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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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cence.jpg

  • 감독 : 오시이 마모루
  • 원제 : イノセンス(2004)

1 # 거북이[편집]

  • 십년이 지났는데 주제가 공각기동대와 똑같다. 중언부언이고 지겹다.
  • CG는 죽인다.
  • 초기 작품이나 OVA등을 보면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오시이 마모루는 재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작가인데 나날이 할말을 제대로 못하게 되고있다. 아마도 예전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말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말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 공각기동대가 분명 기념비적인 작품이긴 했지만, 그는 결코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가는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다른 작가들 CG를 좀 맡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_- -- 거북이 2004-10-22 2:19 am

2 # 이노센스 해부[편집]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해부

“네트는 광대해.” 내무성 공안 9과()의 쿠사나기 소좌가 그렇게 읊조리며 네트 속으로 사라진 건 1995년이었다.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상인격인 게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며 데카르트적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던 는, 식상한 표현을 구태여 빌려보자면 당대의 ‘컬트영화’가 되었다. 의 워쇼스키 형제를 위시한 서구 감독들은 인터뷰에서, 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토로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DVD 판매수익을 올렸다. 일본 내에서 겨우 12만 관객을 동원했던 는 그렇게 부활했다. 부활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일본 대중에게 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처럼- 외국에서의 컬트적 인기로 역수입된 문화적 상품의 사례 중 하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그동안 나 <블레이드 러너>로 일본이 할리우드에 졌던 빚을 로 다 갚았다”는 평가를 뒤늦게 내렸고, 오타쿠들의 신화였던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으로 대중에게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사실, 오시이 마모루에 대한 일본 외(특히 한국) 비평가들과 마니아들의 평가는 좀 호들갑스러운 데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는 확실히 애니메이션의 신천지를 발견한 작품 중 하나였고, 일본 내 흥행성적의 부진으로 잊혀져버렸다면 애석한 일이었을 테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완성된 호사스러운 CG 비주얼

열광적인 팬덤현상으로 부활한 였으니 속편은 언젠가는 나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일본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기 시작한 최근 10여년간, 미야자키 하야오(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만이 승승장구하던 암흑의 시기에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건 기대는 적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의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가 2001년에 속편을 간행한 것은 후속편에 대한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오시이 마모루의 프로덕션 IG에서 를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호평을 받아낸 것도 팬들의 기대를 더했다. 물론 오시이 마모루의 완벽주의가 간단하게 후속편을 내놓으리라는 것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의 후속편 가 마침내 완성을 본 것은 제작이 개시된 2000년으로부터 4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이었다. 저렴한 자본으로 완성된 전작과 달리 20억엔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일종의 커다란 이벤트로 여겨졌다. 사실 는 보다 더 협소한 세계의 협소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전편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32년.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안드로이드)이 인간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전편에서 쿠사나기 소좌의 파트너였던 공안 9과의 형사 바트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로봇 제조회사인 로커스 솔루스사가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쿠사나기 소좌의 유령과 관객을 대면시키기 위한 일종의 통과제의다.

시작부터 관객을 확 잡아끄는 것은 무시무시한 물량으로 완성된 영화의 비주얼이다. “뉴욕이야말로 고딕의 마을이었다. 솟아오른 마천루의 단호한 수직선의 거리. 어디를 걸어도 대면하는 것은 수직으로 뻗은 벽뿐으로, 원경없는 폐쇄된 거리. 고층건물의 틈으로부터 들이비치는 거대한 반사광이 근대적인 거리를 거대한 사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의 로케이션 헌팅으로 방문했던 홍콩에서, 굉장한 소나기를 만나 대로가 일순간 운하처럼 변모했던 것을 보고 의 미래도시를 창조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말처럼, 현대 홍콩을 도쿄만에 옮겨놓은 듯했던 전편의 미래도시는 좀더 인공적인 고딕의 메트로폴리스 이미지로 <스왈로우 테일>과 <킬 빌>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했던 다네다 요헤이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전편의 배경이 전형적인 사이버 펑크 모험담의 세계였다면, 의 도시는 어둠침침한 누아르의 세계가 더 잘 어울리는 장소다. 는 와 등이 무작위로 카피했던 자신의 창조물을 거슬러올라가, 한번도 그가 영향력을 부인한 적 없었던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를 또다시 오마주한 듯하다(주연인 바트 역시 전편과는 상당히 다른 -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형사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은, 오시이 마모루가 본격적으로 CG장면을 과감하게 삽입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마저 로 부분적 3D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최근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던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アップルシ-ド)가 모션캡처로 사람의 움직임을 캡처해 CG화한 다음 애니메이션 셀을 제조하는 툰쉐이딩(Toonshading)기술을 활용한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3D 도입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에 이르렀다. 변화에 굼뜬 보수적인 일본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주저하지 않았다. 는 CG로 창조한 3D 화면들이 전례없이 많은 장면들에서 등장한다. 몇몇 장면들에서는 지나친 CG 사용이 전체적인 미장센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과 몽상의 어긋한 공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오시이 마모루의 의도에는 적절하게 부합한다.

