친구이자 건축가/화가/디자이너였던 하르트만이 1873년에 젊은 나이로 요절한 후, 다음 해 스타소프의 기획으로 열린 유작 전시회에서 얻은 영감을 그대로 음악화한 것이다. <전람회의 그림>의 각 곡이 하르트만의 그림 하나하나에 대응하게 되는데, 무소르그스키는 전곡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곡 사이사이에 프롬나드(promenade)를 집어넣어 전람회장의 분위기를 묘사하였다. 자칫 이질적인 그림들의 나열로 산만해지기 쉬운 곡을 전람회장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교묘히 얽어맨 것이다. 전체 10곡으로 구성된 <전람회의 그림>의 원화(原畵)는 몇 개가 남아있지 않아, 분실되었거나 혹은 하르트만의 그림과 관계없이 무소르그스키 스스로의 창작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었으나, 최근 일본 NHK 취재팀의 노력으로 원화로 추정되는 그림이 발견된 바 있다.

피아노로 된 원곡은 무소르그스키 생전에 출판을 보지 못했으며, 그가 죽은지 6년 후인 1886년에 같은 5인조 멤버였던 림스키-콜사코프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곡의 관현악적 색채는 이후 수많은 편곡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중 라벨의 관현악 편곡은 거의 이 곡의 결정판으로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피아노 원곡은 기교적으로 너무나도 난해하여 자주 연주될 기회가 없었지만, 오히려 관현악 편곡에 의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3. 곡 해설

·프롬나드 1 - <전람회의 그림> 중 가장 친근한 멜로디를 가진 부분이다. 점점 더하여지는 화성은 전람회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1. 난장이 - 기괴하고 추하게 생긴 난장이를 불규칙한 악상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프롬나드 2 - 다음곡을 암시하는듯한 조용하고 은은하게 묘사되고 있다.

·2. 옛 성 - 중세 풍의 옛 성, 그리고 음유 시인의 감미롭고도 어두운 노래.

·프롬나드 3 - 프롬나드1과 같은 힘찬 악상으로 연주 된다.

·3. 튀일리: 놀이 뒤의 어린이의 싸움 - 파리의 튀일리 궁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4. 비들로 - 폴란드의 우차, 소가 끄는 큰 바퀴가 달린 수레. 육중한 우차의 움직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프롬나드 4 - 비들로를 본 작곡가의 슬픈심정을 표현하는 단조의 곡이다

·5. 계란 껍질 속의 병아리의 춤 - 하르트만이 발레 의상 데상을 남긴 것을 음악화한 것이다. 껍질 속에서 병아리가 삐약삐약대는 것을 그대로 음악화하고 있다.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쉬밀레 - 두 명의 유태인. 첫 테마는 거만한 부자 골덴베르크이고 다음의 테마는 가난하고 말많은 쉬밀레이다. 나중에는 두 사람이 싸우는데 결국은 골덴베르크의 승리로 끝난다.

·프롬나드 5 - 중간 휴지에 해당하는 당당한 프롬나드. 오늘날이었다면 여기서 햄버거 하나 먹었을지도.

·7. 리모주 시장 - 중부 프랑스의 조그만 도시에 있는 시장의 소란스러운 소동을 표현하고 있다

·8. 카타콤베: 로마의 묘지 - 로마 시대 기독교도들의 묘지인 카타콤베를 탐험하는 하르트만을 표현하는 곡이다.

·죽은 사람의 언어로 - 카타콤베에 이어지는 곡이지만 멜로디 자체는 프롬나드이다. 그림을 떠나서도 그 기분이 그대로 유지됨을 표현한 듯하다.

·9. 닭 발 위의 작은 집: 바바 야가 - 바바 야가는 러시아 동화 속의 마녀로, 닭 발 위에 세워진 오두막에 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다이내믹한 곡이다. 하르트만의 원화는 바바 야가를 기초로 한 벽시계 도안이다.

