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락

2001 05 28

[ 서평? ] 장정일이 가진 락에 대한 관점 그리고 반론 다음은 [ 장정일의 독서일기 1993.1~1994.10 ] p.116-p.118에 걸쳐있는 작가 장정일의 락에 대한 글입니다.

이 책은 장정일이 책을 읽고 그 순간순간에 느낀 감상을 기록한 일기를 모은 것입니다. 인터넷서점의 서평모음쯤으로 생각하시면 무난할 듯 한데 가끔 촌철살인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그리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2월 7일자 일기에는 [ 가스펠, 블루스, 재즈 ]와 [ Rock, 젊음의 반란 ]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적은 그의 음악관이 적혀있습니다. 재즈에 관해서는 재즈가 가진 포용력 때문에 재즈는 세계적인 음악이 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지만 타이핑하기 싫어서 안쳤습니다...^^;; 장정일씨가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어설프고 약간은 오만한 청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글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1994.2.7 ...

(서동진의) [ Rock, 젊음의 반란 ]은 본문보다 곁다리로 붙은 남은 얘기가 훨씬 재미있다.

비유하자면,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동판에서 혹사당한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이 막걸리를 마시면 이미자나 배호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록 음악 역시 비틀즈가 영국의 공업도시인 리버풀 출신이란 사실이 보여주듯 노동계층에 의해 노동자들의 선술집에서 불리워졌다. 록 음악에는 합리주의적으로 구축된 세계와 노동에 짓눌린 육체에 자연성을 베풀어주려는 해방의 힘이 깃들어있다.

말하자면 록 음악은 철저하게 육체의 음악이다. 그런 록음악이 한국에서는 굉장히 생각하며 듣는 음악으로 잘못 수용되었다. "뮤지션들간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계보부터 그들이 속한 음악 장르, 심지어는 어느 회사 기타에 어느 이펙터를 쓰는지까지 두루두루 내꿰는 이들이 많다. 이런 기형적인 소비풍토 탓에 록 음악 감상자들에겐 상당힌 지식과 인내가 요구된다." 록 음악을 육체로 듣지않고 머리로 듣는 기형적인 풍토탓에 우리나라에선 "팝에서 록, 그 다음에 메틀이나 프로그레시브 또 그 다음엔 재즈하는 식으로 정해진 코스가 있다." 서동진은 이 부분에서 참 놀라운 의견을 냈다. 한국의 록 감상자들이 록의 본성을 배신했기에 누구의 말을 흉내내어 쓰자면, 읽은 것은 육체요 얻은것은 현학이라는 풍경에 당도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팝을, 그 다음엔 메탈을 그리고 지금은 재즈에 반해있는 나 역시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기는 하지만 그가 말한 것과 같은 전철을 밟아왔다. 그러나 뮤지션들간의 계보를 추적한다 하는 짓거리는 흥미를 끌지 않았다. 내가 저즈에 반한 것은 메틀을 들을 때부터 연주 중심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음악 편력 가운데 특기할 것은, 확실한 신념 아래 프로그레시브는 아예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십대 때 내가 생각했던 세계상과 연관된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어린 내 마음에 세계란 한없이 속되고 비천한 것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레시브 음악은 마치 세계가 현학으로 이루어졌다는 듯이 속임수를 쓴다.

내친김에 기록하면, 프로그레시브에 구역질을 했던 내 음악감상벽은 당시의 내 문학취미와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옳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었던 시는 김광규밖에 없었으며, 이승훈류의 시들에서는 위선된 감정만 느꼈다......

마지막으로 록은 육체의 음악이다. 그러면 프로그레시브는 두뇌의 음악이겠지. 두 음악은 테제와 안티테제를 구성한다. 두 귓구멍이 아니라 전신의 땀구멍으로 밀려드는 록이 듣는 이의 고개짓과 발장난을 유도한다면 난 체하는 프로그레시트는 심각한 듯 인상을 쓰게 하고 열 손가락으로 머리털을 쥐어뜯게 만든다. 여기에 재즈가 신테제로 등장한다. 재즈 연주자의 섬세한 연주는 듣는 이의 주의를 요청하고 즐거운 박자는 몸을 끄덕이게 한다.

...