과연 오시이 마모루는 과연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었나

오시이 마모루가 변화한 지점은 호사스러운 CG 화면으로 드러나는 기술적 진보뿐만은 아니다. 프로덕션이 시작되었던 4년 전 IG프로덕션의 이시카와 마쓰히사 프로듀서와 오시이 마모루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드림웍스로 향했다. 는 일본에서보다 외국에서의 비평적, 흥행적 성과가 더욱 뛰어났던 작품이므로 현실적으로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의 합작이 용이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던 드림웍스쪽은 작품의 실질적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제작과 배급에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시카와 프로듀서와 오시이 마모루의 실용적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 내에서의 성과에도 갈증이 나 있었던 두 사람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를 찾아가 협력을 요청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들로 매년 흥행신화를 경신해왔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탄탄한 홍보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시카와 프로듀서의 결단이었다. “오시이 감독은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최고의 걸작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작품을 많은 이들이 봐줄까 하는 문제다”라는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고민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진행된 홍보활동으로 결실을 맺었다. 제목이 로 바뀌고, 대중적인 주제곡이 채택되고, 온갖 전시회들이 개최된 것도 스즈키 도시오의 공격적인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친절한 오락거리로서의 오시이 마모루 영화”라는 어울리지 않는 외피를 둘러싸고 진행된 이 모든 활동들에 오시이 마모루 역시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 가장 젊은이들에게 친절한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다”라는 대답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배급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의 일본 내 흥행성적은 좋지 못했다. 뚜껑을 열고봤더니 는 보다도 더 개인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극장 배급으로 얻는 수익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극장 개봉은 일종의 프로모션일 뿐 DVD나 TV의 판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10여년을 바라보며 수익을 맞출 생각이다”라는 이시카와 프로듀서는 세계시장에서의 DVD 판매와 잠재적인 부가수익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덕션 IG가 로 인해 재정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도 있다. 해외 세일즈를 위한 발걸음은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올해 칸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장밋빛 전망을 실어주었다(실제로 의 경쟁작 출품이 드림웍스의 막후지원에 상당 부분 힘을 얻은 결과라는 풍문이 칸영화제 마켓에서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전폭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들을 지원했던 서구 비평계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철학적인 설교로 가득한 비관적인 이야기는 이 영화를 ‘아니메 팬’들로만 한정시키게 만들 것이다”(<할리우드 리포터>), “오시이 마모루는 로 부렸던 마술을 다시 행하는 데 실패했다. 너무 말이 많고, 반복적이며, 새로운 고민없이 같은 주제만을 되새김질한다”() 같은 혹평들과 “이 영화의 순결한(Innocent) 페이소스는 인간이 되고 싶은 사이보그의 그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사의 생명을 얻고자 몸부림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것이다. 나를 팬보이(오타쿠)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는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아니메다”(<빌리지 보이스>)라는 호평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동서양의 경구를 모조리 모은 개인적인 잠언집 관객과 비평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자막읽기에 급급해서 대체 스토리를 따라갈 여지가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는 주인공들이 밀턴, 데카르트, 공자와 성경을 인용하며 이야기하는 매우 철학적인 영화다. 관객은 자막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칠 수도 있다. 드림웍스가 이 작품을 더빙한다면 영화를 이해하는 게 약간은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던졌던 조언은 일리가 있다. “우리의 신과 희망이 과학적 현상이라면 사랑 또한 과학현상이라고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라는 빌리에 드 릴라당의 1886년 SF소설 <미래의 이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된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가 끌어온 온갖 경구로 가득 차 있다. “시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잠언, “자신의 얼굴이 비뚤어져 있는데 거울을 탓해서 뭐 하나”라는 고골리의 잠언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원전을 밝히지 않은 채 툭툭 던져지며, 소설 <장 크리스토프>의 대사나 부처의 설법집, 공자의 잠언, 결국에는 데카르트에 대한 인용들까지 등장한다. “거의 모두가 인용된 것이다. 그러한 말들은 내가 이 작품을 한다고 결정한 뒤 내가 모아둔 말을 엄선한 것이다. 전부, 이 작품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는 그런 대사 중 한두개를 공감한다고 전부를 이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는 속도와 영화의 속도를 맞추는 것보단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오시이 마모루의 말처럼, 의 대사는 오시이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동서양의 경구들을 모조리 끌어와 만들어낸 잠언집이다. 이런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IG프로덕션과 드림웍스의 거대 자본을 끌어온 오시이 마모루의 시도는 모험이었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 가장 폭이 넓은 작품으로 완성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간결한 자부심은 풀기 힘든 퍼즐처럼 느껴진다.