·10. 키에프의 대문 - 하르트만이 키에프에 옛 러시아의 대문을 재건하고자 그렸던 그림이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그림을 <전람회의 그림>의 마지막 곡으로 하여 웅대하게 끝을 맺는다. 중간중간에 프롬나드의 맬로디를 넣어 걷는듯한 느낌을 준다.클래식을 잘 모르는 초보자라도 이 곡에서만큼은 확실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4. 여러 편곡

무소르그스키와 같은 5인조이며 2년간 같이 생활한 바 있는 림스키-콜사코프는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작품의 편곡을 도맡았다. 원래 무소르그스키가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거칠었고, 그나마도 완전히 완성시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림스키-콜사코프의 손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림스키-콜사코프는 <전람회의 그림> 피아노 악보를 출판하기만 했을 뿐 관현악 편곡은 손대지 않았다. 림스키-콜사코프처럼 무소르그스키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작곡가가 이 곡의 편곡 작업에 손대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측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림스키-콜사코프의 무소르그스키 작품 편곡이 항상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적 오페라인 <보리스 고두노프>도 림스키-콜사코프의 편곡판이 자주 상연되었으나 최근에는 무소르그스키의 원본을 쓰는 경우도 많다.)

원곡은 피아노 곡이었지만 이 곡이 가진 관현악적 무드 탓에 이미 몇몇 사람들이 관현악으로의 편곡을 시도한다. 러시아 작곡가인 투쉬마로프의 편곡 (1891년, 피아노 악보가 첫 출판된지 5년 후) 이후 영국의 우드, 프랑스의 레오나르드 등이 관현악 편곡을 시도하지만, 결정적인 편곡은 1922년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 의해 이루어진다. 1919년 지휘자 쿠세비츠키의 연주회에서 라벨이 <전람회의 그림>을 칭찬하자 쿠세비츠키가 편곡을 공식 의뢰하게 되고 1922년 편곡작업이 완결되자 쿠세비츠키는 이 편곡의 5년간 독점 연주권을 가지게 된다. 이후 라벨의 관현악 편곡판은 <전람회의 그림>의 결정판이 되어 수많은 지휘자에 의해 연주, 녹음된다(다음 페이지 디스코그래피 참조). 라벨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편곡 작업을 한 푼텍이나, 이후의 스토코프스키 편곡 등도 있으나 라벨 것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라벨의 편곡은 지나치게 프랑스 적이라 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원곡인 피아노 연주와 라벨의 편곡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은 무소르그스키의 투박한 흑백 사진에 라벨이 총천연색 물감을 들인 것이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물론 라벨의 편곡은 뛰어나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원래 의도에 충실한 편곡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시도에서 새로운 편곡이 나오게 된다. 이 중 시중에서 CD로 볼 수 있는 것은 고르트차코프의 것이 있다.

70년대 이후로는 전혀 새로운 악기로의 편곡이 시도되고 있다. 오르간 편곡 연주가 나오는가 하면 2대의 피아노로의 편곡도 나왔으며, 심지어는 기타, 신디사이저, 브라스 밴드, 록 밴드 편곡까지 등장했다. 여기서는 피아노 원곡과 라벨의 관현악 편곡, 고르트차코프의 관현악 편곡, 신디사이저 편곡, 록 밴드 편곡의 5가지를 비교하게 된다.


피아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RCA Victor GD 60526, ADD

녹음: 1947년

연주시간: 29'33

듣는 사람은 쉽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필자처럼 직접 쳐보겠다는 아마추어로서는 매우 무모한 시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곡이 기교적으로 매우 난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악보상으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패시지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겨있는 관현악적 색채를 끌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특히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템포와 블규칙한 액센트는 연주에 큰 부담이다. 더군다나 <리모주 시장>같은 곡은 단순한 연주 기교적인 측면으로 봐도 상당히 난해하다. 이런 이유로, 기교적으로 어느 경지에 오르지 않은 피아니스트라면 이 곡을 녹음하기 어렵다. 호로비츠 같은 대가도 실황연주 녹음(1951년)에서 가끔 실수하는 곳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 곡의 피아노 연주 녹음은 20종에 달할 정도로 많다. 최근 나온 수많은 녹음들을 제쳐두고 굳이 이 호로비츠의 '과거의 명연'을 꼽았다는 사실은 필자 스스로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지만, 이 연주만큼은 과거냐 현재냐를 떠나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연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라벨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거친 무소르그스키의 세계를 약간 빠른 듯한 템포와 격렬한 다이내믹으로 엮어내는 호로비츠의 능력은 찬탄을 보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잡음이 좀 많기는 하지만 피아노 소리 자체는 무리없이 울리고 있다.

