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가기준

1 # 김용석[ | ]

제 목:나의 앨범평가 기준 관련자료:없음 [1606] 보낸이:김용석 (demitrio) 1994-11-04 02:48 조회:235 내가 아트록을 평가하는 기준...

많은 음악의 장르가 그러하지만 특히 아트록분야에서는 감상자들의 평가가 각 각 엇갈리고 있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그만큼 아트록을 듣는데 대한 감상 자들의 태도와 취향 등 평가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역시 다른 사람들이 평가해 놓은 기준을 보고서 그들이 소위 ‘명반’이라고 부른 앨범들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의 평가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글을 읽는이가 글쓴이의 취향과 평가기준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어느정 도 그 앨범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난 아래에도 있는 Leo Nero의 솔로앨범인 Vero에 대해서 별을 다섯 개를 주었었다. 그 앨범에 대해서 별을 갖다붙일 때 나는 앨범전체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는가를 먼저 관찰하였다. 만약 그 앨범에 수록되어 있 는 열곡 중 한두곡만이 좋았더라면 난 결코 별을 다섯개나 붙여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곡들이 좋을것’- 이것이 나의 첫번째 명반 선 정의 기준이다.

Vero는 연주력과 보컬 뿐만 아니라 극적인 구성이 매우 돋보인다. 연주력 과 곡의 무리없는 구성은 내가 음반을 평가하는 두번째, 세번째 기준이다.
연주력이라 함은 각 포지션별로 연주자의 기량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간혹 가다가 매우 어설프고 촌스러운 연주를 들려주는 음반들이 몇있는데 Osanna 나 Julian Jay Savarin의 경우도 그 예외일 수 없는데 이들은 매우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연주를 하기는 하나 Osanna의 경우는 거칠고 강렬하면서 원시 적인 사운드가 아니면 오늘의 Osanna 가 없었을 만큼 그러한 류의 사운드는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듣는이에게 강렬한 feel을 준다. 그에 비해 Jul ian Jay Savarin의 경우에는 그저 악보만을 보면서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떠한 메시지도 내귀에 들어오지 않고있으며 게다가 사운드도 촌 스러워서 난 이 앨범이 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이러한 두 경우에서 볼 때 두번째 기준인 연주력은 표현력으로 대체되어야 함이 옳 을듯 하나 어감상 ‘표현력’이란 말도 이상스러워서 그냥 연주력이라고 할란 다.

세번째 기준인 곡의 구성은 어쩌면 첫번째기준과도 일맥상통한다고도 하겠다 . 우리가 흔히 듣는 대중가요는 1절, 후렴, 2절, 후렴식의 일정한 형식을 갖 추고 있고 하드록이나 클래식 역시 커다란 줄기에 결코 벗어나지 않는 형식 을 지니고 있다. 난 프로그레시브를 다른 쟝르와 가장 차별화 시키는 요소 가 일반적인 곡들의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점이라고 보는데 마이크올드필 드의 ‘튜불라벨즈’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마디로 형식상의 파격적인 구성은 프로그레시브란 쟝르를 다른 록들과 가장 차별시키게 하는 요소라 생 각된다. 또한 포크, 재즈, 클래식, 하드록등의 쟝르를 과감히 받아들여 새로 운 형태로 탄생시키는 것 역시 실험성을 가진 진보적 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클래식넘버를 그대로 전자악기로 연주한다거나 여타쟝르의 형식을 빌 어와 별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행위는 시도 자체는 진보적이나 세번 째 기준인 구성의 파격성과는 거리가 있다. 어찌되었든 각 쟝르에서 빌어온 형식은 자신의 연주스타일에 맞게 개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현석 이 연주한 사라사테의 지고이르바에젠도 그런 이유로 진보적인 록이 될 수 없 는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역전 된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록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곡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했다면 그것은 클래식넘버를 전자기타로 연주한 것 보다는 더 진보적일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여기서 말하는 세번째 기준에는 곡의 변화와 진행에 관련되는 곡의 파격적인, 그러나 유연한구성력과 악기의 배열이 포함되어 있다.
(더 깊이 얘기를 하고 싶지만 그것은 프로록을 구분하기 위한 원론적인 얘기 밖에는 되지않고 글만 길어질 뿐이다) 네번째기준으로는 모든 쟝르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다 . 그것을 단 한줄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것은 이를테면 멜로디가 귀 에 잘 들어오는지, 가사가 아름다운지, 몇번을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는다든 지 하는 것들이다.