반론

락이 육체의 음악이라는 말은 옳지만 그것의 성격을 기원만으로 규정지어서는 곤란하다. 락이 육체의 음악으로 출발했을지라도 많은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락은 너무 많은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락의 포용력은 재즈가 범세계적인 음악이 된 것처럼 락도 범세계적인 음악이 되게끔 만들었다.

락의 지적 탐구에 대한 노력이 프로그레시브 락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에 반하는 흐름은 락앤롤이나 펑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메틀같은 경우는 지적인 음악이면서 동시에 몸을 움직이는 요소도 무척 강한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그레시브가 심각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펑크가 단순하기만 한 것도 아니니 그것의 예로 핑크 플로이드와 클래쉬를 들 수 있다.

한국에서 락음악의 수용은 확실히 장정일이 지적한대로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박정권이후 군사정부가 문화를 억압하는 정책을 펴왔기에 그 억눌림 속에서 뒤틀려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락음악이 서구의 음악인 이상 그것이 들어오는 형태는 몇몇 선구자(?)들의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소수에 의해 너무 권위적인 형태로 굳어져버렸기 때문에 뒤틀린 문화가 제대로 바로잡힐 수 없었다. 이것은 열린 문화적 태도를 지니면 시간에 의해 곧 해소될 문제이다. 록을 배신하고 말고라고 말할정도의 거창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이펙터까지 줄줄 꿰는 사람은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대단하다기보다는 바보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뮤지션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짓거리'는 사실 호사가들의 취미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락음악에서 그런 감상태도를 갖는 사람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장정일이 심각한 편견에 빠져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며 일상에서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아날학파라는 말이 역사학계에서 인정되는 말일 정도로 당연한 방법론이다. 요즘에는 의자에서 나타나는 양식에 관한 역사나 서양화에 나타난 죽음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생사관에 대해 분석하는 책들이 아주 좋은 교양서로 읽히고 있다. 그리고 장정일도 문학사는 당연히 읽거나 공부했을 것이다.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한 편견은 무척이나 심각한데 프로그레시브 락은 결코 그렇게 현학적인 음악이 아니다. 프로그레시브 락을 들으면서 '세계가 현학으로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장정일은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해 헨리 카우나 킹 크림즌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들 정도로 생각한 듯 하다. 이는 장정일의 탓이라기보다는 국내에 프로그레시브 락이 뭔가 대단한 것인듯 들여온 몇몇 평론가들의 탓이다. 사실 음악을 어느정도 폭넓게 듣는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락과 다른 락을 별로 구분하지 않는다. 프로그레시브 라는 말 자체가 작가들의 태도를 뜻하는 말이지 음악적 스타일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 부분은 여기에 변증법을 들이대어 재즈를 합의 음악으로 적은 것이다. 재즈는 락과는 태생조차 다른 음악이고 그냥 다른 음악일 뿐인데 말이다. 음악에 대해 수준을 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변증법처럼 과도하게 이분법적인 논리를 들이대기엔 말이다. 재즈가 락이나 탱고를 수용하면 합이 될 수 있는가? 락이 재즈나 클래식을 도입한 것도 합인가? 그럼 프로그레시브 락은 합인가?

하지만 장정일이 이러한 견해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이해안가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팝-메틀-프록, 락 일반-재즈, 클래식, 가요(+국악) 이런 순서로 음악을 들어왔으며 몇몇 짜증나는 평론가들이 무책임하게 추천한 음반을을 사듣고는 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좋다는 음악이 왜 구리게 들릴까같은 생각도 안한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락을 듣다가 가요로 넘어갔는지? 이것은 음악듣는데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차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런지.

중요한 것은 편견없이 감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자신과 얼마나 합치되는가가 음악 선택의 기준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론 현학적으로 음악을 들을수도 있을것이다. 그거야 개인적인 것이니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나에게 그것을 들어라라고 강요하지 않는한 말이다. 나도 별로 현학적인 음악을 즐길 생각은 없는데 자꾸 음악에 탐닉하다보니 그렇게도 되고 뭐 그런거니까. 나는 SM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장정일은 소설로 쓰고싶은만큼 탐닉하는 것과 같은거다.

다행히 김대중 정권 이후 조금씩 우리 문화환경이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변하고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없어서 못들을 때와 많아서 고르는 것이 문제인 것은 분명히 상황이 다른 것이니까.

그나저나 7년이 지난 지금 장정일은 어떤 음악을 즐기고 어떤 관점으로 음악을 들을지 궁금하다.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