호로비츠의 <전람회의 그림> 녹음은 이것 외에도 1951년의 실황 녹음이 더 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커플링), 녹음상태가 이것보다 낫기는 해도 연주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떨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 LP로 발매된 겉표지에 씌여져 있는 다음과 같은 문구였다. "Mussorgsky's masterpiece that inspired Emerson, Lake and Palmer's hit!" 당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었던 ELP의 록 편곡 음반의 인기에 힘입어 음반 판매를 늘리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라벨 관현악 편곡>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네메 예르비

Chandos CHAN 8849, DDD

녹음: 1989년

연주시간: 33'02

라벨의 편곡은 기본적으로는 3관 편성에 아주 많은 수의 타악기를 동원한 화려한 편성이다. <옛 성>에서는 음유시인이 이국적인 알토 색소폰으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키에프의 대문>에서는 교회 종을 비롯한 각종 타악기가 등장하여 카타르시스를 고조시키고, 와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쉬밀레>에서는 트럼펫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라벨의 이런 편곡은 찬반 양론으로 갈려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자칫 이는 '원전주의'의 도그마에 갖힐 우려가 있다. 그저 '이렇게도 편곡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고, 원곡인 피아노 연주와 같이 비교해 가며 들어줄 것을 권할 뿐이다.

30종이 넘는 라벨 편곡 연주 가운데에서 하나를 뽑는다는 일은 필자에게도 무척 부담스러운 작업이었다. 스토코프스키(Pearl)의 고색창연한 연주부터 시작하여 토스카니니(RCA), 라이너(RCA), 셀(Sony), 앙세르메(Decca) 등의 연주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필자는 상당히 최근 연주인 예르비의 것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 연주가 100점 짜리는 아니다. 우선 금관과 현악기간의 밸런스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트럼펫의 지나치게 큰 음량이 걸린다. 하지만 라벨의 색채적 편곡에서 무소르그스키의 원래의 투박한 목소리를 어느 정도 구현해 내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높은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비슷한 연주로 스베틀라노프(Melodiya)의 것도 들 수 있겠지만, 예르비에 비해 좀 느리고 답답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씨디 가운데에서는 카라얀(DG, 1986년 녹음)의 것이 주목할 만한데, 만년의 브루크너 녹음에게서 느껴지는 유유자적함이 물씬 배어있는 연주이다. 애호가에 따라서는 답답하게 느낄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키에프의 대문>에 이르러서는 철저히 '라벨적'으로 화려하다.

<고르트차코프 관현악 편곡>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쿠르트 마주어

Teldec 2292-44941-2, DDD

녹음: 1990년

연주시간: 33'35

라벨의 편곡이 지나치게 프랑스적이라 하여 여러 가지 다른 편곡들이 나왔는데, 고르트차코프의 것은 그 중의 하나이다. 고르트차코프는 모스크파 음악원의 교수로서 1950년대에 이 곡을 편곡하였는데, 아마도 학문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기본적으로는 라벨의 편곡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라벨 편곡의 결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방법을 취했는데, 그가 편곡 작업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전곡의 통일성'이었다. 라벨이 각 그림들에서 필요 이상의 것을 이끌어내었다면 고르트차코프는 무소르그스키가 그려낸 그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벨이 도입했던 이국적 색채들은 모두 제거되었고(<옛 성>의 알토 색소폰 삭제가 대표적 예), 무소르그스키의 다이내믹 기호들을 그대로 준수하였으며(의 ff 등), 생략된 프롬나드 5를 '부활'시켰다. 고르트차코프의 편곡은 , , <닭 발위의 작은 집 - 바바 야가>, <키에프의 대문> 등 주로 단순무식성이 강조되는 부분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마주어의 녹음은 편곡의 우수성에 비해서는 좀 쳐지는 일면이 있다. 고르트차코프가 라벨의 화려함을 떠나 무소르그스키의 단순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과는 달리 부드러운 연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텔덱 녹음에서 보여지는 두리뭉실한 듯한 녹음도 여기서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고르트차코프의 편곡 외에도 푼텍의 편곡이 있으나, 유일하게 시중에 나와있는 BIS의 녹음이 크게 처지기 때문에 추천할 만한 것은 못된다.

