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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메렝게: 도미니카 공화국의 춤과 음악[ | ]

라파엘 누녜스 (주한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

I. 개관

도미니카 공화국은 카리브 연안의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 사이에 있다. 공화국이 위치한 섬의 한 쪽은 아이티이며, 도미니카 공화국은 섬의 2/3를 차지한다. 넓이는 48,442 km²으로 안티야스 제도에서는 쿠바 다음으로 넓다.
기후는 반열대성으로 년 중 평균 기온은 26°이고 인구는 약 800만으로 그 중의 250만이 수도에서 산다.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며 나머지 40%가 농촌에 거주한다. 도미니카인들의 대부분은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최근에는 동양인들과의 혼혈인들로 볼 수 있다.

II. 역사

1492년 12월 5일 스페인 사람들이 섬에 왔을 때, 이 곳에 살던 원주민은 '타이노' 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 되어 멸족되었다. 식민주의자들은 이 섬에 '이스파니올라'라는 이름을 부치고, 신세계 스페인 제국의 확장 전초 기지로 만든다. 바로 이 섬에서 카리브의 다른 도서들로 원정이 이루어지며, 해안을 따라 아메리카 다른 지역으로도 원정이 이루어진다. 산토 도밍고 시는 1492년에 건설되며, 곧 그 곳에 아메리카 최초의 대성당, 병원, 대학교가 건설된다.
1804년 섬의 서부는 독립을 쟁취해서 아이티가 된다. 1808년까지 프랑스의 지배하에 남았던 섬의 동부지방은 이 해에 다시 스페인 식민지가 된다. 그러나,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쟁취한 지 1년 만인 1821년에 섬은 다시 아이티에 의해 지배당한다.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을1844년 2월 27일까지 점령하며, 드디어 이날 도미니카 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한다. 1861년 다시 스페인에 병합 당하나, 결국 1865년에 독립 탈환 운동으로 독립을 쟁취한다.
1882년부터 1889년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을 다스린 사람은 독재자 Ulises Hereaux였다. 1916년 미국은 공공외채를 갚으라는 미명하에 도미니카 공화국을 무력으로 침공해서 8년간을 점령한다. 1930년에 권력을 잡은 사람은 Rafael Leonidas Trujillo로 그는 30년간 권좌에 있으며 독재정치를 펴다가 1961년에 암살당한다. 그 후,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고 국가의 생산 구조가 발전을 거듭해서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안정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III. 음악

도미니카 국민들은 춤을 대단히 좋아한다. 스페인이 바실레아 조약을 통해 프랑스에게 도미니카 공화국을 양도한 1795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 온 프랑스인 Labat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것이 바로 춤이다. 세상에서 이들만큼 춤에 애착을 느끼는 국민은 없으리라." Labat 신부의 관찰은 정확했다. 왜냐하면 도미니카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어서 춤과 견줄 수 있는 것은 노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 농부는 농장에서 일할 때 여러 종류의 노동요를 부른다. 사람들은 기도할 때나 사랑에 빠졌을 때도 노래를 부른다. 바로 여기서 나온 풍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부르는 세레나데인 것이다.
우리들의 민속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리듬 중에서도 메렝게만큼 국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 춤은 한 민족의 감정의 발로이다. 따라서, 도미니카 국민들의 삶의 방식이 변하듯, 메렝게 역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넘어가며 변모된다. 도미니카 국민은 즐거운 민족이고 전통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흔들어대는 시끄러운 민족이다. 이것을 잘 표현한 것이 바로 카니발 때 드리는 기도의 후렴구이다. "거리에서 춤을 추자, 낮에도. 거리에서 춤을 추자, 밤에도" 메렝게 음악을 듣는 이는 모두 다 아코디언과 템버린, 기라 같은 악기의 리듬에 젖어 몸을 흔들게 된다.

VI. 메렝게의 역사

메렝게는 널리 보급된 도미니카의 민속춤으로, 많은 이들이 도미니카 공화국 정통 춤으로 간주한다.

1. 기원 메렝게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설이 있다.