오시이 마모루의 가장 순수한(Innocent) 작품 (Innocence)

다시 스토리를 살펴보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던 바트는 로봇 제조회사 로커스 솔루스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리고 (모두들 기대했듯이) 쿠사나기 소좌와의 랑데부가 짧으나마 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바트는 에서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쿠사나기 소좌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준다. 그런 그를 향해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이라고 무심하게 던지는 쿠사나기 소좌. 이 대사는 마치 오시이 마모루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잠언을 ‘나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존재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승화시켰던 의 철학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아니다. 인간. 그것은 한계에 왔다. 인간이 바닥까지 닿은 이 시대에 더 넓은 시야의 윤리적인 관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지금 이 세계를 습격하고 있는 불안,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라는 오시이 마모루의 이야기처럼, 는 여전히 육체와 인간에 대해 명징한 화두를 어렵사리 던지는 영화다. “오시이 마모루는 문화로서의 애니메이션을 거부한 감독이다. 그는 현재 단순한 애니메이션 작가로부터의 일탈을 꾸미고 있다”는 <카이에 뒤 시네마>(일본판)의 오래전 이야기도 되감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평가는 에 와서야 처음으로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극장판이 기실은 애니메이션 엘리트 집단인 ‘헤드기어’(Head Gear)의 공동작품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가 (오시이 마모루 스스로 일탈을 꿈꾸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라면, 오시이 마모루가 처음으로 혼자 각본을 집필한 야말로 어떠한 도움없이 창조해낸 첫 번째 ‘순수한(Innocent)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해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영화란 것은 오리지널 스크립트에서부터 스스로 만드는 것을 보여줬을 때 최종적인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걸 해낸 것이 고다르나 데이비드 린치 같은 특수한 인간이다. 나는 일본에서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것에 가까운 뭐라도 만들어내고 싶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만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상업애니메이션 세계에 작가주의란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야말로 그 단어를 순수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희귀한 사례가 될 것이다.

김도훈 mailto:groove@cine21.com

3 # 읽을거리[편집]

미궁 속을 안내할 10가지의 키워드

사이보그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인공기관으로 대체된 인간. 만일 전신이 완전히 인공기관으로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태생이 인간이었던 경우에는 사이보그로 분류된다(그리고 인간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쿠사나기 소좌가 그 예다.

안드로이드 인형이라 불리는 로봇. 사이보그와는 달리 뇌가 아닌 인공지능(AI)이 탑재되어 있다.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하지만 ‘고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고스트 인간(사이보그)과 로봇(안드로이드)을 구분짓는 것으로 ‘영혼’을 의미한다.

고스트 더빙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고스트를 로봇(안드로이드)에 복사하는 기술. 복사하고 나면 원전은 파괴된다는 것이 밝혀져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가이노이드 소녀형 안드로이드.

섹서로이드 섹스용 안드로이드.

전뇌 뇌에 마이크로 머신을 주입하고 목부분에 입출력 단자를 연결해 말이나 표현을 거치지 않고서도 직접 외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뇌(에 등장했던, 목의 뒷부분에 케이블로 연결함으로써 기계에 의해 단기간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떠올리면 된다).

전뇌통신 각 전뇌들이 모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상호 통신을 하는 것.