<신디사이저 편곡>

신디사이저: 이사오 토미타

RCA Victor 60576-2-RG, ADD

녹음: 1974년

연주시간: 37'09

이 음반의 <계란 껍질 속의 병아리의 춤>을 들으면, 누구나 "아, 이거!"라는 탄성을 지르게 될 것이다. <계란 껍질 속의 병아리의 춤>에 관한 한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원곡이나 라벨 편곡보다도 오히려 토미타의 신디사이저 편곡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홀스트의 모음곡을 신디사이저로 편곡한 것 중 부분이 모 방송국의 9시 뉴스 시그널로 한동안 사용되기도 하는 등, 토미타의 신디사이저에 의한 클래식 곡 연주 음반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이 <전람회의 그림> 녹음은 드뷔시 작품집에 이은 토미타의 2번째 음반으로, 젊은 시절의 연주이다. 당시 대중음악계에서는 영국 중심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ELP와 예스가 대표적이다)을 중심으로 1970-71년부터 신디사이저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생전 듣지도 못한 음을 만들어 내는 이상한 기기에 큰 관심이 증폭되면서 그 무한한 가능성에 많은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신디사이저를 다루는 뮤지션들은 앞다투어 자기만의 새로운 소리를 창조해 내는데 주력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기도취적인 실험이 앞서 해프닝적인 연주도 난무하게 된다. 70년대 말 디스코가 범람하면서 신디사이저는 거의 모든 밴드에서 채택하게 되었고, 더 이상 신기할 것이 없는 악기로 전락하게 된다.

토미타의 이 연주도 부분적으로는 그 '자기도취적 해프닝'이 가득하다. 몇몇 곡은 위험수위를 넘어 유치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무소르그스키가 그려낸 음악적 그림들에 가장 확실한 총천연색 물감을 들였다는 의미에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옛 성>에서는 굵직한 목소리의 음유시인이 나와 직접 노래를 하는가 하면 (물론 합성된 목소리이다), <껍질 속의 병아리의 발레>에서는 진짜 병아리의 삐약대는 소리, 고양이 소리 등이 즐거운 스케르초를 연주해 준다. 특히 첫 의 환상적인 음향은 MIDI 시대의 오늘날에 들어도 여전히 참신한 연주이다.

<록 편곡>

에머슨, 레이크 & 파머

키스 에머슨: 일렉트릭 오르간, 신디사이저

그렉 레이크: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 보컬

칼 파머: 드럼

Cotillion (Atlantic) / 서울 SRCD-2180, AAD

녹음: 1971년 실황

연주시간: 33'22

모든 형태의 <전람회의 그림> 편곡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으로 꼽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에머슨, 레이크 & 파머(이하 ELP)의 록 편곡이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프로그레시브 록 열풍은 록의 고급화에 큰 기여를 하며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위로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ELP는 그 작업의 맨 앞에 선 가장 진보적인 밴드였다. 70년대 중반 이후 현대음악에 가까워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난해성은 대중들로부터 유리를 가속화시키게 되었고 급기야 70년대 말의 디스코 열풍은 이 모든 것을 잠재우게 된다.

흔히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이라는 허울 아래 엉거주춤한 크로스오버가 양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 ELP의 이 <전람회의 그림>은 두고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1970년 결성된 이 3인조 밴드는 데뷔 앨범을 낸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전람회의 그림>을 편곡하여 1971년에 실황 연주하게 된다. 아직 그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 등은 발매되지도 않은 때의 비교적 덜 유명한 시절이었다.