위의 기준과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와 내가 평가하는 앨 범의 점수는 다를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귀에 달렸다. 그러므로 어떤한 음반 도 절대적으로 객관성있게 평가될 수 없으며 자기가 들어서 좋으면 좋은 앨범 이고 싫으면 꽝인 앨범이 되는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앨범소개의 글은 모두들 주관적인 글이고 그 글들을 읽고 구입한 음반이 자 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욕을 하는짓도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내가 나의 음반평가기준을 올리는 것은 나의 앨범평에 대해서 읽는사람으로 하여금 이 음반이 어떤 스타일이구나 하는 것을 잘 이해시키게 하기 위해서 이다. 나의 앨범평가에 대한 글이 많이 쌓여있을 때 쯤이면 많은 분들이 나 의 음악듣는 스타일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게 될것이다. 내가 평소에 심포닉 한 스타일의 그룹에 더 점수를 후하게 주고있고 변화가 심하고 화려한 연주 를 구사하는 그룹들에게 점수를 더준다던가 하는 스타일이 곧 나타나게 될것 이며 그것을 통하여 읽는이는 내가 소개한 음반이 어떤 취향이구나 하는 것 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음악을 좋아하며 깔끔한 멜로디를 선호하는 A란 친구가 특정앨범에 대해 서 별을 다섯개 주었다면, 똑같은 앨범에 대해서 변화무쌍하면서 애절한 가 락을 선호하는 내가 별을 세개만 준것 의 차이를 읽는이들은 간파해 내어야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그런 미묘한 차이를 간파해내기 쉽게 하는 도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적으로 난 멜로트론과 격한 실험성으로 상징되는 킹크림슨보다는 멤버 개 개인의 기량이 출중한 예스를 더 선호하며, 제네시스 보다는 핑크플로이드를 더 좋아한다. 이엘피 보다는 르네상스가 더 좋고 르네상스 보다는 예스를 더 좋아하며 예스보다는 핑크플로이드가 더 좋다.
이태리 쪽에서는 일볼로와 고블린, P.F.M이 좋고 I DIK DIK이나 여타의 칸타 토레들은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는다. 프랑스쪽에서는 Pulsar의 초기작품들 이 좋고 독일에서는 별로 좋아하는 그룹들이 없다. 이 쯤 되면 난 스케일이 있는 심포닉한 록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의 로스카 나리오스도 좋다. 물론 챔버록에도 관심이 있고 말이다.
앞으로 내가 해나갈 별잔치를 위해 읽는분들이 내가 그리는 별의 의미를 정확 히 파악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이 글은 아래에 있는 영재의 글에 자극을 받아 덩달아 올리는 글이었다.
게시판에 많은 글들을 쓰시면서 앨범들을 평가해 주시는 분들이라면 읽는이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한번쯤은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건 거의 Dog사운드에 가까운 얘기지만 난 사실 아직까지 나의 스타일이 이 렇다고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좋은게 좋은걸 어떡하라...

demitrio 김용석이었습니다.

2 # '명반'이란 것에 대한 내 생각..., 유영재[ | ]

[유영재, mailto:espiritu@hitel.net, 94.10]

'명반'이란 것에 대한 내 생각...

요즘 여기저기서 '명반'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 올리는 글도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무분별하게 저 낱말을 사용한 듯 해서 좀 반성해야겠다는...