고스트 해킹 전뇌통신을 이용하면 자신의 고스트가 타인에게 드러나기 때문에 악의를 가진 타인에 의해 전뇌 자체를 지배당할 수도 있다. 에서 바트와 토그사가 ‘킴의 저택’에서 당했던 것이 고스트 해킹의 예이다.

해커 타인의 전뇌에 침입해서 정보나 대상을 조작하는 기술을 지닌 범죄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 서면 인터뷰 “내 작품은 관념적인게 아니라 본질적인 것일 뿐”

여전히 관념적이라는 일반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작품이 어렵다고도 관념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작품에서 다룬 테마가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일반적이지 않아도 본질적이며 보편적이고, 무엇보다 현대적인 테마라는 점에서는 자신이 있다. 영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화제로 삼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영화가 표현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사를 단순화하는 것은 정치가들이나 하는 일이지 영화가 할 일은 아니다.

가장 애정이 가거나 까다로웠던 장면은 어떤 것인가. 바트의 분신인 바셋 하운드(개)의 표정에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개가 개답게 보인다는 것은 인형(로봇을 의미)이 인형으로서 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중요한 포인트였다.

처럼 당신은 원전들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영화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내나.

항상 여러 가지를 멍하니 생각하며 지낸다. 그러다보니 현실이 임시변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로 당신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인간이나 인간성이라 불리는 것이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정화시키고 절대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 상실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미완성이고 미숙한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점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인형이나 개에 비해서 크게 모자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에 의해서만 인간성이 실현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인형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지 아니면 낙관적인지 읽어내기 애매할 때가 있다. 테크놀로지 그 자체에 대해 낙관적이건 비관적이건 간에 어느 쪽이 옳은 태도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믿고 있지만, 그것을 선이라거나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를 보게 될 한국 관객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마 한글자막이 나오겠지만 너무 열심히 읽지는 말아달라. 에서 대사의 역할은 매우 애매한 것이라서 영화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중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 영화음악[편집]

오시이 마모루의 음악적 동지, 가와이 겐지

전뇌공간을 구현하는 음악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히사이시 조라는 충실한 음악적 파트너가 존재하듯이 오시이 마모루에게도 가와이 겐지(川井憲次)라는 든든한 음악적 동지가 있다. <란마 1/2>의 음악감독이었던 가와이 겐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87년작 < Twilight.Q2-미궁물건 FILE538 >으로 첫 공동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극장판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 2>에서 세기말 도쿄의 스산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음악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 이후 가와이 겐지와 오시이 마모루는 과 를 지나 까지 일괄적으로 함께 작업함으로써 궁합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감독-작곡가의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에서 가와이 겐지는 일본 전통민요의 보컬과 타악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거기에 현대적인 현악연주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무국적성의 전뇌공간을 완벽한 짜임새로 구현하고 있다(‘일본 전통음악과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의 조화’는 이전에도 게이노 야마시로구미가 오토모 가즈히로의 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 의 음악은 와 큰 차이는 없으나 좀더 화려하고 규모가 큰 현악과 기계음이 반복적이고 다층적으로 시도되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호사스런 비주얼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바트가 등장하는 장면에 수시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과 극적인 대칭을 이룬다.

가와이 겐지는 일본 호러영화의 거장인 나카다 히데오와의 협력관계로도 유명하다. 시리즈와 <유리의 뇌> <검은 물 밑에서>에서 그가 창조한 음악은 나카다 히데오의 괴담들에 소름끼치는 긴장감을 더한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현재 그는 송강호, 유지태 주연의 한국영화 의 음악을 작곡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낼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남극의 목소리”는 내년 초 의 개봉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5 # 시사회[편집]

[현지보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일본 현지 시사기 [2004-03-09]

 속편 나왔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일본 현지 시사기 올해 일본에선 3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 할 만한 오시이 마모루, 오토모 가쓰히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개봉한다. 미야자키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점점 제작규모가 늘어나면서 개봉일정이 계속 늦춰져 현재 11월까지 밀린 상태. 오토모가 이후 16년 만에 감독하는 장편애니메이션 가 7월 여름시장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오시이의 가 3월6일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는다. 미야자키와 오토모가 약속이나 한 듯이 신작에서 19세기의 유럽, 영국으로 돌아가는 데 비해 오시이는 여전히 미래의 일본을 통해 ‘현재’를 그린다. 95년 에서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이 공존하는 21세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정체성의 의미를 확장했던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쓴 속편격인 에서 훨씬 대중적인 어법으로, 하지만 만만치 않은 질문을 던졌다. 편집자