전체 10곡 중 상당곡을 빼고 자신들이 새로 작곡해 넣은 곡을 삽입하는 등 록 그룹답게 파격적인 편곡을 하고 있는데, 특히 에서 드러머인 칼 파머가 직접 편곡해 넣은 극도로 화려한 드럼 파트는 압권이다. <바바 야가>에서의 그로테스크한 연주도 일품이지만 곡 중간에 새로 삽입해 넣은 <바바 야가의 저주>는 원곡보다도 더 뛰어난 느낌이다. 다만 종곡인 <키에프의 대문>에서 멤버들이 좀 지쳤는지 맥빠지는 감이 있다. 녹음은 실황이라서 그런지 1971년의 것인데도 그리 상태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DISCOGRAPHY

더글러스 (RCA), 레온스카야 (Teldec), 리히터 (Praga), 머스토넨 (Decca), 바이젠베르그 (EMI), 베레초프스키 (Teldec), 브렌델 (Philips), 브론프만 (Sony), 아쉬케나지 (Decca), 아파나시에프 (Denon), 얀도 (Naxos), 엥게러 (HMF), 우고르스키 (DG), 질버스타인 (DG), 체르카스키 (Nimbus), 카스만 (Calliope), 포크트(EMI), 플레트네프 (Virgin), 호로비츠 (RCA, 2종)
귀유 (Dorian), 아슬란 (Denon), 윌스 (Helios)

<2대의 피아노> A. 파라토레, J. 파라토레 (Koch Schwann)

<라벨 관현악 편곡> 나자레스 / 슬로바키아 필하모닉 (Naxos), 도라티 /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Decca), 도흐나니 / 클리브랜드 (Teldec), 뒤트와 / 몬트리올 심포니 (Decca), 라이너 / 시카고 심포니 (RCA, 2종), 레바인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DG), 레비 / 애틀란타 심포니 (Telarc), 마젤 / 클리브랜드 (Telarc), 무티 / 필라델피아 (EMI),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Sony), 샤이 / 콘서트헤보 (Decca), 셀 / 클리브랜드 (Sony), 솔티 / 시카고 심포니 (Decca), 스베틀라노프 / USSR 심포니 (Melodiya), 시노폴리 / 뉴욕 필하모닉 (DG), 아바도 / 런던 심포니 (DG), 아쉬케나지 / 필하모니아 (Decca), 안체를 / 체코 필하모닉 (Supraphon), 앙세르메 / 스위스 로망드 (Decca, CD 발매되지 않음), 얀손스 / 오슬로 필하모닉 (EMI), 예르비 / 시카고 심포니 (Chandos), 오먼디 / 필라델피아 (RCA), 줄리니 / 시카고 심포니 (DG), 줄리니 / 베를린 필하모닉 (Sony),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DG), 콘론 / 로테르담 필하모닉 (Erato), 쿠세비츠키 / 보스톤 심포니 (Pearl), 테미르카노프 / 로열 필하모닉 (RCA), 토스카니니 / NBC 심포니 (RCA, 2종), 하이팅크 / 콘서트헤보 (Philips, CD 발매되지 않음)

<푼텍 관현악 편곡> 세게르스탐 /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BIS)

<고르트차코프 관현악 편곡> 마주어 / 런던 필하모닉 (Teldec)

토미타 (RCA)
에머슨, 레이크 & 파머 (Cotillion/Atlantic)

※ 야마시타의 기타 연주는 아직 CD로 국내발매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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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의 그림 그 동안 지겹도록 병원 안에서만 볶아쳐대는 이야기만 읽으시느라고 독자 여러분들도 질려버리지나 않았나 모르겠다. 아니, 글 쓰는 내가 먼저 질려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전혀 병원과 상관없는 이야기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가장 엉뚱하게도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필자가 음악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천재적인 평론가의 자질이 있다고는 결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석이 아닌 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서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그걸 나름대로 끄적거려 보는 것이 꼭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특별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써 본다. 여러 군데에서 무식함이 탄로날 것 같은데 양해하시기를...

