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벗어난 시장을 찾아서

1 # 책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소개[ | ]

자본을 벗어난 시장을 찾아서
고전적 좌파의 질곡을 넘는 대안의 경제 모델… 문화적으로 경제·정치 행위 재구조화 시도

<img src=" " align=left> 사진/ 실천적 이론가 심광현 씨의 상상력과 이론적 도발이 돋보이는 <문화사회와 문화정치>

“90년대 내내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운동의 침체 상황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주류를 형성해온 헤겔리안 마르크스주의의 질곡을 넘어설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계기를 헤겔 이전의 칸트나 스피노자, 그 이후의 비트겐슈타인, 알튀세르, 들뢰즈 등에게서 찾으려고 고심하던 중이었다.” 거대담론의 질풍노도와 무기력이 순식간에 교차해간 지난 시대를 거쳐온 사회과학자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고민이다. 이론신서와 문화이론 전문지를 꾸준히 만들어온 동인들은 이 고민을 조직적으로, 이론적으로 실천해온 대표적 이론가 집단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좌파 이론 진영의 주요한 버팀목이다. 이들은 “세기의 전환점에서 창백한 금욕의 과학을 떠나보내고 저항의 생명력에 넘치는 ‘욕망의 과학’을 맞이하자”고 외치며 새로운 이론적 혁명을 꿈꿔왔다. 최근 서른네 번째 이론신서로 나온 심광현씨의 <문화사회와 문화정치>(문화과학사 펴냄, 02-335-0461)는 그 성과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글들을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탄탄한 이론적 깊이에 뿌리를 둔 육중한 상상력과 이론적 도발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된 시장’이란 논문은 ‘고전적 좌파’를 당혹스럽게 할 논의를 담고 있다. 심씨 자신은 이 논문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변혁론을) 이론화한 것은 아직 없었다. 문화과학 내부에서는 새롭고 낯설지만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이 글에 대체로 동의했다”며 독창성과 논리적 설득력을 자부했다.

실천적 이론가 심광현씨의 야심찬 도발

<img src=" " align=right> 사진/ 미주자유무역지대 반대시위를 벌이는 브라질 은행노동자들. (AP연합)

심씨의 새로운 논의를 만나기에 앞서 그가 ‘강단 좌파’가 아닌 실천적 이론가임을 알아두는 건 필요한 예의처럼 보인다. 현재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원장,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집행위원, 편집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 영화인회의 정책위원 등 묵직한 직함들을 꽤 많이 갖고 있다. “99년에 스크린쿼터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시 99년 가을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와 ‘영화인회의’ 두 단체 창립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문화운동과 사회운동과의 연대 활동에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간략하나마 그의 최근 행보를 잘 요약해준다.

제목부터가 형용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는 ‘자본주의로부터 해방된 시장’은 경제인류학자로 불리는 칼 폴라니,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등 이론모델이 아닌 실제 역사를 통해 성찰한 경제 형태를 마르크스 노동가치론과 ‘절합’(분절과 결합을 동시에 수행)한 것이다. 이 글이 제기하는 첫 번째 논쟁점은 시장에 대한 적극적 승인에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돌풍을 타고 번지는 무차별한 시장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전망할 때 시장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와 시장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에 대한 혐오가 시장이라는 경제적 작동기제 자체에 대한 거부로 직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치 국가주의에 대한 혐오가 국가라는 정치적 작동 기제 자체에 대한 거부로 직결되는 것이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고 보듯이 말이다.” 물론 주류 경제학도 인정하는 시장의 실패를 포함해 시장이 갖고 있는 폐해는 심각하다. 시장은 겉으로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거래와 교환의 장소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선택, 서열화,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 결과 특정한 장소, 상품, 인간관계를 특권화하거나 저급화, 황폐화한다. 특히 과거에 공짜로 접근 가능했던 자원들이 상품화되고 공공의 공간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시장의 확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활의 질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된 시장>은 이런 병폐가 시장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불행한 결합, 또는 시장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에서 나온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핵심 기제는 잉여가치의 축적 메커니즘에 있는 것이지, 시장의 외연적 확대(세계화) 여부나 일상생활의 상품화 정도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이 타자와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이 간과해선 안 되는 시장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자본·시장의 불행한 결합… 칸트의 재해석