도쿄=김영희/ 기자

도쿄의 2월은 두 얼굴이다. 기온은 서울보다 높아 어떤 날은 초여름 같기도 하지만 비라도 뿌리면 집 안에 있어도 몸 구석구석 추위가 스며든다. 그럴 땐 전기장판 속에 들어가 한국의 온돌을 그리는 수밖에 없다. 를 보러 나선 지난 2월28일, 일본의 날씨에 적응이 덜 된 탓일까, 여전히 코끝이 쨍했다. 그래도 3월6일 극장개봉에 앞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데 마음이 들뜬다(홍보사는 외국 매체의 프리뷰는 곤란하다며 잠시 고민하더니 언론시사회 대신 일반시사회 초대장을 보내줬다. 이렇게 쓸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데서도 일본인들의 ‘형식주의’는 느껴진다).

시절과 격세지감

도쿄도 나카노시의 선프라자 홀. 2시30분 시작이라 넉넉히 간다고 2시쯤 도착했지만, 줄서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미 극장 앞 광장을 꼬불꼬불 메우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부터 젊은 연인, 노인 부부까지 예상 밖으로 다양한 연령층에 우선 놀랐다. 순식간에 1천석 이상 규모의 극장이 꽉 찼다.

가 95년 일본에서 고작 12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걸 떠올리면, 지금 일본의 에 대한 기대감은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4년 넘는 제작기간, 20억엔(220억원) 이상의 총제작비 규모의 ‘대중영화’답게 위성방송은 물론 민영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엔 주제곡 가 흐르는 대대적인 광고와 특집방송들이 따르고 있다. 도쿄의 새 문화중심지 롯폰기 힐스에서 밤샘 문화제가 열렸는가 하면, 에 나오는 인형들의 모티브가 된 구체관절인형전, 등장하는 개 바셋 하운드 전시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점엔 신간 <오시이 마모루론>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책들이 깔려 있고 피자를 사먹으면 샘플 DVD를 받을 수도 있다.

과연 오시이의 작품이 이번엔 대중적으로 성공할까. 하청업체로 출발했던 제작사 스튜디오 IG(<킬 빌>의 애니메이션 부분 제작사기도 한)로선 스튜디오 지브리 못지않은 ‘애니메이션 명가’로 일어서기 위해 이 작품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이를 위해 이시가와 미쓰히사 대표는, 오시이와 20년지기 친구지만 업계의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브리의 명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를 ‘모셔왔다’. 스즈키는 “18년 전 <천사의 알> 때 그림 콘티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의견을 얘기하면 함께 토론을 하다가도 나중엔 결국 몽땅 무시당한 경험이 떠올라 하고 처음엔 오시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시이도 달라진 듯하다. 애초 라는 가제가 ‘순수’를 뜻하는 로 바꿀 것과, 주제곡을 쓰지 않기로 유명한 오시이 감독에게 로드리고의 아랑훼스 협주곡에 가사를 붙인 의 채택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 일본에선 오시이 못지않게 스즈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인터뷰가 잇따르고 있다. 이시가와가 “오시이 감독이 처음으로 철학을 자제하고 오락성을 추구한 작품”이라며 “감독은 민망해했지만 캐릭터의 주관적 감정들이나 인간애란 테마가 전면에 드러났다”라고 강조하고 스탭들도 “이전과 달리 그림 콘티 옆에 친절한 설명이 가득했다”고 말하는 등 오시이 또한 이번 작품의 대중적 성공여부를 적잖이 의식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일부 사이트에선 스즈키가 관객에서 아예 오타쿠는 배제하고 여성관객에 어필하기 위한 홍보전략을 쓰고 있다는 불만도 등장했을 정도다. ‘오시이 세계’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색깔이 이른바 ‘메이저 작품’에선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 그리고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인형사와 합체 뒤 이 말 한마디를 남긴 쿠사나기 마코토 소좌가 네트의 바다 너머로 사라진 지 3년. 의 배경인 서기 2032년 일본은 인간과 사이보그, 로봇(안드로이드)이 공존하는 세계다. 인간은 전뇌화(전자두뇌화)되어 목소리를 내거나, 키보드 조작 없이도 네트워크를 통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인간의 몸은 점점 기계화된다. 쿠사나기가 떠난 뒤 형사 바토는 (1편에선 비교적 작은 역이었던) 도그사와 파트너를 이뤄 공안 9과에 근무하고 있다.