무소르그스키라는 사람이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곡이 있다. 클래식에 그다지 취미도 없고,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때론 자장가로 활용하기도 하는 나이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이 곡만은 무척 좋아한다. 무소르그스키라는 작곡가의 이름은 몰랐어도 그의 음악은 모르는 사이에 진작에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누구나 월트 디즈니의 환상적인 만화 세계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나도 역시 그러했다. (요새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지만.) '환타지아'라는 만화 영화에서 나오는 '민둥산의 하룻밤'이라는 괴상한 음악이 바로 무소르그스키의 곡이었고 누구의 곡이건 간에 그 음악은 그저 유령과 밤의 마왕이 설치는 으시시한 장면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었을 뿐이다.

음악이란 것은 그저 잠시의 시간 때움을 위한 방편일 수도 있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허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사치스런 장식품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음악은 마약이기도 하고 삶의 전부이기도 한 것이다.

사춘기에 한 때 라디오를 자기의 분신처럼 끼고 살아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석학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팝 스타들의 신상과 행적을 둘둘 꿰어 본 일도 있을 것이다. 헌데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간사한 것이어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많은 것이 변해 버린다.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던 레코드판들은 어느새 방 한구석에서 먼지를 옴팍 뒤집어쓰고 있고, 라디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서 애태우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껏 녹음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덜커덕 중간에 멘트를 집어넣어 노래를 망쳐 버리는 디제이를 원망하던 그 열정이 유치하게 느껴지게 되는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음악이란, 특히나 대중 음악이란 그저 소모품, 일회용 컵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진정 그렇기만 하다면 내가 뭐하러 힘들여 이 글을 쓰고 있겠는가. 물론 나는 지금도 지구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엄청난 양의 대중 음악들의 대부분은 그저 잠깐의 즐거움을 위한 상품일 뿐이며 그저 알맹이를 홀랑 먹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라곤 비닐 봉지와 나무 막대기 하나, 즉, 쓰레기 밖에 없는 아이스케키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깔려 죽을 것만 같이 엄청난 쓰레기 더미 속에도 분명히 보석들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다시 들어보고 또 들어보아도 여전히 변함없는 감동을 주는 명곡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음악은 클래식뿐이라며 대중 음악을 듣고서도 감동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나를 비웃으려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만 읽어주시기 바란다. 세상에 그런 편견이 어디 있는가. 좋은 음악을 찾아서 들으려는 노력은 하지도 않고 쓰레기만 뒤적거리면서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취향이 다른 것을 가지고 음악의 진가를 모른다고 비웃어서야 되겠는가. (에고, 너무 잘난 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쑥스러워 지긴 하지만)

내친 김에 주장하건대 나는 그룹 '메탈리카'의 멤버가 누구누구며, 머라이어 캐리의 몸 칫수가 얼마인지 (참, 이건 근데 아무도 모르겠다... 누구 아시는 분?) 혹은 바하가 음악의 아버지고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는데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동성 연애 부부인지, 베토벤이 악성이라는데 과연 얼마나 목소리가 나쁜지, 제 1 주제가 어떻고 변주곡 형식이고 론도고 미뉴엣이고, 등등, 뭐 이런데 대해서 해박한 노가리를 깔 자신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냥 음악을 듣고 이 음악이 졸린지 아닌지, 그냥 웬지 좋은지, 아니면 이유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지 판별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이걸 지금 듣고 일회용 컵처럼 미련 없이 구겨서 던져 버리고 (자원을 재활용합시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인지, 아니면 소중히 모셔 두었다가 어느 여유로운 주말 저녁에 문득 다시 꺼내서 플레이어에 얹을 것인지는, 지식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원초적인 감성이 일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완전히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전람회의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가 듣고 감동을 받았던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전람회의 그림'은 아니었다. (혹시 원곡은 피아노 곡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이전에 내 정신을 확 뒤집어 버린 건, 전설적인 삼인조 전위 록 그룹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에고, 한글로 써 놓으니까 좀 이상하네. 스펠링 몰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Emerson, Lake, & Palmer입니다. 무소르그스키 = Mussorgsky. 히히... 그저 누가 무식하댈까봐... 근데 정말 스펠링 맞나?) 가 편곡하여 연주하고 노래한 'Pictures at exibition'이었다. 원곡의 그로테스크함을 신디사이저의 현란한 기교가 더욱 강조하고 괴물스럽기도 하고 요사스럽기도(?)한 지극히 현대적인 불협화음, 그 속에서 좀 안 어울리게 차분한 보컬, 거세게 듣는 이를 몰아치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 가득한 피날레... 하여튼 꼼짝 못하고 숨죽이고 들어야만 했다.