-메렝게를 만든 사람은 Alfonseca 였다. (Flerida de Nolasco의 설) -메렝게의 기원과 출현은 명확하지 않다. (Julio Alberto Hernandez의 설) -도미니카가 탈랑케라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 전통 리듬의 성격으로 태동했다. (Rafael Vidal) -쿠바 음악 UPA의 분파이다. UPA의 한 부분이 메렝게라 불리며, 쿠바에서 시작해서 푸에르토 리코를 거쳐 19세기 중엽에 산토 도밍고로 들어왔다. (Fradique Lizardo)

도미니카 사회학자이며 민속학자였던 Lizardo의 설은 이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고 볼 수 있다. 1844년에 메렝게는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1850년에는 유행을 타며 툼바(Tumba) 대신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이 때부터 공격의 화살을 받는다. 1850년대 초에는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에서 발행되는 도하 신문에 툼바를 장려하고 메렝게를 퇴치하자는 캠페인이 실린다. 이것은 메렝게가 툼바의 위치 대신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Emilio Rodriguez Demorizi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렝게의 기원은 아직도 안개 속에 있다. 아이티가 원조라고는 말할 수 없다. 메렝게가 아이티에서 전래 되었다면, 아이티에 대항해서 투쟁했던 시기에 해당하는1855년에 메렝게가 그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만일 아이티가 원조였다면, 당시 메렝게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가만 있었을 리가 없었으리라. 1875년에 메렝게에 반기를 든 Ulises Francisco Espaillat도 그의 글에서 아이티에서 전해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메렝게의 기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19세기 중엽, 즉, 1838년에서 1849년 사이에 URPA, 혹은 아바나UPA로 불렸던 춤이 카리브에서 유행했었다. 이 춤이 푸에르토 리코에 들어가자, 상당한 호응을 얻게 된다. 이 춤의 한 동작은 메렝게로 불렸으며, 바로 거기서 이름이 굳어지게 되고 도미니카 공화국에까지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후에, 메렝게가 인기를 끌면서 군인이며 음악가였던 Juan Alfonseca 대령이 이 새 음악으로 작곡을 한다. 그의 음악 중 가장 유명했던 노래가 "¡Ay, Coco!", "El sancocho", "El que no tiene dos pesos no baila", "Huye Marcos Rojas que te coje la pelota"이다.

2. 구조 가장 대표적인 형식의 메렝게 음악의 구조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즉, 파세오(paseo), 메렝게 혹은 본체라 불리는 부분, 그리고 할레오(jaleo)이다. 당시 원래 있었던 메렝게에 파세오를 덧붙인 사람이 Emilio Arte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메렝게 전체는 4분의 2박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부분을 구성하는 콤파스의 숫자는 일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한정없이" 어느 부분을 늘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메렝게에 붙이는 가사는 대중 문학에서 가장 보편적인 시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코플라(copla)나 세기디야(seguidilla), 데시마(decima), 그리고 때때로는 파레아도(pareado)까지 있다.
메렝게는 처음부터 일반 국민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악기로 연주되었다. 이들 악기들은 도미니카 기타인 반두리아(bandurria), 뜨레스(Tres), 꽈트로(Cuatro) 등이었다. 메렝게가19세기 말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북부 지방인 시바오(Cibao)로 들어가며, 반두리아 대신에 훨씬 연주하기 편한 독일의 전통 악기인 전음계 아코디온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악기는 멜로디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연주곡이 제한을 받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메렝게는 원래의 모습에서 약간 벗어나는 형태로 존속하게 된다.
이렇게 변형된 메렝게는 도미니카 사회를 파고 든다. 메렝게는 몇몇 사회 계층에서는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기존의 춤들을 대체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춤들은 춤추는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요했다. 일례로 툼바와 같은 춤은 11개의 스텝이 있었을 정도였다. 따라서 아주 단순한 형태의 스텝만 있었던 메렝게가 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다른 모든 춤들을 몰아내게 되었는지는 쉽게 이해 가는 일이다.

3. 메렝게 춤의 종류 3.1. Merengue de salon 남녀는 서로 붙들고 옆으로 움직인다. 이 스텝은 "울타리 통과"(paso de empalizada)로 불린다. 그리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돈다. 이것이 진짜 "살롱 메렝게"로, 이 춤에서 남녀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3.2. Merengue de figura 남녀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스텝을 보여주며 이런 스텝은 장식, 혹은 "florero"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역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여러 가지 이국적 형태로 춤을 추려는 풍조가 강해지면서 메렝게는 본래의 모습을 훼손당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메렝게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3. 오늘날의 메렝게 오늘날의 메렝게에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 예로 트위스트, 림브로, 콩가, 차차차, 테크노 댄스 등의 요소가 섞여있다.
정통 메렝게, 순수 메렝게는 도시 지역의 무도장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살아있다면, 그것은 농촌 지역에서일 뿐이다. 메렝게의 전통 모습도 사라졌다. 파세오(paseo)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고, 본체(cuerpo)에 해당하는 부분은 약간 더 길어져서 원래의 8-12 박에서 32-48박으로 늘어났고, 어떤 때는 100까지 늘어났다. 할레오(jaleo)는 메렝게에서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었으나 외국 리듬이 도입되면서 완전히 변질되어버렸다.