<img src=" " align=left> 사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구조적 실업을 만든다. 경관과 풍광이 좋은 곳에 들어선 강남의 타워팰리스는 시장주의와 결탁한 서열화·배제의 자본주의원리를 상징한다. (김종수 기자)

“시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지 교차로일 뿐이다. 문제는 교차로를 무조건 넓히고 물건, 사람, 정보를 강제로 24시간 움직이게 하려는 자본의 무자비한 압력 자체이다. 교차로가 아예 없어서 필요할 때 자유롭게 길을 건널 수 없게 하는 게 사회주의의 문제였다면, 매순간 교차로를 넘나드는 것을 삶의 규범으로 강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이 야기하는 문제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역광을, 계산과 투기, 힘의 축적과 세력관계를 제거할 수 있다면, 시장이 평화롭고 투명하며 카니발적인 교환의 세계로 남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꿈’이 가능해진다. 이 꿈은 시장을 배제했던 현실 사회주의와도, 소득의 재분배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사회민주주의와도 다른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사적 소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심씨는 여기서 또 한번 ‘고전적 좌파’를 곤혹스럽게 할 논리를 펼치기 시작한다. 경쟁적 시장원리와 사적 소유권을 사회생활의 제1원리로 만드는 주범은 자본주의지만, 사적 소유권 자체가 자본주의와 동일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적 소유를 개인의 자유의 외적 표현으로 보는데, 이 지점에서 심씨 자신이 논쟁적 구도라고 인정하는 칸트의 재해석이 이뤄진다.

“칸트에 의하면 지구상의 물질적 기초는 인간에게 미리 주어진 것, 선사된 것이지만 그것은 주인 없는 것도 아니며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모든 사람의 것이다. 사적 소유는 공동 소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양자는 배척 관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에 놓인다. 이로써 타인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타인의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는) 대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비자본주의적 시장으로 가기 위한 조건, 즉 시장과 국가의 작동을 허용하면서(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면서) 동시에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연합 사회가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가도록(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는) 하는 이율배반적 요구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있다. 답은 다시 칸트에게서 찾아진다(그동안 칸트를 마르크스에서 가장 먼 존재쯤으로 봤으나 칸트와 마르크스의 상관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봐야한다는 게 심씨의 주장이다. 칸트야말로 마르크스와 가장 가까우며, 헤겔의 철학이야말로 통합된 전체 혹은 유기적 전체라는 관점에서 현실 분석을 매몰시키고 정치·경제·문화의 3차원적 ‘절합’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순수이성, 실천이성, 반성적 판단력의 역할을 영역별로 묶어둔 칸트처럼 각각의 원리들의 영역과 층위를 제한하고 구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제 영역인 시장에서는 성과나 능력에 따라 사람을 대우하는 원칙이, 정치 영역에서 평등의 원칙이, 가족·학교 등의 사회화 영역에선 필요의 원칙 또는 약자 보호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마스터플랜 세우고 이행과제들 제시

‘…해방된 시장’이 제시하는 비자본주의적 시장의 세계화는 궁극적인 꿈을 이루기 위한 기초로서 탐색해본 경제 모델이다. 심씨가 꿈꾸는 궁극의 목표는 경제 행위나 정치 행위를 문화적으로 재구조화, 재조직화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을 최소화하고(노동시간 단축), 비임금노동으로서의 문화활동(창조적 작업과 자율적인 정치적 행위)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실천 과제는 정치·경제·문화의 세 영역을 동시에 살펴보는 데서 나온다. ‘…해방된 시장’이 일종의 마스터플랜이라면, 이후에 나오는 글들인 ‘사회적 경제와 문화사회로의 이행에 관하여’, ‘문화사회를 향한 새로운 문화운동의 과제’, ‘이데올로기 비판과 욕망의 정치학의 절합’, ‘들뢰즈와 창조성의 정치학’ 등은 더욱 정교한 세공이 필요해보이는 각론들이다. <문화사회와 문화정치>는 무척 야심찬 이론적 실천서다.

2 # 촌평[ | ]

눈길을 확 잡는다. 책을 읽어봐야 할까. -- 거북이 2003-3-20 17:09

3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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