사실 명반이라는 기준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는 것도 아니 고, 이것은 이래서 명반이고 저것은 저래서 명반이다라는 식 으로 정의가 내려져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명반이라는 것 은 음악성과 더불어서 대중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진정한 명반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아트록에 있어 서의 명반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따져보자면, 아트록에 있어서 (음악성은 제껴두고) 대중들 에게 널리 인정을 받은 앨범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트록 앨범들은 아무리 음 악성이 뛰어나더라도 명반으로 인정 받을 만한 것이 없게 된 다. 물론,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이나 제쓰로 툴의 [ Thick As A Brick ], 예스의[ Close to the Edge ] 등은 음 악적인 면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았으므로 당연히 명반이라 칭할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트록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작품 은 별로 없다. 물론, 각자 자기 나라에서 인기를 끈 작품은 있을지 몰라도 위에 열거한 앨범들처럼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음반은 극히 드물다. 하물며 아트록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은게 사실 아닌가...
그런데 아트록 앨범들을 리뷰한 국내외 음악잡지들을 보면 아트록의 명반들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이거는 거의 한 앨범 건너 하나가 다 '환상의 명반'이고 '희대의 명반'이다.
이러한 '명반'이란 수식어가 들어간 앨범들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는 커녕 아트록을 웬만큼 안다는 사람들이 봐도 뭐 하는 놈들이 만든 앨범인지 전혀 모르는 음반들이 태반이다.
이런걸 보면 도대체 명반이란 것의 기준이 뭔지 의아해질 때가 많다. (솔직히, 본인이 쓴 글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 신 분들도 분명히 계셨을 듯...) 위와 같은 아트록 앨범들 에 대한 평들이나 해설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대중과의 친밀 감(?)은 제껴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앨범들에 비해서 희귀한 것들도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은 그리 기대하기 쉽지가 않고, 평론가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로 이루어진다. 국내외 잡지에 등장하는 아트록 관련 해설이나 평론은 그 글을 쓴 사람의 개인적인 평가로서, 자신이 듣기 에 이정도면 대단히 훌륭하다라고 느끼게 되면 명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평론가나 전문가들로부터 동시에 명반이라는 찬사를 받는 앨범들도 있 다. 하지만, 이러한 앨범이라고 누구에게나 다 좋게 들리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본인의 경우, 음악평론가들로부터 각 양각색의 찬사를 받았던 Museo Rosenbach의 명반(?) [ Zarathustra ]를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서는 도저히 명반 대 열에 올릴 수가 없다.
헛소리가 또 길어지고 있는거 같은데... 암튼, 명반이라는 것은 그 음반을 듣는 청자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닐까?
청자가 듣기에 이 음반이 음악성도 뛰어나고, 곡이 전달하 는 메시지도 충분히 가슴에 와닿고, 작곡, 연주력, 그리고 곡구성력도 훌륭하다고 생각되고,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고 앞으로도 이러한 감정이 식지 않을것 같다... 생각되면 그것 은 그 청자의 명반이 되는 것이다. '명반'이란 말을 너무 남 용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인색하게 사용하는 것도 안 좋은 것이다. 이 세상에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음악을 수용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얼마나 많은 명반이 그 에게 존재하느냐가 좌우된다고 생각된다. ( 요즘 음악 매니 아들을 보면 한 음반을 들을때 그 음반의 좋은 점보다는 나 쁜 점만을 찾아 꼬투리를잡으려는 듯 애쓰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문이나 느낌에 대해 적은 글들이므로... 게시판글들을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심지어 각종 음악잡지에서 평론가들의 평도 100% 믿을건 못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의 취향은 각양각색이니까...
역사상 최고 명반이라는 비틀즈의 페퍼상사도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그지같이 들릴 수도 있는거고 예스터데이나 아워너 홀쥬어핸드가 훨씬 더 명곡처럼 들릴 수도 있는거기 때문이 다. 어쨌든 음악애호가의 입장에서는 여러 음악을 두루 들으 면서 자신만의 명반을 찾아내는거럼 즐거운 일도 없을 듯...

그럼 좋은 음악 많이 들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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