메렝게가 일반 대중들에게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상류층은 상당 기간 동안 이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메렝게가 아프리카 음악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메렝게를 혐오하고 공격했던 또 다른 이유중의 하나는 메렝게 노래의 가사 때문이었다. 그 가사들의 대부분은 좀 비꼬는 풍이거나 강한 어조였다.
1875년에 Ulises Francisco Espaillat은 반 메렝게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메렝게는 나라의 농촌 지역인 시바오(Cibao)에도 퍼졌으며, 그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오늘날에도 이 지역은 메렝게의 요람으로 알려질 정도이다.
금세기 초에 고전 음악가들과 그들의 뒤를 이은 대중 음악가들은 이 춤을 살롱 춤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캠페인을 벌인다. 비록 좀 강한 어조의 가사들의 저항에 부딪치지만.
그러나, 1930년부터 이러한 판도에 변화가 생긴다. Trujillo는 독재자가 되기 바로 전에 치른 선거전에서 guira, 북, 아코디온으로 구성된 세칭 "perico ripiao" 그룹 악단들을 여럿 동원하며, 이로 인해 이 음악을 모르던 지역까지도 이 새로운 음악이 전파된다. 이 음악의 유포를 도운 것은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에 막 유입되기 시작한 라디오였다.
메렝게가 이처럼 많이 유포되고 선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칭 말하는 "도미니카 상류층"에서는 이 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제 2 도시인 산티아고의 "귀족" 가문의 하나가 축제를 벌이면서 음악가 Luis Alberti와 그의 오케스트라를 초대하고 메렝게에 좀 "점잖은 어휘"의 가사를 붙여 작곡할 것을 주문하자, 작곡가가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시에 그가 작곡한 것이 "Compadre Pedro Juan"이며, 이 노래는 이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을 즐겁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감격시킨다. 이 노래는 결국 메렝게의 성가가 되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메렝게가 유포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물론 라디오 보급이 큰 몫을 한다.
메렝게가 도미니카 전역으로 유포되면서 메렝게의 여러 분파가 생겨난다. 이것은 문화적 현상에는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것으로,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가 메렝게에 덧붙여지게 된다.
고전 음악가들이 메렝게의 음악적 형태를 정착시킨 반면, 대중 음악가들은 이 형태를 모방하고 따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전통적인 민속 음악인은 자신이 해오던 대로 메렝게를 계속 연주했지만. 이로 인해 메렝게는 두가지 형태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정통적인 민속 메렝게는 농촌지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더욱 더 고립화되고 있다. 반면, 민속 메렝게를 모방해서 태동된 살롱 메렝게는 외국의 영향으로 완전히 변모해버린다. 바로 이 후자인 살롱 메렝게가 더욱 널리 알려진 메렝게이며 바로 이 메렝게를 많은 이들은 민속 메렝게로 알고 있다.

V. 메렝게류 춤

메렝게에서 파생된 몇 가지 춤도 이 이름을 사용한다. 사실, 이름으로만 본다면 부두에 사는 이들 사이에서 추는 춤에도 비슷한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국가 전체와는 관계없이 지극히 지역적인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pambiche"의 경우는 다르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메렝게에서 다른 부분을 다 빼고 단지 마지막 부분인 jaleo만 살린 경우가 바로 이 춤이다. 이것은 도미니카 공화국을 점령했던 미국 수병들이 메렝게의 빠른 리듬을 따라 하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인 것에서 유래된 춤이다.
"bolemengue"는 Luis Senior라는 음악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볼레로와 메렝게를 합쳐서 혼합 노래를 만들어냈다. 비록 그가 작곡한 첫 음악이 대중의 인기를 끌고, 사람들이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는 하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문화적 요소를 구성한다고 속단하기 이를 정도로 연륜이 짧다. 이 음악이 계속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사회화되고, 널리 유포될 지에 대한 판가름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라디오와 정치적인 이유로 메렝게가 대량 유포되었다고 하지만, 메렝게가 도미니카 민속 음악의 중심 축을 이루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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