철학을 숨기고 오락을 추구하다

18세기 프랑스 소설 <미래의 이브>의 한 구절을 써놓으며 시작한 영화는 곳곳에 성서부터 공자, 밀튼, 데카르트 등을 인용하며 오시이의 인장을 찍는다. 대신 그 철학적 내용에 압도되지 않도록 는 친절하게 대중적인 형식과 감상적인 정서를 입혀놓았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어느 날 바토와 도그사에게 ‘고스트’(혼)가 없는 인형(로봇)이 자기 주인을 살해하는 사건들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현장에 도착한 바토 앞에서 하얀 도자기 질감의 소녀 인형이 작은 목소리로 ‘도와줘요, 도와줘요’ 속삭이다가 ‘자살’을 택하는 첫 장면이 뒷머리를 후려쳤다. 인간을 위해 만든 인형(‘고스트’가 없는 대신 AI가 탑재된다)이 주인을 살해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자살이라니. 형사 버디무비의 짝패처럼 바토와 도그사는 계속 사건을 일으키는 인형들의 제조사 록스 솔스사의 음모를 풀어나간다. 야쿠자 사무소 장면을 비롯해 박력있는 총격전과 웬만한 액션영화 못지않게 날렵한 액션이 쉴새없이 이어져 1시간39분의 러닝타임은 짧게 느껴질 정도다.

언뜻 폭력적인 장면이 많지만, 의 바탕에 깔린 정서는 쓸쓸함과 애절함이다. 팔도, 다리도 몸 대부분이 인조물인 사이보그 바토에게 남겨진 것은 극히 적은 뇌 일부와 쿠사나기 마코토라는 여성에 대한 기억뿐. 집에 돌아가면 개 가브리엘(언제나 오시이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의 먹이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끝없이 술만 마신다. 사이보그인 그에게 술은 아무리 마셔도 해가 될 리 없다. 그 쓸쓸한 정서는, 1편에서 쿠사나기를 향한 바토의 애정을 기억했던 이들에겐 각별하다.

바토는 수사과정에서 여러 인형을 만난다. 기괴할 정도로 화려한 축제에서 인간에 의해 불태워지는 인형들, 스스로 ‘시체’가 되어 인간을 초월하려는 인형…. 오시이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왜 인간은 인형을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낼까. 인형의 무표정함이 주는 기분 나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인형의 이야기는 그동안 많았지만 그건 인간의 최고의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얘기다.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오히려 생신의 인간, 사이보그, 로봇 그 경계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의 속편이면서, 바토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는 장면 등은 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는 오시이 감독 세계의 집대성적인 작품이란 점은 분명하다. 또한 언제나 이전 작품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왔던 그답게, 는 비주얼과 음악만으로도 포만감을 안겨준다. 특히 ‘인형’을 전면으로 내세운 건 애니메이션으로선 새로운 ‘도전’처럼 보였다. 원래 애니메이션에선 인간조차 인형일 터. 뉴욕, 상하이, 타이베이, 라오스 등 전세계 6개국 로케이션지에서 찍은 2만장 이상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냈다는 2032년의 공간 또한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 3D로 화려하게 그려진 코끼리 동상의 행진을 포함해 뉴욕의 뾰족한 건물들을 연상케 하는 고딕풍의 도시부터 절망적으로 어두운 아시아풍의 뒷거리까지 신마다 다양한 공간들을 선보인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3D와 2D의 위화감이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뒤섞인 의 세계에선 더 효과적이다. <스왈로우 테일>과 <킬 빌>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하네다 요헤이가 첫 애니메이션 미술감독을 맡아 만들어낸 실내공간은 실사영화 이상이다. 책꽂이의 책 한권한권, 싱크대의 선혈 낭자한 식칼의 반사된 빛까지, 오시이는 리얼리티에 집착했다. 에 이어 음악을 맡은 가와이 겐지의 단조계의 구슬프고 장엄한 선율에 실려 몇몇 신들은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시이 마모루 세계를 감성적으로 집대성

