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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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
The Death of Ivan Ilyich
이반 일리치의 죽음

2 # 거북이[편집]

결코 길지 않은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울림이 꽤 있다. 장이 숫자로 나뉘어있고 대략의 내용과 내 느낌은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일수도 있으니 책을 안본 분은 아래를 읽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1. 일리치의 죽음과 장례식 장면 : 그의 존재감은 큰듯 했으나 결코 크지 않았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2. 일리치의 순탄한 삶 : 남부럽지않게 성공가도를 달려온 일리치의 삶은 나름대로 유쾌했고 고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지리멸렬한 것이기도 했다.
  3. 고상함이 사라지기 시작함 : 일리치의 성공가도에는 약간의 고난이 있었으나 일리치는 적절한 속물근성으로 그것을 극복했다. 세속적 성공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4. 병마의 침입 : 허리를 살짝 다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큰 고통으로 바뀐다. 육체의 지속적인 고통은 일리치의 삶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아내도, 의사도 일리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병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다.
  5. 죽음에 대한 공포 : 일리치는 많이 쇠약해지고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보고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함에 방황한다.
  6. 죽음에 대한 공포(계속) :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에서 실존하는 것은 고통과 공포 뿐이다.
  7. 정서적 위안 : 일리치에게는 하인 게라심의 무조건적인 보살핌 외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이 병으로인해 고상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또 괴로워한다.
  8. 가족과의 괴리감 : 예약되어있는 오페라를 보러가기 위해 가족들이 단장을 하고 나가는데 일리치는 자신만이 그들과 다르고 자신만이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에게 순수한 연민으로 느껴지는 것은 게라심 뿐이다.
  9. 반성 :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회고한다. 어린시절 일부를 제외하고 그는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절이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는 충실히 살았는데도 말이다.
  10. 반성 (계속) :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끝없이 이어질것만같은 고통과 상념속에서 일리치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조금씩 삶의 마무리를 준비한다.
  11. 부정 : 자신의 존재가 주변에 피해 자체임을 인식하게 되고 만사 귀찮기만 하며 자신에 대한 모든 행위들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12. 죽음 : 죽음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처럼 여겨지고, 고통속에서 일리치는 죽음을 공포가 아닌 빛으로 인식한 채 죽는다.

주절주절 적어보았지만 글쎄 이 짧은 소설은 저런식으로 정리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 소설은 그다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일리치가 세속의 성공으로 적당히 안주하는 모습이 나와 그리 멀지 않다고 느껴졌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이고, 또 하나는 부모님이 아프시다보니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요즈음의 생활이 또 하나 이유이다.

현대의학 운운하지만 병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이고, 병을 고치는 것은 여전히 환자이지 의사가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병마와 대면했을때 얻어지는 고통은 온전히 환자의 것일게다. 그것은 고통이고 고독이다. 몸이 조금만 피곤하거나 삶이 조금만 피폐해져도 금방 그런 고독과 고통을 느끼곤 하는데 병에 걸려서 희망을 찾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그것은 너무나 큰 것임은 분명하다.

이 소설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시기가 1882년 경이라고 하니 이 소설에는 톨스토이의 체험이 깊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년쯤 후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 거북이 2004-8-18 12:50 am

3 같이 보기[편집]

4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