클래식의 테마를 대중 음악에 이용한 곡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실망스런 곡들이 훨씬 많다. Electric Light Orchestra의 'Roll over Beethoven'을 듣고 첫머리에 나오는 난데 없는 그 유명한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테마는 어째 억지스럽기만 했다. 이름도 잘 생각 안나는 어떤 밴드가 'Midnight Blue'라는 제목으로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의 그 유명한 테마에 가사를 붙혀 불렀을 때는 (제법 힛트했었다.) 정말 짜증이 났다. 세상에 버려놔도 이렇게 버릴 수가 있나! 솔직히 말해서 신승훈 노래에 튀어나오는 'Ich liebe dich.'도 좀 맘에 안 든다. (다른 의견이 있으실런지 모르겠지만 조금 참고 읽어주세요.)

퀸이 공연 끝마다 연주하는 영국 국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일본의 전자 음악의 거장인 Tomita 가 편곡하여 연주한 드뷔시의 '월광'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전람회의 그림'은 압도적인 감동이었으며, 지미 핸드릭스가 전기 기타의 피드백 주법을 이용해 연주한 미국 국가는, - 아니, 연주라기 보다는 신성한 한 나라의 국가를 거의 깔아뭉개는 것 같아서 안됐기는 하지만, 나는 미국 국민은 아니니까 - 웬지 통쾌한 느낌이었다. 참, 그리고 들국화가 노래했던 '고향의 봄'도 괜찮았다. 아차, 이건 동요던가? 아닌가? 그만 넘어갑시다.

그 다음으로 들은 '전람회의 그림'도 좀 엉뚱한 것이었다. 1980년, 가쭈히토 야마시타라는 당시 19세의 젊은 일본 기타리스트가 대담하게도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기타 독주곡으로 편곡하여 연주한 것이다. 클래식 기타라는 악기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악기라고만 생각하였던 나로서는 도대체 기타로 이런 곡을 연주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그는 좀 거칠기는 하지만 젊디 젊은 열정과 놀라운 힘으로 이 난곡을 멋지게 소화해 내었다. (이 연주자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전곡을 기타곡으로 편곡, 연주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엉뚱한 '전람회의 그림'들을 먼저 들은 후에서야 비로소 그 유명한 라벨의 관현악 편곡 '전람회의 그림'을 듣게 되었다. 이미 여러 번 들어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곡이었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 Horowitz가 연주한, 거의 원곡에 가까운 '전람회의 그림'을 피아노 독주로 듣게 되었다. Horowitz 자신이 약간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1947년에 녹음한 것을 다시 CD로 만든 것이라 그런지 음질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들을만 했다. 들으면서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건, 어쩐지 시조새의 화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네...'

장황하게 이 곡 자체에 대해서 해설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요상스럽게 뒤뚱거리는 '프롬나드'에서 부터 전율스러울 정도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키에프의 큰 대문'에 이르기까지 한 곡 한 곡이 정말 그림을 보듯이 뚜렷하고 생생하다. 헌데 처음에 들었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것이 가장 인상에 깊게 남는 것은 웬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클래식 체질이 아닌가보다.

각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주된 네 가지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은 생각을 하노라면, 음악의 세계란 것이 얼마나 다양한 것인가, 또 편견스럽게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러분, 너무 편식하지 맙시다!

199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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