는 객관적이다 못해 차가운 ‘이성의 영화’였다. 이에 비해 는 인상적인 영상에 바로 감정을 실어보낸다. 오시이는 ‘동’과 ‘정’의 배합을 누구보다 잘 구사하는 감독이다. 후반부 무표정한 인형들이 바토를 공격해오는 장면이 쉴새없이 이어지다가 쿠사나기와 재회하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린 듯하다. 그리고 쿠사나기의 알몸(이유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에 옷을 덮어주는 바토에게 쿠사나기는 말한다. “하나도 안 변했군.”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의 애정에 가슴이 저릿해온다. 바토를 고스트 해킹하는 해커 키무를 만나게 되는 성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빙빙 도는 현실에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일본에선 여전히 어렵다는 반응이 많은 듯하다. 시사회장을 나오니 “겨우 내용에 적응하려니까 끝나버렸다”는 관객이 많았다. 제작사가 내건 관객 500만명은 만만찮은 목표처럼 보인다. 대중적인 형식을 끌어왔다고는 해도, 오시이는 쉽사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용기를 가져라” 식의 지브리 계열의 작품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오시이의 말을 인용하면 “살아가는 건 여러 가지를 상실하는 과정 아닐까. 그 과정에 자신의 사는 의미가 무언지 진실하게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3월호)이다. 그럼에도 는 가느다란 희망을 말한다. 쿠사나기가 바토를 또다시 떠나며 하는 말, “너의 네트에 접근할 때 난 항상 네 곁에 있는 거야”가 그것이다. 인간이 기억과 사고를 컴퓨터에 의존하고, 생활은 도시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 가 선구자처럼 던졌던 질문은 불과 9년 사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 있다. 오시이의 메시지는 9년 전보다 더 절실하다.

 를 이해하기 위한 오시이 마모루 어록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아니다. 인간이란 자체가 한계에 달해, 인간의 밑이 빠져버린 듯한 이 시대에 인간을 둘러싼 좀더 넓은 시야에서의 윤리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감독의 변 중

“바토는 관객의 대리인이기도 한 인간 파트너 도그사와 함께, 인간이란 존재를 묻는, 지옥 순례의 여행에 나서는 인물.” … 감독의 변 중

“현실과 가상현실의 교차… 현실이 있어 가상현실이 있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현실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 굳이 말하자면 현실 자체가 가상현실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숫자만큼 인식이 있고, 그것들이 스쳐 총합된 것이 현실이라 부르는 것 아닌가. 하나하나의 현실은 서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 3월호

“9년 동안 적잖게 변했다. 적어도 때는 이런 정서랄까 정감있는 작품을 한다는 건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게 지쳐갈수록 본질에 접근하는 법이니. ” … 3월호

“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영화에 그리겠다고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전차든, 헬리콥터든, 동물이든. 무리하게 내가 싫어하는 걸 등장시켜 뭐가 되겠냐 싶다. 은 이제까지 가장 내가 그리고 싶었던 작품에 가깝다.” … 3월호

“는 내 영화 중 드물게 젊은이들에게 친절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진 그들에게 별로 동정적이지 않았다고나 할까, ‘저녀석들 뭐지?’ 또는 ‘방법이 없는 녀석들이군’이라는 식이었으니까.” … 3월호

“인간은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인간이 아니어도 좋다. 개든 인형이든. 여자라면 문학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개다.” …

“지금의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가 자기의 몸으로 완결되지 않고, 육체를 잃은 결격감 같은 걸 안고 살아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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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촌평[편집]


좀 미안한 말이지만, 평을 쓴 기자들이야 총체적인 측면에서 에니메이션을 평가했겠지만, Evolutionary Computation을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각 기동대로부터 이노센스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다 이해하고 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걸...


내 입장에서는 에니메이션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진화 알고리즘에 대한 핵심이 빠진 평으로 밖에 안 보이네..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 공각 기동대 TV판 1기까지 보았는데(2기도 있다고 하더군), 메카닉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에겐 모두 너무 훌륭한 작품들이었어.


개인적으로 공각기동대 씨리즈엔 모두 별점 다섯개야.. -- DarkTown 2004-10-29 6:08 am

진화 알고리즘에 대한 핵심이 들어간 닭박사님의 고견을 청하오니 뿌리치지 마시고 시간을 좀 할애하여 주사이다 (_ _) -- SonDon 2004-10-29 9:54 am
요청 한표 추가요! -- 거북이 2004-10-29 10:2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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